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배들은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을 때마다 영적 상징물들을 남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세겜과 벧엘에 단을 쌓아 자신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야곱은 자신과 함께 열어갈 신앙의 역사를 약속하신 하나님 앞에 돌베개를 세우고 기름을 부으며 서원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영적 상징물들을 다시 접할 때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되새기며 흐트러진 신앙을 다잡고, 힘을 내어 새 출발을 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기울어가는 2021년 12월에, 내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되짚어보는 중입니다. 목회의 마지막 여정에 열정을 불어넣고 싶어서 저를 다시 뜨겁게 할 추억 하나를 소환합니다.

1990년쯤으로 기억됩니다. 예상 참가인원을 150여 명으로 잡고 청소년 복음잔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캠퍼스를 빌려서 수련회를 한다니까 신뢰가 높아졌는지, 예상 밖으로 학생들이 700명이나 등록했습니다. 대학 강당을 본 무대로 하고 기숙사 두 동을 숙소로 허락받았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 건물을 오르내리며 학생들을 관리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알게 된 큰일이 당시 현장에 있었습니다.

복음잔치를 56번이나 치르는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주방을 맡아 섬겨온 아내가 언젠가 스태프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수련회를 치르기 위해 준비된 식료품이 하루 만에 다 바닥나버렸답니다. 가난한 개척교회 사모인 아내는 그 많은 학생들의 음식을 준비하느라 3박 4일을 뜬눈으로 꼬박 새우며 초인적인 힘을 쏟았답니다.

무심한 남편은 허리가 아파서 꼼짝도 못 하는 아내의 사정도 모른 채, 자기 아픈 것만 못 견뎌하며 병원을 찾았습니다. 담당 의사가 예진을 해보고는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이렇게 몸을 혹사할 사람 같지 않은데 어쩌다 몸을 망가뜨렸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척추 주변의 근육이 부어서 디스크를 압박하는 탓에 아픈 것이니 집에 가서 푹 쉬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귀가한 후 아픈 허리를 끌고 사택에서부터 예배당 바닥끝까지 간신히 기어가 엎드렸습니다. “주님 위해 일하다가 이렇게 아프면 주님 영광을 가릴 것이니 속히 치료해 주옵소서!” 그렇게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정적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일을 네 힘으로 다 감당했느냐? 네가 한 일이냐?”

생각해보니 도저히 저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해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감당할 힘을 주셨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한참을 울며 회개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기도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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