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쌀통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작은 시골교회 목사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그래도 목포 시내에서 사역하는 중이었고, 그분은 무안군 운남면 농촌마을에서 목회하는 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비록 우리 교회가 가난하지만, 성미만큼은 넉넉합니다” 하면서 쌀 한 자루를 던져놓고 가셨습니다.

봄 방학 때와 여름 방학 때는 아이들을 불러들여 청소년수련회인 ‘복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해변 마을들과 섬마을들을 찾아가서 성경캠프를 열었습니다. 보통 성경캠프에서는 5~7명으로 구성된 팀과 함께 사역을 하곤 했습니다.

그 중에 정아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정식으로 피아노학원을 다니지 않았음에도 매우 능숙하게 반주를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날도 캠프 일과를 마치고 팀원들 모두가 반성회 겸 기도회를 갖는 중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정아에게 임하셔서 중학교 시절 자기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당시 정아는 악성 티눈이 온 발바닥에 퍼져서 발을 절단할 수도 있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병원을 나오며 정아는 이런 서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 발을 낫게 해주시면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제 때가 이르렀으니 서원을 실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아는 많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아직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던 정아의 부모님이 선교사의 길을 허락할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정아와 함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정말 기적적으로 정아 엄마아빠의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선교지로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공동체 식구들의 힘만으로는 정아를 파송할 수 없었습니다. 선교비전을 실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파라과이에서 사역 중인 양창근 선교사님의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선교현장에 당장 찬양사역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와우,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인도하신다!” 이렇게 하여 자기 앞가림도 못하던 사람들이 해외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가라’하신 비전을 붙들고 고군분투한 지 10여 년, 그 후 하나님께서는 비전을 업그레이드해 주셨습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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