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어머니 눈물의 기도
상태바
소록도 어머니 눈물의 기도
  • 황영준 목사
  • 승인 2021.11.03 0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록도 소설가 강선봉 이야기
해록 강창석 시인, 황영준 목사, 강선봉 소설가(왼쪽부터) - 교회 뜰에서
해록 강창석 시인, 황영준 목사, 강선봉 소설가(왼쪽부터) - 교회 뜰에서

소록도 사람들의 애틋한 이야기를 포근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한다.

운전 중에 급하게 받은 전화는 강선봉 시인이다. 아내 건강이 갑작스럽게 안 좋아서 지금 구급차를 불러 전남대학병원 응급실로 온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았는데 소록도병원에서는 치료할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이다.

황혼이 내리듯 마음이 조급하다. 2시간은 걸려야 광주에 도착할 것 같다. 내가 그를 ‘형님’이라 부르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공감 때문이다.

강선봉 소설가의 슬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수년 전, 소록도 남성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예배시간이면 피아노를 연주하는 노인 집사였고, 개인적으로 만나서 자신의 지나온 삶과 간증을 나누곤 하며 종종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1939년, 진주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삶은 참 특별하다.

어머니가 결혼해서 딸 하나를 낳고, 청천 하늘에 벼락같이 찾아온 한센병에 집에서 쫓겨나듯 하였다. 친정으로 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한센인들이 모여서 동냥질로 살아가는 외진 곳을 찾아가 어울려 살았다. 갑작스럽고 기막힌 형편이고, 앞일은 캄캄했다. 그런 생활로 몇 년을 지내다 한 남자를 만났는데,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선봉이라 불렀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덮친 불행,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아비가 세상을 떠났다.

눈물 세상, 어린 것을 살려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 이 집 저 집 문전걸식을 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어린 것을 등에 업고, 때로는 손을 붙들고 동냥질에 나섰지만 여자의 몸, 몹시 힘들었다.

동냥질에 나설 때면 몇 사람씩 패를 나누어 마을을 찾아갔다. 독하게 마음을 먹었지만 집 앞에 서면 머뭇거릴 뿐 입이 열리지 않았다. 어린 것이 보기에도 어머니처럼 하면 보리 한 줌도 못 얻을 것 같았다.

엄마 손을 잡은 어린 것이 “동냥 왔어요!” 소리 질렀다. 한 번은 부인이 나와서 보리쌀 한 줌을 주더니 아이를 눈여겨 살피다 혀를 찼다. “잠시 기다려라.” 하더니 쌀 한 그릇을 부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린 것을 불쌍히 여기는 따뜻한 손길이었다.

1946년, 방황하듯 이곳저곳 걸식하는 한센인들을 강제로 소록도에 수용했다. 갈 곳 없고, 맡아줄 사람도 없는 선봉이를 엄마가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한센인의 자녀들은 소록도 보육원에 수용되었지만, 어린 것들이 춥고 배고프고 차별까지 받았고, 어려운 환경에 지독하게 고생하면서, 13세 되던 해에 한센병이 그를 붙잡았다. 혼자 한센병 진통을 겪는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서러워하며 애간장이 끓었다.

어머니는 기도하며 말했다. ‘혼자 살아도 공부해야 한다, 배워야 한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하나님이 하시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며 희망을 품었다. 교회생활이 그의 기쁨이었다. 아이들과 어울려 소학교와 중학 과정을 마치고, 소록도병원에서 의료인을 양성하는 의학강습소 과정도 마쳤다. 그런 고생이 평생 살아갈 발판이었다. 장로님들은 그의 믿음과 성실함을 보고 신학교에 보낼 생각도 했지만 그 길을 따르지 못했다.

세상으로 나갈 기회가 열렸다. 한센인들 자립 정착을 위해 소록도 사람들 자력으로 육지에 간척 공사를 시작했다(1962년). 그렇게 육지로 나온 그는 사라지듯 멀리멀리 떠났다. 세상에서 의료계 사람들과 어울려 열심히 살았다.

“강 집사야, 소록도의 믿음을 잊어버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 뜻 안에서 모든 일을 해라… 육신의 세계는 잠깐이요 영의 세계는 영원하니까. 신앙생활 잘 해서 우리 천국에서 길이길이 살아야 할 것 아니가” 유언하듯 당부했다.

“어머니! 빈손 들고 사회에 나가보니 나오는 게 눈물이요 한숨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눈물, 빗물, 김칫국물에 젖은 밥을 먹어봤어요. 이제, 자리를 잡았으니 어머니 말씀대로 열심히 신앙생활 잘하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하였다. 통곡하며 기도하던 한나 같은 여자, 찬송으로 감사했던 천사 같은 여자, 중도에 실명해서 반 백 년을 살다 93세(1996)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다시 찾아온 소록도,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 흩어졌다. 마을과 교회 몇 군데가 폐쇄되었다. 복지혜택과 주거생활 좋아졌다. 고향 같은 곳에 오랜만에 들어와. 화장터 일도 했고, 마음을 나누는 원생 자치회 일도 함께 했다.

한센인들의 권리와 인권 회복을 위해 지난 슬픔과 고통과 강제 노역을 증언하는 『소록도, 천국賤國으로의 여행』을 냈고(2012. 3. 4), 시집 『곡산의 인동초 사랑』 출판했다(2006). 일본의 한센인 단체 초청으로, ;한국 한센인들의 성공적 정착생활’을 소개하고, 자신이 애환을 담은 강선봉 시집 『小鹿島の松籟』를 출판했다.(2018.). 쓰는 글들이 애환과 애끓음과 믿음과 감사와 소망이다.

어려운 중에도 ‘한하운 문학회 보리피리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부인이 회복되어 다행이다. 코로나 물러가면 바닷가 집으로 찾아가서 세상 사는 이야기 나누며 점심 한 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하십시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