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차] 다신 한번 십자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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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차] 다신 한번 십자가로
  • 김인중 목사
  • 승인 2015.08.1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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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7) 교갱협 제20차 영성수련회 저녁집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인사합시다. 주 안에서 당신이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당신 하나만 정신 차려도 내가 살 것 같소. 아니야, 나 때문에 당신 살아서 갈 거야.

“우리를 다시 살리소서!” 20년 전 이 주제로 교갱협이 시작되었습니다. 근데 20년 만에 강산이 두 번 변했는데 왜 우리는 똑같은 주제로 다시 설교를 하고 수련회에 모여야 하는가? 살아나지를 않아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입니까? 다시 십자가로 죽기 위해서 가자. 오늘 다시 죽자. 당신, 나 죽으면 부활이 일어난다. 한국교회가 왜 갈수록 어둡고 희망이 없습니까? 믿음으로 희망이 있다고 말하지만 1200만 명이 650만 명으로 반 토막 나고 교회는 신뢰 받지 못하고 불신자들은 교회를 개 취급하고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내 책임이 큽니다.

제가 교갱협을 20년 동안 섬기고 은혜 받고 왔는데 내가 살지 않으니까 나 때문에 다 죽는 것이 아닌가? 참 무거운 마음이 있습니다. 설교할 자격도 없는데 저는 이제 은퇴하기 때문에 이미 목회는 끝냈어요. 법적 절차만 내년에 은퇴 날짜를 잡고 설교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 조용히 쉬면서 묵상하고 죽을 각오하고 정말 죽자, 오늘 설교하다 내가 죽으면 우리 교갱협, 여기온 우리 젊은 동역자들이 같이 죽으면 하나님께서 분명이 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살려달라고 기도만 하지 말고 죽어야 부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제가 죽어야 돼요. 여러분이 죽어야지 죽지 않는데 무슨 부활이 있어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설교는 잘해요. 그런데 날마다 내가 죽은 목사인가? 내가 죄에 대해서 죽었나? 이런 질문을 해볼 때 부끄럽고 자격이 저도 없어요. 그러나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저 설교할 자격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날마다 죽었나? 바울처럼 죽었으면 부활이 일어나는데 죽지 않았는데 무슨 부활이 일어납니까? 물어보세요. 당신은 말씀대로 날마다 죽은 자로 살고 있습니까? 죽은 자는 성질내기 않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억울함도 없습니다. 근데 저는 죽지 않아서 말이 많아 억울한 것도 많고 섭섭한 것도 많아요.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저부터 우리부터 매순간 바울의 고백, 주님이 십자가에 죽은 것처럼 우리의 자아와 욕심과 교만과 향락과 이기심 죄악에 대해서 정말 죽어지면 오늘 교갱협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 반드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노회나 교회나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이번 수련회에 정말 죽어서 돌아가면 나는 가는 곳마다 부활의 능력을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만약 이번 기회에도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바울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 담대하게 고백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장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십자가의 죽으신 주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 교갱협의 고백, 우리의 고백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 4-5절에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너희도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 제게,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의 경고 앞에 단호한 각오를 누가 해주겠지가 아니고, 내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가 있다. 내가 심판대로 내가 망하는 길로 간다. 우리는 주의 경고장 주의 말씀 앞에 새로운 각오를 갖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창세기 3장에 하와가 넘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넘어지는 이유는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운 지혜로움에 다 넘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와서도 마귀는 예수님 앞에서 배고파 주린 예수님 앞에 먹는 것으로 도전하였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실력과 능력을 보여 달라며 도전하였고,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부귀영화를 보여주며 나에게 절하면 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마귀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11장에 보면 바벨탑은 보암직한 탑, 먹음직한 탑, 탐스러운 탑과 같습니다. 우리는 건물을 자랑합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황제가 개종할 때까지는 우리는 건물이 없었습니다. 십자가 걸면 끌려갔습니다. 350년의 잔혹한 순교 속에 로마를 향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켰는데, 지금 우리는 보암직한 교회 건물, 보암직한 학위, 보암직한 능력에 다 넘어지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능력, 영혼을 건지는 능력, 죄인을 회개시키는 능력, 죄인을 변화시키는 능력,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것을 따는 일에 미쳐있습니다

저도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36년 목회하고 37년째 목회하면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로 원없이 목회하였습니다. 이제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에 교회를 짓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썼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세상이 얼마나 변화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교회는 필요로 인해 지었고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의 강산이 변화된 것이 별로 없어요. 교회 건물은 커졌는데 달라진 게 없고 한국교회, 교단, 세상, 남북관계가 변화된 것이 없단 말입니다.

전도하는 능력,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 섬기는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로 바뀌어 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입술로는 돌리면서 혹시 우리 마음속에는 '내가 해냈지. 내가 했지. 내가 주인인데 나 아니면 이 교회가 유지되나? 나만이 이 교회를, 총회를 사회를 인도할 수 있는 실력자인데 내가 왜 물러나' 하는 생각으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성경과 반대되는 방법으로, 죄로 오염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인간의 전적 부패, 내가 전적 부패를 시인하는 종인가? 내가 하나님을 자리에서 물러내고 황제 행세하는, 회장 행세하는, CEO로 행세하고 있지는 않은가? 큰 교회만 그렇습니까? 주일학교 전도사님, 교구 목사님, '내가 교구, 행정목사인데 무슨 장로들이 까불어? 부장집사 왜 말이 많아? 내가 주의 사자인데...' 전도하는 능력, 치유하는 능력,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팔아먹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팔아먹은 가롯 유다에게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격적으로 모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장로의 다리에 상처내고, 목사를 쫒아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행사한 목사, 장로, 집사가 서로 내가 주인, 내가 왕이라고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고 말해 놓고도 하나님의 영광은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가 주인 되어서 교갱협의 목회자들이 혹시 오염되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부활이 안 일어납니다.

죽은 자를 살려주는 것이지, 살아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할 틈이 없는 겁니다. 오히려 심판에 각을 달고 있지 않습니까?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신학교 다니면서 수십 번, 수백 번 눈물로 철야기도, 산기도에 가서 같이 혼자서 여러 번 부른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이제 아무도 안 가려고 해요. 대도시에, 큰 교회에 붙어 있고 대도시에서 이 교회 나 아니면 안 되는 줄 알지 아무도 아골 골짝 가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찬양은 모두 멋드러지게 합니다. 설교 멋드러지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교회, 총회 나 아니면 안 돼' 하면서 버티는 자만과 교만과 독단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날마다 가려지는 줄도 모르고, 복음 전도의 문을 다 가려 막으면서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양심으로 변질되고 있다면, 오늘이 어쩌면 마지막 주시는 회개의 시간인 줄도 모릅니다.

내 의견과 다른 사람을 사탄의 세력, 이단의 세력으로 매도하며 뻔뻔하게 살아가는 변질된 줄도 모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교인들과 세상 불신자들의 원망과 비난과 조롱을 듣고도 보고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눈을 떠서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고 바로 왕처럼 독재자처럼 버티면 전도의 문 다 닫고 멀쩡한 교인들을 가나안 교인들로 내 몰고 있지 않습니까? 가나안 교인, 안 나가 교인으로 몰아내고 있지 않습니까?

 

세 가지 유혹

유명한 헤르만 헤세는 그 책에서 이런 글을 우리 믿는 사람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뿌려진 유혹은, 이 사탄의 유혹은, 마귀의 유혹은 인간의 마음에 뿌려진 무서운 병, 세상 사람들도 사람 마음속에 이 원수 마귀의 무서운 유혹이 뿌려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세 가지 유혹에 빠집니다.

 

1. 향락의 유혹

저도 우리도 불신자도 사람은 다 똑같아 대다수가 세 가지 유혹에 빠지는데 첫째는, 향락의 유혹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절은 이천년 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지금 우리 교인들이 얼마나 고통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교회 때문에 얼마나 고통하는 지를 보고도 듣고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나, 우리가 아닙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오늘 우리 교인들, 목사, 장로까지도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교회가 깨지든 말든 자기 밖에 몰라 말씀에 말세에 사람이 돈을 사랑하며 자기를 사랑하며 끊임없이 돈에 문제 때문에 돈을 사랑하며 돈을 자랑하며 돈 자랑 건물 자랑 학사가운 박사가운 자랑 돈 자랑 성경대로 우리 목사들의 마음속에 젊은 교역자들의 목회자들에게도 교인들 속에도 똑같은 유혹은 사탄을 통해 계속 오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며 자랑해요. "이 건물을 봐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주님 말씀하시는 데도 '이 건물을 보라. 천 억, 2천 억을 들여 지은 이 건물을 봐라. 남이 못하는 것 내가 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고, 아니 배신하며 조급하고 자만하며 '아니 누가 나를 건드려.' 우리 교갱협은 목회를 잘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지역은 내가 30년, 25년 이렇게 내가 땀과 피를 흘려 가며 진액을 짜 목회했는데 누가 나를 건드려? 누가 나를 내보내?'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어요. 목사의 모양은 있어요. 그런데 먹고 마시고 제 마음대로 돈 쓰는 일에 우리들이 오염되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저도 오염되어 가고 있지 않나?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내가 돌아 서라" 근데 친구이기 때문에 돌아 서지를 못해요. 형제지간에도 말을 안 해요.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문화라는 이름 아래, 육체적인 쾌락에 심취되어 사치스럽고 방탕하게 살고자 하는 유혹입니다. 먹는 일, 마시는 일, 노는 일에 미쳐가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 속에 저도 우리도 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자가 굶어 배고프면 뵈는 게 없습니다. 목사든, 장로든 대통령이든 다윗이든 배고프면 가리는 게 없어요.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무엇이 믿음입니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남편도 장로도 목사도 몰라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다 알고, 보고 듣고 있는 데도 믿음을 설교하는 우리들이 믿지 않아요. 하나님이 내 양심을 봅니다. 내가 거짓말하는지, 내가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하나님은 다 보는 데도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믿지를 않아요.

내가 바벨탑 위에 앉아서 '내가 세운 교회인데, 내가 세운 장로인데, 내가 열심히 해서 부흥된 교회인데, 내가 황제인데 누가 날보고 뭐래?' 말로는 다 하나님이 우릴 다 보고 계신다고 하고 '내가 하나님인데 누가 날 밀어내? 내가 먹고 마시는 건데 간섭해? 이만한 교회가, 이만한 전동 쓰는데 누가 뭐라 그래?' 부끄러운 지도 모르고 나까지도 그것을 부러워하고 큰 교회 목사 하고 싶어서 '내가 언제 이런 교회 지어보나? 나도 언제 이런 수양회 한 번 유치해 볼까?' 우리는 이 향락에, 욕심에 빠져서 마음 다 흔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는 사자와 같이 돌아다니는 먹을 것을 찾는데 하나님이 다 보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주다, 절대 주권을 갖고 있다, 나는 죄수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그래야 마땅한데 '내가 무슨 죄가 있어 남들 다 하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심지어는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떨어지는 일이 없는데 '나만 재수 없어 도마 위에 올라갔나?' 재수 없이 나만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분노와 불평이 많아서 향락에 빠지면 술 취하고, 먹고 마시고, 모든 것이 내 것인 줄 알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마귀는 바로 우리를 그렇게 유혹하고 넘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향락에 취해 먹고 마시는 일에 멈출 수가 없어요. 공짜 다 좋아해요.

 

2. 교만의 유혹

동시에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강력한 둘째는 교만의 유혹입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교만의 유혹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고도, 설교하고도 자신을 보지 못하는 교만, 학위가 있거나 권력의 자리에 앉으면 누구의 말도 듣지를 않습니다. 이게 교만입니다. 친구의 말, 선배의 말도 안 듣고, 장로, 부목사 말도 안 들어 대부분의 부목사들은 무슨 조직의 일원처럼 잘릴 까봐 아무런 말도 않고 같은 패거리로 전락하는 일은 역사에 수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목사님, 내가 아무리 기도 드려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목사님 가는 길에 제가 도와드리고 가겠습니다" 하는 목사가 아니고 무슨 똘마니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역사 속에 있는 그런 사람이 내가 아닌가? 학위가 많고 교사의 역할이 크고 목사가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설교하면서도 자기는 안 돌아보는 교회를 부려먹고 세상을 마음대로 하려고 설교하는 거지, 설교하면서도 자기는 안 돌아보는 일들을 내가 설교하고도 나는 설교한 데로 살려고 노력하는가? 어제 설교하는 데로 나는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고 말하고 행동하는가? 교인들에게만 선포하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 앞에 바로 서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가복음 10장 42절 이후에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아. 나의 교갱협, 소망을 갖고 그래도 이 어려운 시대에 찾아온 나의 자녀들아.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믿습니까? 담임목사가 황제가 되는 것입니까?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조그마한 교회가 200, 300명이 넘어가면 황제 노릇을 하려고 하고 교인, 장로들을 똘마니로 세우고 부목사들을 운전병으로 압니까? 부목사님들, 담임목사님들, 큰 교회 목사는 황제입니까? 제가 황제입니까?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믿습니까? 나는 교갱협에 오는 사람부터 종이 되는 삶을 살면 우리 교단이 부흥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종 되려고 여기까지 왔어요. 근데 더 종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종은 재산이 없어요. 종은 자존심이 없어요. 종은 자기 주관이 없어요. 근데 가라면 '내가 그런데 왜 가?' 하며 생각하는 마음이 제 속에도 있지 않습니까? 내가 피 땀 흘려 가꾼 교회인데 내가 왜? 왜는 왜겠습니까? 종이 아니니까... 하나님이 가라면 가야죠. 근데 우리는 나 아니면 교회가 무너지고 총회가 무너진다는 거에요. 나 아니면 대학교, 신학교가 무너진다는 거에요. 전부 나 아니면 무너진다는 거에요. 우리 교단이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 앞에 아멘 하고 죽는 종의 자리로 내려가면 높여주시고, 다시 살려 주시고, 반드시 영광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 주셔서 당당하게 자존심 먹고 위치에 상관없이 우리를 세상을 살리는 사람으로 살릴 줄 믿습니다.

 

3. 이기심의 유혹

세 번째는 이기심입니다. 왜 우리가 십자가를 향하여 나가야 되는가? 향락에 대하여 죽고 교만에 대하여 죽기 위하여 십자가로 가며 십자가는 죽는 것입니다 무엇에 죽어야 됩니까? 이기심의 유혹에서 죽어야 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저는 내 새끼, 내 아내, 나,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 민족, 우리 교단, 우리 노회 또 어떤 일이 생기면 제 속에도 자동적으로 나 중심의 이기심에 부글부글 끌려서 가는 거에요. 나 하나 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목회자 이기주의 아닙니까? 나 하나 살기 위해서 100명, 200명 가나안 교회 되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싫으면 가!' 하는 교만과 나를 살고자 하는 이기심이 저를 끊임없이 붙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살기 위해 수많은 성도들을 실족시키는 목회자는 아닌가? 장로, 집사는 아닌가? 목사를 실족시키는 장로, 집사, 권사, 교사, 부목사는 아닌가? 예수님은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내가 죄인인 줄 알고 죽기를 각오하고 죽어 마땅히 여기고 죽어야지 죽지 않는데 어떻게 살려줘요.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 나의 죄,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에 길을 가셨는데, 혹 우리들은 나 살기 위해 수많은 교우들을 방황의 길로, 실족의 길로, 고난의 길로 내몰면서도 뻔뻔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주일학교 교사들, 집사들, 장로님들 그렇게 우리보다 설교 말씀 듣고 살려고 애쓰는데도 나의 이기심 때문에, 나의 교만 때문에, 나의 향락의 논리로 다 합리화시키면서 '내가 이 정도쯤은 살아도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해가면서 나 살기 위해서 수많은 신자들, 아니 다른 교인들까지도 실족시키는 이기주의 목회자, 교역자, 평신도 지도자의 길을 가지는 않고 있습니까?

마가복음 9장 42절에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 여러분, 어린아이 하나라도 실족시키면 그 지도자는 무거운 돌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했는데, 하나가 아니라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 수백만 명을 실족시키면서도 버티고 있는 나는 아닌지, 우리가 아닌지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잘 먹고, 놀고, 일 안하고, 즐겁게 사는 것은 저도 좋아요.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돈 쓰고, 먹고, 마시고, 교회처럼 구멍이 많이 뚫릴 수가 없어요. 선교, 비전이라는 이름, 수고했다는 이름아래 먹고 마시는 것, 우리처럼 먹고 마시기 쉬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주인인데? 내 돈 내가 쓰는데? 우리 교회 돈 내가 쓰는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결산 볼 때 지극히 작은 돈 하나라도 지극히 작은 은사라도 주의 뜻대로 썼는가? 심판 결산 볼 때 쫓겨나는 종과 착하고 순복한 종으로 분명히 심판 날이 오는데 교인에게는 절제를 외치고 자기 자신에게는 명분과 교묘하게 유익을 위해서 있는 환경을 적당하게 포장해서 이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유혹 앞에 모두 다 노출되었어요. 예수님도 노출되었어요. 마귀새끼가 와서 똑같이 향락과 교만과 이기심을 가지고 유혹했습니다. 누구나 다 이 유혹 앞에 면제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으로 성숙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는 유혹 앞에 서 있는 자세에서 나타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시험 들지 않도록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골방 앞에서, 회중 앞에서, 대중 앞에서 내가 담대하리라. 장로님, 집사님, 세상 사람들보다 위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준비된 사람은 유혹 앞에서 벗어나고 분별하고 이기는 능력이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그래서 뿌리치지 못하고 유혹에 빠져듭니다.

 

향락의 생각

가만히 살펴보면, 이 세 가지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얽어매는 생각이 있어요. 이 세 가지 향락, 교만, 이기심으로 자기중심에서 해석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문화와 향락에서 누구도 벗어나지 못해요. 그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유혹에 빠뜨리는 마귀가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 '누구나 다 하는 일인데...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누구나 다 하는 일인데...' 하는 생각에 빠지면 양심이 마비가 돼요. 전혀 부끄러운 줄 몰라요. '다 하는데 왜 나만 가지고 흔들어?' 교회는 에클레시아,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자, 구별되어 불러냄을 받은 것이지 똥물에 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똥통에 빠져서 지옥 갈 뻔 했는데 십자가의 피로 건져주셔서 사는데도 옛날 사고방식으로 '다 그렇게 사는데... 세상 다 그런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하면서 더 억울함이 넘쳐 누구나 하는 생각에 빠지면 거의 구제불능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내어 놓았다. 세상은 다 떠내려가도 너는 그렇게 살지 마라. 내가 너를 그렇게 살라고 거기서 살지 말라고 불러 내지 않았냐. 믿습니까? 여기에 걸려 들면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일인데, 여기에 걸려들면 이제까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산 나, 주님께 충성하고 헌신했던 자아가 사라져 버립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나만 바보처럼 살 필요가 있나? 다른 사람도 하는 짓인데 난들 못할게 뭐냐?'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흙탕물 속에 몸을 넣어 흘러갑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영광으로 알아요. 남들은 손가락질하고 하나님은 심판의 칼을 갈고 있는데 전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어요. 너무 뻔뻔한 사람, 너무 제 자신이 뻔뻔해지기 쉬워요. 남들 다 하는데 하면 뻔뻔해져요.

 

교만의 생각

두 번째는 마태복음 7장 13절 말씀 있지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왜 교갱협 수련회를 20년 해도 내가 선배에게, 후배에게 권고했는데, 내가 교단적으로 육적으로 몇 번 했는데 씨가 먹히지 않아요. 교만이 붙으면 '시골에서 교인이 몇 명 나온다고 나이 몇 살 더 먹었으면 먹었지 감히 누구한테... 너 박사학위 있어? 너 교회 나보다 커?' 여기에 붙잡힌 사람은 권고해도 듣지를 않아요. 마음에 교만과 이기심과 돈과 향락에 맛을 들인 사람은 '내가 기독교 대통령인데... 내가 한국교회 대표인데...' 누가 자기를 대표로 뽑았어요? 근데 여기에 걸려들면 누구의 말도 안 들어요. '우리 교회가 한국의 대표인데... 내가 기독교 대통령인데... 우리 교회가 얼마나 수준 높은 교회인데...' 여기에 빠지면 누구의 말도 듣지를 않아요. 크면 수준이 높습니까? 작으면 수준이 낮습니까? 박사학위 받으면 수준이 높습니까? 박사학위 없으면 수준이 낮습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별로 없어요. 그냥 다 따라가는 거에요.

두 번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해요.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마귀 유혹에 빠지면 구제불능입니다. '내가 한국교회를, 교단을 살리기 위해서,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쯤은 괜찮지' 하는 마음에 붙잡히는 것입니다. 내가 교단을 살리기 위해서 이 정도는 해도 된다는 생각에 붙잡히면 누구 말도 듣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거짓과 불법과 죄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짓는 죄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약간 양심에 걸려 이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걸리기만 해서 '청탁하지 말라. 권력에 빌붙어 살지 말라. 아, 내가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전도해야지. 서초구청장을, 안산시장을, 동대문구청장을 전도해야지.' 말들은 그래요.

예배당에 예배보다 권력자가 오는 것을 더 좋아하는 교회들, 연합행사에 설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지사, 서울시장, 대통령이 오느냐 안 오느냐, 축사하느냐 안하느냐, 도지사와 교육감이 참석하느냐 안하느냐 거기에 다 빠져버렸습니다. 그들하고 밥 먹고, 악수하고, 사진 찍고, 그런 일에 그 사람을 정말로 회개하고 바른길로 가도록 합니까? 대통령 조찬기도회, 국회조찬기도회, 대전시 안산시 기도회 등 수많은 기도회가 있고 말씀이 있지만 내가 크기 위해서는 권력과 친해져서, 돈 많은 사람과 친해져서 우리 교회에 필요한 청탁해야지, 편법을 써야지 생각합니다. 전도하려고 밥 먹는 것입니까? 청탁하려고 밥 먹는 것입니까? 정직해야 합니다. 남은 허가를 해주는데 어떻게 그 사람도 허가되어 줍니까? 그렇다면 다른 교회도 다 해줘야죠. 시민들도, 불신자도 해줘야죠. 어떻게 불신자도, 다른 교회도 안 해주는데 나만 하도록 나의 우리 교회의 권력과 지위를 그렇게 쓸 수가 있습니까?

세상은 우리를 믿어주지 않습니다. 양심에 전혀 가책이 없어요. 마태복음 25장 21절에 보면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했으매 ..." 적은 일에 충성하는 거 내가 스스로 큰절하는 거에요. 우리가 장자 교단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장자 교단에, 내가 대표교회, 대표목사, 대표학자, 대표총장, 대표노회장이라는 거에요. 불법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풍토가 오늘 우리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없어요. 적은 일에 충성하라 하시는데 큰 일을 위해서 불법을 행하지 않았나요? 청탁하지는 않았나요? 아는 사람이라고 한번 힘을 실어주지는 않았나요? 그럼 다 혜택이 가도록 해야죠. 그래서 교회가 커질수록 권력자들과 돈 많은 사람들과 밥 사주는 것을 좋아하는 풍토가 한국교회 안에 물밀 듯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교회를 조롱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비웃는 사람이 많아지고, 교회를 안 나가는 가나안성도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일이 얼마나 한국교회에 파장이 올 지를, 다른 교회도 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우리 교회만 혜택을 받아요? 욕심입니다. 법을 바꾸어 다 혜택을 받고 다 주어야지, 어떻게 나만 혜택을 받습니까? 저도 그런데 걸려들 경우가 있어요. 여기까지 30년을 걸어 왔어요. "목사님, 뭐 도와드릴 것 없습니까?" 하면서 돈을 주는 사람 많습니다. 교회가 왜 돈을 받아요? 절대 주권을 가지신 분,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이 왜 사람의 권력의 도움을 받으려고 해요. 대통령, 시장하고 밥 먹고 주위에 검사, 변호사 많으면 자기 이기심을 위해서, 자기 교인들을 대통령을 이용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대통령이, 권력자들이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거 부탁하려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회개시키고 회개는 못하더라도 "그런 길로 가지 마세요"라고 해야죠.

교회 지도자를 키우는 교회가 너무 많고, 교회를 안 나가는 가나안 성도들이 너무나 많고, 지도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로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성도들이 가나안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오늘 다시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작은 일들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일인지, 아니면 내 이기심과 교만과 향락과 유익을 위해서 한 일인지, 한국교회와 교단을 위해서 한 일인지 개척교회, 주위 교회를 위해서 한 일인지, 옆에 있는 교회는 죽거나 말거나 내 욕심을 위해서 한 것인지 말입니다.

사도행전 24장 16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거리낌이 없이, 작은 일, 큰 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조건에서 일을 처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서 나의 중심으로 권력과 지위를 쓴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는 대수롭지 않지만 수많은 불신자와 교회들이 실망하고 주저앉습니다. '교회도 빽이 있어야 하는 구나. 하나님 빽이 아니라...'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해요. '저렇게 잘 나가고 큰 교회는 왜 도와 주시는데...' 도와주는 거 아니에요. 바벨탑은 무너졌습니다. 한국교회가 바벨탑과 같은 허세 자랑이 무너져야 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살아가면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딱 한번만이라는 생각

마지막으로 '다들 하는데 대수롭지 않게 이 작은 일을.. 그리고 하나 더 딱 한번만 권력을 이용하자. 딱 한번만 눈 감자. 딱 한번만... 딱 한 번의 거짓말인데 뭘 그리 괴로워하느냐? 의로운 사람이 어디 있어? 난 딱 한번만 거짓말 했어. 딱 한번만 욕심을 냈어. 뭐, 한번 가지고... 지나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데... 권력, 명예, 존경, 대통령, 시장, 군수, 교육감, 날마다 한 달에 일 년에 몇 번씩 밥 먹고 권력자들 찾아와서 예배드리는데...' 한번만 하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뭘 고민하냐? 너도 한번만 눈 감으면 부귀영화, 권력 다 얻을 수 있는데...' 양심에 부패를 붙이려 합니다. 한번만 하면 다시는 못나옵니다. 용서는 받아요. 대못이 박혀서 뽑아요. 못자국은 남아 있어요. 십자가의 피는 다 용서해 주셔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흔적을 보고 '장로고 목사고 믿어도 똑같구나.' 한번이라고 보지 않아요. 다 똑같이 봐요. 그 한번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른다면 점점 양심의 가책에 무감각해져서 하면서 부끄러운 줄 몰라요. 더 큰 불법을 부리고, 더 큰 허세를 부리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어떤 일이든 한번에서 시작됩니다. 천릿길도 한번에서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일이든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작이 중요해요. 한번 향락, 이기주의, 교만에 빠지면 그 공동체가 살아나기 힘들어요.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르고 점점 더 빠져들어요. 공짜 좋아하지 마세요. 공짜 좋아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에요. 일하기 싫어하는 자 먹지도 말라고 하는데 돈 주고, 먹여주고, 공짜로 해외 보내주면 좋아하잖아요. 큰 자리, 섬기는 종의 자리를 시중드는 자리로 아는 오늘 우리들이 날마다 유혹받고 넘어지지 않습니까? 결국은 나 살고자 나 중심이지 옆에 있는 교회, 노회, 총회 말만 그럴 듯하지 저부터도 그 이기심을 넘어가기가 너무 어려운 거에요.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니까...' 여기에 빠지면 이 세 가지에 확 넘어가요.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이쯤이야. 요 정도 가지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는 심판이 있는 회개치 않는 이번 한번뿐이니까 그 한번이 두 번이 되고 점점 더 거짓말을 잘하고 점점 더 뻔뻔해 지고 부끄러운지를 몰라 성경은 뭐라 합니까? 롬1:17절 이하로 오늘 자기 전에 좀 읽으세요. 자신을 하나님의 선민이다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모세의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사귄다고 자랑합니다. 여러분은 목사로 부목사로 전도사로 하나님의 사자로 부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며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고 자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며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배웠기 때문에 무엇이 옳은지도 그른지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가 앞 못 보는 사람의 인도자요 어둠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어둠속에 있는 빛이다 나는 길 차체를 잃어버린 자를 인도하는 인도자다 또 율법에서 지혜와 지식과 또 진리에서 근거하는 본을 성경에서 터득했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들의 어리석은 회중들에 교사요 어린아이에 선생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21절 그런 여러분이 나는 선생이요 길잡이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왜 여러분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주일마다 새벽마다 남은 가르치면서 바울을 통해 성령을 통해 너는 왜 너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가? 다른 사람에게는 도둑질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여러분 자신은 왜 교회 돈을 노회 돈을 총회 돈을 연합회 돈을 남의 돈을 도둑질합니까?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여러분은 왜 간음합니까? 우상은 미워하면서 왜 물건을 훔칩니까?

23절에 말씀이 있다고 하나님의 진리가 있다고 자랑하면서도 그 진리에 율법을 설교하는 너는 지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너희 때문에 너 때문에 너희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 욕을 먹고 있다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어쩌면 그렇게도 99%로 붕어빵으로 따라가고 있습니까? 25절 여러분이 율법과 말씀을 지키면 말씀을 받는 것과 할례는 가치 있는 것이 되지만 여러분이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여러분은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과 같이 됩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은 할례를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이 여기지 않겠습니까?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 세례를 받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않은 우리들을 보고 율법에 파괴자라고 판단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겉모습만 유대인인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유대인이 아닙니다. 겉모습만 목사 장로 집사 신자 몸에만 행해진 목사가운 성경책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이 할례입니까? 마음은 유대인이 사람 진정한 의미에서 유대인이다 하나님의 선택한 유대인 백성이다 그리고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따라 마음에 받는 할례가 불결과 더 의로운 것을 내 마음에 있는 향락과 유혹과 이기주의를 끌어내는 진정한 회개와 마음에 회개와 삶에 변화가 그것이 진정한 할례가 아닌가? 그것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지 않겠느냐 이런 죄에 빠져들면 이 죄는 3가지 특성으로 우리 마음을 끌고 갑니다. 이성의 판단을 뿌리치고 이성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알아요. 그런데 성경의 진리를 보고도 하는 행동은 미친 사람의 행동입니다 광기 목사 장로 집사 선교사도 미친 사람이 많아요. 이세가지에 빠져들면 미쳐요 자기 정욕에 빠져들어 맹렬함 자기 살기 위해서 인정사정없이 맹렬하게 싸우다 죽어요. 나 살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었는데 자기 안 죽으려고 미친 듯이 돈과 권력과 지식과 순진한 교인들 다 동원해서 싸움을 해요

성경은 싸우지 말로 오리를 가자하면 오리를 가고 침 뱉음을 당하면 당하라 했는데 힘으로 이기려 해요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려 미치고 맹렬하여 마음을 지배하면 광기와 맹렬함과 무모한 담대함 옆에서 보면 아닌데도 듣지 않고 담대해요 권력과 백과 돈과 자기교회 똑똑한 사람을 믿으면 우리교회 변호사가 몇 명인데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 우리 교회 똑똑한 사람 많은데 하는 생각에 부딪치면 아무것도 안보여요 성경은 화해하라 법정에 가기 전에 화해하라 죄는 슬그머니 내 마음속에 사람 속에 강력한 원수마귀가 죄는 우리 속에 슬그머니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은혜가 약화될 때 성령에서 멀어지고 말씀에서 멀어지고 밥 먹기 좋아지고 어울리기 좋아지고 나 아니면 안 되는 줄 알고 바쁘게 다니면 영성은 떨어집니다.

저도 일순위입니다 근데 우리는 그것이 대단한줄 알고 대통령 된 줄 알아 그때 죄가 들어오고 은혜가 약화 되요 언제 기도하고 언제 성경보고 언제 교인의 아픔을 헤아리고 가난한 소자 하나를 가슴에 품고 울어주며 갑니까? 문둥병 나환자 같은 사람을 언제 만나줍니까 은혜가 약화되면 마귀가 우리에 생각을 지배하고 이쯤가지고 남들 다하는데 그래 한번만 요거에 마귀새끼에 잡힙니다. 결국 인간의 노력으로 통제하려 하여도 불가능 해져요 인간은 죄를 완전히 이기는 방법 결국 죄를 완전히 사람의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어요. 여러분 십자가 앞에 나와 자복하고 회개하고 나 죽여주세요. 나 죽겠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피가 우리에 죄를 단번에 사해 주시고 부활의 새 아침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거예요 말씀 앞에 자복하고 회개해야 해요 죄를 뒤집어쓰고 무릎 꿇고 죽어야 되요 그러면 성령이 살려줘요 에스겔 봐요 골자기에 마른 송장 뼈다귀 말씀 들어가니까 사람의 모양은 갖추었어요. 그런데 아무런 힘이 없어 그런데 말을 유창하게 해요. 교회가 힘이 없어 송장 뼈다귀만 가득한 교회들 혹시 아닙니까? 세상에 다 미쳤어요. 여기 초가 다 꺼져도 초 한 자루만 보면 야 저기 빛이 있다 보는데 오늘 이렇게 큰 교회가 많아도 절망 속에 세상은 우리 보고 어둡다 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성령이 우리를 살려주셔야 그것은 죄에 대해서 자복하고 회개하고 대수롭게 여기면 안 돼요. 자기중심에 맞게 해석하면 안 돼요. 저 아우성치는 하나님의 탄식과 옆에 친구들과 동역자들의 교인들의 안타까운 소리를 다 마귀로 매장할 거예요. 다 마귀새끼로

인간은 성령의 도우심과 더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뜻대로 말만 뜻대로지 지 마음대로 사는 것이 종이요? 목회자의 중요한 직무 중에 하나는 신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갈등 죄와 은혜의 갈등을 파악하고 은혜가 무엇인지 몰라서 죄를 자복하지 못하고 뭐 이런 것을 죄라 그래요 목사님 그런 설교하면 누가 교회 다녀요 이런 소리 할까봐 죄를 죄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죄가 무엇인지 회개해야 십자가의 피의 은혜가 임하는 거지 회개의 합당한 은혜를 맺도록 하는 것이 교회지 그냥 땜빵으로 가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되요? 조용히 눈을 감으시기 바랍니다. 자리에서 다 일어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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