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차] 교회의 미래를 살리는 개척 및 분립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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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차] 교회의 미래를 살리는 개척 및 분립사역
  • 오종향 목사
  • 승인 2015.08.18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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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8) 교갱협 제20차 영성수련회 주제특강

1. 교회개척과 분립 과연 필요한가?

“대형교회들이 많이 있고, 사람들이 거기로 다 가는데, 과연 교회 개척이 될 것인가? 지금은 전도가 안되는 시대이다. 그나마 대형 교회들이 버티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과연 전도 개척이 될 것인가?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닌가?”

필자가 2010년도에 강남역 주변에서 전도적 교회개척을 시작할 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물었고, 많은 분들이 의아해 했다.

“과연 아무 개척팀도 없이 어떻게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가? 강남 지역은 임대료가 비싼데 과연 유지를 할 수 있나? 이 지역에 또 하나의 교회가 과연 필요한가? 잘 하는 기존교회로 가면 되지 왜 새로운 교회가 필요한가?”

이 질문들에 대해서 개척자가 명확하게 답을 제시할 수 없다면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내가 훈련받았던 리디머 시티투시티(Redeemer City to City)에서는 그렇게 개척후보생들을 가르쳤다. 리디머교회는 50개 도시에서 350개의 독립적인 교회개척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첫 번째 질문 중에 하나는 이것이었다: “왜 그 지역에 새로운 교회가 필요합니까?”

그렇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성도들이나 비신자들, 지역주민들이 진정으로 듣고 싶은 답이다. 반면, 일반적인 많은 개척 후보생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답을 한다.

- 건강한 교회, 투명한 교회를 하고 싶다.
- 한국교회에 대안이 되는 교회를 하고 싶다.
- 선교적인 교회를 하고 싶다.
- 신학적으로 올바른 교회를 하고 싶다.
-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를 하고 싶다.
- 상식이 있고 소통이 있는 교회를 하고 싶다.

이 부분들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면 좋은 덕목에 대한 묘사들이지, 사실상 듣는 사람들에게는 그 내용이 공허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이미 기존의 교회들도 다 그런 모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답변이 돌아와야 할까? 필자가 교회개척훈련을 받으면서 내린 결론 중에 하나는 “바깥에서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교회”이다. 울타리 바깥에 있는 양들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교회이다. 예수님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교회이다. 복음을 모르던 사람들이 복음을 알아갈 수 있는 교회이다. 교회를 안다니던 사람들이 새로 신앙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교회이다. 그럼 이것이 현실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1)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위해 교회가 더 필요하다

교회 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인구통계와 각종 서베이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10년 전에 개신교에 속한 한국인은 861만 명이었다. 그런데 최소 758만 명 정도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며, 이중 약 198만 명은 타종교로 전환했고, 약 560만 명은 비종교인이 되었다. 한국교회의 전도는 대부분 교회에 데려와서 앉혀놓거나 교회등록을 하게 하는 전도였기 때문에, 그만큼 개신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많았고, 나간 사람들도 못지않게 많았다. 교회 밖에는 적어도 4천만 명이 넘는 비그리스도인들이있으며, 2천만 명이 넘는 비종교인이 있다. 또한 1천만 명 가까운, 전에는 교회에 다녔으나 지금은 발길을 끊은 탈교회인들이 있다.

개척자에게 이것은 큰 기회이다. 왜냐하면 지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80%가 넘는 것이다. 결국 이슈는 큰 그림으로 볼 때 주님의 우주적 교회 안에서 이 교회당에서 저 교회당으로 흩어진 양이 모이는 ‘내부이동’ 교회개척이 아니라, 바깥에서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전도적’ 교회개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절대자나 신앙에 관심이 있다. 다만 그것을 이야기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며, 믿고 배울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한걸음씩 움직여볼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뉴시티교회를 개척하면서 ‘좋은 교회를 찾는 목마른 교인들’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안 다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 교회를 개척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울타리에 들지 아니한 양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선교명령은 경계선을 넘어가서 양들을 구출해오는 사역이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교회를 하기 원했다. 복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가 헌신한 것이었다.

만일 이미 교인들인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개척한다면, 혹시 빠른 시일 안에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아니라, 특정 교회조직의 확장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복음의 초점을 벗어나면서 점점더 자기중심적이고 내향적인 폐쇄집단화, 친목집단화 되는 오류에 다시금 빠지는 첩경이다. 개척자들은 기존 신도들을 모아서 교회를 세우려고 하지 말고, 직접 비신자들을 전도하고 그들을 교회의 개척멤버로 세울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교회가 생기면, 그만큼 새로운 신자들이 많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교회에 동참하는 기존교인들은 복음전도의 기쁨을 함께 맛볼 수 있어야 한다.

2) 전도와 제자도에 있어서 새로운 교회들이 훨씬 효과적이다

새롭고 작은 교회들이 전도에 있어서 훨씬 효과적이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는 교회가 많은 편이고, 특히 준대형, 초대형 교회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대형교회들을 보면 예배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세례식 때는 몇 십 명씩, 몇 백 명씩 세례를 준다. 그래서 전도가 잘 된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러한 대형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나름대로 교회가 전도와 선교 등의 사명을 잘 감당한다는 만족감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착시현상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한국에서 전도를 잘하며 예배가 부흥하며 설교가 좋으며 평판이 좋은 교회들 가운데 매년 장년 신자를 세례 주는 비율은 2% 정도가 된다. 이는 유아세례와 입교를 제외하고 성인들 중에서 세례를 받는 비율이다. 예컨대, 1만 명 모이는 교회에서 1년에 200명의 성인에게 세례를 준다면 출석 대비 2%의 세례율이라고 볼 수 있다. 5만 명 모이는 초대형교회에서 1년에 1천 명이 성인세례를 주는 비율이다. 1천 명이라고 하면, 상당히 많아 보이고, 게다가 그 예배에 출석하는 교인 입장에서는 세례 명단이 길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100명 모이는 교회에서 2명 세례 주는 것과 같은 비율이고, 50명 모이는 교회에서 1년에 한 명을 전도해서 세례를 주는 비율이다.

충격적이지 않은가! 중대형교회에서 수백 명은 대단해 보이지만, 작은 교회에서 한두 명 전도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성인 것이다. 수많은 목사, 성도, 재정, 노력이 투입되는 중대형교회의 화려한 전도집회가 소박하게 전도하는 작은 개척들보다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다만 숫자와 화려함의 착시현상이 있을 뿐이다! 수천 명, 수만 명 모이는 교회에서 수십 명, 수백 명 세례 주는 것은 마치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한 달란트를 남기는 것과 비슷하다. 매우 무능한 교회인데, 전도 좀 하는 교회로 목사와 교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등록교인들은 들어오고 있고, 새가족반이 분주하니 말이다. 그것이 한국교회의 어지간한 규모의 교회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영적 착시현상이다. 그리고 작은 교회들에서는 큰 교회 때문에 전도가 안 된다고 책임전가를 한다. 이 또한 무서운 직무유기일 수 있다. 물론 한 영혼이 구원되는 것은 온천하를 얻는 것만큼이나 귀한 일이지만, 여기서 요점은 대형교회가 전도에 있어서 더 효과적이라고 하는 어떤 사람들의 믿음이 착시현상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새로운 교회는 복음적으로 사역을 한다면 전도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다. 미국의 교회개척기구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10년 미만의 젊은 교회들은 20년 이상 된 교회들에 비해서 10-15배 전도에 효과적이다. 그래서 팀 켈러 같은 목회자들은 “해 아래 가장 효과적인 전도방법은 교회개척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알랜 크레이더는 초대교회가 첫 삼백 년 동안 10년마다 40%의 성장을 했다고 보고한다. 로드니 스타크의 연구결과도 초대교회가 해마다 3% 정도의 성장을 했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폭발적인 성장이 아니라 점진적인 성장이었다. 그리고 중형, 대형교회를 통한 성장이 아니라, 크지 않은 교회들을 통한 성장이었다. 유명 설교자나 능력 있는 목회자를 통한 성장이 아니라, 이름 없고 평범한 교인들이 생활 속에서 복음을 나눈 결과 신자들이 늘었다. 건물 중심이 아니라, 만남 중심이었다. 프로그램 중심이 아니라 관계 중심이었다. 제도 중심이 아니라, 진리 중심이었다. 조직으로 전도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경험하고 변화된 삶이 곧 전도였다. 그리고, 모든 도시에 복음이 전파되고 회심자들이 생기는 곳마다 예배와 배움과 삶을 함께 하는 교회들이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우호적인 상황에서의 성장이 아니라, 복음과 교회에 대해 적대적인 환경에서의 초자연적인 성장이었다.

3) 교회개척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절호의 기회이다

호황 때에는 옥석이 가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불황이 오면 기본기가 탄탄하고 핵심역량에 헌신한 기업이 살아남는다. 대세 상승기에는 누구나 돈을 번다. 그러나 폭락기에는 진정한 실력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돈을 번다. 태평성대에는 누구나 능력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가 오면 진정한 능력자가 누구인지 드러난다. 복음은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이다.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다. 복음 곧 은혜의 말씀을 깨닫는 날부터 열매가 맺힌다. 주님은 복음을 주시면서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우리가 복음을 재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다.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상 위대한 종교개혁과 대각성운동은 복음의 재발견에 따른 결과였다. 로이드 존스가 “부흥”에서 말했듯이, 죽은 정통(dead orthodoxy)에서 산 정통(live orthodoxy)으로 가는 것이 곧 부흥이다. 모든 교리가 다 맞고 모든 지식을 다 가졌고 모든 실천을 다 하지만 죽은 정통이 있다. 그것은 회심이 없고 변화가 없는 교회이다. 새로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마음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이다. 살아 있는 정통은, 곧 복음을 개인과 공동체가 자신들의 마음밭에서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일상언어로 복음을 표현하기 시작하며, 자신들의 일상의 삶에서 – 가족, 친구, 학교, 직장 –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때에도 정통신학과 말씀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바리새파 사람들, 살아있는 성전 예배를 드린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 세상 등진 탁월한 영성을 가졌다는 에세네파 사람들, 올바른 사회적 실천과 국가적 봉사를 한다고 믿는 급진당 사람들이 다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었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은혜의 복음을 제시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며, 모든 불경건을 버리게 한다. 결국 복음의 재발견이 교회를 시대마다 새롭게 했다. 칼빈의 종교개혁이나 마틴 루터의 이신칭의나 존 웨슬리의 갈라디아서 서문 사건이나 조나단 에드워즈의 각성운동이나 모든 참된 부흥의 근간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에 의한 죄인 된 인간의 구원 - 즉 은혜의 복음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헌신이 있었다. 역사를 바꾼 지속적인 위대한 종교개혁과 부흥의 시기에는 반드시 은혜의 복음, 이신칭의의 복음에 대한 깊은 각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은혜의 복음이 온전하게 소통되며, 받아들여질 때에 교회가 세워지게 하신다.

지금이야말로, 복음 자체의 능력에 천착하며, 복음 자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신뢰해야 할 때이다. 지금이야말로, 조직이나 자금이나 제도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복음 자체의 재발견과 능력으로 전도하며 제자도를 세우며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때이다. 지금이 그리스도교의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우리가 복음에 헌신하느냐, 아니면 복음의 결과물 또는 복음의 축복에 헌신하느냐를 분명히 할 때이다. 자기를 스스로 점검하고, 복음의 결과물이나 복음의 열매가 아니라 복음의 메시지와 내용 자체에 헌신할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친히 세울 것이다. 우리는 복음 자체 곧 주님의 진리의 기둥과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회심과 헌신과 회복을 일으키는 전도, 제자도, 기도의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4) 교회분립은 기존교회를 갱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복음중심적인 철학을 따라 다년에 걸쳐 미리 준비된 교회분립은 기존교회를 새롭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교회가 성장하고, 역사가 오래되고, 전통이 굳어지면 교회의 활력 자체가 줄어들기 쉽다. 교인들은 외부지향적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내부지향적이 되어 교회 안에서 누리는 교회생활에 안착한다. 복음의 역동성과 담대성과 자기를 깨뜨려서 낮은 데로 나아가는 모습이 현저히 줄어든다. 부서 간에 재정과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생기고, 역사와 전통은 “장로들의 유전”으로 굳어진다. 이렇게 되면, 교회 안에 있는 모임과 부서와 예배들이 권력이 되고, 기득권이 된다. 교회에 새로 오는 사람들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인적 장막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미 교회에 형성되어 있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계층이나 그룹과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회는 나이가 많아지고,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복음중심적인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복음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오래되고 커진 교회의 규모 자체를 깨뜨려서 자기를 비우는 것이 복음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장 좋은 목사와 성도를 파송해서 교회를 분립할 수 있는 정신으로 흘러가는 것이 교회의 DNA가 되게 하는 것이 교회분립사역의 요점이다.

가정에서 자녀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독립을 시키고 분가하게 한다. 그것은 팔다리를 자르는 고통이 아니라, 성장한 자녀를 떠나보내는 부모의 기쁨이다. 아쉬움이나 서운함이 없을 수 없지만, 자녀의 탯줄을 끊어주어야 아이가 살듯이, 자녀의 정신적 탯줄을 끊어주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적 가족인 교회도 끊임없이 커지고 끌어안기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를 낳는 일을 해야 한다. 교회가 교회를 떠나보내고 따로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통해서 성도들은 자신의 안전지대와 사회적 기득권을 떠나는 선교적 삶을 실천하게 된다. 교회는 자신의 재정과 성도들을 떠나보냄으로써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심을 또한 경험하게 된다. 교회가 의사결정에 있어서 고착되면 그것이 권력이 된다.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듯이 가장 뛰어난 장로와 권사와 집사와 성도들을 파송할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보화를 나누기 위하여 우리의 질그릇을 깨뜨리는 결단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보화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그릇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하면 (즉, 교회 규모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려고 하면), 그릇 안에 주신 그리스도의 복음의 보화가 세상에는 보이지 않게 된다. 그저 그릇에만 세상의 시선이 멈추게 된다.

교회를 분립하는 것은 단지 10년에 한 번씩 한다거나, 싸워서 떠나가거나, 아니면 부목사들에 대한 처우로서 어쩔 수 없이 하거나, 아니면 대형교회로 존속하기 위한 명분을 세우기 위한 것이어서는 그 가치가 상실된다. 성도가 성도를 낳고, 제자가 제자를 낳고, 목사가 목사를 낳고, 교회가 교회를 낳는 것은 일생에 몇 번 할 일이 아니라, 평생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즉, 이것은 프로그램적인 교회분립이나 일회적인 교회개척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로서의 교회개척과 분립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의 DNA로서, 마치 전도와 제자도와 예배와 봉사처럼, 교회개척과 분립은 모든 교회가 일상적으로, 기쁨 가운데, 주도면밀하게, 훈련과 준비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존경하는 칼빈 선생이 기독교강요에서 말한 것처럼 목사의 제일 직무는 목회자를 기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개척운동 및 분립운동의 핵심은 목회자를 훈련하는 것에 있다. 목회자를 준비시키는 것에 있다.

 

▲ 주제특강을 전하고 있는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

2. 교회개척사역 과연 가능한가?

1) 복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The gospel changes everything.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은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유명한 로마서 1:17 말씀을 보면, 복음이 곧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던졌다. 예수께서는 거듭남과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주셨다. 예수께서 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신 것 자체가 복음이고, 그가 사람들과 함께 먼지 나는 언덕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 자체가 복음이고, 차가운 무덤의 어둠을 뚫고 부활하신 것 자체가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가르침에 나타나 있으며,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믿었던 그 신앙고백들이 복음이다. 이 복음 자체가 능력이다. 죄인을 용서하고, 죄를 이기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게 한다. 그리스도교의 핵심 역량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차별화 포인트는 다름 아닌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즉 우리의 복음에 있다.

2) 복음으로 승부를 보는 교회개척을 하자

이런 점을 염두에 둘 때, 복음적 교회개척이란, 복음의 능력 자체로서 승부를 보는 교회개척을 의미한다. 즉 복음적 교회개척이란, 21세기 탈현대, 탈규범, 탈교회의 삼탈 시대에도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을 실제적이며 유효하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고 하는 교회개척이다. 또한, 현세주의, 종교다원주의, 자기중심주의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오히려 복음이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을 성경과 역사를 통해 신뢰하며 진행하는 교회개척이다. 복음적 교회개척이란,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에 제대로 들어갈 때 사람들의 마음은 반드시 변화되며, 따라서 회심에 의한 교회설립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성경적 확신으로 시작되는 교회개척이다. 복음적 교회개척이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복음 자체이며, 이 복음을 시대와 지역과 문화 가운데 어떻게 사람들의 가슴에 뿌리내릴 수 있게 복음사역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실행하는 교회개척이다. 복음적 교회개척이란, 교회의 영광이 복음을 받아들이며 복음과 씨름하며 복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을 믿고, 복음에 집중하며, 복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복음으로 인터페이스를 구축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교회개척이다. 복음적 교회개척이란, 자본이나 건물이나 인프라를 사용하되 그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고민하며 생각하며 결단하며 변화됨으로써 복음에 의한 반응으로써 교회가 설립되고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음을 믿는 교회개척이다.

3) 사람들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교회를 개척하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교회 바깥에서 교회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교회개척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 바깥에서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는 움직임이 상시화되는 교회개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게 보아 교회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양무리를 잘 보살피고 돌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개척이 단지 안에서 맴도는 양들을 모으는 개척이라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는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세간에서는 그것을 ‘수평이동’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크게 볼 때는 울타리 ‘내부이동’의 특성이 있다. 아예 울타리 안에 있지 않던 양을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는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 울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부흥과 회복에 핵심적인 뇌관이다. 여기를 터뜨려야 한국교회에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교회 바깥에 있던 사람들, 교회와 상관없던 사람들, 마음은 있지만 시도를 못했던 바깥에 있는 양들을 찾아가 품어서 안으로 이끌어오는 교회가 복음적 교회개척의 열매라고 믿는다.

4) 복음으로 인터페이스를 만들어온 뉴시티교회 개척

(1) 뉴시티교회의 시작

필자가 5년 전 교회개척을 할 때에, 인지도, 인프라, 인적 자원이 없는 삼무인 개척을 했다. 아내와 두 명의 제자와 더불어 교회개척을 했다. 목사로서 인지도가 없었고, 한국에서 부목사로 사역한 적이 없기 때문에 교회개척에 함께 할 성도도 거의 없었다. 강남역 어느 회사의 작은 회의실에서 모여서 최초의 성경공부 모임을 했다. 그 때 지인들에게 부탁하여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교회를 그만 둔 사람들을 모았다. 약 23 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우리는 세 팀으로 모여서 기독교에 대한 탐사적 성경공부를 했다. 10주간의 기독교에 대한 세미나를 했고, 그 중에 8-9명이 예배와 교회로 모이기를 원하여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 전후 과정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개인들과 교회들이 생겨서 큰 힘을 받았다. 특히 서울광염교회, 제자들교회의 후원이 있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전도집회나 부흥집회 없이 관계를 통한 소개 전도와 관계적 소규모 성경공부를 통해서 교회가 형성되어 왔다.

(2) 뉴시티교회의 최근 현황

첫 해 말에는 싱글들만 20명이 안 되는 수가 모였다. 2년차에는 유치부와 초등학생을 둔 가정들이 와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그 아이들은 뉴시티교회가 최초의 교회이다. 최근 24개월 동안 매월 평균 6퍼센트 정도씩 예배출석이 증가했다. 뉴시티교회는 2015년 7월 현재 장년 기준으로 매주 출석 인원은 80명 정도 출석하고 있으며, 유효 재적 장년은 130명 정도이다. 그밖에도 영아부,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에서 자녀들이 복음을 인격적으로 알아가고 있다. 5년 전에 세 명이 시작해서 이제 교회가 복음으로 세워져가고 있음을 느끼며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실감한다. 특별히 감사한 부분은, 우리 성도들의 약 삼분의 일은 교회생활 자체가 처음이거나, 예수를 처음 믿거나, 교회를 오래 쉬다가 다시 시작하거나 하는 분들이다. 복음을 모르다가 이제 알기 시작하는 분들이 계속 계심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한다. 뉴시티교회가 위치한 서초구는 2004년에서 2014년 사이에 세무서에 등록된 교회 수가 285개에서 172개로 줄었다. 무려 40%의 교회가 사라진 것이다. 교회개척의 무덤과도 같은 서초구에서 복음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심을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3) 뉴시티교회의 관계 전도와 양육

특히 지난 삼년 간 교우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소개받아 전도하는 일을 계속해 왔다. 나는 이것은 소개팅 전도라고 부르는데, 성도들이 전도하고 싶은 부모님이나 오빠나 동생이나 친구나 지인을 목회자가 직접 만나기 시작한다. 한번의 만남이 여러 번의 만남이 되고, 기초적인 신앙질문이나 인생이슈에서 출발된 만남이 궁극에는 성경을 같이 읽고 복음성경공부를 같이 하면서 전도를 한다. 필자는 회심이 세계관의 변화라는 관점에 동의한다. 그래서 성급하게 세례를 주기보다는 세례를 준비하는 과정이 의미 있고 충실하게 되어 복음을 잘 배우고 삶에 내재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려고 한다. 감사하게도 세례받기를 준비하는 교우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새로 믿는 분들이 계속 생기고 있으며,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을 위해 기도하며 목회자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교우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그리고 교우들을 두세 명 정도의 작은 모임으로 만나서 복음을 배우고 내재화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우리는 이 모임을 복음밴드라고 부르는데 일대일 내지 일대삼으로 모이는 작은 모임을 세 명의 목회자가 열 팀 가까이 매주 진행하면서 복음의 사역이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지향하는 것은 큰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큰 복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3. 교회개척과 분립에 대한 전략적 접근법

1) 더 이상 맨땅에 헤딩을 하지 말자

목사가 목사를 낳는다. 교회가 교회를 낳는다. 목사가 목사를 키운다. 교회가 교회를 개척한다. 이것은 단순한 원리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되지는 않는다. 교회가 교회를 자라게 한다는 것은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전쟁에 나가려면 마냥 열심만으로는 안 된다. 작전계획이 있어야 한다. 지형지물을 철저히 연구해서 전략에 사용해야 한다. 여러 가지 컨틴전시 대응 훈련이 필요하다.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적군에 빼앗긴 우리 국민과 영지를 찾아오는 전쟁에 비할 수 있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상황은 전면전이라기보다는 게릴라전 내지 국지전에 비할 수 있다. 군인이 전쟁에 나설 때 전략계획이 필요하고, 의사가 수술을 임할 때 수술 작전이 필요한 것처럼 목회자들도 교회개척을 할 때 그에 대한 전략계획과 작전준비가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 사회 상황에서 전략도, 훈련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은 대부분 적절한 훈련을 받은 바 없이 맨땅에 헤딩을 한다. 대부분이 받은 훈련은 신학교 학위교육 외에는 부교역자로서 사역한 경험들이 전부이다. 한국에서 교회개척을 많이 하는 교회들도 상황은 그다지 낫지 않다. 분립개척을 하거나 부목사를 파송해서 개척하는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목회자들은 나름대로 애쓰고 수고하면서, 이른바 ‘말씀의 영’을 받기 위해 애쓰거나, 목회의 ‘돌파구’가 생기기를 기다리면서, 해온 대로 ‘열심히’ 버티거나, 전혀 다른 길을 ‘한번 시도’해 보거나 한다.

한국의 교회개척학교들에서 하는 대부분의 강의는 이미 20년, 30년 전에 교회를 개척해서 몇 천 명 이상으로 교회를 일구신 분들의 간증과 권면으로 채워지곤 한다. 그 목회자들은 분명 귀한 분들이고, 역전의 용사이고, 지혜의 백발을 가지신 분들이다. 그분들의 개척과 목회에서 귀담아 들을 것이 분명히 많이 있다. 실제로 필자도 교회개척 준비과정에서 선배 개척 목회자들의 경험담이 담긴 책들과 간증들과 설교를 통해 여러 도움을 받은 바 있다. 필자의 경우에 교회개척을 준비하던 때에 국내외에서 각각 열 곳 이상의 교회 모델들을 살펴보고 비교 검토하는 과정을 7년 정도 가졌다. 목회자 세미나를 수강한 것도 여럿이고, 찾아가서 목회자 연수를 받은 곳들도 있다. 책이나 강의로 접한 곳들도 여럿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 중에 큰 것이 하나 있었다. 절대적 모델이란 없다는 것이다. ‘절대적’이라 함은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문화, 어떤 구체적인 곳에서 복음 사역을 할 때 모델이나 프로그램이나 스타일 차원에서 ‘만고불변’이자 ‘만능열쇠’ 식의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이지만, 복음사역의 형태는 다양하다. 똑같은 복음의 씨앗을 뿌리지만, 밭이 달라지면 대응법이 달라져야 한다.

누가 이걸 모를까? 이렇게 빤하고 당연한 것을! 그러나, 필자가 발견한 것은 수많은 목회자들이 무엇인가 사역의 만능열쇠가 있는 것처럼 다른 목회자들을 대하며, 만능열쇠를 찾듯이 교회개척에 임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회자 훈련이 없고, 교회개척자 훈련이 전무한 실정이다. 단적으로, 80년대, 90년대에 교회를 개척하신 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오늘날의 현실에 잘 적용이 안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강의와 훈련은 주로 80년나 90년대에 렌즈가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 때 우리의 선배님들이 했던 것을 지금 우리가 잘 재현해 보자고 애쓰기도 한다. 이른바 부교역자로 5년 내지 10년을 재직하지만, 거기에서 배우는 것은 해당 교회의 스타일과 방식을 배우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해당 교회에서 일하는 것은 배우지만, 진짜로 다른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훈련은 안될 가능성이 높다. 목회자훈련이 부재한 때문이다. 특히 교회개척 관련한 훈련이나 준비는 전무한 실정이다.

농사로 비유를 해보자. 흔히 농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오해하지만, 사실은 지식집약적 산업이다. 땅, 기후, 작물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과 데이터와 전략적 대응이 있을 때 탁월한 농업이 가능해지는 까닭이다. 특히 강수량, 일조량, 기온 등은 매년 미세하게 달라지는데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농사를 잘 짓느냐 망치느냐가 크게 결정된다. 해당 지역 땅의 산성도와 비옥함의 정도, 습윤의 정도, 물빠짐의 정도, 강수량, 일조량, 일교차, 토양의 염분 정도, 당해 연도의 미세한 기온 변화 등에 따라 해마다 대처 방법이 세심하게 달라야 성공적인 추수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적인 접근법을 아예 배우지 않고 열심히만 한다고 하면 농사를 운에 맡기는 꼴이 된다. 교회개척에서도 이러한 것을 고려해서 복음사역의 내용과 과정과 구조가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씨앗을 심어 열매를 거두지만 준비부터 추수까지 과정이 똑같을 수는 없다.

2) 목회 모델에 대한 종합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학습이다. 생각하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고뇌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효과적으로 목회하시는 분들은 다들 잘하시는 그분만의 무엇이 있다. 그분들이 성공적인 목회사역을 하시는 것은 탁월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그러한 방식들이 효과적이었느냐에 대한 조감도적 관점(bird-eye view)을 갖는 것이다. 왜 어떤 방식들이 특정 토양, 기후, 상황에서 열매를 많이 맺게 되었느냐에 대한 종합적 이해(total thinking)를 가지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다. 단지 한 가지 모델을 찾아서 그대로 큰 고민 없이 이식하려고 한다면 필연히 패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단지 두세 가지 모델을 찾아서 그 장점만을 편의적으로 취하려고 한다면 그 또한 종국적으로 위태로워질 것이다.

현재 교회개척의 모델들은 특정 대형교회 목회자의 리더십이나 목회방식을 모델로 삼고 최선을 다해 복제하는 방식이 많은 것 같다. 여기에는 문제가 많이 있다. 중대형교회 출신 부교역자들이 개척을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안타깝게도 그 중대형교회를 복제하려고 한다. 예배 스타일, 예배 순서, 예배 시간, 전도 방식, 양육 체계, 지역사회 봉사 등을 거의 답습한다. 심지어 주보도 거의 똑같게 만든다. 문제는 무엇인가? 제일 큰 문제는 옛날의 교회를 답습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분들이 80년대, 90년대에 어떤 모델의 목회를 하게 된 것은 그 시대의 고민들과 씨름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성도들의 살아가면서 하는 고민, 전도하면서 교회 바깥의 사람들이 가지는 질문, 시대의 아픔이나 질문에 대해 답변하려는 고뇌들이 녹아져 있는 것이다. 즉, 젊은 개척자들이 유명 기성 목회자들의 목회론이나 공동체론을 수용할 때 안에 있는 고뇌는 빼고 밖에 보이는 프로그램만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큰 위험함이다. 왜냐하면 어쩌면 시효상실의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대의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교회, 추억을 그리워하며 수십 년 전 과거 속에 아직 사는 분들에게만 매력적인 교회라면 과거의 교회는 될지언정 현재와 미래의 교회는 되지 못한다. 교회개척을 준비할 때, 교회를 개척해갈 때 기존의 구모델을 답습하지 말고, 성경 말씀 붙들고 복음과 씨름하면서 고뇌하면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목회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복제가 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만일 개척해서 금세 이삼백 명으로 숫자가 늘지 않는다면, 성도들이 탈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떤 교회들은 개척해서 삼사십 명이 채 안되는데 양육체계를 매우 세밀하게 짜놓은 것을 보았다. 삼단계 훈련, 다이아몬드 양육, 육각형 로드맵 등이다. 게다가 무슨 태신자 전도집회니 무슨 수양회니, 캠프니 하는 것들까지 들어온다. 교회 안팎의 봉사활동도 많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효과성이 있어야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자칫 몇 년 사이에 에너지를 고갈하고 이륙을 못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힘을 내어 대동단결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많은 사역들은 중대형교회에서도 겨우 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게 많은 프로그램과 행사를 진행하려면 인적, 물적 자원이 많이 필요하다. 이삼백 명의 교회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활동을 몇 년 하다보면 사람들이 탈진하고 만다. 교우들이 이사가려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교회를 옮기기 위해서 집을 옮기는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어 목회자와 목회자 가정의 탈진이 다음 수순으로 기다리고 있다. 어린 다윗에게 큰 사울왕의 옷을 입히려는 격이니 버겁고 비효율적인 것이다.

단기간에 3백 명의 벽을 뛰어넘어서 1천 명 이상으로 교세가 커지면 사실상 고연비 목회모델을 ‘돌릴’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분이 특정 중대형교회를 카피한 것이지 자신의 목회를 한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찾은 것은 아닐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그 문화에서, 그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교회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는 조금 다를 가능성이 있다. 시대와 동떨어진 교회, 사회와 동떨어진 그들만의 교회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교회에서는 전도가 힘든 일이 된다. 일단 교세는 확보가 되었는데, 그 다음에 어디로 갈지를 모른다. 바깥에서는 혹시 부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속에서는 애가 탄다. 그 다음에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마음의 모델이 사실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겉으로 성공적으로 보이는) 목회자들이 내적으로 무엇이 성공인지 고민하는 현실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 중에 하나는 목회가 잘 되면 자신이 잘해서 성공한 줄 아는 착각이다. 대개 성공하신 분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했는지 모르고 잘 된 분들이 많다. 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까 되더라는 것이다. 설교를 열심히 준비했더니, 진심을 다했더니, 기도를 많이 했더니 하다 보니 되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왜 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어려움이 닥칠 때 왜 안 되는지도 분석이 안 된다. 이런 것을 경영학 용어를 빌어서 사용한다면 암묵지, 명시지라고 나눠 표현한다.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은 ‘명시지’라고 한다. 반면 자신이 행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꼭 집어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암묵지’이다. 암묵지를 명시화하는 능력이 성공하는 조직의 특성이다. 명시화할 뿐 아니라 공유할 수 있다면 매우 성공적인 전수가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경우, 다른 목회자를 코칭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자기가 겪은 것과 자기가 가진 것 외에는 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름 성공한 목회자라고 해서 목회에 대한 강의도 종종 한다. 그러나 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목회에 베테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상황을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냥 모르고 열심히 하다보니 잘 된 것이다. 이것을 자랑삼아 말씀하는 경우도 들었는데, 방향 바꿔서 말하면 고뇌를 충분히 안한 것이다. 반성적 학습을 제대로 안한 것이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은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목회자들 간에 겸허하게 상호 학습하는 열린 생태계가 필요하다.

반면, 자신이 은혜 입은 교회를 모토로 교회를 개척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그 모델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영적 공황상태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에 출판된 교회개척담을 보면 이런 과정들을 솔직하게 보여준 책이 종종 있다. 어떤 목사님은 개척하고 얼마 지나 우울증에 빠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애를 쓰고 힘을 쓰고 기다려 봐도 그 모델이 실현되지 않을 때 수많은 목회자들이 자포자기 하는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모델을 찾아서 세미나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이것이다 싶은 모델을 만나면 올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세미나나 모델들도 사실상 강사들 특유의 환경에서 찾아낸 특유의 부분적인 답들에 불과하다. 각자의 상황에서 자신이 답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몹시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들 중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목회자가 복음을 아는 것과 교회가 복음적인 것은 전혀 별개일 수 있다는 점이다.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복음을 알고 체험한다는 것과 사역적으로 복음을 교회에 실현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개인적으로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고 해서 교회적으로 자동적으로 복음적이 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회심, 체험, 헌신, 확신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교회적으로 적용이 되는 것은 자동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복음이 관계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실현되려면, 복음을 통해서 개인적, 내면적 회개와 믿음의 변화를 거친 것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통한 관계적, 공동체적 변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교회의 과정과 구조와 내용을 복음적으로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건축자가 복음으로 회심하는 것은 건축가가 이끄는 회사가 복음적인 것과 별개의 일이며, 그 회사를 복음적으로 세우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둘째, 목회자가 복음을 가지고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목회자의 새로운 우상을 만나게 되어 있다. 이 우상을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의 장점과 강점과 성공의 스토리에 자신이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목회자들은 각기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가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다른 목회자를 도와주는 영역에 있어서 매우 한계가 크다. 자신의 장점 외에는 줄 것이 없고, 자신의 단점 영역에서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여 강하게 하되, 단점을 보완하여 튼튼한 목회자가 되려고 한다면, 상호 배움의 생태계가 필수적이다. 교회개척을 준비하거나 진행하는 목회자들의 학습 생태계를 만들어가지 않는다면, 개척자들은 결국 자신의 장점 속에 장례 치를 준비를 하게 되고, 자신의 약점 속에 파묻혀 주저앉을지 모른다.

 

▲ 주제특강을 전하고 있는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

4. 열매 맺는 복음중심적 교회개척의 비결

1) 교회개척사역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

교회개척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필자가 미국 뉴욕의 리디머교회 시티투시티에서 5주간 합숙집중훈련을 받을 때 개척교회 실패의 주원인을 다루는 수업 시간이 있었다. 교회개척에 관한 베테랑 훈련자인 마크 레이놀즈 목사는 첫 번째 이유가 ‘성급한 개척’이라고 했다. 우리 훈련생들은 이에 관한 책을 읽고 여러 사례를 토론했다. 영어로는 premature launching이라고 하는데 ‘미숙아 개척’이라고 번역하면 어감이 적절할 것 같다.

물론, 우리가 복음사역을 교인의 수나 재정의 자립도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경우들이 종종 있기는 하다. 그러나,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옮겨오는 회심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생기지 않고, 온갖 우상과 죄의 올무에서 해방되어 복음의 능력과 풍성함을 경험하는 회복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생기지 않고, 종교소비자에서 예수의 제자로 삶의 자리를 옮기는 헌신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표지이다. 단순히 출석교인의 숫자나 헌금의 숫자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갖게 된 회심자의 수, 마음과 관계와 가치관이 치유되고 구원되는 회복자의 수, 그리고 가정과 일터와 세상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헌신자의 수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이것을 놓치면 사역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교회개척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5천 개의 교회가 개척되고, 3천 개의 교회가 문을 닫는다. 1년에 2천 개의 교회가 순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이것은 꼭 좋은 소식만은 아니다. 한국교회에 교인이 약 40% 이상 줄었다. 전에는 1천 2백만 교세를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6-7백만 교세로 줄었다. 올해 이루어지는 인구센서스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어쩌면 더 줄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모든 교단들에서 1년에 1만 5천 명의 목사가 배출된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중에 부목사로 수용되지 않는 사람들이 5천 명이라고 한다. 그 중에 많은 분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할 수 없이 개척을 한다는 이야기다.

미국교회에서도 교회개척(church planting)이란 험난한 일이다.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에서 개척되는 교회 100개 중에 75개는 몇 년 안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15%의 교회는 시작할 때의 숫자 그대로 유지한 채 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직 10%의 교회들만이 시작될 때의 숫자를 넘어서 회심, 회복, 헌신의 역사 가운데 성장하고 자립하고 복음의 열매를 맺어간다고 한다. 즉, 개척교회의 75%가 재정자립에 이르지 않고 사실상 문을 닫으며, 15%는 교회로 유지되지만 시작할 때의 숫자를 넘어서 성장하지 않으며, 오직 10%의 교회만이 성장하며, 자립하며, 발전한다는 것이다. 미국교회의 통계현실이 이러하니, 겁쟁이들은 교회개척을 할 수 없다는 구호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 동서부에서 각각 수천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모여서 교회개척에 대한 컨퍼런스를 여는 엑스포넨쳘(Exponential) 주제 강의들 중에 이런 부분을 다루는 것이 종종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미숙아 개척이라는 점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아직 세상에 나올 준비가 안 된 미숙아를 출생하는 셈이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집중 케어를 받아야 살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개척교회에는 그런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60% 이상이 30명 이하의 교회인 상태라는 보고가 나온다. 한국교회 90% 이상은 100명 이상이라고도 한다. 이런 부분은 미국교회도 큰 차이가 없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 외부적인 이유들을 살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주변에 교회가 많다거나, 큰 교회가 옆에 있어서 어렵다거나 하는 것이다. 일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90% 이상이나 된다. 신앙 없고 예배에 안가는 90%의 사람들은 기존 교회들의 문턱을 여전히 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울타리 바깥의 양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에게 교회개척은 레드오션(경쟁자가 과밀한 오래된 시장)이 아니라 아니라 블루오션(새로운 기회가 넘치고 경쟁자가 없는 신시장)을 탐험하는 사역으로 재정의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목회자 분들이 교회개척할 때 일꾼이 없다거나, 자본이 없다거나, 건물이 없다거나 하는 상황적인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 이 말씀들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 현실적으로 생활비가 없어서 힘들고, 가정 생계가 안 되어서 어려운 분들이 많이 계시다. 사실 가족 식구들만 예배를 드리는 경우나 일가친척까지 예배를 드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준비되지 않은 개척의 사례들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은 어려운 대화 주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에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는 ‘믿음 선교’의 고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우리가 갈 수 있는 준비와 훈련이 되어 있는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일을 감당할 자세와 능력이 구비되어 있는지를 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2) 한국교회 교회개척 및 분립개척에서 결여된 네 가지 프로세스

현실적으로 가장 결핍되고 어렵고 안타까운 점은, (1) 많은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개척의 현실 앞에서 개척의 부르심에 대해 모호함을 느끼고 있고, (2) 현실적으로 개척목회를 할 역량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느끼며, (3) 구체적으로 교회개척 및 그 이후의 사역에 대해서 목회적으로, 관계적으로, 재정적으로 훈련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4) 교회개척의 준비/실행/단독목회 과정에서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이 무척 외로워서 목회우울증 등을 포함한 많은 어려움에 빠지는 현실이다.

이에 대해 전반적인 분석을 하자면, 우리나라의 교회들에서는 적절한 (1) 개척자 선발과정이 없고, (2) 개척자 평가과정이 없고, (3) 개척자 훈련과정이 없고, (4) 개척자 코칭 과정이 없이 교회개척을 한다. 예를 들어, 준비되지 않은 개척을 막을 실질적 도리가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신학교에 불붙은 마음으로 간다고 할 때 말릴 장치가 없다. 어떤 부목사가 담임목사에게 교회개척하겠다고 말하고 나가서 개척하는데 그것을 말릴 방도가 없다. 교회규모가 좀 되는 교회들에서 선임목사 또는 장기간 근속한 부목사들에게 개척을 시켜주는데, 이것에 어떤 기준이라는 것이 없어서 준비나 자질이 없는 사람이 개척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서 담임목사님들이 고민하신다.

무엇보다도 곤란한 것은, 개척하려는 분들이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지역교회에서 부목사로 수년간 사역한 경험을 토대로 개척을 하면서, 본인이 아무런 개척 준비도 되지 않았고 개척 훈련도 받지 않았는데, 믿음과 성령의 역사를 따라서 개척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밀려가는 것이다. 많은 부목사들이 마음에는 부담과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막상 본인이 하면 아주 잘 될 것 같은 기대를 갖고 시작한다. 왜냐하면 기존에 규모가 그래도 있는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할 때에는 나름 열매도 있었고 인정도 받았고 나름 이렇게는 안해야지 하는 소신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많은 목회자들이 미숙아 개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작 개척이라는 뚜껑을 열고 몇 년이 지나보면 교회개척 사역에 아무런 준비가 안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멘붕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목회적으로 손에 잡히는 도구를 가르쳐주는 방법론적 세미나를 찾아가게 된다. 여기에는 온갖 종류의 소그룹 세미나, 설교 세미나, 은사 세미나, 치유 세미나, 리더십 세미나, 묵상 세미나, 영성 세미나, 교회론 세마나 등이 있다. 이 세미나들은 특정 목회자의 은사와 강점이 특정 지역 회중의 특성과 만나서 꽃피운 것들인데, 그것을 일반화하여 방법론적 목회 모델로 격상시켜서 전수한다. 그것은 그 시대, 그 지역, 그 회중, 그 목회자의 손에서 성령님께서 아름답게 사용하신 은혜의 도구들이지, 다른 시대, 다른 지역, 다른 회중, 다른 목회자의 손에는 맞지 않는 도구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행히, 자신의 모교회에서 익힌 목회적 도구들이 자기에게 잘 맞고 대상 회중에게 잘 맞거나, 새로 손에 잡은 도구가 자신과 회중에게 잘 맞으면 무리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수많은 갈등과 부작용이 일어나 교회가 싸우고 목회자가 사임하고 성도들이 상처를 받는 경우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3) 선발-평가-훈련-코칭의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미국장로교(PCA) 교단의 경우에는 노회에서 교회개척자들을 심사하는 과정을 거친다. 노회에서 평가자로서 섬기는 목사님들이 교회개척을 준비하는 부목사님들의 지원을 받아서 그분들이 준비가 되었는지를 심사한다. 미리 서면 심사와 설교 리뷰를 거친 열 쌍 정도의 부부를 3박 4일간의 교회개척자 심사 수양회에 초청하여 세 명 정도의 평가자가 360도 평가를 한다. 그 과정에서 복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복음을 분명하게 설교할 수 있는지, 복음이 내면과 부부관계에 체화되고 있는지, 삶에 치명적이고 습관적인 죄는 없는지, 교회개척에 필요한 영성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지를 심사한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사랑으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평가를 준다. 놀랍게도, 이 심사 수양회에 참석하는 부부들은 많은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면서 눈물의 회개와 뜨거운 사랑을 체험한다고 한다. 이 심사 결과 (1) 즉각적으로 교회를 개척해도 된다, (2) 개척해도 되지만 단서가 있다 – 2년 정도의 훈련 시간이 필요하다, (3) 개척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이 있지만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 5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4) 다 좋지만 한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 건강 문제나 부채문제, (5) 개척하면 안 된다와 같은 분류들로 심사결과를 보낸다고 한다. 이 결과는 개척자 당사자에게 통보하고, 평가를 의뢰한 노회에는 최종 평가 결과만 보내어서 개인적인 부분들을 기밀로 지킨다. 요점은 이렇게 평가과정을 필수화한 다음에 미국장로교에서 교회개척자들의 성공 비율이 기존 67%에서 90% 이상으로 상승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교회들은, 장로교단들을 포함해서, 개척자들을 ‘(1) 선발, (2) 평가, (3) 훈련, (4) 코칭’하는 목회생태계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이런 부분의 개선이 일어나지 않고는, 현재와 같은 무분별한 미숙아 개척교회 양산을 피할 도리가 없다. 이것은 기존 교회들이도 큰 부담이 된다. 수많은 신학생들과 부목사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1) 부르심이 있는 이들을 선발하고, (2) 그들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준비되어 있는지 평가하고, (3) 부르심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하도록 목회적 훈련을 제공하고, 그리고 (4) 교회개척 이후에 목회를 지속적으로 코칭할 수 있는 교회개척 생태계의 구축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교회가 살 수 있는 선순환 에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1) 선발에 있어서, 정말로 목회나 교회개척사역으로 부르심이 있는지를 점검 또는 재점검하는 공신력 있는 외부 인증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인증기관의 인증서를 받은 신학생이나 선교사나 목회자에 대해서는 성도들이 기본적인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생각이고 의견이다. ‘선발’에 관련하여서는 수많은 다른 아이디어들이 가능하다.

(2) 평가에 대해서는, 탁월하게 교회개척 사역이나 목회자 선발이나 훈련에 참여했던 목회자들 중에서 교회 개척자들이 교회를 개척할 준비가 되었는지, 모교회가 재정을 지원해도 될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해주는 평가 절차나 제도 생성이 필요하다. 잠재적인 교회개척자들을 선발하는 것과 그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왜냐하면 평가의 목적은 그 이후에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자료로 사용되는 것이며, 그 평가 결과에 따라서 그 이후 그 목회자가 훈련과정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지 파악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3) 훈련에 대해서는, 실제로 교회개척을 1-3년 안에 할 수 있는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야 사변적/이론적 대화에 멈추지 않고 실질적 소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필자가 탐방하고 연수하고 훈련받은 미국의 여러 교회개척학교들에서는 교회개척을 할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훈련을 제공하고 있었다. 즉, 어느 정도 코어 그룹이 형성되어 있고, 목회의 기본기가 검증된 사람들에게 이것을 제공한다. 필자의 경우 리디머교회 시티투시티에서 5주간의 합숙집중훈련을 받은 것이 절정이었는데, 미국교회들이 성령님께 적극적으로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헌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약 2백 시간의 강의, 워크샵, 대화, 질의응답, 피드백, 실습을 했다. 필자가 참가해서 훈련받았던 도브 교회의 교회개척학교도 당시에 한달에 2박 3일씩 1년간 150개의 강의, 워크샵, 토론, 피드백 시간을 가졌었다. 이렇게 발굴, 평가, 훈련을 하는 교회들에서 나오는 교회개척은 거의 98% 이상 성공한다. 미국 평균 10%와는 전혀 다르다. 교회개척자의 발굴, 평가, 훈련에 대한 성경적 근거들에 대해서는 본고가 아닌 다른 글에서 기회 있을 때 다루도록 하겠다.

(4) 코칭에 대해서는 담임목사가 ‘앞에 서서’ 전임 부목사에게 ‘이렇게 하라’고 코칭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교회를 분립시킨 목회자들 중에서 목회코치 훈련을 받은 분들이 개척목사님들 ‘옆에 서서’ 함께 걸으며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듣는 코칭을 한다. 리디머교회 시티투시티는 코치 없이는 개척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으며,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옆에 서서 돕는 자로서의 코치상을 확립하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3백 개가 넘는 새로운 교회들이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남미에 성공적으로 계속해서 개척되도록 돕고 있다.

한국의 교회들에는 부르심 받은 목사님들, 좋은 신학을 가지신 목사님들, 탁월한 영성을 가지신 목사님들, 그리고 말씀에 정통한 목사님들이 많이 계시다. 목회자의 제일 사명은 다른 목회자들을 기르는 것이라는 종교개혁자 칼빈의 말을 기억한다. 우리나라의 교회들에서 교회개척자들을 선발, 평가, 훈련, 코칭하는 목회생태계가 지금 진공상태에 있다. 이 진공 영역에 예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목회자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켜서 준비된 개척을 하게 한다면 우리나라의 작은 교회들, 미자립 교회들, 그리고 신학생들에게 크나큰 빛이 될 것이다. 교회를 개척시킬 때 성물(성도와 물질)을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적 원리와 교회사의 교훈은 목회자들을 심사하고 훈련하고 코칭하는 것이 위대한 초대교회의 부흥과 종교개혁의 혁명적 역사 이면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5. 교회개척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칼빈에서 배우자

1) 칼빈의 교회개척사역에 대한 재평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선교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존 칼빈은 브라질에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그 당시 브라질 선교의 문은 열리지 않았고, 브라질 사역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의 선교지가 머나먼 대륙에만 있지는 않았다. 가까운 프랑스가 바로 선교지였다. 칼빈은 프랑스를 비롯해서 유럽 곳곳에 복음의 사역자들을 파송했고, 교회가 개척되도록 했다.

칼빈은 신학자이고 제네바의 목회자였지, 교회개척과는 관련이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칼빈의 교회개척 활동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자세한 보고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과거 서구의 여러 선교역사 학자들은 칼빈이 전도나 선교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기록했다. 특히 칼빈이 예정론을 강조했고, 전도나 교회개척에는 소극적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전도나 선교에 대한 언급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서신서 강해 등을 보면 기독교강요에서 다루지 않은 복음 전파의 이슈를 다수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영국성공회의 피터 윌콕스(Peter Wilcox)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제네바의 내부 서고를 샅샅이 훑었다. 윌콕스 박사는 존 칼빈이 주고받은 수천 개의 먼지 쌓인 미발간 서간문을 찾아 읽었다. 칼빈의 시편 강해, 사도행전 강해, 선지서 강해 등의 자료들을 직접 살펴본 결과, 칼빈은 단지 뛰어난 신학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뛰어난 교회개척운동의 지도자였음을 윌콕스 박사는 발견하게 되었다.(Peter Jonathan Wilcox, Restoration. Reformation and the Progress of the Kingdom of Christ : evangelisation in the thought and practice of John Calvin, 1555-1564, Thesis (Ph. D.), University of Oxford, 1993.) 윌콕스 박사의 논문이 1993년에 나온 후에 미국 리폼드 신학교의 엘리아스 메데이로스Elias Medeiros 교수가 2009년에 이를 더 자세히 연구하였다.(Elias Medeiros, THE REFORMERS’ COMMITMENT TO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TO ALL NATIONS, Thesis (Ph.D)--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2009.) 메데이로스 박사는 서양의 선교사학자들이 칼빈의 전도 및 선교 사역을 평가절하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추정했다. 첫째는, 제네바 서고에 보존되고 있던 칼빈 자료들을 이전의 학자들이 제대로 접하지 못했을 가능성, 둘째는, 그 자료들을 자세히 다 살펴보지 못했을 가능성, 셋째는, 칼빈이 주장한 예정론 및 하나님의 주권 신학에 대한 인식 때문에 칼빈은 전도 및 선교를 중요시하지 않았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결론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 선교사역이 보안의 이유로 비밀리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역사적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당시는 복음을 고백하거나 전파하는 사람들에 대한 핍박이 극심한 때였다. 재산을 잃고, 목숨을 잃는 시기였다. 칼빈 자신도 망명자였다. 몇 년 후에는 수만 명이 피의 순교를 당하고, 수십만 명이 학살과 핍박을 피해 나라를 떠나서 망명하는 시대였다. 그런 때에 하는 복음 선교와 교회개척이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제네바는 목사들의 명단을 기록으로 많이 남기지 않았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외에도 시편 강해를 비롯해 성경 강해를 많이 출간했다. 10년 사이에 160권 이상을 출판했는데, 이는 교회개척 사역을 하는 목사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저술, 스타라스부르와 제네바에서의 종교개혁목회, 시편을 비롯한 성경 강해, 수백 권의 저술에 이르기까지 매우 헌신된 삶을 살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칼빈은 유럽, 특히 프랑스에 복음적 교회개척사역을 하는데 집중하여 헌신되어 있었다.

2) 교회개척운동의 지도자 칼빈

칼빈은 유럽의 교회개척자들을 이끄는 지도자였다. 훈련, 평가, 파송, 자문, 서신 왕래, 기도를 했다. 칼빈의 죽기 전 10년간 절대적 관심은 교회개척을 통한 선교였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자.

1550년대에 제네바 인구는 1만에서 2만 명으로 두배로 늘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신앙 핍박을 피해서 온 피난민들이었다. 당시 칼빈의 제네바 사역은 1555년 경에 이르러 안정에 도달하게 된다. 제네바 시 당국과의 관계가 편안해지며, 칼빈의 언권이 인정받기 시작하는 때이다. 당시 제네바에는 스페인, 이탈리아, 스콧틀랜드,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에서 온 사람들이 조화롭게 복음의 도시를 형성하며 살고 있었다. 영국인 존 베일John Bale은 “제네바는 마치 전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마치 성전과도 같이 열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습관, 언어, 의복에는 불일치하는 다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서 사랑하며 친구처럼 마치 그리스도의 회중처럼 거하고 있다.”고 썼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섭리 아래에서 제네바는 사역의 훈련소가 되었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서 존 칼빈의 가르침 아래 복음사역자로 훈련 받았다. 많은 이들은 매주 다섯 번 칼빈의 설교를 들었다. 그들은 칼빈을 통해서 구교의 잘못된 가르침과 문화를 벗어버리고 복음의 말씀과 복음에 합당한 태도와 문화를 배우게 되었다. 자신들의 문화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하며 무엇을 구속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자신의 문화와 배경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설교하며 전도하며 교회를 세울 수 있는지를 배웠다.

칼빈은 전도와 복음사역에 대해서 설교 중에 많이 다루었다. 예를 들어 디모데후서 1:8-9의 설교에서,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복음이 선포되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상, 묻히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인들로서 일어서야 한다. 그리스도께 영예를 돌려야 한다. 우리가 온 세상이 너무나 길에서 벗어난 것을 볼 때에, 우리는 건전한 교리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 전도자로 부르신 것을 알면서도 복음을 증언하지 아니하여서 하나님께 불충성한다면, 그것은 바울이 책망하는 바,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

칼빈은 또한 구약 선지서를 강해하면서 그리스도의 나라의 진보와 교회의 회복에 대해 강조했다. 칼빈은 복음 전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진보하며, 참된 교회가 회복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전도의 가장 좋은 수단은 교회라고 보았다. 칼빈에게 있어 전도 및 선교의 가장 적절한 수단은 복음(말씀, 신학, 교리) 사역자를 길러서 파송하여, 그들을 통해서 복음에 헌신하는 교회들이 세워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교회들이 계속해서 사역자를 기르고 교회를 계속 개척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진보하게 하며, 참된 종교개혁을 이루게 될 것이었다(칼빈은 교회개혁보다는 교회회복에 더 관심이 많았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진보는 개혁된 (‘참된’) 교회들을 세우는 것을 통해서 이루진다고 보았다.(Peter Wilcox, “Evangelisation in the Thought and Practice of John Calvin”, Anvil 12/3. 1995.)

칼빈은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설교와 강의를 많이 하였다. 윌콕스가 제네바의 먼지 앉은 서고를 확인한 바에 의하면, 1554-1556년에는 제네바 시에 망명 온 사람들이 매년 3백여 명이었고, 1557년에는 886명, 1558년에는 632명이었다. 이들은 개신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찾아온 피난민이었다. 이들 중에서 상당수가 칼빈의 설교를 듣고, 강의를 들었다. 특히 제네바 아카데미는 학생들, 사역자들, 그리고 청강생들이 들었다. 칼빈에게 있어서 제네바 아카데미는 망명객, 피난민, 체류자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무장시켜서 다시 세상 속으로 전쟁을 하러 보내는 훈련소와 같았다. 제네바 아카데미는, 특히 프랑스에, 복음의 사역의 진보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칼빈의 설교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되었다. 칼빈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고국을 향해 심장이 불타오르게 되었다.

3) 복음사역자에 대한 훈련, 평가, 파송, 지원

칼빈은 또한 목회자를 파송해 달라는 요청을 도처에서 받았다. “도처에서 사람들이 목사를 보내달라고 우리를 찾아왔다. 그들은 성직 자리를 구하는 가톨릭교도보다 열정이 있었다. 목사를 보내 달라는 사람들이 문 앞에서부터 에워쌌다. 탄원하기 위해 법정에 가는 사람들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 같았다. 그들의 바람이 성취된다면 기쁘겠지만 그들에게 파송할 목사들이 없었다. 문학적, 신학적 교육을 조금도 받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도 오래 전에 사역자로 나가게 되었다.”(헤르만 셀더르하위스, - 칼빈(John Calvin; A Pilgrim’s Life), Korea.com, 2009.)

하지만, 칼빈은 모든 사람을 파송하지는 않았으며, 그들을 먼저 훈련하고 싶어 했다. 사역자들 중에 목사로 임직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칼빈은 엄격한 기준을 따르도록 요구했다. 개척목사 후보자는 도덕적 삶이 증명되어야 했으며, 신학적 수준과 설교의 능력도 주의 깊게 조사를 받았다. 목사들의 도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목회자들이 서로서로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게 했다. 목회자에게 용납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한 윤리규정들이 있었다. 금전 문제, 부정직, 성적 비행이 있으면 즉각적으로 파면되었다.

칼빈의 모든 학생들은 라틴어, 히브리어, 그리고 헬라어에 능통해야 했다. 그 목적은 성경 주해를 한 줄 한 줄 능숙하게 할 수 있기 위한 것이었다. “좋은 사역자는 좋은 신학자여야 합니다.” 칼빈은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법을 가르쳤다. 칼빈은 교회개척 후보생들에게 교회사와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신학을 배우게 했다. 성품 훈련도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였다. 그들의 성품을 평가했다. 그들이 복음의 사역자로서 합당한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목회자들은 순교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칼빈은 강인한 성품과 끈기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목회자 후보생들만을 프랑스에 복음을 설교하며 교회를 세우도록 파송했다. 사실, 기록에 남은 88명 중에서 아홉 명은 자신의 목숨을 순교자로서 바쳤다. 칼빈은 프랑스 외에도 이태리, 네덜란드, 헝가리, 폴란드, 라인강변의 국가들, 브라질, 영국 등에 다수의 복음 사역자를 파송하였다.

각각의 교회는 대개 처음에 집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제네바에서 파견된 목사들은 마치 2차 대전 때 레지스탕스처럼 다락에 숨고, 아는 사람의 집에서 집으로 숨어들어 가면서 목적지까지 갔다. 많은 교회들이 가정, 다락, 공터, 묘지 등에서 모였다. 사람들이 모이고 신앙훈련을 받은 후에 외적으로도 교회로 모습을 갖추도록 했다. 핍박이 없던 때에는 매우 많이 모이는 교회들도 나타났다. 당시 개신교가 불법이었므로 칼빈은 집에서 집으로 비밀모임처럼 모이도록 했다.

치명적인 경우에는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고 사형당할 위험도 감수하면서 교회개척이 이루어졌다. 칼빈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전투이며 갈등이라고 생각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는, 그 자체로 평화롭지만, 인간의 악의와 사악함 때문에, 격동이 일어나지 않고 세워지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칼빈은 대부분의 목회자 파송을 비밀스럽게 진행하였다. 마치 첩보 스파이를 심듯이 하였다. 피난 나온 고국에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기에 제네바 시당국과 목자회는 사역자들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해서 기록을 남기지 않기로 한다. 당시 절박한 정황에서 칼빈은 프랑스에 수백 명이 넘는 교회개척 설교자들을 비밀리에 파송하였다. 공식적으로는 프랑스로 파송된 88명이 있다.(Erroll Hulse, “John Calvin and his Missionary Enterprise,” Reformation Today, 4, 1998.) 그렇지만 멘쯔거는 최소 2백 명 이상의 선교사가 파송되었다고 본다.(Raymond Mentzer, “Calvin and France” in Calvin Handbook, Eerdmans, 2009.) 제네바 시 당국은 처음에는 사역자 파송의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되며, 1557년에 이를 추후 비준했다. 교회개척을 통한 프랑스 전도사역은 제네바 ‘목자회’에서 별도로 진행하였다. 개혁교회가 너무 많이 세워지는 것에 대해 프랑스 정부가 제네바 시당국에 항의서한을 보내온 적이 있다. 그 때에 제네바 시는 “무슨 목사를 우리가 보냈단 말입니까?”라고 반문했다. 시는 목사를 보낸 적은 없었다. 제네바의 목자회가 보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칼빈은 단지 그들을 훈련하고, 재정을 주고, 파송하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파송 이후에, 칼빈은 그들과 자주 편지 왕래를 했다. 칼빈과 목사들 사이에 오고간 수천 통의 편지가 남아 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글을 쓰면서 이 모든 일이 잘 진행되도록 힘썼다. 그는 가톨릭의 오류와 비성경적인 것이라 생각되는 것들과 힘써 싸우기 위해 글을 썼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외에 교리문답, 교회력 소개, 시편 강해, 시편 찬송가, 서신서 등을 발간했다. 이 책들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당시 출판사들이 출간한 책이 도합 500여 권이라고 하는데, 칼빈이 1551년에서 1564년 사이에 쓴 책만 160여 권이라니 칼빈의 헌신을 짐작할 수 있다. 칼빈은 이것을 종교개혁 곧 복음사역운동의 무기로 보았다. 칼빈에게는 도처에서 목회자를 보내달라는 요구가 진정되었다. 그 수요는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진 전사들을 길러서 파송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진리를 두려움 없이 붙들며 싸울 수 있도록 전쟁터에 나간 복음 사역자들에게 편지와 성경강해를 계속 보냈다.

4) 칼빈의 교회개척운동의 결과

훈련된 자신의 제자들을 프랑스로 보내어 부르주아 계층을 중심으로 복음 운동을 시작하면서 개혁 운동은 점차로 확산되게 된다. 이 때 칼빈의 가르침을 따른 프랑스 개혁자들을 위그노Huguenots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세력은 지식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간다. 대학 교수, 의사, 변호사와 같은 지식층은 개혁 운동만이 프랑스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이라고 주장하면서 적극 동참하였다. 제네바에서 훈련받고 파송받은 목회자들은 프랑스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프랑스 전역에 복음을 들고 스며들었다. 그래서 복음이 프랑스 전체를 사로잡았다.

1555년에 칼빈과 제네바의 지원자들은 프랑스에 다섯 개의 교회를 세웠다. 이중에 조직교회는 한 교회뿐이었다. 4년 후인 1559년에는 교회 수가 1백 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1562년에는, 칼빈과 제네바와 협력 도시들과 함께 개척한 교회가 최소 2,150개로 증가했다.  인구의 15%인 3백만 명 정도가 개혁주의 교회가 되었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이는 약 10년 사이에 일어난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였다. 50년이 안되어 대핍박 이전에 프랑스 인구의 1/4이 칼빈주의로 돌아왔다고 학자들은 보기도 한다. 추방당하기 직전 무렵에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칼빈주의였다고 맥페트리지McFetridge는 추정하기도 한다.(Nathanial McFetridge, Calvinism in History, p.144,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1882.)

어떤 교회들은 4천, 6천, 8천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들이 되어서 교회개척사역을 계속했다. 당시 프랑스 베르즈락Bergerac에서 사역하는 교회개척자는 다음과 같이 칼빈에게 편지를 보냈다. “여기 이 지역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많은 부분에서 사단이 이미 쫓겨났으며 우리는 사역자들이 자립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교회들은 자신들의 분립교회들을 개척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우리는 성장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이 열매를 맺게 하여 주셨습니다. 주일마다 4천에서 5천 명의 사람들이 예배에 모여서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사역하는 목사의 편지도 있다. “우리 교회는 주님의 은혜로 날마다 성장하고 전진하여 우리가 일요일에 세 번 설교를 해야만 합니다. 다 합쳐서 5천에서 6천 명의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툴루즈Toulouse에서 개척한 목회자는 제네바에 이렇게 보고하였다. “우리 교회는 놀라운 숫자로 성장했습니다. 8천에서 9천 명의 영혼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캐더린 왕비가 조사하여 교황에게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칼빈 사후 8년인 1572년, 프랑스에는 2,150개의 개혁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1555년에 개혁교회가 불과 5개였던 것에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폭발적인 교회 수의 증가였다. 당시 인구 2천만 명 중에서 3백만 명이 개혁주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보고들이 있을 정도로 칼빈의 교회개척운동은 성공적이었다.(오덕교, 종교개혁사, 합동신학대학원 출판부, 1998.)

그러나 희생 없는 부흥은 없었다. 프랑스교회는 1562년 위그노 전쟁,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에 프랑스 전국에서 가톨릭교도들이 위그노들을 학살하였다. 7만 명 정도가 학살되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앙리 3세가 암살되고, 나바라의 군주 앙리(엔리케)가 부르봉 왕조를 열고, 앙리 4세로서 왕위에 올랐다.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낭트 칙령을 세워 위그노들에게도 신앙의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가톨릭을 프랑스의 국교로 삼기 위하여 낭트 칙령을 폐기하자, 수많은 위그노들이 네덜란드, 영국, 프로이센 등지로 망명하게 되었다. 일부는 북아메리카(현재의 뉴욕과 캐롤라이나 지역)로 건너가기도 했다. 상공업은 물론, 여러 가지 기술을 지니었던 그들이 망명하자, 프랑스의 경제는 몰락하고 말았다. 이것이 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는 원인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는 개혁교회의 존재가 매우 미미하게 되었지만, 유럽 전역과 미국으로 종교개혁이 확산되는 역사가 이루어진다.

5) 칼빈을 통해 배우기 위한 묵상과 질문

(1) 칼빈은 위대한 신학자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위대한 교회개척운동 지도자였다.

칼빈의 신학은 목회로 증명되고 완성되었다. 만일 진정으로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루려고 한다면 복음 본연의 무기를 가지고 세속 및 비진리와 싸우는 교회개척사역을 하는 것이 지당하겠다. 건물이나 제도나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는 복음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교회개척운동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지 한국교회가 고민하기를 제안한다. 한 개의 큰 교회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목표를 가지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가 더 많은 교회들이 형성되고 세워짐을 통해서 진보하도록 고민하고 있는가?

(2) 칼빈은 위대한 설교자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위대한 교사였다.

칼빈은 개척준비자들의 신학뿐만 아니라 강인하고 견고한 성품도 훈련하게 했으며, 치명적인 죄를 철저히 다스리고 경계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화와 배경과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지 준비되도록 하기 위해 후보생들에게 인문학 지식을 가지게 했다. 성경과 세상 사이에 복음의 다리를 놓는 사역을 시킨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지속적인 훈련과 과정이 있는가? 대부분의 개척목사들이 거의 준비 없이 맨땅에 헤딩하고 있는 현실을 본다. 우리 한국교회에 교회개척을 위한 목회자 훈련을 위한 교회개척학교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가? 단순히 미자립교회 목회자들 위로하는 선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내용과 교과과정을 가지고 실제적인 전도사역, 복음사역이 일어날 수 있도록 교회개척준비자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3) 칼빈은 위대한 목회자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위대한 코치였다.

칼빈은 파송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수많은 편지를 나누고,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간문을 발행해서 목사들을 도왔다. 현대의 교회개척은 종교개혁시대와 비슷하게 매우 적대적인 환경 속으로 개척자가 들어간다. 제네바의 교회처럼 규모가 있고, 실력이 있고, 사람과 재정이 모이는 교회라면, 칼빈처럼 복음사역자들을 훈련하고 준비시켜서 교회개척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실질적으로 넓히도록 힘쓸 용의는 없는가? 돈으로 하는 선교나 개척 말고, 실제로 사람을 목표를 가지고 키우며, 지속적으로 교육시키고 멘토링하고 함께 배우고 함께 씨름하면서 전선에 나온 전우 목회자들을 돕는 일들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는가? 재정지원으로 돕는 것도 귀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재정보다는 훈련과 코칭이라면, 이 부분은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한국교회에서 제네바와 같은 역량, 칼빈과 같은 지성과 지도력을 가진 교회들과 목회자들은 과연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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