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라는 말은 누구나 원하지도 좋아하지 않는 부정적인 단어다. 흔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왔다.

예장합동은 해마다 총회를 앞두고 목사장로기도회를 열고 울부짖으며 회개하는 기도를 단골 메뉴처럼 반복해왔다. 그러나 정작 총회가 열리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다. 총회임원이 입후보 하면 선거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는데 듣기 불편한 소문이 해마다 되풀이 되며 회자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선거관리위원이 되려고 왜 서로 목을 매는 것일까?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교단 총회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선거관리위원은 교단 헌법이 명시한 자격조건을 완비하고 교단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인지 냉철하게 판단하여 선출하도록 선거법과 선거위원의 자격 조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테면 직전 총회장이 자동적으로 선거관리위원장이 되고 총회임원회에서 지역 안배를 통해 선출하는 선거관리위원이 되는 종전의 방식보다는 총회 현장에서 총대들이 신뢰할만한 인물들을 직접 선출하여 선관위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관리위원이 금권과 결탁하게 되면 강력한 벌금과 더불어 반드시 시벌이 따르도록 해야 한다.

둘째 총회는 권력기관이 아닌 치리회의 최고회로서 금권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청렴결백한 인물이 선출되어야 한다. 총회임원이 되기 위해선 상당한 액수의 교단발전 의무금을 납부해야 한다. 물론 그 돈은 당연히 교인들의 땀과 눈물인 헌금이다. 지 교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부담인데 막상 선거를 앞두고 입후보자들이 총대들에게 엄청난 물량 공세를 한다는 것은 사회법으로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위법일 뿐이다.

과연 총회임원과 총회산하 기관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 자리가 돈을 회수할 수 있는 직책인가? 아니면 그 만큼 투자를 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가문의 영광이 될 만큼 명예로운 직책인가에 대해 후보자들은 근본부터 깊이 따져보면서 많은 고민을 해야한다.

셋째 총회의 수장이 되고 임원이 되는 것은 결코 명예나 권세가 아니라 지 교회와 치리회에서 파송한 총대들이 모여 지 교회와 하회 치리회에서 문제가 되는 쟁론 사항을 판단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경책(警責)하고 권계(勸戒)하고 변증(辨證)하고, 계도(計圖)하고, 판결(判決)해야 한다는 헌법적 내용을 다루어야 하는 직책이다. 총회의 지도자는 교권을 잡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신앙 양심에 걸림이 있거나, 자신의 리더십의 한계를 느끼는 사람은 교권을 잡으려는 욕심을 단호히 배격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을 천직으로 알아야 한다.

총회장이 되면 교단의 최고 권력자인 것처럼 군림하고, 마치 총회가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처럼 권위만을 앞세워 밀어붙이기 식의 결정을 매 총회 때마다 되풀이하지는 않았는가? 그 증거가 바로 총회 결의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총회 결의가 잘못된 절차와 법적용으로 인해 무효라는 패소를 번번이 당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예방하기 위해 총회 안에 법률전문자문단을 구성하고 총회 임원들이 수시로 교육도 받고 연구도 하여 총회시에 논란이 될 만한 사항은 조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적법성을 따진 후에 절차에 부합한 결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지도자를 세우는 교단 총회가 되어야만 한다.

교단 정치의 저울이요, 잣대라고 할 수 있는 교단헌법이 사법부에게 번번이 패배를 당하고 교단 지도자들이 법관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당해도 묵묵히 당하고 있는 것이 참담한 현실이다.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들만의 잔치’로 여기는 총회를 신뢰하지 않는다. 총회법이 사회법보다 우선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우격다짐으로 일단 결의만 해놓고 사회법을 무시해 버린다. 이런 총회를 교인들은 철저히 외면한다. 금권의 유혹에 자유롭지 못하고 오히려 총회를 물질을 탐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공의가 사라진 지는 오래 되었다. 서구교회가 술집으로 변하고 텅텅 비어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총회가 현 상황이 위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정치적인 악수(惡手)만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단이 추락하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장자교단 타령만 되풀이 하는 것이 바로 위기인 것이다.

교권을 잡는 일보다 더 우선해야 할 일은 내가 신권에 잡힌 자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 총회의 거룩성을 회복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교단과 교회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하는 일이 교단 지도자들의 최우선 과제이다. 성직의 근원이 구약 레위인에게 왔다면 레위인에게는 기업이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기업이라고 말씀한 것처럼(신 10:9) 교단 지도자들의 최상의 기업은 교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일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목회자는 이제라도 주님이 구속하신 성도를 섬기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각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그 일에 전념을 다하는 것만이 교단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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