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19: 사회 회복과 통합을 위한 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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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19: 사회 회복과 통합을 위한 교회의 역할
  • 정재영 교수
  • 승인 2020.11.1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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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한목협 제22회 전국수련회 및 포스트 코로나19 연구프로젝트 제2차 발표회 기조발제

1. 코로나가 바꾸는 일상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과 염려에 휩싸여 있다. 작년 12월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뒤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이 호흡기 감염질환은 전세계에서 4천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1백만 명에 넘는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있으며 여전히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천지 신자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엄청난 속도로 확산된 이후에 어느 정도 진정세로 돌아섰으나 최근에는 교회들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재확산하면서 교회가 다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초기에는 신천지라는 이단이 주목을 받았고 정통 교회들은 그것을 잘못된 신앙관에 기초한 탓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정통 교회들을 중심으로도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사실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질병이다. 이미 사스와 신종플루, 그리고 메르스의 발병으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홍역을 치렀고 인수공통 전염병의 위험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예고된 바이다. 이미 인류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전염병이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성찰과 반성이 없이 근대화를 이룬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다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위험은 성공적인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이며,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하기 때문에, 후진국이 아니라 오히려 선진국에서 위험요소가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때 크게 이슈가 되었고,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되어 이 이론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불확실성에서 온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근본 문제인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은 크게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 요소는 여전히 항존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현재 상태에 대해서도 인간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불안감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 요소가 각 사회 안에서만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발생하게 되면 그 불안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를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우리 사회에서는 적지 않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직장을 잃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정 경제와 국가 산업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사무실 근무가 제한되고 외출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되면서 일상이 멈춘 듯한 상황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외국과 같이 극단적인 봉쇄 조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가족 모임도 피하게 되었고 장례식조차도 조문객 없이 치르는 등 우리 삶의 모습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또한 국가간 이동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국제 교류와 교역도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이렇게 바이러스로 인해서 큰 타격을 받고 삶의 환경이 변하는 상황 속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삶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가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이 글에서는 코로나 이후의 사회의 회복과 통합을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코로나 이후의 사회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전에 다른 전염병과 같이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시 유행할 우려가 크다. 특히 이 바이러스는 변형이 매우 심해서 지금 단계에서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한다고 해도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 나타나게 되면 다른 유형의 바이러스에는 전혀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완전한 종식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삶은 바이러스 종식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삶이 될 것이다.

코로나 이후에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하겠지만, 코로나 이전의 모습과는 분명한 차이를 가질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이 등장하고 있다. 본래 뉴노멀은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으로, 미국발 경제 위기 이후 5∼10년간의 세계경제를 특징짓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것을 코로나 상황에 적용한 것이 코로나 뉴노멀이다. 코로나 시기에는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던 생각이 바뀌어서 아프면 쉬고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위생이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는 가능하면 대규모 모임을 피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접촉을 피할 수 있는 ‘언택트’ 방식의 삶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사람 간 접촉을 하지 않는 비대면 방식의 상거래와 상품 주문, 온라인 회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고 재택근무가 선호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4차 산업 혁명을 더 빠르게 진전시킬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은 클라우스 슈밥이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을 융합하여 초연결성, 초지능성을 지향하는 새로운 산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언급하면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다. 4차 산업 혁명은 물리적, 생물학적, 디지털 경계를 허물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간의 상호교류에 따른 기술 융합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집적된 데이터가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 및 활용을 거쳐서 산업을 비롯한 폭넓은 범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다시 데이터로 최적화되는 구조로서 속도와 범위, 영향력에서 과거의 산업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별성을 갖는다고 말한다.1)

4차 산업 혁명의 특징은 기존의 서로 다른 영역의 학문과 기술과 산업이 만나 서로 융합하여 기존의 산업 사회를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과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전혀 다른 산업과 산업 간의 융합과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접목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벽이 사라짐으로 기존의 단단한 사회 구조의 틀을 깨고 기존에 구현해내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또한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막대한 정보의 양을 스스로 분석하고 처리하는 인공지능과 모든 사물에 인터넷이 연결되어서 초연결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전자, 건설, 의료, 노인, 복지, 스포츠 등 여러 다양한 산업과 서비스업에 사물인터넷이 도입되어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2) 이러한 변화는 대면 접촉과 실물 중심의 거래를 해 온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인간의 사고와 인식도 크게 변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4차 산업 혁명으로 만물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유형의 상품과 서비스를 넓은 범위의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고 이에 따라 공유 경제(sharing economy)가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의 상태가 디지털 정보로 저장되고 공유돼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실물을 보지 않아도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3차원(3D) 프린터로 인해 설계도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실물을 이동하지 않고도 다양한 제품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신뢰는 공유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다. 모르는 사람의 차를 타고(리프트, 사이드카, 우버) 낯선 사람에게 나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빌려주고(에어비앤비) 가족과도 같은 반려견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맡긴다(도그베케이, 로버). 이 모든 공유 비즈니스는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성립하기 어렵다.3)

문제는 이렇게 사람들이 대면 접촉보다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만나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 자체가 약화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단순히 심리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넘어서 매우 심각한 사회 위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경기가 장기적으로 침체되면서 일자리 부족과 저성장 시대가 지속될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관계의 약화는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개인과 사회의 안전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재난이나 위험에 대해서 상시적으로 대비하는 데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그것은 이러한 상황이 사회 자본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사회 자본이란 협력 행위를 촉진해 사회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 조직의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회학자인 퍼트넘은 사회 자본은 생산성이 있기 때문에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해 준다고 말한다.4) 곧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보이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많은 것을 성취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5) 그런데 경제적인 압박은 사회적 참여를 약화시킨다. 퍼트넘은 경제적으로 곤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저소득층은 잘 사는 사람들에 비해 모든 형태의 사회생활과 공동체 생활에 훨씬 덜 참여한다고 말한다. 결국 사회 자본의 쇠퇴는 청년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까지도 위축시킴으로써 악순환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반대로 신뢰와 사회적 네트워크가 번성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을 잠재적 경제적 파트너와 연결시켜주고, 고급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앞서 나갈 수 있다고 퍼트넘은 말한다.6) 이러한 신뢰감은 사람들에게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시민적 연대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정부에서 할 수 없는 사회 곳곳의 문제를 해결하고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사회 자본이 높은 지역에서는 공공장소도 더 깨끗하고 사람들도 더 친근하며 길거리는 더 안전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공동체이다. 사회가 아무리 복잡하고 다양해진다고 해도 인간은 공동체를 떠나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사회가 단절되고 파편화될수록 공동체에 대한 욕구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사회가 급변하고 있으며 전염병으로 인하여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일수록 신뢰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사회 변화로 인해 파편화되고 불확실성이 증가된 사회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의 형성을 필요로 하는데, 소규모 모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밀한 교섭을 통해 이것이 가능하게 된다. 

전에는 공식 모임과 대규모 집회가 중요하였으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한 소그룹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에 따라 전에는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스몰토크가 오늘날에는 자신의 사회 자본을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렇게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가 형성되면 불확실성이 감소함으로써 공공 활동에 함께 참여하기도 더 쉬워지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대규모 모임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소규모 커뮤니티 활동의 중요성이 더 증가하게 될 것이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바이러스 전파가 문제가 되고 있으므로 지역사회 안에서 불확실성을 줄이고 신뢰를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3. 코로나 이후 교회의 역할

1) 교회의 공적인 책임

코로나 19는 교회에 큰 위협이 되고 있지만 이제는 이것을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신앙의 본질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신앙생활이나 관행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던 것으로부터 신앙의 본질을 이해하고 본질에 충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예배당에 모이기를 힘쓰는 것만큼이나 세상에 보냄 받은 자로서 신앙을 실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다. 예배당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교세를 자랑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교회는 세상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자기들끼리만 만족해하는 폐쇄적인 동질집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교회 역사에서도 나타난다.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의 발흥」이라는 그의 책에서 신흥종교였던 초기 기독교가 어떻게 신자들을 끌어들이면서 주요 종교로 성장하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염병이 돌던 당시에 이교도들은 전염병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자신의 신앙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염병으로부터 도피했고 환자들도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전염병을 이해했고, 이웃 사랑의 규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염병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돌보았다. 당시에는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돌봄만으로도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위대한 종교로 성장하는 데 주요 요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중세 기독교는 달랐다. 거대 왕국을 이룬 중세 기독교는 전염병에도 사람들을 교회당에 모았다가 오히려 전염병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람들은 전염병의 위협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교회로 모인 것인데 이 행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돌보기보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고 헌신한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은 전염병 때문에 고통을 받고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이웃들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그들을 돕기보다 좁은 의미의 신앙생활에 더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안타깝다.

교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회에 대한 공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이타심에 기초한 종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질병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체와 질병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통계로 보면, 상류층에 비해 하류층은 출생 시의 몸무게가 더 적게 나가고, 영아 사망률이 높으며, 어른이 된 뒤에도 더 작고, 건강하지 못하고 더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그리고 육체적인 질병들도 하류층에서 훨씬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그럴 능력도 없다. 질병에 시달리더라도 제때 치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결과로 병을 더 키우게 되고 일찍 생을 마치게 된다. 

이번 코로나 19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전염병이 계층을 구별해서 감염시키지는 않는다. 돈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가려서 걸리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류층의 사람들은 전염병에 매우 취약하다. 전염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마스크나 소독제와 같은 의약품을 구입하기도 쉽지 않고 감염의 위험이 높은 직장 환경을 스스로 개선할 수도 없으며 생계 때문에 그 직장을 그만 둘 수도 없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운동을 하거나 건강식품을 사 먹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부자들은 감염을 막기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감염되면 돈을 들여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만원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일터에 나가면서 자신의 감염 여부조차 알지 못한다. 외국에서 부자들은 위생 상태가 좋은 호텔을 장기 임대하고 심지어 개인 섬이나 벙커 구입을 알아보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 19로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이들은 서민이었다. 소득 하위 60%에 해당하는 가구의 근로소득이 감소했다.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지난해 1분기보다 3.3% 줄었고 2분위는 2.5%, 3분위는 4.2% 감소했다. 1~3분위에 속한 임금노동자들이 해고되거나 급여가 줄어든 일이 광범위하게 발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00가구 중 약 23가구(22.7%)는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은 적자 가구였는데, 1분위의 적자가구 비율은 53%로 평균의 2배 이상이다. 반면 소득 4분위(상위 40%) 가구의 근로소득은 7.8%, 5분위(상위 20%)의 근로소득은 6.3% 증가했다. 중상위층에 해당하는 임금노동자는 올 1분기 코로나19의 고용위기에서 비켜나 있던 셈이다.

태풍이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해서도 하류층의 사람들은 더 위험한 환경 속에서 살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입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허리케인이나 지진이 계층을 가려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류층에 비해 하류층의 사람들은 더 안전하지 않은 집에서 살고 있고 비용을 들여서 대비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외부의 위협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막은 사회 약자일수록 더 취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결국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게 일어난다. 

이것은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코로나 19가 유럽과 북미 지역에 큰 피해를 주고 있지만,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로 퍼지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희생을 낳게 될 것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최근 들어 공공 의료 시설을 줄여서 전염병에 제대로 대체하지 못하고 그 결과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공공 의료 시설이 아예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제3세계에서는 바이러스의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인도와 브라질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전염병으로 인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며 협력과 연대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보이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많은 것을 성취해 낼 수 있다. 

 이렇게 신뢰 회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다. 퍼트남 역시 사회 자본이 잘 형성될 수 있는 곳으로 교회를 주목하였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빈번한 모임과 교제를 통해서 친숙성을 높임으로써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공동체의 일원인 기독교인들은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를 할 수 있고, 공동체 활동은 이런 식으로 기독교인들이 시민으로서 연대하며 참여할 수 있도록 북돋을 수 있다. 특히 자기 희생의 규범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사회가 혼란하고 어려울수록 사회 곳곳에서 공적인 책임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2) 공동체 회복을 통한 위험 사회의 극복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사회는 더욱 파편화되고 많은 사회 관계가 파괴될 우려가 크다. 이러한 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공동체이다. 따라서 파괴된 사회관계를 회복함으로써 공동체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 재난과 위기 상황에서 사회를 안전하게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제공은 무엇보다도 종교의 역할이 크다. 종교 밖에서 종교의 고유한 특징을 관찰한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종교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하여 역설하고 있다. 그는 종교는 인간의 고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연계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한두 가지 편견을 녹여 없애려는 종교의 노력을 존중한다고 말한다.7)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매우 유용한 방법이 소규모 모임을 활용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소그룹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소그룹은 탈현대 사회의 특징인 유동성과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보다 많은 개인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집단 구성원들의 대면 교섭을 통해서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사회 자본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하고 위험한 시대일수록 신뢰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사회 변화로 인해 파편화되고 불확실성이 증가된 사회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의 형성을 필요로 하는데, 대규모 집단보다는 소그룹 안에서의 친밀한 교섭을 통해 이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가 형성되면 불확실성이 감소함으로써 공공 활동에 함께 참여하기도 더 쉬워지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소그룹이 실제로 많은 점에서 전통적인 시민 결사체로서 기능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소그룹 모임이 활발한 교회가 일반 교회들에 비해서 코로나로 인한 타격을 덜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에서 개인 신앙 유지에 소그룹 멤버들의 섬김과 교제가 도움이 된다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개인 경건 생활과 소그룹 교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헌금 감소 타격도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8) 따라서 대면 접촉이 쉽지 않은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관계를 이루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9) 

이와 같이 소그룹은 공동체성을 담보할 뿐만 아니라, 종교가 사회와 접촉점을 만들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종교 조직을 대형화하기보다는 소그룹 네트워크 형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10) 소그룹 운동의 구조는 각각의 소그룹이 자율성을 갖는 연결망형 구조이다. 소그룹 활동은 구성원들 사이에 평등한 인간관계를 전개하여 자주성과 민주성 있는 운영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개선과 소그룹 속에서 민주성을 경험하게 되면 집단 안에서 민주주의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이 경험을 토대로 사회 속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시민으로서의 참여를 촉발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11) 이러한 점에서 현재 교회 성장이나 교인 관리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는 소그룹 활동을 교회와 사회를 연결하여 기독 시민의 사회 참여의 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시민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시민공동체는 가족이나 혈연, 민족 등 타고난 지위에 기초한 전통 공동체와 달리, 시민의 덕성에 초점을 둔 현대사회의 새로운 공동체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지역에 의해 제한되지 않고 자발성을 갖춘 참여에 터하여 구성원들의 상호 의무에 헌신을 요구하는 공동체인 것이다. 시민공동체는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공동체이다. 이 시민공동체를 다시 지역 차원의 실천 영역에서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한 작동원리이고, 그것이 구현되는 것이 시민공동체라면 이것을 지역사회라는 구체적인 영역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12) 

요즘에 말하는 공동체는 지역이나 공간에 한정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지역공동체는 일정한 지역을 공유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지역공동체는 과거에 자연발생으로 형성된 촌락공동체와 같은 자연적 공동체일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촌락공동체를 뒷받침하는 물리적 정신적 근간이 완전히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구해야 할 지역공동체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맥락에서 공동의 목적과 이념,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따라서 지역공동체는 일정한 지리적 영역 안에 거주하는 지역의 구성원들이 목적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구축해 나가는 일련의 조직화된 활동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일들은 마을 단위로 쉽게 시도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마을 만들기’라는 말을 사용하늗데, 마을 만들기 운동은 일종의 주민자치운동으로 여기서 ‘마을’이란 시민 전체가 공유하는 것임을 자각할 수 있고 공동으로 이용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장을 총칭한다. 그리고 ‘마을 만들기’란 그 공동의 장을 시민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한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 운동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시민의식은 기독교 정신과도 통하는 것이며,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기독교의 가치를 지향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의 결과로 전통의 공동체들이 와해되고 정신적 규준이 무너진 데다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근본으로부터 변화를 요구하는 현재 상황에서, 삶의 기반을 공유하는 지역사회에서 공동 의식에 터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얼마 전까지 지역 개발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지만, 지역 사회의 어느 한 측면에만 몰두하는 일면적 지역사회개발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 지역사회 개발의 과정에서 공동체가 무너진 것은 통합적인 접근법을 채택하지 않고 단선적 사고를 함으로써 얻은 결과다. 이러한 점에서 요즘에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주목을 받고 있다. 코로나 사태도 결국 무분별한 개발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은 특히 최근에는 무분별한 개발로 심각해진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목받고 있다. 근대 서구학문의 발달과정에서 인간과 환경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환경을 주체인 인간의 인식과 활동을 규정하는 외적 조건이며 이러한 활동의 대상이 되는 객체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진행된 근대화의 결과 인류는 엄청난 환경 재앙을 맞을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됨으로써 사고방식의 전환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지속가능한 사회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로, 지속가능한 사회의 이념은 경제 발전과 자연 환경, 그리고 사회 복지를 포함한 개념이다. 둘째로, 지속가능한 사회는 의사 결정에서 구성원의 참여를 중시하는 협의적인 참여민주주의가 실천되는 사회이다. 셋째로, 지속가능한 사회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사회이다. 넷째로, 지속가능한 사회에 적합한 기술과 생산방법은 지역생태계와 공동체에 적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는 경제활동과 생활 자체가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자원순환형 사회여야 한다. 이를 위해 생태 공원, 생태도시, 생태마을 등 자연친화적인 마을 만들기에 노력해야 한다. 도시나 마을 전체를 자연친화적으로 만드는 것은 주민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나, 주민이 주도하는 다양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운동’에 관심을 갖고 지역공동체 운동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마을 만들기 운동은 일종의 주민자치운동으로 여기서 ‘마을’이란 시민 전체가 공유하는 것임을 자각할 수 있고 공동으로 이용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장을 총칭한다. 그리고 ‘마을 만들기’란 그 공동의 장을 시민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한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 운동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시민의식은 기독교 정신과도 통하는 것이며,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기독교의 가치를 지향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 주요 교단이 올해의 주제를 ‘마을 목회’로 정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을에 관심을 갖는 교회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마을 공동체 활동을 효과 있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구성원들의 지역 사회활동에 대한 인식과 참여 의향을 조사하여 지역 사회활동을 전담할 수 있는 전략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교회 소그룹을 TF팀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교회 전체가 지역 사회 활동을 하기는 어려우나 각종 소모임들이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더 자발성이 있고,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게 되어 많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이 소그룹 TF팀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를 조사하고 직접 실천 주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교회 재정의 일정 부분(대략 10% 정도)을 지역 사회 활동비로 정하고 소모임을 지원 대상자와 연결하여 이들의 필요를 도울 수 있는 책임봉사제를 실시하는 것도 중요한 원칙이 될 것이다. 

마을 공동체는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됨으로써 가까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을 줄이고 안전한 생활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리고 지역교회인 개교회들이 교회가 터하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하여 책임 의식을 실천해야 한다. 마을 공동체 활동을 통해서 교회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돕고 위험 요소를 줄이는 것이 코로나 19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신앙의 전통과 그 정수를 지키면서도 이 시대와 사회의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 교회 안에 있는 신앙 공동체들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염려에 낙심하고 있는 이 시기에 신뢰와 연대를 통해서 난국을 이겨낼 수 있도록 모든 신앙공동체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4. 나가는 말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 교회는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고난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수개월이 될지, 수년이 될지 모르는 고난 끝에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코로나가 종식된 후에는 다시 찾아올 것인지 부실해진 교회 재정이 이전으로 회복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 한번 인식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기는 매우 어렵고 설령 회복이 된다고 해도 단시일 안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변화를 대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코로나 19로 인한 위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변화의 거센 물결이 몰려오는데 과거의 형태를 고집해서는 의미 있는 생존이 이루어질 수 없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미래 사회에서 어떻게 적실성 있는 신앙생활을 이루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기독교 신앙의 두 축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전염병으로 인해 대면 접촉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또한 복음은 어떻게 전할 수 있으며 선교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에 대한 공적인 책임이다.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공적인 영역에서 표출되어야 한다. 지금은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전히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사회에 대한 막중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우리의 신앙 생활도 공적인 기준에 의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에서 예배당 예배를 고수하는 것은 신앙고백의 한 표현일 수 있지만 그것이 비기독교인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기준만 아니라 공공의 차원에서 신앙생활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제 새로운 기준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기준은 새로운 가치에 바탕하는 것인데 새로운 가치는 기존의 제도적 관행을 깨고 본질을 바라보는 것이다. 교회주의를 넘어서 교회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서는 것이고 그들이 모여서 거룩하고 능력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미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와 4차 산업혁명의 변화 속에 놓여 있다. 그리고 코로나 펜데믹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교회 스스로 창조적인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는 더 이상 여유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코로나 사태는 제도와 형식에 매몰되어 신앙의 참뜻을 잃어가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습관적인 신앙생활이나 형식화된 양태로는 참된 신앙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점차 지지를 받고 있으며 대전환을 향한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새로운 신앙과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생활과 삶의 모습 속에 관행으로 주장되어 온 잘못된 부분들을 과감하게 바꾸고 나와 이웃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
1) 클라우스 슈밥,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송영진 옮김) (서울: 새로운 현재, 2016). 12쪽.
2) 윤승태, “4차 산업혁명시대의 교회의 역할과 방향,” 「신학과실천」, 58호(2018년 2월), 606-608쪽.
3) 이에 대하여는 아룬 순다라라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공유경제」 (이은주 옮김)(서울: 교보문고, 2018)를 볼 것.
4) 로버트 퍼트넘,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안청시 외 옮김)(서울: 박영사, 2000), 281쪽.
5) 퍼트넘은 「나홀로 볼링(Bowling Alone)」이라는 책에서 미국에서 볼링리그의 감소가 자발적 시민 결사체를 통한 공동체의 참여가 급감하고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볼링장에서 맥주와 피자를 들면서 사회적 교류를 하고 공동체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자기만의 여가를 즐기려는 나홀로 볼링족만 북적대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사회 자본의 감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Robert D. Putnam,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New York: Simon & Schuster, 2000), 4장을 볼 것.
6) 로버트 퍼트넘, 윗글, 19장.
7)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박중서 옮김)(서울: 청미래, 2011), 23쪽.
8) 목회데이터연구소, 「넘버즈」, 66호(2020년 10월 9일).
9) 이에 대하여는 김은혜, “언택트 시대의 관계적 목회 가능성,” 포스트코로나와 목회연구학회, 「비대면 시대의 ‘새로운’ 교회를 상상하다」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0)을 볼 것.
10) 교회 소그룹의 사회학적 의미에 대하여는, 정재영, 「소그룹의 사회학」 (서울: 2010, 한들)을 볼 것.
11) Robert Wuthnow, Christianity and Civil Society: The Contemporary Debate(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6), 39쪽.
12) 이에 대하여는 정재영, 「지역과 함께 살아나는 교회」 (서울: SFC 출판부, 근간)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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