존경하는 조현삼 목사님께늙은 노인들만 남은 소록도(평균 연령 75세).코로나 위기에 발길 뚝 끊기고 외롭게 살아가는 이때교회에서 마을 담당들을 불러 서울광염교회서 보낸 찰밥 도시락 집집마다 다니며 나눠줍니다.이 추운 날씨에 웬 사랑, 웬 은혜인가?어떻게 여길 왔을꼬. 궁금해하며 온기가 남은 도시락을 먹습니다.아내와 함께 나섰습니다.서해안 대설이 그치고 영상으로 기온이 올라 길이 열렸습니다.딱 좋은 날 잡아 나서니 다행입니다.4일 전에 주문한 찹쌀 도시락은 떡집에서 찾아동산교회 젊은 부목사님이 운전하는 봉고에 싣습니다.소록도 떡을 맡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13)어느 날부터인가 제 안에서 가슴이 터질듯 한 뜨거운 열망이 끓어올랐습니다. 성령께서 내게 임하셔서 일으키시는 그 소원, 그 열망이 곧 나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총신신대원에 재학 당시, 기숙사 4층에 마련된 예배당에서 기도하던 중이었습니다. 저는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과, 스스로에게서 타오르는 열망을 비교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깜짝 놀랐습니다. “남도를 내게 주소서!”라고 그토록 열망했던 기도 안에 제가 탐하는
교회는 본질적으로 성도들의 거룩한 교제로서의 공동체(Communio Sanctorum)다. 그러나 장기화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교회는 법적으로 이 본질을 금지당하고 있다. 자유로웠던 컨택트(Contact)상황이 언택트(Untact)로 일컬어지는 비대면 상황으로 변하고, 대안으로 제시된 인터넷 온택트(Ontact)에서 교회는 예배와 교제, 양육과 봉사, 그리고 복음전도 사역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팬데믹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무리 ‘위드 코로나’가 선언된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 이전처럼
믿음의 선배들은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을 때마다 영적 상징물들을 남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세겜과 벧엘에 단을 쌓아 자신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야곱은 자신과 함께 열어갈 신앙의 역사를 약속하신 하나님 앞에 돌베개를 세우고 기름을 부으며 서원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영적 상징물들을 다시 접할 때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되새기며 흐트러진 신앙을 다잡고, 힘을 내어 새 출발을 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기울어가는 2021년 12월에, 내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되짚어보는 중입니다. 목회의 마지막 여정에 열정을 불어넣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힘입어 섬기던 교회를 떠나, 청소년 몇 명과 동생들을 개척 구성원으로 삼아 남향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제게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가라’는 사도행전 8장 26절의 말씀에서 착안하여 교회 이름을 정했습니다.목포 삼학도의 허름한 기와집 2층을 빌려 강단을 꾸미고, 의자를 들여놓고 설립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래층에 사는 고등학생을 전도해 함께 일하기도 했는데, 그는 지금 훌륭한 목회자가 되어 주님의 교회를 잘 섬기고 있습니다.바닷가에 자리잡은 목포 삼학도에서 만나 전도한 이들 중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30여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라는 상황이 2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세계 어디서나 재앙 수준의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교회에서도 예외 없이 코로나19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우리는 다른 전염병들처럼 잠시 기승을 부리다가 이내 지나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예측과 달리 코로나19 정국은 장기화 되는 형국이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 상황이 앞으로 5년은 더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중에서,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고 예상치도 못했던 목회환경으
성경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죽지 않고 천국에 갔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죄가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받들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동행했다. 다윗은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모시고 동행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과 연합된 동행의 삶을 살았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이 땅 위에 계시는 동안 성부 하나님과 동행하셨다(요 8:29). 코로나 19로 위축된 성도가 살아날 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나 혼자 살면 제한된 나 혼자의 힘으로 버티다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편 139편 1절)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막 16:24)이 그리스도인의 삶인데, 십자가의 고난 없이 주님의 제자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요행의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결혼 전부터 ‘저에게 주실 자녀는 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게 하시며 몇 배로 더 귀하게 쓰임 받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해 왔으나 하나님께서 쓰시는 좋은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냥이라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2012년 1월. 창밖으로 함박눈이 내리던 그날, 하나님께서 우리
어려운 교회들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만 보면서도 그 상황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저를 질책하는 하루였습니다. 여러 미래자립교회들 속에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딱 한 가지 음향장비만 살펴보았는데도, 제 자신이 시골교회 목회자들의 애환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 다시 한 번 깊이 반성해야 했습니다. 아마도 30년은 사용했을,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앰프를 보았습니다. 낡은 스피커들과 케이블들까지 먼지 옷을 둘러쓴 채 이상한 소음을 내며 목사님의 말씀선포를 힘들게 만
작년 2월에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확산된 코로나(COVID19)는 벌써 만 2년이 되어갑니다. 코로나 시작이후 벌써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12월입니다. 늘 성탄이 다가오면 우리교회 관리집사님이 교회건물에 성탄절 전구를 장식합니다. 아주 오래된 전통이고, 성탄절 장식 전구를 보면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됩니다.우리 교회 주변에는 지난 2019년 가을부터 시작된 아파트공사가 이젠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진척이 많이 되었습니다. 2023년 봄에 완공하여 입주하게 될 날까지 이젠 1년 6개월정도 남겨놓은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언 17장 3절)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연단을 받습니다. 쇳덩이를 그대로 쓸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쓸 수 없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백성을 만들기 위하여 연단하십니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연단하여 사용하시고 그 방법은 질병이나 어려운 상황, 자녀나 가족과 같은 사람을 도구로 하여 연단하십니다. 연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뿐더러 연단을 받게 되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건 아닌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있습
젊은 날부터 이 말씀이 제 가슴 속으로 훅 들어와 버렸습니다. ‘순금 같은 믿음’이 좋아서였을까요.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늘 되새겼습니다. 우리 어릴 적 학생회나 청년회 헌신예배 시간에 회원 호명할 때는 어김없이 이 구절을 외웠습니다.시간이 흘러 사명의 때가 다가왔습니다. 남도를 섬기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훈련하시는 과정에는 솔직히 후회도 있었습니다. 교인 10여 명과 청소년 30여 명으로 남도선교를 시작하면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짐바리 자전거로 시장을 봐오고, 버스터미널마다 찾아다니며 기타를 들고 청소년들을 보내달라고
장흥군과 보성군 사이에는 해발 807m 높이의 제암산이 있습니다. 그 산 북동쪽에 있는 자연휴양림 웅치계곡에는 남도 제일의 풍광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곳 7부 능선에 자갈이 깔린 청소년광장이 있습니다. 거기에 700여 명의 학생을 모아놓고 청소년복음잔치를 열었습니다.내 아내는 50인분 밥솥 여러 개를 머리에 이고 그 고지까지 나르느라 파김치가 되었고, 남자 스태프들은 5t 트럭을 주 무대로 힘들게 꾸몇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한 무리의 양복 차림 신사 분들이 나타나더니 전기를 끊어버리는 게 아닙니까? 알고 보
초등학생 때 즈음 필자가 살던 동네의 선박은 돛단배나 노를 젓는 배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섬에서 처음으로 발동선을 사오셔서, 어린 마음에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 가세가 기울자 아쉽게도 그 배를 팔게 되었습니다.그런데 군복무 시절 암호병만 쓰던 독방 속에서 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임하시자 팔아버렸던 그 배가 내 마음 속에서 다시 살아나더니, 선교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배를 타고 남도의 마을과 섬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꿈이 마음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남해안을 내게 주소서!” 정말로 그 꿈은 하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겔 22:30)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탓에, 농촌에서는 70살을 먹어서도 제일 젊은이로 취급받으며 교회를 섬깁니다. 그러니까 자기 몸 가누기도 힘겨워하는 노인들이 오늘날 겨우겨우 예배당을 지키고 있는 것이 농어촌 교회의 현실입니다.미래자립교회 지원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그 사정을 가까이에서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부임하고 2년여 동안 보일러도 가동되지 않는 냉골 방과 거
소록도 사람들의 애틋한 이야기를 포근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한다.운전 중에 급하게 받은 전화는 강선봉 시인이다. 아내 건강이 갑작스럽게 안 좋아서 지금 구급차를 불러 전남대학병원 응급실로 온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았는데 소록도병원에서는 치료할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이다.황혼이 내리듯 마음이 조급하다. 2시간은 걸려야 광주에 도착할 것 같다. 내가 그를 ‘형님’이라 부르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공감 때문이다.강선봉 소설가의 슬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수년 전, 소록도 남성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예배시간이면 피아노를
2020년을 맞이할 무렵 까닭 없이 몸무게가 14kg이나 빠졌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병원을 찾았더니 급성 당뇨로 혈당수치와 당화혈색소 수치가 매우 높다고 나왔습니다.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하게 검사한 결과 신장에 암이 발생한 것 같다는 진단을 받고, 부천 성모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수술 직전에 비뇨의학과 교수께서 저의 경우 95% 신장암으로 판단되는데, 별도로 췌장에도 이상이 있다는 새로운 진단을 내렸습니다. 외과수술 집도의 교수님, 소화기내과 교수님, 영상분석학과 교수님 등이 종합적으로 진단한 결과 췌장 머리와
며칠 전 한 목회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분과 저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결손가정 아이들과 어렵게 공동생활을 하고 있을 때 ‘시골교회에 돈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성미는 조금씩 남아서, 모아 가져왔노라’고 쌀 한 자루를 내려놓고 가신 분이 바로 이 목사님이셨습니다. 배고팠던 우리에게는 그 일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그런 분과 한 노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어느 날에는 그 목사님께서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해왔습니다. 급히 달려가 보니 목사님 혼
하루는 쌀통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작은 시골교회 목사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그래도 목포 시내에서 사역하는 중이었고, 그분은 무안군 운남면 농촌마을에서 목회하는 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비록 우리 교회가 가난하지만, 성미만큼은 넉넉합니다” 하면서 쌀 한 자루를 던져놓고 가셨습니다.봄 방학 때와 여름 방학 때는 아이들을 불러들여 청소년수련회인 ‘복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해변 마을들과 섬마을들을 찾아가서 성경캠프를 열었습니다. 보통 성경캠프에서는 5~7명으로 구성된 팀과 함께 사역을 하곤 했습니다.그
6·25전쟁 직후 갈 곳 없는 전쟁고아들은 무작정 기차를 탔다가 종착역인 목포에 내렸습니다. 그래서 목포에는 고아원이 많습니다. 유학생들이 가장 많은 곳도 목포입니다. 험악한 파도와 싸우며 내 자식만큼은 잘살게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들은 모질게 돈을 모아 육지인 목포에 집을 사고,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특히 항구에는 결손가정이 많았습니다. 가난 속에 홀로 자식들 먹여 살리려는 아낙네들의 억척스러운 삶이 그 항구에 있었습니다. 갈 곳이 없어서 시청이나 항만청 소유지에 몰래 밤에 들어가서, 겨우 비만 피할 수 있는 집을 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