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6) 사귐과섬김·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공동주최 생명포럼

1. 세속화 시대의 팬데믹 상황

코로나19는 21세기 첫 팬데믹이다. 역사상 인류가 겪는 전염병에는 사회적 변동이 있었다. 그러한 변동에서는 새로운 종교가 일어나곤 했다.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에 보면, 기독교가 신흥종교로서 발흥(Rise)할 수 있었던 데는 역시 전염병이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우리가 알다시피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도 흑사병이 큰 역할을 했다. 사람이 검게 변하여 죽게 된다는 흑사병이 시작될 때는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다. 그리고 200년이 넘게 이 전염병이 잡히지 않고 유럽 곳곳을 휩쓸고 있었다. 이 당시 전염병을 피하는 방법은 도망가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가족 가운데서도 누군가 병에 걸리면 집 밖으로 버렸다. 심지어 도시에 전염병이 나타나면 병자들만 남겨 두고 모두 그 도시를 떠나는, 소개(疏開)가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도망가지 않았다. 병자들을 돌보았고 간호했다. 종교개혁 당시 목사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고, 공무원들과 사람들을 돌보고 장례를 치렀다. 

한국교회의 시작에도 전염병은 역할을 했다. 19세기 말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조선의 신흥종교인 기독교는 서구의 의학을 통해 전염병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당시 오늘날 질병관리청과 같은 기구가 꾸려졌는데, 그 수장을 알렌 선교사가 맡았다. 그리고 많은 의료선교사들이 앞장 서서 목숨을 걸고 질병 치료에 앞장섰다. 벽안의 외국인들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조선인들을 치유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이처럼 기독교의 발흥과 전파에는 전염병이 그 계기를 만들어낸 경우들이 많았다. 전염병이 돌 때 기독교인들이 사랑과 봉사로 교인들을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본 것들이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종교에서 찾았고, 기독교는 그러한 질문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시대의 특징은 팬데믹이 나타났는데, 사람들이 오히려 종교를 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종교, 특히 기독교가 이 상황에서 배척을 당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먼저 세속화된 이 시대에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종교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그동안 종교가 했었던 디아코니아의 역할이 병원과 기관으로 옮겨졌다. 병을 피하고, 병에서 나음을 얻고, 죽음 앞에서 구원을 얻고, 죽음 이후의 천국까지의 종교적 과정이 모두 현대인들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이 있는데, 팬데믹 상황에서 새로운 종교가 발흥했다는 것은 기존 종교의 퇴락을 의미한다. 우리는 항상 기독교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지만 돌이켜 보면 기독교, 개신교 등이 일어날 때 기존 종교는 퇴락했고 멸망했다. 생각해 보면 이번 팬데믹에서 기독교는 기회가 아니라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 말은 이제 기독교가 신흥종교의 헌신과 열정을 잃고, 기득권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2. 저들의 요구를 들으라 

이러한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묻게 된다. 목회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다. 이 위기에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고,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번 생각을 돌려서 해 보아야 한다. 선교지에 가면 선교사들이 저지르는 일반적인 실수가 있다. 선교지의 주민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선진국에서 온 자신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시혜를 베풀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에서, 자신이 가진 부를 가지고 그들을 ‘위해’ 베풀어 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여기서 빗나간다. 선교사는 많이 베풀었다고 생각하는데, 받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과잉 친절일 수 있다. 

이 비슷한 상황을 선교적 교회 입장에서도 겪게 된다. 비록 외국 선교사는 아닐지라도 교회 밖의 사람들을 만날 때, 기독교인들이 타인이 된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마치 선교지에 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그들의 삶을 먼저 존중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물어라. 혼자 생각하고,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지 말고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물어라. 그러면 거기서 답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공동체 수업에서 지역주민센터의 사회복지사를 먼저 만나라고 한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인데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동네 목사인데 뭔가 할 일이 있을까요를 물으라고 한다. 전혀 다른 반응과 결과가 나온다. 

우리도 돌이켜 보자.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시대에,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묻는 것이다. 현재 이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일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생명과 건강이 아닐까? 팬데믹의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는 것, 그리고 건강한 것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 아니 교회에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 

올해 9월 11일 세계자살예방의 날에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는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창립 9주년에 벌써 3번째 받는 장관상이다. 2013년 단체 표창, 2016년 대표 개인 표창, 2021년 또 단체 표창을 받았다. 라이프호프는 정직원 2명에 파트타임 1명, 그리고 대표를 포함해서 사무총장, 본부장 등의 간부들은 자원봉사를 하는 크지도 않은 작은 단체이다. 그런데 이렇게 표창을 받고, 민간단체 중에 가장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질문에 응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것을 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임원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한국교회가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를 물었다. 그랬더니 처음으로 하는 이야기가 자살유가족 자녀들을 지원해 달라고 한다. 경제적 문제로 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남은 아이들은 고립된 상황에서 소망을 잃고 살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학비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그게 학원등록이든 취미생활이든, 아니면 놀이동산을 가는 것이든 말이다. 그래서 예산을 모두 모아 1천만 원을 마련하고 페이스북을 통한 모금으로 70만 원을 더 모았다. 1천 70만 원이라는 예산을 장학금이라고 내놓기는 부끄러웠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전국에서 공모사업을 시작했다. 전국 각 단체에 공문을 보내 사업에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했다. 희망재단에서 고민을 하다 결국 예산을 더 쪼갰다. 50만 원 지원 11명, 40만 원 지원 13명을 선발했다. 이 사업 이름이 ‘희망둥지’이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작은 디딤돌이 되길 원하고, 둥지와 같이 보호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희망재단에서 직접 지었다. 그리 많지 않은 금액인데, 누군가에게는 크다. 물어보고, 응답하고, 나누는 가운데 이 사업은 커다란 일이 되었다. 

 

3. 공적 가치, 생명 

보통 정부사업이나 지원사업 등에서 종교기관들은 제외되기 일쑤이다. 종교편향의 프레임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명운동에 있어서는 환영이다. 생명에 대한 담론에서 종교가 할 일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생명에 대한 운동에 있어서 종교를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라이프호프는 기독교자살예방센터라는 이름을 고집한다. 이 이름을 가지고 보건복지부와 서울시로부터 사업지원을 받고 있다. 종교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 때문에 더 이익을 보고 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고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시대에 ‘생명’은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질병 때문만 아니라 과학이 발달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고, 그 기준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줄기세포, 존엄사, 안락사, 자살, 포스트휴먼 등의 주제들이 연결되면서 인간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지배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 대한 대책이 없기에 혼란과 불안에 떨고 있다. 종교로부터 생명의 주제를 빼앗았던 인간들은 이제 이 위기 앞에 다시 종교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결국 이 시대의 선교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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