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6) 사귐과섬김·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공동주최 생명포럼

생명 살림과 돌봄은 성경의 대주제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학과 목회에서 자주 영혼 돌봄으로만 축소되곤 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전인적 생명 돌봄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우치는 계기를 주었다. 우리는 현 상황을 생명 살림과 돌봄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들어야 한다. 이에 신학과 목회의 전환이 요청된다. 그것은 천국, 곧 하나님 나라가 죄로 인해 죽음의 그늘 밑에서 신음하는 이 땅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임을 재인식하는 신학적-목회적 성찰에서 비롯된다.

 

1. 생명의 창조와 완성을 향한 돌봄

성경은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역사로 시작한다. 세상은 생명으로 충만한 곳으로 창조되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셨다(창 1:28). 세상을 가꾸고 돌보라는 소명도 주셨다(창 2:15). 안타깝게도 세상은 인간의 타락으로 병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병든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다. 노아 홍수로 심판하신 후에도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다시 확언하심이 그 증거다(창 9:1). 하나님은 세상을 치유하시고 온전하게 회복하신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메시지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신 일도 생명 살림과 돌봄이다.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0:10). 영혼과 교회만이 아니다. 창조 전체의 생명을 회복하시려 오셨다. 이 일을 위하여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몸으로 다시 사셨고, 그 일을 땅 끝까지 전하라고 하셨다. 만물을 원래대로 회복시키시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삶으로 이끄신다는 복된 소식이다. 

요한계시록 22장은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보여준다. 생명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사망이 없고 모든 삶이 풍성한 낙원이 회복될 것이다. 창조와 구원의 주님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회복의 역사를 지금도 이루고 계신다. 그것이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고통 당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는 성경의 근본 진리이다. 

교회는 그 사실을 말과 삶으로 증언하도록 부르심 받은 제자들의 공동체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그 생명의 온전한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은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을 온전히 치유해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소망으로 붙드는 계기를 주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닥친 위기를 이 소망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할 기회로 바꾸어야 한다.

 

2. 코로나19 팬데믹과 교회의 개혁

우리는 (잘못된) 기독교가 오늘의 생태 위기에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린 화이트(Lynn White)가 “환경 위기의 역사적 뿌리”(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라는 고전적인 글에서 이를 신랄하게 지적한 지도 벌써 오래 되었다.(1966년, Science 1967년) 그 후에도 유사한 지적이 교회 안과 밖에서 이어졌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바른 성경적인 응답이 목회적 실천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여러 교단들이 지난 20년여 생태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실제로 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제 곧 종교개혁 504주년을 맞는다. 우리는 교회가 “항상 개혁”되어야 함을 인정한다. 교회의 개혁은 본래적 사명을 잃은 것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난 20년에 걸쳐 안팎으로부터 근본적인 반성의 요구에 직면했다. 하지만 여전히 갱신과 개혁의 분명한 방향을 찾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길을 잃었다는 자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이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갖게 된 것은 주님의 계획일 수 있다. 2020년 초 발생한 코로나 19는 사상 초유의 대면 예배 중단이라는 위기 상황을 가져왔다. 이어진 산발적 “종교발” 집단감염으로 사회의 비판이 거세졌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분석과 이른바 “뉴노멀”에 대한 예측이 맞는다면, 할 일은 분명하다. 교회는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 교회의 모습에 대한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140년 역사 속에 서구 교회가 겪은 모든 과정을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겪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면 “종교개혁”이라는 한 교회사학자의 주장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근래에 부상한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 갱신을 넘어 종교개혁에 버금가는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일부에선 현 상황을 “교회 와해”로 보는 격한 진단도 있다. 구조적 조정이나 갱신 또는 부흥 운동으로는 교회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생명돌봄과 뉴노멀 시대의 선교적 사명

이 포럼의 주제는 한국교회에 당면한 성찰의 의제 중 가장 시급히 요청되는 “생명 돌봄”이다. 이것은 <사귐과섬김>모임에서 논의한 의제 중 늘 우선적인 관심 사안이었다. <피로회복> 헌혈 캠페인이 첫 실천이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와의 논의를 통해 “생명 돌보는 교회와 생명 살리는 목회로의 회심”을 주제로 꼽은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생명 돌봄을 소홀히 했던 것에 대한 반성을 더 이상 미루거나 피할 수 없음을 절감했다.

생태계를 돌보고 번성하게 하는 일은 복음 전파와 무관하거나 부차적인 것도 아니다. 생명 돌봄의 부르심과 교회의 지상 과제인 “선교”는 분리될 수 없다. 생명 돌봄은 영혼 돌봄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 돌봄은 또한 환경윤리의 문제 훨씬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창조와 구속의 성경적 진리가 통합된 소명이다. 이 부르심을 간과하면 기독교 신앙 전체가 훼손된다. 특히 구속이 창조의 본래적 생명의 회복이라는 진리의 모든 차원이 왜곡되거나 빈약해진다. 세계 만물과의 관계가 왜곡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또한 바르게 될 수 없다. 이는 이 주제를 앞서 논의해 온 세계적인 석학들이 계속 지적한 바이다. 이번 포럼은 이들의 경고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

이 포럼은 전문가와 목회자가 함께 생명 돌봄으로 부르심에 어떻게 순종할 것인지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근래에 공적 책임을 논하는 공공신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 받는 지금 교회의 공적 책임은 생태학적 분야로 확장되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는 자신이 생태와 환경에 대한 성경적 의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코로나와 더불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래 생태학적인 신학적 반성과 목회적 성찰을 미룰 수 없다. 

교회가 현 상황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 “병든 지구에서 교회가 건강할 수 있을까?” “Can there be a healthy church on a sick planet?” 선교학자 하워드 스나이더의 『피조물의 치유인 구원』 (Salvation Means Healed Creation)의 첫 마디다. 이 말은 핵심을 찌른다. 코로나19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답은 생명 존중과 돌봄이 창조의 중심이며 복음의 핵심이라는 사실에 있다. 생명 돌봄을 “선교적”이며 목회적 실천의 우선적인 중요한 부분으로 삼아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오늘의 상황은 생명돌봄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려는 결단을 요청한다. 금번 포럼은 그 부름에 응답과 실천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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