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종교사회학의 대표적 학자인 이원규 교수의 생각이 집약된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규 교수는 한 신학교에서 종교사회학 교수로서 30년간 사역을 하였다. 신학교 안에서 사회과학인 종교사회학자로 이 사회와 교회를 보면서 그는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시간동안 과학적 데이터를 가지고 한국교회가 변해가는 모습을 추적해 온 한 종교사회학자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바로 그 이야기들을 최근 이원규 교수는 한국교회를 향한 두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본 논문은 바로 그 책들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교회 안에 몸담고 있는 종교사회학자로서 바라보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1. 논문의 의미

본 고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이원규 교수가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데이터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성실한 학자적 수고로 한국교회를 중심으로 한 국내와 국외의 다양한 통계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성실성으로 그간 많은 책들을 저술해 왔다. 이 글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통계들을 접하게 된다. 통계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냥 다양한 숫자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숫자가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학자들에 의해서 그 의미를 찾아갈 때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다양한 통계들이 등장하여 한 학자에 의해서 한국교회를 중심으로 유의미한 줄서기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논문 안에서 한 이야기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 다양한 통계들을 보면 성실하게 수고하고 있는 이원규 교수가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교향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으며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 교수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둘째 본 고의 특징은 한국교회의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에 대한 진단, 비관적인 가능성, 희망의 근거, 희망을 살리기 위한 과제에 이르기까지 필자는 한국교회의 다양한 문제들과 가능성을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 방법으로 다루고 있다. 아마 20쪽에 이르는 지면이 아쉬울 정도로 우리가 생각하고 짚어나가야 할 사항들이 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를 통해서 필자는 한국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분석과 함께 제기한 희망을 살리기 위한 과제들은 한국교회가 주목해서 관심을 가져야할 바라고 생각한다.
이미 말했듯이 본 고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풍부한 데이터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모든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논찬자의 한계를 넘는 일인 것 같다. 더군다나 이원규 교수의 글을 논한다는 것도 지혜가 미천한 젊은 학자로서 심히 부담되는 일이다. 따라서 논찬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함께 대화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해 보고자 한다.



2. 논문과의 대화

먼저 한국사회의 반기독교문화와 안티기독교의 상황이다. 2007년 여름에 있었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를 계기로 한국사회에서 반기독교적인 문화와 안티기독교의 실상이 겉으로 드러났다. 당시 피랍되어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 단지 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죽어도 마땅하다는 의견이 보편화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사회에서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가득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안티기독교 세력은 여론을 주도하며 기독교에 대해서 폄하하는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들은 필자가 보여주듯이 다양한 조사에서 실제로 드러났다. 특히 젊은 층이나 청소년층에서 보여주고 있는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기독교를 우롱하는 언사들을 보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라는 안티기독교 단체에서 서울시내의 노선버스에 반기독교적인 광고를 실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비록 기독교 세력들이 강력하게 항의를 함으로 말미암아 삼일간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던 반기독교 운동이 오프라인으로 옮겨왔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분명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강력한 방법으로 한국교회에 도전을 해 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프라인에서의 선전활동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기독교 세력이 움찔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일들이 앞으로 현실세계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때에 사회적 공신력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안티기독교 세력이나 반기독교적인 정서에 대해서 한국교회가 직접적으로 대응해 나갈수록 더욱 큰 반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서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사회적 공신력을 획득하는 일 밖에 없다고 본다. 필자도 지적한 바이지만 최근 이루어진 기윤실의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지난 일 년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변했다. 이 변화의 근거는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이 사회에서 많은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간 기독교에서 많은 일을 했지만 소극적이었던데 반해서 지난 일 년 동안은 봉사기관이 연합하였고 그 활동들을 많이 알렸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본다.
실제적으로 필자가 제시해 주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교회는 이 사회에서 다양한 구호활동을 펼쳐왔다. 예를 들어 복지시설 운영, 구호성금 출연, 대북 인도적 지원, 해외 인도적 지원 등에 있어서 다수를 한국교회가 감당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교회는 연합하여, 또는 개교회 별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가 나열한 것만 보아도 고아원, 양로원, 모자원, 교도소, 병원 등의 일반적인 활동 외에도 도시빈민,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가정 등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를 활발히 진행해 왔다. 바로 이러한 활동들을 이제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고 이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진행해 나가야할 것이다.
필자의 혜안이 빛나는 곳은 무엇보다도 희망을 살리기 위한 과제로 제시한 것들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야기한 부분들은 한국교회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부분이다. 이 변화가 한국교회를 새롭게 할 가능성이라고 본다. 성장 중심 패러다임에서 성숙 중심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신앙 중심에서 삶 중심, 실천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교회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그리고 조직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한국교회가 전환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교회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지역사회 세우기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Community Building으로 불리는 이러한 일들이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좁은 울타리를 벗고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목회로 전환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본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상당히 안 좋다. 그러나 지역으로 내려오면 상당 부분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지역교회들이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봉사들을 잘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적으로 지역문화센터나 사회복지관, 또는 아동복지센터 등을 통해서 지역민들이 교회를 접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것이 교회를 다시 보게끔 만들고 있어 지역에서 긍정적인 결과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제는 교회의 이러한 봉사들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단순히 봉사의 차원을 넘어서서 지역의 현안들을 조사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 나가는 것이다. 먼저는 동사무소나 구청과 연계하여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이나 지역, 그리고 관이 주도할 수 없는 영역들에서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지역 시민사회의 디딤돌이 되는 일도 감당할 수 있다.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서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역할을 감당해 나간다면 지역사회의 발전에 더 큰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사회 목회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가져볼만 하다.
필자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남은 과제로 두 가지를 제안했다. 먼저는 대형교회의 역할이다. 그가 이야기하듯 ‘한국교회 전체에, 그리고 사회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특히 대형교회’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대형교회의 행보에 좌우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필자의 진단에 대해서 논찬자 역시 크게 동의하는 바이다. 특히 한국교회처럼 교단이 필요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위해서 해주어야 할 일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러면서 대형교회에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세상을 섬기는 일에 더 열심히 할 것과 작은 교회들을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논찬자 역시 이 제안에 적극 찬성하는 바이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한국교회를 대표해야할 공식적 기구들이 실천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치화되고 있고, 교단들 역시 한국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선 굵은 일들을 감당해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형교회들이 사회가 주목할 수 있는 일들을 감당해 주어야한다. 특히 봉사의 측면에서 대형교회들에 기대할 수 있는 바들이 있고, 대형교회들은 바로 그러한 일들을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행하는 일이 있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작은 교회를 배려하는 일도 심도 있게 생각해 보아야할 부분이다. 이미 알고 있듯이 작은 교회의 어려움은 너무나도 많이 산적해 있다. 과거와 같이 개척을 하면 다 자립하던 시기는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작은교회에 대해서 대형교회들이 빚진 마음으로 배려를 해야 한다. 작은 교회들의 필요를 파악해서 구체적으로 돕는 일들이 필요하다. 작년에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때 한 목회자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말하기를 매달 십만원 씩 목회자 생계를 후원할 것이 아니라 큰 교회에서 작은 교회가 진행해 보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해 달라는 것이다. 그 일을 통해서 교회가 활력을 얻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겠다는 의지였다. 바로 이러한 일이 필요를 파악하는 일이다.
논찬자가 사역을 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최근 작은교회 목회자들에게 실천신학 콜로키움을 통해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총 16주간의 실천신학 중심의 교육을 전액 장학금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주최 측을 놀라게 하였다. 매 기수마다 35명의 목회자들을 초청하는데 현재 3월, 5월 정원이 찼고 9월 대기자도 벌써 다 차고 있다. 이 일은 굿미션네트워크의 후원으로 이루어져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산학협동으로 성공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또 이러한 대형교회에 대한 기대와 함께 현재 한국교회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고 있다. 과거 대형교회 중심의 리더십이 변하는 것이다. 현재 중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사회적 책임에 눈을 뜨고 연합하여서 새로운 리더십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리고 한목협과 같은 느슨한 형태지만 실천성을 갖고 있는 네트워크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한국교회에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한국교회의 체질을 강건하게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또 필자가 제안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희망을 만들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대사회적 이미지를 쇄신하는 것이다. 그간 한국교회는 개교회 중심으로 움직여 왔기 때문에 대사회적인 이미지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순박했고 어찌 보면 어수룩하게 이 사회에 대처해 왔던 것이다. 교회의 발언이나 행동들이 이 사회에서 어떠한 반응을 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와야하는데 일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불쑥불쑥 던지는 한 마디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 한국교회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대사회적인 봉사를 많이 하면서도 이기적 집단으로 비춰지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본다. 한국사회 속에서 우리 개신교가 살아남고,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동체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좀 더 지혜로운 대처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3. 글을 맺으며

전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야를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원규 교수의 이 논문은 그러한 시야에서 한국교회의 전체 현안을 살펴보고, 그 위기에서부터 현실 진단,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까지 제안하는 통찰력 있는 예언서와 같다. 바로 이원규 교수는 종교사회학자로 살아온 30년의 결실들을 이 논문에서 결실 맺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배움의 기회를 갖게 돼서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또 한국교회를 향하여서 선지자적 혜안을 보여준 것은 이제 과제로서 우리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위해 보여준 필자의 제안들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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