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편 139편 1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막 16:24)이 그리스도인의 삶인데, 십자가의 고난 없이 주님의 제자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요행의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결혼 전부터 ‘저에게 주실 자녀는 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게 하시며 몇 배로 더 귀하게 쓰임 받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해 왔으나 하나님께서 쓰시는 좋은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냥이라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2012년 1월. 창밖으로 함박눈이 내리던 그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예안이를 선물로 주셨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 부부가 충분히 기뻐할 시간도 없이 아이
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며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태어난 지 하루도 지나기 전, 아직 아버지라는 호칭이 익숙하지도 않은 그때에 홍해의 기적을 방불케 하는 앰블런스를 타고 서울성모병원에 가게 되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심장 모양에 문제가 있어 새파란 입술로 태어난 아이. 하루 10분 신생아 응급실에 입원한 아이를 보고 나올 때에는 차마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비상계단으로 내려오며 짐승처럼 꺼억꺼억 우는 제 울음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쳐서 더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네 살이 될 무렵 첫걸음을 내딛었으며, 지금도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낙심이 되곤 했습니다. 예안이가 자랄수록 또래 아이들과 차이가 나면서 어른 뿐 아니라 아이의 친구들까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때 즈음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마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139:1)

하나님께서 나를 살피시고 아시기에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 애써 내 마음을 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주님은 나를 기만하지 않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그분께 내 삶을 내어 드리고 맡기니 주님의 넓은 품에 안아주시고 위로해주시며 저의 사명의 길을 견고케 하셨습니다.

받아들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 어려운 가정을 보며 느끼는 상대적인 우월감도, 기적과 같은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나에게 가장 잘 맞기에 허락하신 아이의 존재, 그 자체를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을 불평하기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정에게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하셨다는 믿음은 모든 순간이 기적이고 감사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고나니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가슴 아파하며 보낸 그 시간들이 어쩌면 그때에만 주어지는 행복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신실한 제자로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아가며, 받은 은혜를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고자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담고 계신가요? 그리고 무엇을 닮아가길 원하시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삶이 가장 존귀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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