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세의 변화

우리는 2010년 6월, 강대국에 둘러싸여 분단된 남쪽 땅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특별한 시간과 공간속에 살도록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 즉 “이웃 사랑”이 어떻게 국제정치와 연결되고 한반도에 화평과 통일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럼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의 주변 국제정세의 변화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최근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 경제 권력의 중심이 미국 및 유럽의 서양에서 중국, 인도 등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08년 시작된 세계금융위기는 미국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중국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흥성하게 됨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미국 국채를 8,000억 달러어치 이상이나 보유하게 되어 그만큼 미국 및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거꾸로 미국은 엄청난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 과거처럼 세계 질서를 주도하며 경찰 역할을 하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군사력으로 보면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군사 부문에 투자하는 연구 개발비는 세계의 다른 모든 국가들의 투자비를 합한 것보다도 큽니다.  그리고 미국은 아직도 교육, 과학, 기술 분야 등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세계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금융 개혁, 재정 적자 해소, 정치 개혁 등을 완수하지 않으면 미국이 과거와 같은 압도적인 지도력을 행사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중국의 상승세와 동아시아

중국은 1979년 이래 개혁개방 정책으로 나아가면서 매년 10% 가까운 고속 경제성장을 했습니다.  13억의 인구를 가진 거대국가가 그러한 고속성장을 한 것은 세계역사상 전례가 없는 사례였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성장을 가능하게 해주고 결국 미국과 경쟁할 정도가 될 수 있도록 초기에 안정적인 국제 환경을 제공한 것이 사실 미국 자신이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할 것을 우려한 닉슨 정부는 키신저 주도하에 중국을 국제무대에 끌어내 손을 잡고 소련을 견제하려 했던 것입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외국으로부터의 위협을 걱정하지 않고 경제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국력은 2025년까지 미국의 국력을 따라잡는다는 예측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속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중국은 미국이나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고 그래서 대외전략의 기본을 “화평발전”으로 잡았습니다.  자국의 경제력이 커졌다고 해서 결코 섣불리 앞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력의 상승세는 동아시아 및 세계에서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로 연결되고, 이는 곧바로 한반도에도 여파를 미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에서는 미중간의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급속 성장하는 신흥대국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존의 패권국에게 도전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는 자주 세계적인 대 전쟁으로 발전하곤 했습니다.  1870년 통일된 독일이 급속성장하면서 기존의 패권국 영국에게 도전해서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이 좋은 사례입니다.  이제는 핵시대가 되어서 대국들 간의 전면전은 생각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만 영향력 증대를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미국은 지난 20세기 초 이래 동아시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오면서 세력균형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동아시아 대륙이 어느 한 세력에 지배되는 것을 항상 견제해 왔던 것입니다.  1905년 로일전쟁을 마무리하는데 미국이 개입해서 중재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었고, 1930년대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할 때는 중국과 손잡고 일본을 견제했습니다.  1950년대 중국 공산당정부가 대륙을 지배할 때는 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는 중국을 품어 안고 일본과 함께 삼각체제를 만들면서 동아시아에 적극 개입해온 것입니다.  미국이 상당 기간 동안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의 개입정책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전통적으로 동아시아는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다시 말해 자국의 영향권이 미치는 지역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따라서 역외국가인 미국이 이곳에 들어와 개입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믿고 미국을 밀어내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상승하는 경제력과 그에 따른 영향력의 확대를 고려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냉전이 끝난 뒤 미일동맹이나 한미동맹을 냉전의 유산이라고 하면서 비판해온 것도 이러한 의도를 드러내주는 사례입니다.  결국 앞으로 다가오는 20-30년간의 동북아 정세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미중경쟁의 구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지난 20세기 초 이래 동아시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오면서 세력균형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동아시아 대륙이 어느 한 세력에 지배되는 것을 항상 견제해 왔던 것입니다.  1905년 로일전쟁을 마무리하는데 미국이 개입해서 중재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었고, 1930년대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할 때는 중국과 손잡고 일본을 견제했습니다.  1950년대 중국 공산당정부가 대륙을 지배할 때는 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는 중국을 품어 안고 일본과 함께 삼각체제를 만들면서 동아시아에 적극 개입해온 것입니다.  미국이 상당 기간 동안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의 개입정책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전통적으로 동아시아는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다시 말해 자국의 영향권이 미치는 지역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따라서 역외국가인 미국이 이곳에 들어와 개입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믿고 미국을 밀어내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상승하는 경제력과 그에 따른 영향력의 확대를 고려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냉전이 끝난 뒤 미일동맹이나 한미동맹을 냉전의 유산이라고 하면서 비판해온 것도 이러한 의도를 드러내주는 사례입니다.  결국 앞으로 다가오는 20-30년간의 동북아 정세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미중경쟁의 구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에 미치는 파장

중국과 미국의 영향력 확대 경쟁은 맨 먼저 한반도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은 대국인 일본을 움직여 미국과의 동맹에서 떼어내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겠으나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일본보다 작은 나라일 뿐 아니라 분단되어 있고, 북한은 이미 그들의 정치적 우방이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한의 경우는 노무현 정부 5년의 외교노선으로 미루어볼 때 충분히 자국의 영향력 확대가 가능하고 더 나아가 한미동맹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은 결코 한국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닌 듯 합니다.  예를 들어 1990년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 그 통일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국제정치적 상황은 지금의 우리 한반도의 상황과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독일이 통일될 때 통일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고 도와주었던 서독의 동맹국 미국은 냉전 종결의 와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독일 통일을 가장 반대할 수 있었던 소련의 세력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와중에서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서는 우리의 동맹국 미국은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어려운 상황이고 통일을 원치 않고 분단이라는 현상 유지를 원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의 힘은 갈수록 상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만일 통일이 되면 그것은 한국의 주도하에, 그리고 미국의 도움으로 될 수밖에 없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통일이 되면 한국과 미국의 영향력이 북상해서 자국의 국경 지역인 압록강까지 올라오게 될 것인데 이는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달가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차라리 북한이 가운데에 완충국가로 버티고 있어주어야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권이 그만큼 유지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도전일 것입니다.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기위해서 한국은 내부적으로 단합하고 대외적으로는 대단히 지혜로운 외교를 펼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북한 정권이 시대 역행적인 사고와 정책으로 민족의 앞날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주고 있는 형편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통일한국의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이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이룩하려면 맨 먼저 주변국들에게 해야 할 일이 통일한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여 한반도 통일이 어떻게 그들에게 이득이 될 것인지 설득하는 일일 것입니다.  중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 국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통일한국의 비전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저는 통일한국이 중동의 이스라엘과 같은 안보군사국가가 아니라 유럽의 네덜랜드와 같은 통상국가(通商國家, trading state)가 될 때 주변국들이 이를 통해 더욱 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2010년 4월 9일자 보도.)  여기서 통상국가라 함은 단순히 무역 및 상업뿐 아니라, 물류의 중심(hub) 국가를 의미합니다.  한국이 최근 수십 년간 한류를 세계 도처로 확산해 나갔던 데서 알 수 있듯이 문화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 국가가 된다는 목표도 함께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네덜랜드는 독일, 영국, 프랑스 등 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입니다만 유럽 통상과 물류의 중심(hub) 국가로 주변 국가들 못지않은 소득수준과 물질적 풍요, 그리고 안보 목적까지 달성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한국도 중국, 일본, 러시아, 바다 건너 아세안과 미국에 둘러싸여 있는 입지를 이제까지는 고난의 원인으로 치부했습니다만, 이제 앞으로는 한반도 번영과 안보 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자산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주변의 모든 국가들이 통일한국과 통상, 물류, 문화의 교류를 통해 더욱 번영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는 막연한 꿈으로 그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그동안 골치 아픈 안보 불안의 요인이었던 북한은 사라지고 주변 4국은 모두 정치군사적 안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통일이 되면 그동안 러시아와 한국의 숙원사업인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를 연결하고, 더 나아가 부산항으로부터 일본까지 터널을 뚫어 새로운 교통과 수송의 네트워크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생겨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동북3성 개발을 중요한 국가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중국, 시베리아 개발을 미래비전으로 삼고 있는 러시아는 물론이고 북한지역 개발에 투자하고자 하는 일본기업들도 모두 경제적 이득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한반도 통일을 그들이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적극 협조하고 나서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외교

이 같은 비전제시와 함께 한국은 통일 달성을 목표로 현명하고도 신중한 통일외교를 추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앞으로 북한과 관련해서 전개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공조하고 협력해 나가면서 대비태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주변국들 중에서 한반도 통일에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국가로 판단됩니다.  통일이후 북한지역의 개발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에 전통적인 우호국가인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인데 아직 북한 문제를 놓고 전략적으로 협력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한중간의 신뢰관계를 강화시킴으로써 한반도 평화에 관한 모든 문제를 긴밀하게 논의할 정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통일과정에서 중국의 우려 및 관심사항에 대해 우리 측이 충분히 협조해줄 수 있음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한국을 이념이나 정치체제를 뛰어넘어 긴밀한 우방으로 느낄 정도로 신뢰를 쌓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는 통일이 되면 한국과 시베리아 개발이나 철도 연결, 에너지 파이프라인 연결 등과 관련해서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기에 따라 한반도 통일에 러시아의 협력을 유도해낼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큽니다.

셋째로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더욱 높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개발도상국의 빈곤, 테러, 환경, 인권 문제 등에 대해 한국이 적극적으로 기여해서 한국의 도덕적 위상과 영향력을 높여놓아야 합니다.  이것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는 경우 한반도에 중대한 변화의 계기가 왔을 때에도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통합이 없는 통일은 모래성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정치가나 외교관이 미래의 통일비전을 제시하고 통일외교를 잘해서 정치적, 제도적 통일이 이루어져도 만일 남과 북의 사람과 사람들 간의 통합이 없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정치적 제도적으로는 통일이 되었는데 사람들 간에 실질적으로 하나 되는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회적 심리적 갈등이 증대하고 결국 언젠가는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옛날 예멘이 그랬듯이 다시 갈라지거나 내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결국 통일은 사람과 사람의 문제이고 그래서 곧 영혼과 영혼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정권 담당자가 아닌 북한 주민들)은 오랫동안 나쁜 체제 밑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심성과 영혼이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처를 남쪽의 사람들이 이해해 주고 품어 안아주지 못하면 결코 사람간의 소통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한국 교회의 사명이 존재합니다.  바로 여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하라는 명령이 강하게 행해져야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 통일은 사랑의 문제이고 기독교적 사랑으로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통일과 관련되어 세 가지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통일과 교회의 역할: 세 가지 질문

첫째 질문은 과연 우리 한국의 국민들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 중 수많은 사람들은 북한을 경제적 부담거리로 생각합니다.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통일은 해서 무엇 하나?” 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고는 성경적인 관점과는 정 반대로 사람은 말씀이 아니라 빵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바람직한 관점은 통일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 북쪽에서 고통 받고 있는 동포들에 대한 사랑이 먼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명령, 사랑을 앞세우고 그것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일이 올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통일을 선물로 주실 수도 있다는 사고가 성경적으로 앞뒤가 맞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한국 교회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과연 한국의 교회가 우리 사회 속에 만연해 있는 그러한 생각, 즉 “우리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통일이냐?”라는 생각에 대해 얼마만큼 강력하게 “그게 아니다”라고 외쳐왔는가 하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 한국의 교회가 얼마만큼 본을 보여 줌으로서 영적인 영향을 미쳐왔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북한 당국이 아니라) 북한의 주민들에게 얼마만큼 기도와 물질로 사랑을 나누었나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북한 주민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인지 고민하면서 지원했는지도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북한당국은 한국의 교회나 단체들을 서로 갈라놓고 경쟁시킴으로써 북한 주민들보다는 그들 스스로에게 이득이 더 많이 돌아가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를 방지하고 체계적으로 효과적으로 주민들에게 지원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교회들이 서로 연합하고 공동으로 행동해야할 텐데 과연 그렇게 해왔는지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통일된다면 품어 안아야 할 북한 사람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를 미리 이해하고 예습하라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들이 북한이탈주민들입니다.  그렇다면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말로만 외치지 말고 실제로 이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사랑으로 섬겨왔는지도 자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점들과 관련하여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에 대해 모범을 보여주고 그래서 영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통일문제를 둘러싼 개탄스러운 국내정치적 분열은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한국 국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독교계 (구교와 신교)의 입장만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아래 통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과연 북한 주민들이 남한과 통일하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독일 통일의 경우에도 통독 직전 동독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들이 서독과 통일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했었습니다.  민족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자결(民族自決)의 국제사회 규범이 동독 주민들을 상대로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북한에 비상사태가 벌어져 통일이 가능한 그런 상황이 왔는데 북한 주민들이 한국과 통일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한 핏줄을 나눈 민족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남쪽 사람들이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할 명분이 약해질 것입니다. 
더구나 국제사회에서는 남북한을 두개의 독립된 국가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중국은 대만-중국은 국가관계가 아닌데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한 두개의 독립된 국가들이고 그래서 남한이 함부로 북한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일 남한이 북한에 관해서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하면 중국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중국인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통일을 원하는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들의 통일하겠다는 의사일 것입니다.
만일 북한 주민들이 그 시점에서, 남쪽으로 탈북한 친지의 말을 들어보니 “남에 가면 차별받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3류 시민 취급 받는다고 하더라, 차라리 통일하지 말고 중국과 가까이 지내는 게 낫다”라고 생각한다면?  또 “과거 우리가 굶어 죽어갈 때 본체만체 했던 사람들이 남쪽 사람들인데 왜 우리가 그들과 함께 살아야 되나”라고 생각한다면, 통일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설령 어찌하여 통일이 된다고 해도 그 통일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간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정신이라고 봅니다.  다시 한번 한국 교회가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충실하여 한국사회 전체를 얼마나 그 방향으로 인도해 왔고, 앞으로도 인도해 나갈 것인가가 통일문제의 최대 관건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세 번째 질문은 과연 주변국이 한반도 통일을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은 가능하다면 분단된 상태로 현상유지가 되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특히 그러한 국가들 중에서도 중국의 경우는 북한의 완충국가화를 희망하여 통일에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 경우 통일에 대한 반대의 명분으로 그들이 주장할 사항은 북한의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데 남한사람들이 강제로 통일하고자 하는 것은 자결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두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한국 교회의 영적 리더십 아래 우리 국민들이 충분히 북한 동포에 대해 사랑을 베풀고 이로 인해 그들의 마음과 영혼이 움직여 남한과의 통일을 원하게 된다면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민족적 소망을 거스르며 반대할 명분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민족의 소망을 무시한 채 강대국 권력정치를 시행하려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부흥과 선교의 중심 국가로

이처럼 사랑은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종교 세계의 추상적인 개념으로나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세상 현실의 핵심을 꿰뚫는, 그중에서도 국제정치의 핵심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하고도 구체적인 현실적 힘인 것입니다.  결국 “사랑하라”는 말씀이 세상을 바꾸고 통일도 가능케 하는 추동력인 셈입니다.
아직도 소련의 공산당 지배가 한창이던 1983년 템플턴상 수상연설에서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6천만 명을 희생시킨 공산혁명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 뒤 스스로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채 아무리 통일하려 해도 그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이 될 것입니다.
결국 말씀을 이행하고 북한의 동포와 탈북주민들을 사랑하고 더불어 현명한 외교를 통해 평화적 통일이 오게 되면 우리는 동북아 평화의 주도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등과 분쟁으로 점철된 한반도에 평화 통일을 이루어낸 영적인 역량이 우리로 하여금 주변국에 비해 힘은 적지만 그들을 평화의 길로 인도해 나가는 정신적 지도국이 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한국은 앞에서 말한 통상, 물류, 문화의 허브국가 뿐만 아니라 말씀이 흥왕하는 기독교 선교의 중심 국가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질적 번영뿐만 아니라 영적인 부흥과 선교의 중심국가로서의 통일한국, 그것은 우리의 벅찬 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꿈을 달성하기 위해 최일선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이 여기 이 자리에 계신 바로 여러분들이십니다.  앞으로 평화 통일의 그날까지 여러분의 사역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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