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4) 교갱협 제27차 영성수련회 새벽기도회

 

사도행전 27장 22~25절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회자의 길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이 시대를 보나 하나님이 성경에서 쓰신 인물들을 보나 다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맡기셨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위대한 전도자요 복음의 진수를 전해준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된 바울의 생애는 수많은 고난과 시련의 굴곡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주님이 원하시는데로 이끌어 가신 것을 봅니다. 

사도 바울도 최고의 학문을 소지한 사람이요 나름대로의 전도 계획과 복음의 일정도 세운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 속에서 바울을 이끌어가셨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우고 로마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수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로마서 1:13)

여기서 길이 막혔다는 말은 (에콜 위센 = 쎄게 막다, 강력히 막다) 이런 내용입니다. 바울이 하시고자 하는 계획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계획을 강력히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열정이 식지 않아서 이런 일을 합니다.

 

1.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신실한 제자들이 된 그들을 로마로 보냅니다.

물론 바울이 회개하기 이전에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로마에 복음이 들어갔다고 학자들은 봅니다만 바울은 자신이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많은 일꾼들을 보냅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약 40여 명의 일꾼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을 하나님이 가지 못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복음의 일꾼들이 가게 되는 유익이 있었습니다.

 

2. 로마교회에 전하고 싶은 복음의 내용을 서신으로 보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신약성경에서도 교리와 교훈이 신앙생활에 얼마나 소중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바울을 강력하게 로마로 가는 길을 막으심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로마서를 손에 들고 보는 은혜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막으심(에콜 위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목회 현장에서 때로는 우리의 계획과 원하는 일들이 내 마음대로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더 나은 은혜의 길이 있는줄 믿습니다.

 

3. 결국 하나님은 바울을 로마로 가게 하십니다.

로마로 가는 방법은 인간적으로 볼 때 비참한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됩니다. 죄수들 몇 사람과 함께 당시에 군인 백부장 율리오라는 사람의 통제 하에 배로 로마를 가게 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제재판을 받으려 가는 것입니다. 마치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게 되는데 계절은 겨울이 접어드는 10월경입니다. 풍랑이 자주 일어납니다. 미항이라는 항구에서 바울은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시며 경고의 말을 했습니다. 그럴 때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고 출발을 합니다. 바울의 말은 한마디로 무시를 당합니다. 

출발하여 얼마 동안은 순풍으로 잘 운항합니다. 속으로는 바울을 더 무시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올 것이 왔습니다. “유라굴로(유로퀼론 = 동북풍 = 하나님께서 일으킨 특별한 바람)”라는 광풍을 만납니다. 얼마나 강한 바람이었으면,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사도행전 27:20)

이런 절망의 상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 말을 듣는 당시의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권위가 있겠습니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사도행전 27:22~25)

본문 사도행전 27:22~25을 보면 신앙은 위급한 상황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바울은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배는 손상이 있을 것입니다. 하면서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나에게 주셨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십시오. 나는 내게 말씀하신 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사도행전 27:33~37)

그리고 33~37에서는 14일이나 굶은 배 안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도록 권하는데 떡을 놓고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먹게 했습니다. 그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276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76명이 어떤 사람들인가? 명단은 안 나와 있지만 군인들이 약 100여 명, 무역상들이 약 100여 명, 죄수들이 15명,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약 50여 명으로 추정합니다. 그들은 무사히 멜리데라는 섬에 상륙하게 됩니다.

멜리데 섬은 길이가 약 29Km가 되는 큰 섬이라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진도 섬과 같은 크기의 섬입니다.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은 섬 주민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그들이 보고 느끼고 체험하게 합니다. 독사에 물려도 섬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조금도 해함이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시에 멜리데 섬의 추장(요즘으로는 군수) 보블리오 부친의 열병을 기도함으로 고쳐줍니다. 그리고 그 마을의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는 신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로 인하여 276명이 3개월을 그곳에서 먹고 자며 겨울을 지나고 로마로 가게 됩니다.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말씀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바울은 비록 로마로 가는 길이 죄수의 몸으로 가는 길이지만 배 안에 276명이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울을 통하여 보게 하시고 믿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증인들이 되게 하십니다. 멜리데 섬 전체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영혼들을 구원하는 계기로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이 내용은 이 자리에 모이신 우리 동역자님들 모르시는 분이 한분도 없으실 것입니다. 저는 성경의 내용이나 단어를 풀이하고 설명하라고 이 자리에 세우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이 자리에 세우신 이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번 가을노회에 은퇴를 합니다. 진도 섬 시골 농촌에서 개척하여 39년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은혜를 나눔으로 코로나19로 인하여 국가적으로도 어렵고 특히 교회도 상당한 어려움을 격고 있는 현실에서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평신도 집사 시절 마음 아픈 일을 보았습니다. 도시에 몇 백 명이 모이는 규모가 있는 교회의 부목사가 담임목사님을 밀어내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오갈 데가 없으신 담임목사님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친구 집사와 함께 시골 작은 교회로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훗날 그 교회가 더 큰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이 때 한 가지 내 삶의 방향을 결심했습니다. 한평생 주님을 위해 일하시다가 노년에 가실 데 없으신 목사님들을 위한 양로원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사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업은 잘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 때 결단의 기도를 일주일 동안 단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신 대로 집사 신분으로 복음전도를 위해 대전에서 진도를 지도 한 장 들고 찾아가서 개척지를 정하고 천막을 치고 복음사역을 시작하여 39년에 이르러 총회 법에 따라 정년을 하게 됩니다. 

39년의 세월에 한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한복음 8:29)

요한복음 8:29 말씀을 목회의 모토로 삼고 사역을 했습니다. 많은 시련과 고난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무엇으로 다 갚을지 내 몸에 심장이 멈추는 날까지 베푸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자 하는 심정으로 살고자 합니다. 

 

결론

여러분! 우리가 가는 길은 큰 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 어려움과 고통은 다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일을 감당했던 그 어느 누구 하나 고난이 없는 자가 있었습니까? 어쩌면 고난은 우리에게 더 큰 역사를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큰 역사의 통로라고 생각한다면 오늘의 이 어려운 난관에도 오히려 더 큰 비상의 계기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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