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장인심 할머니 이야기(5)

정오기도회에 축복하는 김경원 목사(서울 서현교회)

한센인은 결혼을 할 수 없는가?
아니다. 원치 않은 병이 들었을 뿐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이다.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가문을 잇는데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장인심 권사(79세)에게서 10여 년 전에 별세한 남편 이야기를 들었다. “김 집사님이 75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함께 오래 살았지요. 그때 내가 60이 넘었어도 많이 울었어요. 사실은 다른 분들이 부부가 사별을 해도 위로할 줄 몰랐지요. 그 뒤로 그분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마음이 아픈 줄 몰랐다’고 뒤늦은 위로를 드렸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닦는다. 부부의 정이라는 것이 몇 년 지나면 그냥 잊힐 그런 것인가?
남편 김 집사는 무척 성실하게 사셨단다.
군사정권 때, 현역 군인 원장이 들이닥쳐서 건설대를 조직하고 작업을 많이 시켰다. 힘들게 일하는 남편에게 적당히 해야지 당신 같이 하면 바보라 한다더라 하니 “그러면 일은 누가 하노?” 하더란다. 그런 성실함 때문에 원장의 상장도 받았지만 그는 다리 한쪽을 잃었다. 그 상장이 지금도 거실을 지키며 부인과 함께 산다.

그들의 결혼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이팔청춘 열여섯 나이에 혈육과 헤어져 소록도에 갇혀버린 장인심은 서럽고 외로운 처자였다. 어머니가 종종 찾아와 딸을 면회소로 불러냈다. 1950년대 가난했던 시절이라서 쌀이나 콩 같은 식량과 된장, 고추장을 가져오고, 떡이나 제사 음식도 가져오지만 그것은 양식이 아니라 서러움이고 눈물이었다. 죽겠다고 극약을 먹었던 일로 위장을 상해서 밥도 잘 못 먹는 딸을 어머니는 늘 염려했다. 딸은 그런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엄마, 나 밥 잘 먹어. 아침에도 한 그릇 다 먹었어...”하는 말로 안심시켰다. 언제나 울고 있는 어머니를 마음 편하게 해서 보내려 했다. 어머니의 손도 못 잡아보는 그런 면회를 했다. 고향에 따라갈 수 없는, 따라가서도 안 되는 신세가 한스러웠다. 면회소를 나와서도 몇 번이고 어머니를 뒤돌아보고, 안 보이는 곳에서 목 놓아 울었다.

고향에서는 학교 문 앞에도 못 갔지만 소록도에서는 배울 욕심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나이 많은 학생들과 섞여서 3년 만에 졸업하고, 교회가 청소년을 위해 설립한 성경고등학교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사회에서 공부를 많이 했던 분들이, 같은 형편의 청소년을 위한 자원봉사 교사로 나서서 열심히 가르쳐주었다. 애틋한 사랑이 강물로 흐르는 학교 분위기였다.
그때, 장인심의 나이 21세로 청혼을 받았지만 지나가는 이야기로 흘려버렸다. 가문의 저주스러운 혈통을 끊어야 한다는 독한 마음을 품고 있었으니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던 것이다. 여자이면서 여자이기를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청혼자는 믿음이 신실하고, 교회 일에도 성실한 경상도 청년 김○○(경남 거제) 이었다. 잘 아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권했다. 이구동성으로 분홍빛 혼인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나는 몰라. 나는 모른다...” 수줍은 전라도 처녀 인심이는 잡아떼듯 외면했지만, 이웃들은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던지 그런 태도가 사실상 허혼이라며 결혼을 서둘렀다. 부모 같은 어른들 생각으로는, 두 젊은이가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요 행복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남자가 불임수술을 받고 당국의 결혼 허락을 받았다. 

교인들의 뜨거운 축하를 받으며 하나님 앞에서 혼인예식을 올렸다.
신랑은 멋진 양복을 입고, 신부는 치마를 풀어 꽃으로 장식한 드레스를 걸쳤다. 양가 가족은 아무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리고 믿음의 가족이 축복하는 거룩한 혼인이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며, 도와주고, 보호하며, 진실한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지키기로 굳게 서약합니까?” 질문에 “예”라 서약했을 그들은, 서로 돕는 배필의 역할을 확실하게 잘 하다 사별했을 것이다.
부모님도 가족도 없는 눈물 나는 결혼식장.
아담과 하와를 짝지워주셨던 하나님이 이들을 맺어 주셨으리라.
거실에 걸린 사진, 부부의 얼굴은 여전히 행복한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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