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탐, 쓰레기 마을

이집트 카이로, ‘모카탐’이란 지역은 ‘쓰레기마을’로 유명하다. 거리마다 온통 쓰레기들로 가득한 이곳 사람들은 카이로 전역의 쓰레기들을 모아와 ‘쓰레기마을’에서 분리․수거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쓰레기마을’은 언제나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쓰레기들로 넘쳐난다.

잠시도 있기 힘든 비위생적인 쓰레기마을에서 이곳 사람들은 태어나고 자라며,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 쓰레기 냄새가 배여있는 자신들의 삶에 순응하며 언제나 밝은 표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이들 대부분은 ‘콥틱’이라고 불리는 이집트정교회에 속한 기독교인들이다.

콥틱, 이집트의 기독교인들

이집트에는 약 85%의 무슬림과 15%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이집트 교회는 약 1000만 명이라는 많은 기독교인이 있는 나라이다. 7세기 이슬람의 확장을 통해 이슬람 국가가 된 이집트는 기독교 말살 정책에 따른 박해과 차별에도 불구하고 1300년 이상 그들의 신앙을 지켜왔다.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허용되면서도 기독교로의 개종은 허용되지 않는 불평등한 사회.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은 130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그들의 신앙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아이의 이마나 손목에 십자가 문신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곳곳마다 모스크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집에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차별과 박해 속에서도 이집트 교회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들의 믿음의 뿌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그 현실은 너무도 처절하다. 현재 사회민주주의 체제인 이집트는 종교에 대한 자유를 주장하지만 현실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차별을 당하고 사회 진출에 많은 장애물을 경험하게 된다. 대학을 나와도 관공서나 직장에 취직하기가 어려워 자영업을 하거나,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은 곧 그들의 역경의 삶을 담고 있다. 이곳, 쓰레기마을은 그들의 어려운 생활고를 나타내는 곳이 아니다. 믿음의 결단에 따른 처참한 현실을 이겨내는 그들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모카탐 동굴 교회

쓰레기가 가득한 마을을 지나 모카탐 언덕 꼭대기에 오르면 거대한 돌산을 깍아놓은 동굴 교회가 펼쳐진다. 악취가 가득한 쓰레기마을 내면에 담긴 콥틱 기독교인들의 숭고한 신앙을 보듯, 동굴 교회는 쓰레기마을을 지나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모카탐 언덕에 우뚝 서 있다.

동굴 교회는 크고 하얀 돌산의 파인 곳에 예배 장소를 만든 15,000명이 수용가능한 중동 지역 최대의 교회이다. 동굴 교회 위 암벽에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 부활과 재림의 거대한 성화와 성구들이 새겨져 그 웅장함을 더 한다. 그리고 원형으로 넓게 펼쳐진 돌로 만들어진 좌석들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동굴 교회의 중앙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12사도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성화들이 있고 좌우로 촛불을 두고 기도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동굴 교회의 기도하는 곳 위에는 큰 물병을 짊어진 허름한 옷차림의 성인이 그려져 있다. 동굴 교회의 이곳 저곳에 그려진 이 성인의 이야기는 이슬람의 박해 속에서 콥트 교회가 1300년의 신앙을 지켜질 수 있었던 놀라운 역사를 담고 있다.

구두수선공, 시몬

이집트는 주후 640년경 이슬람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후 300년간 기독교의 암흑기라 할 만한 큰 핍박들이 있어 왔다.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절정에 이르렀던 주후 979년,  칼리프인 ‘알 무즈’는 기독교를 말살시키기 위해 당시 콥틱 교회 수장인 ‘아브라함’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기독교인들이 믿는 성경에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란 말씀이 있지 않느냐? 일주일 안에 저 건너편에 있는 바위산을 옮겨 놓아라.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모든 기독교인들을 죽이겠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근심하며 돌아와 하나님께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기도했다. 사흘 후, 아브라함은 기도 중에 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이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밖으로 나가 길을 지나던 큰 물병을 지고 다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이 사람은 ‘시몬’이라는 이름의 구두수선공이었는데, 어느날 구두 수선을 위해 찾아온 한 여인의 허벅지를 보고는 음욕을 품은 자신을 회개하며 성경의 말씀과 같이 자신의 눈을 찔러 한쪽 눈을 잃은 사람이었다. 또한 시몬은 물동이를 지고 다니며 고아와 과부, 노인들과 같은 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선한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은 성령의 음성을 따라 ‘시몬’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나 ‘시몬’은 자신은 평범한 기독교인일 뿐이라며 몇 번이고 그의 청을 거절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간절한 청에 결국 시몬은 전 기독교인들의 금식을 선포하며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일주일이 지나고 칼리프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죽이기 위한 군대와 함께 진을 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아브라함’과 ‘시몬’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죽이려는 군대를 마주한 채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다.

죽음의 긴장이 감도는 곳에 간절한 기도 소리가 채워지고 있을 때, 흔들림없이 서 있는 큰 바위산이 굉음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 옮겨졌다. 바위산이 큰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모습은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였고 ‘뚜벅뚜벅’ 걷는 모습의 의성어인 ‘까땀’이란 말을 통해 지금의 모카탐이란 지명이 생겼다. 이 사건을 통해 이집트의 기독교는 극심한 박해 가운데 신앙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 많은 무슬림들이 개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어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소아시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퍼져나갔던 기독교는 7세기 이슬람의 확장과 함께 지금은 모두 소수만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집트만은 이슬람권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기독교인이 믿음의 뿌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한 답은 시몬과 그들의 신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해 속에 피어난 믿음

모카탐 동굴 교회의 정식 명칭은 모카탐 시몬 교회이다. 1969년 정부의 정책에 따라 모카탐으로 이주하게 된 카이로 곳곳의 쓰레기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위한 공동체를 이 동굴 깊은 곳에 세우게 되었다. 동굴과 언덕에 세우게 된 교회들은 1989년, 성인으로 추앙받은 시몬을 통해 기적이 일어난 1000주년을 기념해 15,000명이 수용가능한 지금의 동굴 교회를 세우고 그 이름을 세인트 시몬 교회라고 짓게 되었다.

콥트 교회를 대표하는 이 교회에는 지금도 많은 콥틱 기독교인들이 찾아와 성자 시몬이 그려진 성화와 기도처에서 그의 기도를 힘입어 자신들의 삶을 고백한다. 우리와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신앙의 모습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현실 속에 부딪히는 차별과 박해를 이 동굴 교회에 그려진 시몬과 모카탐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겨내도록 기도한다.

매년마다 많은 한국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지순례차 이집트를 방문한다.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이집트의 대표적 유적인 피라미드와 나일강, 그리고 성경 속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광야와 시내산을 여행하게 된다. 이러한 성지순례 코스가 이집트의 옛 과거의 신앙의 이야기라면, 이 쓰레기 마을과 그 곳 동굴교회는 현재 이집트 가운데 놓여진 그들의 현재 신앙의 이야기이다.

성지순례로 이집트를 찾게 되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집트에서 일어나는 역경의 신앙을 눈으로 꼭 확인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엔 초대 교회의 전통을 지키며, 수많은 차별과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기독교인들의 숭고한 역사가 담겨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애절한 신앙의 흔적이 쓰레기 마을과 동굴교회, 그리고 모든 콥틱 기독교인의 삶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쓰레기 마을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살아가는 콥틱 기독교인들의 삶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곧 그들은 깨닫게 된다. 그 눈물은 그들을 위해 흘려야 할 눈물이 아닌 희미해져 버린 예수의 흔적을 지닌 우리네 삶을 두고 흘려야 할 눈물임을….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