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포럼] 선교적 관점에서의 생명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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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포럼] 선교적 관점에서의 생명 돌봄
  • 김선일 교수
  • 승인 2021.11.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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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6) 사귐과섬김·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공동주최 생명포럼

1. 새로운 빙하기의 시대 

『컬처메이킹』의 저자 앤디 크라우치(Andy Crouch)와 그의 동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하던 때, 그 상황을 몇 주 간의 ‘눈보라’(blizzard)가 몰아치고, 몇 달 간의 ‘겨울’을 맞이한 뒤, 이후 1~2년의 ‘빙하기’(ice age)에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1)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은 당시 그들이 전망했던 기간보다 훨씬 길어졌지만, 눈보라-겨울-빙하기로 이어진다는 단계의 설정은 지금 우리의 상황을 관찰하는데 적합해 보인다. 눈보라처럼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신종 바이러스의 충격을 가다듬고, 현재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체계 속에서 팬데믹에 대응하는 겨울의 시기를 거의 지나고 있다. 이제 위드(With) 코로나로 들어서면 어느 정도의 일상 복귀가 가능해지면서 코로나의 완전 종식에까지 이르는 빙하기에 들어설 것이다.

코로나 빙하기의 관건은 이제 방역이나 의료적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와 교육 등에서의 변화된 환경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경제적 문제가 될 것이다. 특히, K자형 회복(K-shaped recovery)이라 불리는 경제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고임금, 사무직 종사자들은 큰 타격을 받지 않으나, 저소득,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실직 및 휴직으로 인해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가진 자들은 자산을 더욱 불릴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양극화는 사람들의 정신 영역에서도 양극화를 불러온다. 흔히 코로나 블루라고 해서 오랜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콕 생활로 인한 우울증과 외로움의 급증 역시 경제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엠브레인의 조사에 따르면, 심리적 답답함과 우울함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를 경험한 이들은 2020년 35.2%에서 2021년 48.6%로 더욱 늘어났다. 더 나아가 외로움을 느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꼽은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여유의 부족(41.5% 중복응답)이었다.2)

이러한 응답은 OECD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더 나은 삶의 질 지수에서 한국이 늘 최하위에 머무르는 사회적 유대감과 비슷한데, OECD 조사에서도 주로 경제적 취약 계층에게서 힘들고 외로울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비율이 더 높게 나온 것과도 부합된다.3)

코로나 이후는 이처럼 지속되는 방역 대책 뿐 아니라, 경제 양극화로 인한 돌봄이 필요한 이들의 증가, 그로 인한 정신적, 관계적 취약함이 더욱 확산되는 새로운 빙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코로나 빙하기 속에서 한국교회의 선교적 사명이 재성찰되어야 한다.

 

2. 생명 돌봄의 선교적 사명

“교회는 자기 구성원이 아닌 이들의 유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유일한 사회다”라는 1940년대 성공회 대주교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의 유명한 경구는 코로나 이후의 상황에서 교회의 과제를 성찰할 때 다시금 울림을 준다. 대부분의 기업이나 기관들은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필요와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자기 조직에 더 큰 이익과 성과를 내기 원한다. 그러나 교회는 자기 조직의 유익이 아니라 교회가 속한 세계와 이웃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라는 선교적 존재 목적을 먼저 고민한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실 때부터 내재된 교회의 본질이었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은 신구약의 대표적인 두 명령, 즉 창조의 명령(creation mandate)과 구속의 명령(redemptive mandate)을 통합한다. 구원은 창조의 갱신, 혹은 새로운 창조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구원 받은 것은 개인의 영혼이 죽은 뒤에 우주 어딘가에 있는 천국으로 가기 위함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구원의 개념은 구약에서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으로 표현되었다.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억압과 불평등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규례 안에서, 특히 약자를 돌보는 시스템을 추구해야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희년의 실천이다(레 25장). 희년은 약자들로 하여금 채무와 노예의 영속적인 굴레에 갇히지 않도록 생명을 돌보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예수께서는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희년의 완성을 선포하셨다(눅 4:18-20).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선교는 생명 돌봄의 희년을 실천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하고 실천한 희년은 경계를 넘어서는 선교를 통해 온 세상으로 확장된다. 크리스천 경제학자 폴 윌리엄스(Paul Williams)는 취약계층의 부채와 생존 문제가 심각해지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희년의 정신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4) 비록 고대 이스라엘과는 달리 현재의 교회는 국가의 경제정책에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교회가 생명 돌봄을 위한 협력에 참여하는 것이 오늘날 희년 정신을 적용하는 것이리라.

 

3. 하나님의 돌봄을 세상과 나누는 교회

그렇다면 복음전도는 잠시 양보하고, 공적인 봉사에 더 주력해야 하는 것일까? 당장 절박하게 떡과 물을 구하는 자에게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말하는 것은 생명을 선택하는 자세가 아니다. 하지만 영혼구원이 공적인 봉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생명 돌봄과 복음 전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사역을 더욱 강화시킨다. 영혼구원 사역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복음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사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큰 일(행2:11)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대 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 큰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이웃을 사랑하도록 변화시키는 분이시다. 그 큰 사랑의 경험과 확신이 없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향한 공적인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세상을 향한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책임은 복음의 깊은 은혜와 사랑에 대한 전적 의존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그 경험은 먼저 교회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교회의 책임을 말하면서 자주 인용되는 예가 고대 로마제국에서의 전염병과 초기 교회의 섬김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전염병에 걸린 이교도를 도우면서 그들도 감염에 노출됐으나 오히려 면역력을 형성하면서 계속해서 병자들을 돕고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던 것은 교회 내의 상호 돌봄 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교회가 세상을 향한 생명 돌봄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생명을 돌보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경험하는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사명감과 공명심으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 교회 안의 교제를 가리키는 용어를 코이노니아(koinonia)라고 한다. 그런데 이 코이노니아가 종종 그리스도인들끼리의 친교를 가리키는 용어로 오해되었다. 코이노니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공동의 목적과 외적인 봉사활동에 협력하고 참여하기 위함이었다.5) 즉, 이웃을 섬기는 봉사의 의미로 쓰이는 디아코니아(diakonia)와 성도의 교제인 코이노니아는 별개의 활동이 아니라 서로 이어지는 사역이라는 것이다. 사랑을 먼저 경험한 자들이 비로소 사랑할 수 있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 종식된 이후인 19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렸다. 이 시기에 제조업과 기술(비행기, 자동차 등)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소비가 팽창하고, 재즈와 댄스 문화가 창궐했다. 아마도, 코로나 종식의 희망이 더욱 뚜렷해지고 빙하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많은 이들은 또 다시 광란의 2020년대를 고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생명들을 돌보는 참된 기쁨의 희년이 없는 희희낙락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사회의 참된 평안을 구하는 길이 아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렘 29:7)

 

주.
1) https://journal.praxislabs.org/leading-beyond-the-blizzard-why-every-organization-is-now-a-startup-b7f32fb278ff 2021년 10월 12일 접속
2) https://www.trendmonitor.co.kr/tmweb/trend/allTrend/detail.do?bIdx=2169&code=0404&trendType=CKOREA 2021년 10월 21일 접속
3) https://www.oecdbetterlifeindex.org/countries/korea/ 2021년 10월 10일 접속
4) Paul Williams, “Christianity and the Global Economic Order” in The Oxford Handbook of Christianity and Economic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413.
5) 로버트 뱅크스, 『바울의 공동체 사상』 (서울: IVP, 2007),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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