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의 저출산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반면, 사회와 국가가 육아를 적극 지원할 때까지 출산파업을 벌이겠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거기엔 복잡한 지형과 의제들이 있겠지요. 그런데, 제가 엄마가 되어 겪은 첫 번째 어려움은 이동권의 제약이었습니다. 그동안 육아에 관하여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직접 겪고 보니 당황스러울만큼 어려운 점이 있었고 그 중의 하나는 아기와 교회를 가는 것이었습니다.교회의 영유아실에 있으면 아이들이 뛰어다녀서 집중하기 어렵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아기를 데리고 가는 경우에는 고
최근 한반도 정세는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다. 크게 3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한반도 군사적 긴장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다. 다른 하나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과 양국 정상회담의 결과로 나타나는 중국의 대한반도 영향력 확대 상황 즉 중국발 쓰나미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안에 차이를 다양성으로 수용하고 함께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전제로서 화해는 우리 남한 사회의 내부적 사회적 갈등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남북의 분단 과정을 넘어서게 하고 한민족 재 통합 과정을 실효있게 하며 그 결과 평화 한국이 동북아 평화를 일구어 내며, 우리 한민족 공동체가 세계 평화에 더 깊이 기여할 수 있게 하는 세계 시민적 영성적 헤게모니인 것이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교회는 적어도 동북아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의 흐름을 직시하면서 동북아를 비롯한 관련 당사국가들의 교회들과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통일시대의 동북아와 세계를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비젼을 마련해야 하리라고 본다.
우리는 2010년 6월, 강대국에 둘러싸여 분단된 남쪽 땅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특별한 시간과 공간속에 살도록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중산공원의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나들이 나온 단란한 가족과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는 젊은이들, 한쪽에선 햇살을 받으며 자연을 즐기는 노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또래의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있지만 어딘지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들 중 특별히 눈에 띄는 이들이 있다. 분명 노인인데 노란 띠를 가슴에 사선으로 두르고 있는 모습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분주히 말을 건네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이들은 바로 일산장로교회 부침개전도대 1호인 제1남전도회원들이다. 이들은 지난 2년간 토요일 오
최근 모 기독교기관이 발표한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적 신뢰도가 미미하지만 상승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교회를 앞서 섬기는 이들이 교회의 성숙은 교회가 직면한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보다 구체적으로 새롭게 되는 일에 함께 동역 의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교회를 세우기 위한 동역자로서 당회원들이 갖는 의식은 교회의 방향과 성숙을 결정짓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당회원들의 의식은 교회가 움직여가는 원리와 사역에 자렛대로 작용하기에 당회원들의 건강하고 성숙한 의식은 교회의 성숙과 부흥으로 귀결된다. 이런 점에서 당회원들의 의식이
발제자는 이미 한국 신학계를 대표하는 종교사회학자 중 한 분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한 명성에 걸맞게 발제자는 종교사회학적 입장에서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 명암과 더불어 대안까지 나름대로 잘 설명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부족한 사람의 기조 발제에 대하여 때로는 과분한 칭찬으로 격려해 주시고, 때로는 예리한 비판으로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주신 세 분께 감사드립니다. 사실상 오랜 세월 종교사회학적으로 한국교회를 연구해 온 학자로서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대하여 평가하고, 미래적인 희망을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본 글은 종교사회학의 대표적 학자인 이원규 교수의 생각이 집약된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규 교수는 한 신학교에서 종교사회학 교수로서 30년간 사역을 하였다. 신학교 안에서 사회과학인 종교사회학자로 이 사회와 교회를 보면서 그는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이원규 교수의 옥고와 그에 기초한 발제는 오늘날 한국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위기의식을 종교사회학이라는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매우 예리하게 분석하고, 그 대안을 기독교 사회윤리학적 관점에서 제안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2천 년대에 와서 한국교회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끝없이 그 위상이 추락하여 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했다는 질적인 측면에서 생겨나는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존 맥스웰은 “리더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아무도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그는 단지 혼자 산책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함으로서 리더십을 가졌다는 것은 바로 영향력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실제로 리더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는가 하는 것은 그 공동체의 성패는 물론이고 존립과도 직결되어 있습니다.지금 조금만 귀를 크게 열면 이 땅의 교회에 대한 이러 저러한 소리들이 많은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세상 앞에 무력한 군중의 모습을 보인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콥틱 교회는 세계 교회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교회 가운데 하나이다. 콥틱 교회는 콥트 언어를 쓰던 교회로서, 콥트어는 과거의 이집트 언어, 즉 애굽인들이 사용하던 고대 언어를 말한다. 옛날부터 이집트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제국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에서 콥틱 교회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콥트어는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 언어의 수난은 주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공용어를 헬라어로 사용하도록 명령함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콥트어는 이집트 내에서도 천
모카탐, 쓰레기 마을이집트 카이로, ‘모카탐’이란 지역은 ‘쓰레기마을’로 유명하다. 거리마다 온통 쓰레기들로 가득한 이곳 사람들은 카이로 전역의 쓰레기들을 모아와 ‘쓰레기마을’에서 분리․수거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쓰레기마을’은 언제나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쓰레기들로 넘쳐난다.잠시도 있기 힘든 비위생적인 쓰레기마을에서 이곳 사람들은 태어나고 자라며,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 쓰레기 냄새가 배여있는 자신들의 삶에 순응하며 언제나 밝은 표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이들 대부분은 ‘콥틱’이라고 불리는 이집트정교회에 속한 기독교인
마태복음 20장 1~16절제3차 장로섬김수련회에 오신 여러 장로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일반적으로 성장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교회가 성장하고 잘 되는 것은 첫째는 목사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목사는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데 있어서 승패가 갈린다. 동역자 가운데서 첫째가 장로님들입니다. 좋은 동역을 할 수 있는 장로님들을 모시고 있는 그 목사는 행복한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참석하신 여러 장로님들 여러분의 섬김을 통해서 여러분의 교회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함께 동역하시는 목사님들이
화순 지역은 도시 근교에 있다고는 하지만 시골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 교회로서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화순서현교회(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벽나리 479번지, 김순철 목사 시무)는 건축 마무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건축을 시작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주님의 은혜로 김순철 목사님을 중심으로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졌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부족한 재정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지만 이 부분 역시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공사를 시
성경적 교회(성전)관 회복이 절실하다. 물질적 성전의 완성을 뛰어넘어 유기체적 신령한 성전이 세워지는데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현대 교회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건물 중심의 의식을 가지고 교회의 본질이 약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신축하는 교회들 가운데 무리한 성전 건축으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성정 건축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교회들은 주님이 집중하신 핵심 사역(Core Works)인 선교, 교육, 봉사 등을 제대로 감당치
두흐로 교수는 이 글을 통해, 종교개혁자들인 칼빈이나 루터가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되는 테제들을 그대로 승인하고 있지 않음을 설명한다. 오히려 그들은 당시 새롭게 발흥하려는 자본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도시경제를 견제하는 발언들을 많이 하였으며, 그 내용들을 신학화하였음을 두흐로 교수는 언급하고 있다.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칼빈의 가르침에 주목할 수 있도록 해 준 두크로브 교수께 감사를 드린다. 현 시대와 같이 경제위기, 특히 자본에 의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 때에 고전의 힘으로 경제를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