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지금까지 나는 ‘고박’(固縛)이란 단어를 몰랐다. 그런데 이번에 배웠다. ‘견고하게 단단히 묶는다’는 뜻이다. 선박은 짐을 단단히 묶어야한다. 그런데 세월호는 이제껏 그러지도 않았고 그럴 이유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4·16 그날, 맹골수도(孟骨水道)를 만났던 것이다. 때문에 상하이 샐비지는 뻘 속에서 수면위로, 반 잠수선으로, 다시 목포신항으로 구조작업을 이어가면서 계속 ‘고박, 고박’했다. ‘고박’하지 않았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던 것이다.세월호만 그러한가. 숨 쉴 틈없이
이제 곧 봄 정기노회가 시작된다. 한국교회 최대의 교세를 자랑하는 본 교단이 보수적인 신학정체성을 지키면서 한국교회를 선도하고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감당해야 할 모판은 바로 노회에 있다. 노회의 주기능이 지(支)교회들을 잘 섬기는 것임을 감안할 때 노회총대들은 지교회들이 더욱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사명이 있다.사실 노회가 분명한 방향 설정을 하고, 건강한 정책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뜻을 모은다면 산하 교회들이 부흥하고 성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총회가 교회자립개발원
남북고위급군사회담, 혹은 여야 영수회담이 개회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듯한 모임이 드디어 개회되었다. 그 모임은 총신대 후임이사 선임을 위한 재단이사회였다. 대화와 소통, 그 후 타협과 양보가 없는 국가 지도자들은 여, 야 관계없이 국민을 우롱하는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대화는커녕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있는 총신 측, 총회 측 인사들을 보면서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한없이 우롱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그래서 어떤 때는 왜 우리 교단은 청문회도 개최하지 못하며, 특검제도도 도입할 수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넘어 통분하
풀러신학교의 리더십 교수인 로버트 클린턴 교수(Robert Clinton)는 1500명의 크리스천 리더들에 대해 수년간 연구한 후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단 30퍼센트의 리더만이 마무리를 잘했고, 70퍼센트의 리더는 마무리를 잘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70퍼센트의 리더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클린턴 교수는 “시작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마무리를 잘 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지적했다.이 결과를 기준으로 볼 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가운데도 70퍼센트의 목회자나 장로는 마무리를
지극히 기초적이며 동시에 근본적인 질문이다. 어쩌면 이런 질문 자체를 우리는 매우 가볍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이미 확고하게 알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간과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다시 이런 질문을 제목으로 정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식이 늘 행동과 삶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그 행동과 삶이 평생 아니면 적어도 목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 된다는 보장 또한 결코 없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와 목회 환경을 둘러싼 숱한 유혹과 자본주의, 세속주의, 대형화와 성공을 향한 거대한 물결 속에서 과연 성경이
운동기구 중에 제일 힘든 것이 집에 있는 러닝머신이라고 한다. 그냥 걷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것이 힘든 것일까?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살 때는 굉장한 각오를 하고 사는데, 며칠 하다보면 아무런 변화 없이 늘 제자리걸음인 이 기계가 너무 단순하고 밋밋해 진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 자연을 따라 걷는 산책길이 훨씬 신선하고 재미가 있다.오늘날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변화가 없는 삶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기대할 것이 전혀 없을 때, 삶의 의욕은 극도로 낮아지게 된다. 이것이 현대적 삶이 주는 또 하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6년을 보내는 세월의 끝자락에서 한 해를 뒤돌아보면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일들이 많다.국가적으로는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통과되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는 일을 비롯하여 토요일마다 반복되고 있는 촛불 시위로 인해 나라의 안보가 위태하고 북한의 핵도발도 매우 위험하다. 그로 말미암아 세계 열방들 가운데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는 하락하고 있다. 도산하는 기업으로 수출이 급감하여 국가 경제의 쇠락은 가히 국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뮬론 그 모든 것들이
5월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어느 수요일이었다. 필자에게 들려진 어느 개신교 교단지의 기사를 읽으며 마음이 참담했다. 교단장 선거를 앞두고 어느 입후보 예정 목사에게 걸려온 모 장로의 전화 내용을 친구 목사에게 전달하는 글이었다. “S 목사님 말씀입니다. 내가 출마 선언하기도 전인데 S 장로에게서 전화가 왔어. 다섯 장을 달라는 것이야, 그러면 당선시켜 주겠다는 것이야. 두 당 170씩 계산해서 그렇게 나왔대.”그 말을 들은 S 목사의 친구 목사는 웃긴다는 표정으로 “그래서요? 드리지 그랬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S 목사는 전
루터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성경의 본질적 의미를 되찾게 했고, 나아가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사역이 교회 안에만 머물게 한 것이 아니라 문화 학문 경제 정치 교육 등 삶의 전 영역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이끌도록 만들었다.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지금의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과 같은 변화가 절실하다. 교회 내의 분쟁과 다툼, 목회자들의 윤리적 타락, 말씀 중심의 강단 권위 실종, 성경적 목회 상실, 사이비 이단의 교회 파괴 술책으로 인한 혼란, 교단의 난립과 신학 교육의 무책임, 교단 정치의 세속
지금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언론은 경쟁하듯이 최순실 비리를 캐내고, 뉴스는 온통 이 사건으로 채워지고 있다.모든 비리의 몸통은 국민이 위탁한 권력으로 최순실의 뒤나 밀어주고 더 나아가 그녀의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린 박근혜 대통령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5%로 곤두박질치고 90%에 이르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불신하고 있다.이처럼 요동하는 정치상황에서 한국교회는 국가에 대한 지금까지의 자세를 철저히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한국교회의 흐름을 보면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 내지
대통령의 비선 라인으로 빚어진 국정농단이 우리나라 국민들을 한숨 짓게 만들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살 수 없다고 분노하며 전국 각처에서 대통령 퇴진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어디까지 가야 이 사건이 끝을 맺을지 걱정이다. 문제는 교회에도 비선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비선이라고 다름이 없다. 교회의 비선이 달리 신비로운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교회를 왜곡시키는 악이다.교회의 비선에는 몇 가지가 있다.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에 비선을 대는 것이다. 우리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수단으로 복
총회는 교단 산하 모든 교회가 모여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총회는 교회의 총합이다. 그러므로 총회도 교회다. 좀 더 큰 규모의 공교회다. 총회가 교회이기 때문에 총회는 마땅히 교회다워야 한다. 과연 우리 총회는 교회다운가? 아니면 세상의 정치판 못지 않은가?그렇다면 교회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통치,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이어야 교회답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총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기쁨으로 받는 곳인가?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총회를 이끌어가는 총대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어 있다. 목사는 목을 내놓고
지금 우리는 적지 않은 한국 교회와 목사들, 그리고 장로들 때문에 하나님까지도 경멸하기 시작한 한국의 사회적 흐름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적지 않은 교인들도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와 자기 교회 지도자들이 변질되기 보다는 변화 되어 교회 안팎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다.먼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다음은 기도하는 분들의 기도응답으로 깊은 벼랑 끝으로 끌려가던 우리 교단 총회가 이 정도로 폐회하지 않고, 파회하게 되었다.이는 총회 기간 중, 총대들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대로 결정 되었는가 여부와 상관없이 총회의 권
맹위를 떨치며 유난히 무더웠던 2016년 여름도 가을이라는 계절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어김없이 찾아온 결실의 계절 가을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풍성한 열매들로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있다. 흐르는 세월따라 100회기 총회도 역사속으로 물러앉고 새로운 100년을 출발하는 제101회 총회가 언제나 그랬듯이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회집되었다.총회와 총신대의 극한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목사부총회장 후보 전원탈락과 총대 천서 제한이라는 총회 역사상 초유의 대치정국을 앞에 놓고 제101회 총회가 시작되었다. 난항과 고초를 겪으
총회세계선교회(GMS)는 제10대 이사장이 선출되어 직무를 시작했다. 제19회기를 맞은 GMS는 한국교회와 세계선교를 이끌어가는 돛과 닻과 방향키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지금도 98개국 2478명의 선교사와 자녀들은 처절한 몸부림으로 이교도와 이단과 배척자들과 맞서 싸우거나, 생명과 젊음을 담보로 복음 전하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GMS는 지금도 밤과 낮이 뒤바뀐 세계시간 상황에서도 찰나를 다투며 선교지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예기치 않은 긴급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 선교사들의 헌신과 수고에 힘을 실어주기
9월, 바야흐로 한국교회는 총회시즌을 맞이했다. 9월 한 달간 일제히 열리는 각 교단 총회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은 각 교단총회의 결의가 한국교회와 교단산하 지교회들의 사역방향은 물론이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생활 양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실례로 지금 한국교회연합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통합과 같은 사안들이 총회현장에서 다루어지고 그 방향을 결정하고, 특정인물이나 단체에 대한 이단여부가 결정 나면 그것은 최고의 권위와 효력을 가지는 결정이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각 교단총회의 결의는 한국교회의 미래방향은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이다. 교회개혁이란 어휘가 더 정확하다.이제 내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니 지금쯤은 행사전반에 대한 종합계획서가 짜여져 나와야 할 시점이다. 어떻게 하면 일과성의 행사가 아니라 그 울림의 깊이와 영향력이 오래 지속되는 영적 체험과 사회적 반향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과제로 떠오른다. 당해 연도(2017년) 총회시에 체면치레로 한 시간 배정하여 기념예배를 드리는 것으로는 진정한 개혁의 의미를 담아낼 수 없음은 자명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평양대부흥 100주년, 칼빈탄생 500주년, 총회설립 100주년, 제주선
제101회 총회를 앞두고 총회정책연구위원회와 이 공동으로 사상 첫 총대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우리 교단에 대한 신뢰와 최우선 정책과제, 총회 회무진행, 예산편성과 임원선거제도, 총회재판국과 선거관리위원회의 문제점에 대한 총대들의 생각을 직접 확인하게 될 것이다.실제 우리 총회는 5일간의 회기동안 임원선거, 기관보고, 헌의안 심의, 재판국 판결보고, 100억원이 넘는 예산안 심의 등 수백 건을 처리한다.짧은 기간 속전속결식 안건 처리 가운데 교회와 성도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가 결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자(漢字)에서 쉼을 의미하는 휴(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논과 밭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나무 그늘에 들어와 기대어 앉아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곧 쉼은 자연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많은 것들, 곧 의식주를 위한 모든 것을 줄 뿐 아니라 쉼까지도 주는 고마운 것이다. 현대인들도 대부분 휴가 때는 자연으로 나아가 여행한다. 자연 유람을 통하여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쉼을 얻는다.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쉼을 자연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쉼의 날을 정하시고 그날에 모두가 쉬어야 한다고
‘위기’라는 말은 누구나 원하지도 좋아하지 않는 부정적인 단어다. 흔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왔다.예장합동은 해마다 총회를 앞두고 목사장로기도회를 열고 울부짖으며 회개하는 기도를 단골 메뉴처럼 반복해왔다. 그러나 정작 총회가 열리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다. 총회임원이 입후보 하면 선거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는데 듣기 불편한 소문이 해마다 되풀이 되며 회자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첫째 선거관리위원이 되려고 왜 서로 목을 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