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사회의 통일논의 변화과정과 한국교회

분단이후 한국정부의 통일논의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950년 6·25 이후 20여 년 동안은 남과 북이 적대적 관계에서 남측은 북진통일을 북측은 적화통일론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이때는 남쪽에서도 평화통일을 논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고 위법이었다. 무엇보다도 정서적으로 용납이 안됐다.

▲ 6/24 대전새로남교회에서 열린 한목협 제16회 전국수련회에서 고양평화누리 상임대표 강경민 목사가 통일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국가간 비상채널을 통해 7·4성명을 이끌어낸다. 7·4성명은 그 내용의 파격성세도 불구하고 남북양측의 진실성 결여 때문에 민족사적 의미를 평가받지 못했다. 7·4성명 이후 북측은  주체사상을 내세운 유일체제 강화에 남쪽은 유신체제 구축에 7·4성명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7·4성명 이후 남북관계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7·4성명 이후 통일논의 과정에서 북진통일이 아닌 평화통일로 통일논의가 변화된다. 7·4성명이 비록 국내 정치에 이용된 것으로 그쳐버린 아쉬움이 남지만 역사적 의미에서는 평화적 통일논의에 물꼬를 튼 거사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주변국 4자 회담을 통한 평화통일 화두를 꺼냈다가 정치적 반대세력으로부터 빨갱이라고 집중포화를 맞았던 김대중의 통일론도 여기서부터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온 결과를 맞는다. 그 후 김대중은 자신의 3단계 평화통일론을 꾸준히 심화시켜 왔다.

20여 년 후 1991년은 남북통일론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남북한이 반쪽 정부로서 UN에 가입하는 것은 분단의 고착화라는 논리를 앞세워 남북의 UN 가입을 반대하고 방해했던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전격적으로 UN가입을 신청했다. 1991년 7월이었다. 그 해 9월에 남한도 UN 가입을 신청하여 같은 해 9월 17일 북과 남은 동시에 UN에 가입한다. 북은 160번째, 남은 161번째 UN 가입국이 된 것이다. 이것은 남과 북이 이젠 상대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므로 적화통일이나 북진통일(요즘은 흡수통일로 변형됨)을 포기하겠다는 국제적 약속의 의미를 지닌다. 남북통일운동사의 분기점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변화를 이끈 것은 국제정치의 큰 변동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1989년 독일통일,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세계 양극체제를 형성해 온 사회주의체제의 붕괴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세계 양극체제의 붕괴라는 국제정체의 격변 속에서 북한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두려워했고 남한은 북한의 도발에 의한 전쟁 위험을 두려워했다. 이와 같은 국가위기를 감소시키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 남북의 상호공존체제 유지의 필요성을 증가시킨 것이다.

이 무렵 남북은 치열한 외교전이 가열되었다. 남한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수교(1990), 중국과의 수교(1992)를 이루어 냈고 북한은 EU와의 수교(2001)를 이루어 냈지만 여전히 미국과 일본과의 수교는 미완의 숙제가 되고 있다.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외교전에서도 앞서기 시작한 남한 정부는 평화통일논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는다.

1991년 12월 13일 오전 9시에 남북 사이에 합의(서명)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다(통상 ‘남북기본합의서’라 함.). 4개장,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측의 정원식 총리와 북측의 연형묵정무원총리가 수석대표로 서명함으로 정식 채택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노태우정권 때 성립된 합의내용으로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과 북이 공식 국가명칭을 합의문서에 표기한 역사적 문건이고 거기서 비핵화문제 논의에도 인식을 같이하면서 다음해 한반도비핵화 원칙에 합의하게 된다. 당시 남북 수석대표는 “남과 북은 공존공영하면서 평화와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되었고 … 이 합의가 대결과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협력과 통일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고 선언했다.(정원식 수석대표의 기념사)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형성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한 것으로 1) 상호체제인정, 2) 불가침을 위한 무력불사용 및 군사적 신뢰조성 조치와 군비감축실현, 3) 남북교류활성화 등 3개 원칙에 합의한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2000년 6·15선언과 비교해도 흠잡을 데가 없는 진취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 후 남북관계는 북한의 핵실험, 김일성 사망, 김영삼 정부의 조문사절단 거절 등으로 심각한 우여곡절을 거친 후 1970년대부터 주변 4개국과의 협상을 통한 3단계 평화통일론을 꾸준히 주장해 온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2000년 6월 15일 분단 이후 두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서 정상회담을 통한 6·15선언을 이끌어낸다.

6·15선언 이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조성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남북교류가 이루어졌고 노무현 정부를 통해 2차 정상회담과 10·4성명이 발표되는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었으나, 이명박 정부 5년과 박근혜 정부 2년간 남북관계는 거의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남북갈등 못지않게 남남갈등이 심각하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바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의 역사적 정당성을 상술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도출하는 노력을 좀 더 진솔하고 진지하게 진행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상술한 대로 남북관계의 통일 논의 변천사는 이처럼 변화무쌍하였지만 한국교회 특별히 보수교회 진영의 통일 논의는 6·25 이후 공산주의는 사탄이기 때문에 오로지 붕괴되고 괴멸돼야 한다는 논리에서 반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분단시대 극복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오늘날, 한국교회(80%의 보수교회)는 시대를 이끄는 정신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수구집단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2. 통일논의를 주도하지 못한 신학적 성찰의 부재

1) 홍정길 목사의 목회적 회고

2)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성찰(엡 5:18-6:9)
① 교회생활  ② 가정생활  ③ 사회생활

3) 사회생활에 대한 사회 윤리적 성찰의 부족
* 1974년 로잔언약(제5장)
[제5장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자이신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이 점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왕왕 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데 대하여 참회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 행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 의무의 두 가지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교리, 우리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종류의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의 나라에 태어난다.(중생함을 받는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그 나라의 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4) 한국 보수교단의 공공성 부재
① 이단의 횡행
② 대학사회의 복음화율 4%
③ 카톨릭의 도전
*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부패에 대한 신학적 단상

3. 새로운 사회의 도래

1) 박정희시대의 마감 - 한국사회, 진보와 보수의 변화에 대한 예상

2) 이념에 대한 두려움에서 이념을 창출하고 이끌어가는 신학적 준비
- 하나님나라 신학의 광대함과 탁월성

3) 임동원(전)통일부장관의 통일논의 고백

로마서(12:17-21)에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 “네가 직접 복수하려 하지 말고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라” “원수가 굶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내라”는 내용들이다. 나는 이 성경구절들을 인용하며 “햇볕정책의 성서적 근거”라고 주장하곤 했다. “남과 북이 동족상잔의 전쟁과 냉전으로 원수가 되었으나 국제정세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이제는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화해하고 사랑함으로써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원수를 이기는 길일 것입니다. 강자인 우리가 먼저 인도적 지원과 경협을 통해 북한 동포들을 물질적으로 돕고 나누며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북한이 개방하고 시장경제로 전환해나갈 수 있도록, 체제경쟁의 승자인 우리가 자신감을 갖고 북한의 변화에 필요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바로 싸우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인 것입니다. 냉전의 잔재를 청산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민족의 번영 발전과 통일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햇볕정책입니다. 예수님은 ‘피스메이커는 복이 있나니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합니다.” (피스메이커, p.446-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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