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본질적으로 성도들의 거룩한 교제로서의 공동체(Communio Sanctorum)다. 그러나 장기화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교회는 법적으로 이 본질을 금지당하고 있다. 자유로웠던 컨택트(Contact)상황이 언택트(Untact)로 일컬어지는 비대면 상황으로 변하고, 대안으로 제시된 인터넷 온택트(Ontact)에서 교회는 예배와 교제, 양육과 봉사, 그리고 복음전도 사역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팬데믹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무리 ‘위드 코로나’가 선언된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 이전처럼 대그룹으로 모이는 대면 집회가 완전 복원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고 전언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더욱 소외되고, 비대면을 전제한 온택트(Ontact) 산업의 영역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서는 함께 모이기를 포기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선한 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해 서로를 자극하고 격려하는 능력과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거룩한 사귐과 교제로서의 코이노니아(Koinonia)가 있는 성경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 ‘위드 코로나’ 상황 속에서 대안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할까?

사도행전 2장 42~47절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의 권능을 통해 회복된 예루살렘교회는 모일 때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고, 친밀한 교제를 했고, 집중력 있는 기도를 했다. 부요한 그리스도인은 부족하고 빈곤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필요한 것을 나누며 섬겼고, 영육간에 힘든 이들은 자존감이 훼손당하지 않으면서 교회가 진행하는 모임에 가기만 하면 필요를 공급받는 유무상통의 은혜가 있는 공동체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모임의 형태다. 이들은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면서 회당을 빌려 대그룹으로 모이는 것과 동시에 한 성도가 개방한 집에서도 모이는 소그룹을 균형있게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이웃들에게 칭찬받는 공동체로 자리매김을 했고, 날마다 새로운 영혼들이 영적 공동체로 들어오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 여기서 얻는 분명한 교훈이 있다. 아무리 팬데믹과 같은 어려운 상황으로 대그룹으로 모여서 진행하는 사역이 여의치 못하다고 하더라도 소그룹 모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역동적으로 모일 수 있는 소그룹 목회적 환경과 소그룹 리더십을 배양한다면 끊임없이 복음의 확장성을 꾀할 수 있다는 성경적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

특별히 ‘위드 코로나’상황 속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들 사이의 연락은 점점 편리해졌는데 인간소외는 더 심각해져 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기독청년 4명 중 1명은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안타까운 보고도 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관계를 지향하고 코이노니아적이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 속에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가족도, 믿을만한 이웃도 없어진 상황 속에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고 있다. 로버트 니스벳과 같은 사회학자들은 소외가 번져 가는 사회 속에서 유일한 대안은 “작은 규모와 안정된 구조의 공동체”라고 지적한다. 긴 시간 소그룹 사역을 해 오면서 효과적인 소그룹의 인원수는 3명 혹은 4명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러므로 대그룹과 소그룹 사역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소그룹의 역동성과 구성원들의 친밀감을 조성할 수 있는 방안과 전략만 가지고 있다면 ‘위드 코로나’ 속에서도 주님의 교회는 영원한 소망의 그루터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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