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2) 한목협 제22회 전국수련회 및 포스트 코로나19 연구프로젝트 제2차 발표회 주제발제(1)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불안과 공포의 도가니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세계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계로 변하고 말았다. 생명의 세계를 보존해야 하는 청지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탐욕과 교만에 눈이 어두워 지식의 나무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호모 사피엔스’의 자연정복의 결과물이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기후변화로 생명의 나무, 즉 생태계까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당장 코로나19 확산으로 인간들은 생명은 물론이고 경제적 생존을 포함하여 정치 문화 종교 여가 등 모든 사회 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는 일부 인사의 만용스런 언사와 이웃에 대한 배려나 성찰없는 언행 등으로 일반 언론에서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으며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언론이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점검해보고 사회와 소통을 위해서는 한국교회는 어떤 언어와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한국교회가 정부와 언론에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청와대 회동이었다. 지난 8월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오찬도 하지 않고 2시간 동안 대통령과 16명의 교계지도자들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를 보도한 주요 언론의 기사 제목들은 대통령과 교계지도자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교총 회장, 文대통령 앞에서 “교회를 사업장 취급 말아달라”(종합)’ [조선일보]
‘한교총 회장, 文대통령 면전서 “종교단체를 사업장 취급 말라” ’ [중앙일보]
‘文대통령 “교계 전체 신망 해쳐”... 한교총 “예배 포기 못해” ’ [동아일보]
‘일부라지만 대면예배 고집...’공공의 적‘이 된 개신교’ [한겨레]
‘문 대통령 “방역은 신앙 아닌 과학의 영역” 개신교계 반발’ [경향신문]
‘文대통령 “방역 방해” vs 한교총 “예배 포기 못해” 청와대서 충돌’ [한국일보]

주요 언론들이 이렇게 보도하자 간담회에 참석했던 청와대와 교계 지도자들은 모두 당혹스러워 했고 서로 앞다투어 발언 전문과 비공개 대담 내용을 공개하며 ‘대화가 순조로웠던 간담회’였음을 강조했다. 그럼 언론이 잘못 보도했거나 왜곡한 것일까?

한국교회를 1인칭, 청와대 및 정부를 2인칭, 국민 등 시민사회를 3인칭이라고 하자. 1인칭과 2인칭은 다투지 않고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했다고 하는데 언론을 통해 3인칭에게 전달된 모습은 대립이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대통령의 모두 발언의 수신자는 사실 3인칭에 해당하는 국민이었다. 한국교회의 역할과 협력에 대해서 감사를 표했지만 결론은 ‘방역은 신앙의 영역이 아니고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니 한국교회가 국민들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대면예배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명한 것이다. 제2차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하여 한국교회에 대해 일반 국민이 듣고 싶었던 말을 해준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교회를 대표한 한교총 공동대표회장 발언의 수신자는 목회자와 교인들이었다. 사업장이나 영업장이 아닌 교회의 특수성을 인정해서 대면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목회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긴 했지만 한국교회에 대해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국민을 위로하거나 안심시키는 내용은 아니었다.

국민, 즉 3인칭과 소통해야 하는 언론의 입장에서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교총 공동대표회장의 모두 발언은 국민의 시선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한국교회는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언론의 부정적인 프레임을 확인해줄 뿐이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대화에서 대통령과 교계지도자들이 서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들 그것은 언론이라는 기차가 ‘반발과 대립’이라는 메시지를 싣고 국민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떠난 버린 뒤의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이번 청와대 간담회는 한국교회가 코로나19로 지쳐 있는 국민께 사과하고 위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것은 수신자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거나 잘못 인식한 것이다. 모두 발언의 수신자는 일반 국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설정했다면 국민과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수고하는 방역 관계자들과 확진자의 치료를 위해 애쓰는 의료진들과 코로나19로 어려운 국민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기여할 수 있는 ‘선물’까지 제시할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비공개 대화에서 교계의 요구사항을 대통령과 정부에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편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각 종교에 대한 언론의 보도 프레임은 여러 가지 사건들과 각 종교인의 언행이 중첩된 결과 형성된 것이다. 이런 프레임을 통해 일반 국민은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된다. 여론조사기관인 엠브레인 트랜드모니터가 지난 6월 종교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가톨릭과 불교 신자에 대해서는 온화하고 따뜻하고 절제적이라고 응답한 반면 개신교 신자에 대해서는 이중적이고 사기꾼 같아서 거리를 두고 싶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세했다.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이후 일반 언론의 종교 관련 기사 중 가톨릭, 불교, 개신교 순으로 긍정적인 기사가 많았고 부정적인 기사는 역순으로 많았다. 그 배경에는 가톨릭에서는 고 김수환 추기경, 고 이태석 신부, 프란시스코 교황 등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고 불교에서는 고 성철 종정, 고 법정 스님, 법륜 스님, 혜민 스님 등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개신교에서는 부정적인 인물들과 사건들이 일반 언론을 장식한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은 한국교회에 위기이기도 했지만 기회일 수도 있었다. 제1차 코로나19 확산시에는 그 진원지로 신천지 집단이 지목되면서 한국교회는 차별화할 수 있었다. 일반 언론은 교리의 차이보다는 신천지 집단의 폐쇄적 신앙 행태에 주목했다. 사회적 비난도 그런 행태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신천지를 통한 코로나19 감염이 잠잠해지면서 그 비난의 불씨는 기존 교회로 날아들었다. 가톨릭의 미사나, 불교의 법회 의식과는 달리 교회의 대면예배와 공동식사 및 소모임 활동이 코로나19 확산의 통로가 된다고 알려진 것이다. 급기야 8.15 광화문집회에 참석한 신자들과 사랑제일교회 신자들이 제2차 코로나19 확산의 기폭제로 지목되고 말았다. 그 정점에 반정부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중심의 극우개신교 인사들이 있었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난 여론은 신천지 비난 때보다 더 심각했다. 이만희는 국민에게 사과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지만 전광훈은 오히려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확진을 받은 사랑제일교회 신자들이 방역에 저항하거나 조롱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언론을 통해 노출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청와대 간담회에서 이 지점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국민에게 메시지를 던진 반면 교계지도자는 불안한 국민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교회의 억울한 입장만 항변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물론 NCCK 총무와 소속 교단 지도자 중에는 국민에 대해 사과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NCCK는 광화문 광복절 집회 직후인 8월17일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입장문’을 통해 국민에 사죄하는 입장을 밝히고 언론에 보도 요청을 했지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입장으로서 국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대한 정부와 시민사회와 교회의 목표는 동일하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 확진자를 치료하고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마침내 코로나19가 소멸되어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런 동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교회가 서로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를 선언하는 자리로 간담회가 이뤄졌다면 언론은 대서특필했을 것이고 한국교회의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설사 차별금지법 제정 등의 문제로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방역에 관한 한 한국교회가 선도적으로 정부에 협력의 손을 내밀 수 있었다고 본다. 신앙생활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주일 대면예배를 일시적으로 양보하더라도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고 살리겠다는 의지를 선제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언론과 사회의 인식이 달라졌을 것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하여 한국교회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대면예배를 계속하거나 빠른 시일 안에 재개하겠다는 입장과 코로나19 확산이 멈출 때까지 비대면예배를 드린다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한 교회라도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 원인이 방역 당국의 지침을 어긴 경우라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사회의 비난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요즘은 일반 언론보다 SNS에서 형성되는 여론의 영향력이 더욱 큰데 이를 통해 부정적인 여론은 순식간에 확산된다. 교회 출석 여부가 직장과 지역 사회에서 기피하는 대상으로 분류되는 기준이 되고 교회가 ‘공공의 적’처럼 규정되는 시사프로나 만평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과 교단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개교회를 일일이 통제하기도 어렵고 통제 범위 밖에 있는 특이한 교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면예배를 통해 확진자가 생긴 경우보다는 소모임 등 예배 이외의 활동을 통해 감염자가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언론들은 이런 구체적인 상황을 감안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태도를 유지해야 사회와 소통할 수 있을까. 

소통의 언어를 설명의 언어, 해석의 언어, 고백의 언어로 분류해보자. 설명의 언어는 주로 과학의 영역에서 사용하고 해석의 언어는 철학이나 역사 등의 영역에서 사용하고 고백의 언어는 종교나 예술의 영역에서 사용한다. 정치나 이념의 언어는 종횡무진하지만 고백의 언어로 분류할 수 있다. 

각 종교는 고유한 고백의 언어가 있고 이 언어로써 신앙 공동체내에서 일체감을 유지한다. 그러나 사회와 소통할 때는 고백의 언어가 설명의 언어나 해석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한다. 고백의 언어만 고집하면서 이해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다른 종교가 사용한 언어를 먼저 살펴보자.

가톨릭 주교단은 지난 3월19일 ‘코로나19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과 한국 천주교회 신자분들께 드리는 담화’를 통해 먼저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의료진과 자원봉사자와 정부 관계자의 노고에 감사하는 뜻을 전한 뒤 천주교회 신자들에게 미사 중지를 알리고 위기 극복을 위해 마음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가톨릭의 언어는 일반 사회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과 해석의 언어였고 그 바탕 위에서 고백의 언어로 마무리했다.

불교의 경우 대표적인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3월20일에 모든 법회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더 나아가 5월1일에는 스님 5천명이 정부 긴급재난 지원금을 기부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민의 마음을 보듬어 안을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불교는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고백의 언어를 선택했다.

한국교회의 언어는 통일되지 않은 채 양극단의 의견들이 사회에 그대로 노출되다 보니 반발과 오해가 난무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한국교회가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2차 대유행의 진원지로 교회가 지목되면서 대면예배와 비대면예배 문제로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장식했다. 이때 일반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각인된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이웃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배려는 없고 자기들의 신앙만 주장하는 종교집단이었다. 사회로 통하는 어떤 언어의 다리도 놓이지 않은 고립된 섬이었다. 인터넷에서 목사나 교회라는 단어와 코로나19라는 단어를 동시에 검색해보면 신문 지면의 제목이나 방송 화면의 헤드라인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국민들이 공감하거나 납득할만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다 보니 한국교회의 난맥상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한국교회를 대표할만한 지도자는 없고 극단적인 성향의 인물이 그 빈 공간을 독점해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개교회나 개별 교단들을 지도할만한 권위 있는 연합기관이 단일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 코로나19 감염 상황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입장이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 등이다. 일반 언론이 입장이 단일하게 정리되지 않은 한국교회 모습을 각자의 프레임대로 보도하다 보니 “정부가 교회를 탄압한다”는 목회자와 교인들의 반발 심리가 기존 언론의 울타리를 벗어나 카카오톡 등 SNS를 타고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심리는 방역에 저항하고 싶은 심리로 이어지고 자칫하면 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는 코로나19 확산의 방지와 소멸을 위해 한국교회가 방역의 주체로 나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일반 언론의 시선을 바꿀 수 있다. 안중덕 부산 샘터교회 목사의 ‘코로나감염사태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방역 수칙조차 설명과 해석의 언어를 통해 신앙고백의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고 있다. 대통령이 인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반 언론과 SNS에 소개되고 영어로 번역되어 해외에까지 전파되었다. 

기독교는 기복종교와 달리 고난의 여정에서 빛을 발한다. 풍요의 애굽이 아니라 고난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맛보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받았던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의 위기는 한국교회가 언론을 통하여 시민사회와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로 변할 수 있다.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보다도 언어와 태도가 중요하다.

첫째, 국민의 생명과 고통을 먼저 배려하는 언어와 태도를 보여야 한다.
둘째, 방역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나서는 언어와 태도를 보여야 한다.
셋째, 지역 교회가 지역 주민들을 섬기는 언어와 태도를 보여야 한다.
넷째, 다종교사회에서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공동선을 실천하는 언어와 태도를 보여야 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