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세계: 변화의 갈림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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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세계: 변화의 갈림길들
  • 김선욱 교수
  • 승인 2020.06.2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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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5) 포스트 코로나19 연구프로젝트 제1차 발표회 기조발제
※ 김선욱 교수는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이행기 정의, 용서, 자유, 판단, 그리고 정치와 종교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버펄로대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윤리학, 정치철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숭실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및 인문과학연구소장, 한국아렌트학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 『정치와 진리』(2001), 『한나 아렌트의 정치판단이론』(2003), 『아모르 문디에서 레스 푸블리카로』(2015), 『한나 아렌트의 생각』(2017) 등 다수가 있습니다.
※ 김선욱 교수는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이행기 정의, 용서, 자유, 판단, 그리고 정치와 종교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버펄로대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윤리학, 정치철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숭실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및 인문과학연구소장, 한국아렌트학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 『정치와 진리』(2001), 『한나 아렌트의 정치판단이론』(2003), 『아모르 문디에서 레스 푸블리카로』(2015), 『한나 아렌트의 생각』(2017) 등 다수가 있습니다.

1. 들어가는 말: 생명 원리들의 각축 시대 

인간적 삶은 자유의 원리와 생명의 원리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에 따르면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은 생명의 원리에 따라 삶을 영위해갈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인격적 주체로서 인간은 자유의 원리를 따라 살아감으로써 인간적인 삶을 영위해 가는 존재이다. 슬라보이 지젝(Slavoj Zizeck)의 “지금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문제는 모두 정치적이다.”라는 말은 지금 우리가 생존을 위해 많은 것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따르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가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그 필연의 벽을 넘어서 스스로 만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통찰을 담고 있다. 더욱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 위기의 상황에서 갖게 되는 과제는 우리 앞에 놓인 여러 갈림길들에서 어떤 선택과 행위를 추구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한 문제들을 짚어보는 것이 이 발표의 목적이다.

코로나19(Covid19)는 삶과 죽음의 길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나눈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려면 이 상황에 과학적으로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는 점에서 코로나19는 철저히 생명의 원리를 따른다. 생명의 원리에는 필연성이 작용하고 강제가 뒤따른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이 원리를 반드시 따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급작스런 대유행으로 인해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경제활동이 순간 중지되었다. 그런데 지난 5월에 들어서서 확진자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자 우리 정부는 긴급지원금을 지급하고 ‘생활 방역 체제’로 전환 시행하면서 위축된 경제활동을 보다 넓게 허용하였다. 코로나19의 완전 종식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다시 경제 및 사회적 활동을 시작한 것은 경제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제의 원리도 생명의 원리에 따라 작용한다. 여기에도 필연과 강제가 작용한다. 경제활동이 완전히 멈추어 서면 코로나19 사태와 똑 같은 생명의 위기가 오기 때문에, “병사냐, 아사냐”라는 말이 요즈음 등장하여 경제활동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기독교도 생명의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예수님은 새로운 생명의 원리를 이 세상에 열어 놓으셨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세계를 살아가는 새로운 원리를 알게 하셨다. 이 원리는 이 세상에 사랑과 공의가 넘치게 하고 정치에 공공성을 사회에 나눔과 형제애가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원리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는 질병관리본부에 생명 담론을 내 주고, 자본주의의 물질주의에 압도되어버린 가운데, 마땅히 가동시켜야 할 생명의 생명성을 올바로 이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는지는 점검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방역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주일마다 예배 모임을 갖고 있는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그 필요성을 인정받기 보다는 우려의 눈총을 받고 있는 현실의 함의는 분명하다고 보인다.

우리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세계의 변화의 모습을 살펴보려 한다. 이는 지적 호기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이는 변화의 방향을 읽으면서 우리가 어떤 갈림길 앞에 서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에 따라 다중적 정체성을 갖는다. 인간의 영성은 개인의 정체성의 다면성을 꿰는 중심축을 말한다. 이런 영성을 살피는 교회는 코로나19에 대해 대증적 접근이 아니라 본질적 대응을 통해서만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코로나19의 시대

가. 시작과 경과

코로나19에 대한 최초의 발견은 2019년 12월 30일에 중국 우한시 중심병원 소속 안과의사 리원량(李文亮)에 의해서였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2003년에 대유행을 했던 사스(SARS)와 흡사한 코로나바이러스 양성반응을 확인하고, 이 사실을 우한대 의대 동료들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확진자가 총 7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널리 전파하려다가 오히려 중국 당국의 억압을 받았고, 환자 진료과정에서 그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2020년 2월 7일에 사망하였다. 이 바이러스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확인된 것은 2020년 1월 7일이었으며, 2월 12일에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Covid-19로 명명되었다.

2020년 6월 19일 기준으로 전 세계의 확진자 수는 846만여 명이었고 사망자 수는 45만여 명이었으며 치명률은 5.3%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확진자 12,306명에 사망자 280명으로 치명률 2.3%였다. 인구가 3.3억 명 가까이 되는 미국의 경우는 확진자 223만여 명, 사망자 12만여 명으로 치명률 5.3%였다. 인구가 6,683만여 명인 영국은 확진자 30만여 명, 사망자 4.2만여 명으로 치명률 10.5%였고, 인구가 6,571만여 명인 프랑스는 확진자 15만여 명, 사망자 3만 명 정도로 치명률 18.6%였다. 최근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브라질의 경우는 인구가 2억여 명인 브라질은 확진자 1백만여 명, 사망자 4.7만 명 정도로 치명률 4.7%이었다.

6월 18일 하루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신규 확진자 49명, 신규 사망자 0명이 증가하였고, 영국에서는 신규 확진자 1,115명, 신규 사망자 184명이 증가하였으며, 미국에서는 신규 확진자 27,921명, 신규 사망자 722명이 증가했고, 브라질에서는 신규 확진자 34,918명, 신규 사망자 1,282명이 증가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를 중지하고 생활방역이 시작됨과 동시에 신규 확진자 수가 매일 수십 명씩 증가하였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감염환자의 수가 다시 증가하여 이미 2차 대유행(pandemic)에 들어섰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있다.(Worldmeter 기준)

나. 출구

코로나바이러스는 과거부터 있던 것이었으나 야생 동물과 함께했던 것이 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감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바이러스로 인한 병을 인수공통합병증(人獸共通合倂症)이라고 부른다. 코로나19는 박쥐에게서 서식하는 것으로 중간숙주로 천산갑을 통해 인간에게 전파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인 사스 바이러스가 2003년 이후에 더 이상 유행하지 않았는데 이는 중간숙주가 사향고양이로 확인되면서 중국남부에서 사향고양이 식용 금지되었고, 다행히 사스 바이러스도 소멸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인 메르스 바이러스는 중동지역에서 풍토병(endemic)으로 자리를 잡았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자리를 잡고 변이를 통해 계절병으로 유행할 경우에는 인간이 중간숙주가 되는 것이므로, 원래의 야생동물 중간숙주를 발견해서 인간에게로 넘어오는 과정을 차단하더라도 의미가 없다고 한다.

코로나19는 비말을 통해 감염되며, 70% 정도는 경증에 머무르지만 20% 정도는 중증 폐렴으로 나타난다. 사스는 증상이 심해지면서 전염력이 높아지나, 코로나19는 중상이 심해지면 전염력이 오히려 낮아진다. 무증상감염의 전염력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전염력은 사스에 비해 높고 인플루엔자보다는 낮으며 그 통제는 아주 어렵다고 정리할 수 있다. 최준용 교수는 효과적인 치료제나 백신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렘데시비르가 회복기간을 단축시켰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보였으나 치명률을 낮추거나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2~30대 치명률이 낮고 연령이 증가할수록 치명률이 높으며, 당뇨 고혈압 폐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더욱 높지만 그런 차이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한다. 병증의 경중의 차이가 유전에 기초한 것인지의 여부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흑인의 감염율과 사망률이 높아서 인종과 감염의 상관관계에 대한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물학적 구분에 따른 취약성은 확인된 바가 없으며, 그 원인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더 큰 타격이 갈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원인에서 찾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천지, 구로 콜센터, 쿠팡 물류센터 등의 취약 지역이 감염 클러스터로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는 흑인이 그 주된 대상이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복제, 변이 등을 통해 다양성이 발생하여, 가지를 치듯 유전형이 A형, B형 등으로 다양화된다. 유전형의 임상 특징, 예후 등의 차이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치료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증식할 때 관여하는 효소, 부착할 때 관여하는 수용체 등을 공략하여 바이러스가 인체에서 증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바이러스의 다양성의 기초가 되는 염기서열과 직접 관련된 치료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백신이 언제 나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곧 나온다는 의견을 과학자들은 지나친 낙관론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인 백신의 개발은 통상 20~30년이 걸리는데,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집중하고 있어서 보수적 관점에서 볼 때는 안전한 백신 개발에 3년 정도 더 걸릴 것으로 본다고 한다. 우리나라 방역당국에서는 내년 하반기 정도에 나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으로부터의 출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부분은 ‘동거의 불가피’로 답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코로나19 발병 이후 코로나와 함께 하는 시대”라는 의미로 받아 들어야 할 것 같다.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의 세계를 상정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3. 코로나19 시대의 갈림길들 

가. 경제의 압박: 어떤 균형을 만들 것인가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각국이 봉쇄로 들어가면서 국가 간의 급격한 단절이 발생했다. 이는 경제적으로 볼 때 세계적 유통망의 단절을 의미했다. 방역과 치료를 위한 물류를 제외한 모든 국제 여행은 중지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발전해 온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전 지구적인 경제망과 유통망의 확립을 의미한다면, 그 유통망은 순식간에 중지되고 이와 동시에 경제마비 현상이 전 세계를 덮친 것이다.

지난 4월에 나온 Boston Consulting Group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자산규모가 2019년 226조 달러에서 최대 16조 달러(1경 9400조원)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2007년 금융위기 때에는 10조 달러가 감소했었다. 현재의 위기에서 급격한 회복을 의미하는 V자형 회복이 이루어질 경우 6조 달러, 보다 완만한 U자형 회복의 경우 11조 달러, 훨씬 완만한 나이키형 회복의 경우 16조 달러의 감소가 예상된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는 많은 학자들은 대공황 이상의 L자형 장기침체도 가능하다고 한다.

6월 현재, 정체되었던 세계물류가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말 미국 e-Bay에 주문한 물품이 뉴욕인근에서 발송되어 6월초에 도착했다거나, 지난 3월에 영국에 주문한 물품이 6월 2째 주에 발송되었다거나 하는 말이 들려오고 있다. 코로나19와 직결된 물품들만이 유통되던 때는 지나고 물류 정체현상이 다시 회복되는 듯 하며, 유럽에서는 관광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는 여전히 코로나19로 타격을 받고 있는 중이고, 2차 유행을 말하면서도 경제 활동을 재개하려는 것은 경제도 곧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병사냐, 아사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많은 국가가 경재 재개를 추구하고 있고, 또 전 세계 곳곳의 시민들이 생업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영국의 예술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공연의 허가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총을 들고 주청사에 진입하여 생업재개 허용을 요청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4월 중순. 백악관에서 3단계 경제재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여기에 준해 각 주정부가 경제 재개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 14일동안 확진자수가 감소하면 1단계 경제 재개를 시작할 수 있고, 영화관 등 대규모 시설과 체육관 운영을 사회적 거리두기 조건으로 운영 가능하게 된다. (2) 뒤이어 다시 14일 동안 확진자수가 감소하면 2단계 경제 재개가 가능하며, 공공장소 모임인원 제한은 10명에서 50명으로 완화되고 불필요한 여행과 출장에 대한 제한이 해제되며, 학교 운영이 가능하며, 술집은 제한된 수용인원으로 입석으로만 운영할 수 있다. (3) 뒤이어 다시 14일 동안 확진자수가 감소하면 3단계 경제 재개가 가능하며, 이때 재택근무에서 현장근무로 전환이 가능해 진다. 4월말과 5월 중순 사이에 1단계로 재개. 5월중에는 상당히 회복되는 듯 했으나, 6월초 미국은 실업률이 여전히 높고 회복이 더딘 상태에 있으며, 6월 중순 현재 2,910만 명이 실업수당을 받는 중이다. 5월 한 달 동안 미국 일자리 증가는 250만 개였으나, 3~4월에 사라진 2500만 개에서 1/10만 회복된 것에 불과한 수준이다. 6월 16일 CNN 방송에 따르면, 미국에서 코로나가 다시 증가한 상황에서 재개를 계속하자는 주장과 다시 봉쇄를 하자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한다. 결국 결정은 주정부에서 할 것이다.

미국의 CNBC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3월에서 6월 사이의 교통수단에서에 있어서 개인 운전은 상당히 회복하고 있고 걷기도 상당히 회복했으나,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몰리는 곳을 피하고 상황 가운데 있다. 미국에서의 비행기 여행은 4월에 거의 –100% 에 근접했다가 미세하게 회복하는 정도이다. 6월에 들어와서는 주택거래가 코로나19 시작 시점까지 회복되었는데, 어떤 양상인지에 대해서는 통계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은 1분기에 6천억 순손실을 기록했다. 현재는 대부분의 국제항공 편당 40~50명에 불과하고, 현대차그룹이 가까이 있는 미국 아틀란타 노선만 만석이라고 한다. 항공산업 재편은 곧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이 되며 10월에는 본격적인 재편이 이루어질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항공산업의 국유화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제가 1분기의 경우 3.8% 위축되었는데, 이는 연율 기준으로 14.4% 위축한 것이며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이 4.8% 위축한 것 보다 상당히 나쁜 수치에 해당한다. 2분기에는 15%까지 역성장 할 수 있다고 한다.

경제는 필요하지만, 금융이 만들어 놓은 거품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금융은 자본의 활용을 통해 자본 없이도 사업이 기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모든 사업이 자본에 의존하게 만드는 경제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모든 경제활동인구를 금융적 어려움에 빠지게 만든다. 금융에 개입된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극복이 되면서 인간의 기본적 삶이 가능한 경제가 가능할 수 있을지의 갈림길에서 새롭게 고민할 여지를 코로나19는 열어 놓았다.

나. 유발 하라리: 통제와 자유가 진짜 선택지인가

지난 3월말 Financial Times에 게재한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라는 글에서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 시대에 우리는 두 가지의 선택을 직면하게 된다고 하였다. 첫째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 역량의 강화 사이의 선택이며, 둘째는 민족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의 선택이다.

하라리는 중국의 사례를 들면서, 스마트폰 감시, 얼굴 인식 카메라, 건강상태 확인 및 보고의 의무화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기술적 통제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이스라엘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의회가 이런 방법의 승인을 거부하자 총리는 긴급명령으로 강제했다고 한다. 그는 미래의 가상적 독재국가로 북한을 들면서 개인정보가 어떻게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인민의 통제를 위해 활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였다.

하지만 하라리는 개인정보보호와 건강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정부의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감시체제를 구축하고, 공권력과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가능한 상황을 만들며, 시민이 정부의 결정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19의 확산에 대한 믿을만한 통계에 접근할 수 있고 분석할 수 있다면 정부가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국은 이런 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수준에 있다고 하라리는 말한다.

하라리의 관점에 부합하는 듯, 독일의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종교의 자유보다 생명의 보호가 우선이라는 판결을 통해 종교 행사 제한을 인정하였고, 프랑스의 경우는 한국에 대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이후에 정부가 앞장서서 감염증 환자 추적 앱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라리가 우리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각국의 대처를 판단하는 두 기준으로 통제냐 자유냐를 제시한 점에서였다. 그러나 이 둘은 진정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이 하라리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말하는 자유가 어떤 자유인가를 묻게 된다.

흔히 ‘자유’라는 말로서 우리는 내 의사에 따라 결정하는 자기 결정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내 몸에 대해 또 내가 가진 재력에 대해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유 개념은 최근에 발달한 신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관점에서의 자유일 뿐이다. 그 역사는 18세기 영국에서 시작하여 20세기 중반에 미국에서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정도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자유란 우리가 공동체를 함께 수립하고 그 공동체 내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기준들을 함께 정하고 그 약속의 기반에서 공동체를 함께 가꾸어가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자유 개념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로부터 내려와 미국의 건국기의 시대정신을 주도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자유인가”를 물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나 미국 및 브라질 등지의 시민들이 개인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 자유개념에 사로잡혀 자유와 자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결정권으로서의 자유 개념에만 함몰되어 방역의 문제를 크게 그르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자유에 대해 어떤 이해를 갖는가가 개인과 사회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다. 개인정보: 국가의 사용과 시민적 통제

개인정보를 다루는 데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관점이 있다. 첫째, 비밀성의 관점으로, 일단 개인 정보가 공개되면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며 사적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따라서 비밀은 정보의 공개를 막는 데 달려 있다고 본다. 둘째, 접근성의 관점으로, 개인 정보가 전파되고 이용되는 방식에 따라 침해 여부가 판단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따라서 프라이버시의 보호는 정보전파 및 이용의 방식을 제어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 같은 제어를 위해 저작권법이나 부당이용처벌법 등이 활용된다.

솔로브(Daniel J. Solove)는 접근성의 관점이 정보 프라이버시를 다루는 더 적절한 관점이라고 본다. 우리의 개인정보는 이미 정부와 의료기관, 보험회사 등에서 관리하고 있다. 법은 이런 정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호한다. 우리는 우리의 정보들이 정부나 다른 기관에 의해 사용된다고 해도 그것이 공익적 목적을 위해서일 것이라고 대체로 믿는다. 이런 정보와 관련하여 사적 정보는 공적 목적과 만날 수 있다.

예컨대 코로나19가 불러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의료정보들이 필수 데이터로 기여를 한다. 우리는 공공성,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국가와 정부 및 여러 기관들이 개인 정보를 이용한다는 조건 하에, 우리의 정보 프라이버시 활용에 동의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무엇이 공공의 이익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요청된다. 국가와 정부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공익을 위해서라고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의식할 때 문제는 정치적이 된다. 정보 프라이버시의 상황에서 개인 정보는 국가와 민주주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연관된다.

모니오디스(Christina P. Moniodis)는 데이터 접근권이 정부의 힘을 강화시켜 결국 해당 정보와 관련된 개인의 힘은 현저히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모니오디스의 주장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가 인용하는 사례는 세금기록, 투표권, 정부가 제공하는 여러 자격증 등인데, 이런 정보들이 종합되면 그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인격이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개인의 인격이 집적된 정보로 환원이 되는 상황에서는 개인은 정보를 쥐고 있는 기관과 대등한 관계를 맺기 어려우며, 권력에 있어서도 비대칭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모니오디스는 “개인 정보에 대한 정부의 폭넓은 접근은 시민과 국가 사이의 민주주의에 있어서 미묘한 권력 균형을 심각하게 흔들어놓을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개인정보 보호는 국가와 개인 사이에 민주주의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결정적이다.

모니오디스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경우 정보의 이러한 집적과 활용은 시민과 국가 사이에 적절한 민주적 균형이 이루어지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민주적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국과 다르다. 한국의 방역은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 등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한 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보를 전유한 국가가 민주적이지 못한 정권의 손에 들어갔을 때 개인의 삶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네덜란드는 20세기 초 복지의 효율화를 위해 다양한 개인정보를 포함한 인구등록부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나치 독일의 손에 들어가 유대인 추방과 학살을 위한 데이터로 활용이 되었다. 네덜란드의 유대인 강제추방 및 학살 비율이 유럽에서 최고에 달했다. 이는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가의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중순에 마이클 샌델 교수와 함께 전 세계 10여 개국의 청년 및 학자들과 화상대화를 가진 적이 있었다. 당시에만 해도 한국에서 신천지 확진자들에 대해 시행하던 개인정보 조사와 활용에 대해 유럽과 브라질의 여러 나라의 학자들은 비판적 코멘트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주목했던 것은 브라질의 여성 참가자였는데, 권위주의적인 브라질의 정부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한국과 같은 데이터 활용을 정부가 시도하려 한다면 민주주의는 크게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에 갖혀 있게 될 때 발생할 가정폭력에 대한 심각한 우려도 그녀는 함께 제기했었다.) 하란 클리블런드(Harlan Cleveland)는 “정부는 정보다.”라고 간단히 정리했다. 정부가 민주주의의 기조를 지키는 사회가 되도록 우리는 어떤 시민적 자각을 추구할 것인지 그 갈림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라. 하라리: 국민국가적 단절인가 국제적 연대인가

하라리는 또한 코로나19 자체와 그로 인한 경제위기는 세계적인 문제이며, 세계적인 협력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으며, 글로벌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하라리의 바램과는 달리,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각국의 모습을 보면 각국도생(各國圖生)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글로벌 연대보다는 개별 국민국가 중심으로 대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EU의 경우도 EU 설립의 정신을 훼손하면서까지 국경봉쇄를 진행되었다. 자국민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개별 정부의 힘이 강화되면서 각국의 민주주의의 수준이 저하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다. 특히 민주화가 덜 이루어진 국가들에서는 감시체제가 강화되고 억압이 증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헝가리 정부는 코로나19가 악화되는 시점에 총리에게 국가비상사태를 무기한 연장할 수 있는 권한과 입법권을 부여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정부의 방역 정책을 방해하고 가짜뉴스 유포 시 5년 형을 처하는 법도 만들었다. 그러나 감염자가 줄어들면서 헝가리 의회는 코로나19 방지법 폐기안을 의결하여 원상회복을 이루어냈다.

오래 전에는 여행은 외교관이나 탐험가, 혹은 돈 많은 상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다른 인종과 문화를 개인들이 쉽게 접촉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등장한 이후 항공사가 멈추어 섰고 이제 조금씩 여행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우선 출장여행은 보다 자유롭게 되겠지만, 관광목적의 해외여행은 상당기간동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질적 문화들을 개인이 직접 경험하고, 그 차이가 결국 인류(humanity)라는 공통성에 근거해 볼 때에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은 중요한 것이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NGO를 만들어 분쟁지역에 직접 몸으로 참여하여 평화를 위해 노력하거나, 또는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종과 종교에 대한 편견을 개인의 차원에서도 맞서 싸우고 주변에 그런 인식을 공유하는 활동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개인의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상황은 세계의 분쟁에 대해서도 다른 태도를 유발할 수 있다. 타 인종이나 문화에 대한 이해를 직접 경험에 의존할 수 없고 타인의 관점에 일차 걸러진 상태로 접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 것이다. 세상에 대한 의견과 편견을 대기업과 정부, 언론을 통해서 전달받고 내 것으로 할 가능성이 더욱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시민들의 주체적인 자각에 따른 판단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직접 만남이 아니라 타인의 관점과 데이터를 통해서만 국제정치가 작동될 경우 비인간화의 현상도 가능하게 된다.

미국은 현재 코로나19 최대 감염자와 사망자 수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코로나와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 침체와 인종갈등이 겹쳐 진행되어 미국이 지닌 대내외적 리더십에 중대한 도전을 맞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America First 정책은 기존 동맹관계와 다자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스스로조차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자국중심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차별과 배제의 강화, 인종주의적 관점의 고수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우경화를 지속화했다.

정치의 우경화는 난민문제 등을 통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이미 등장했던 것인데, 코로나19는 이런 경향을 정부차원에서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빈부격차의 문제를 글로벌하게 심화시키기는 했어도 또한 글로벌하게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고 인권에 기반을 둔 국제적 연대를 확산시키기도 했다. 코로나19에 대해 민족주의적 정부 중심의 대처는 이런 긍정적 의미의 국제 연대를 약화시켰고, 정부의 역할을 강화시키면서, 기존의 정부가 가진 우파적 성격은 더욱 강화될 좋은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각국이 코로나19로 겪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서로 상생을 위한 협력적 여건이 강화되어야 하지만, 조지 프로이드의 죽음 이후에 전개되는 미국의 갈등 양상이나, 중국과 인도 국경에서 발생한 물리적 폭력 등의 모습은 이런 관점에서 무척 실망스러운 일이다. 결국 국가들 간의 각자도생이냐 연대냐 라는 선택지는 폭력이나 상생이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이 분명하다. 이 또한 우리 앞에 갈림길로 놓여 있는 것이다.

마.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선택?

장기화되어온 미중 무역 갈등의 핵심은 반도체 및 5G 통신장비 등 첨단 기술에 있다. 이 영역에서 미국이 그동안 누려온 견고한 우위에 대해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관세부과, 수출입 제한, 해외투자 규제, 지적재산권 논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지하려는 시도가 미중 갈등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기치로 반도체, 로보틱스, 인공지능, 우주항공, 전기 차, 제약 등 첨단 기술 10대 분야를 선정해 이를 대폭 지원하면서 첨단 기술국가로의 굴기를 추진해 왔다. 현재 반도체, 5G, 인공지능 부문에서 미국이 여전히 핵심 기술에 있어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방대한 인구 및 자원, 경제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혁신적인 기업가군의 도전, 그리고 적극적인 정부 정책 때문에 미래 전망이 밝은 상태였다. 게다가 중국이 인공지능, 고성능컴퓨터 등 몇몇 분야에서는 이미 질적으로 미국의 기술 수준을 능가하는 혁신 역량을 갖춘 국가라는 인정을 하게 되면서 미국이 이를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

미국은 중국 정부의 지원에 대해 불공정 지원이라 비판하고, 기술이전 및 해킹과 지적재산권 등에 관해 비판하였고, 미국 기업의 전산망에 침투해 기술 및 영업 비밀을 빼돌리는 해커들을 중국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2019년에는 국가안보와 관련되거나 ‘중국제조 2025’ 관련 산업에 대한 중국 기업의 미국 내 직접투자를 엄격하게 제한했으며, 자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범위를 넓혀줄 것을 요구했고, 2018년 초부터는 중국산 통신장비 및 첨단 기술 품목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의 중국내 판매를 금지하였다. 통신장비 및 휴대폰의 주요 생산자 지위를 유지해온 화웨이 관련 기업 114개사에 대해 거래 제한 조치를 시행하였으며,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미국 기업들의 국내 복귀, 즉 리쇼어링을 압박하였다. 

이런 규제와 상호 견제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미국과 중국은 각각 상대국과의 수입 수출이 감소하였다. 하지만 전체 수출입 규모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그 완충지대에 한국 멕시코 캐나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포진한 상태이다. 즉 미국과 중국의 무역과 생산의 분리는 완벽하게 양분되는 형태라기보다는 완충지대를 두고 겹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자유무역질서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미국과 중국이었는데, 이들이 경제적 및 정치적인 이유로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것(디커플링)은 세계 경제와 많은 국가들에게 엄청난 비용과 선택을 요구하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 중간에서 압박을 받는 가운데 있다. 

미중 사이의 경제적 패권 전쟁은 냉전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냉전은 편 가르기를 요구하는데,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국가들은 미중 간에 한편에 서도록 강요를 받는 처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나라는 중간에 서서 매개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가 문제인데, 그런 중간역할은 양쪽의 인정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 문제는 코로나19가 없었어도 10년 후에는 왔을 문제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선택의 기회가 서둘러 온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중의 이런 전환은 양국이 세계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약화시키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에 대한 효과적 대응의 실패 및 국내의 인종차별, 이민자 차별 등에 대한 적절한 대응의 실패로 인해, 중국은 방역과 관련하여 민주주의적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지나친 통제와 억압의 모습을 보임으로 인해 모두 세계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큰 의문을 야기한 상태에 있다. 급기야 <이코노미스트>는 6월 18일자로 “글로벌 리더십이 사라졌다(Global Leadership is missing in action)”는 기사를 내며, 과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서 미국과 영국의 지도자들이 전후의 평화를 위한 고민을 나누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그런 리더십을 어디서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럽이 미국의 불활성 상황에서 소집능력(convening power)를 발휘하고 있지만, 정작 내부적으로는 연대와 공조를 보여주지 못하고, EU 회원국간 자유로운 인적, 물적 이동을 보장한 셍겐조약(Shengen Acquis)의 효력이 정지되기도 한 바 선진 강대국들의 이런 모습은 사실상 감염병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연대의 관점에서 큰 실망을 주는 것이다.

이런 국제 환경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다 주체적으로 움직일 것인지, 사대(事大)적 관점에 준해 우리의 위치의 안정화를 추구할지가 우리 앞에 놓인 갈림길일 수 있다. K-방역의 성공을 기점으로 하나의 중견국가로서 국제적 지도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기대에 찬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해외로부터의 감염병 유입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경폐쇄를 하지 않았고, 국내에서도 이동을 제한하지 않고 개방적 기조를 유지했으며, 개인정보의 사용과 코로나19 정보의 공개 및 공유, 그리고 효과적인 한국형 방역모델 개발 등을 통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송태은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 가운데서 우리나라 정부가 단순히 K-방역 홍보에 머무르지 않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한국이 지향해야 할 중견국 외교와 한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자리매김에 더 관심을 두고 움직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 내에서 2차 유행이 이루어질 경우 K-방역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예상을 하면서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시키면서 경제회복을 진척”시키는 ‘한국형 경제회복 모델’을 구축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이런 노력은 다자주의적 환경을 만들고 중견국으로서 다양한 국제적 연대를 형성해 낼 때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감염병 대처를 위한 G20 화상 정상회의를 제안하고 실제로 3월 26일에 개최가 성사되었으며, 5월 12일에 ‘유엔 보건안보 우호국 그룹’의 출범화상회의를 우리 주도로 개최하였던 것은 성공적 외교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방향성의 활동이 가능한 것은 우리나라 정부가 배타적이고 협소한 국익보다는 보편주의에 입각한 장기적 관점에서의 이익을 중심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민으로서 교인인 우리가 국제적, 국내적 정치의 방향성에 관련하여 어떤 갈림길에 서 있는지는 분명하다. 공공성의 의미가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우리에게 놓여 있다. 

바. 환경의 강제와 탐욕

스웨덴의 환경운동가인 올해 17세의 그레타 툰베리는 비행기가 배출하는 탄소의 양이 엄청나기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이라고 하면서 대신 배나 열차를 이용하여야 한다는 운동을 벌였다. 코로나19는 그녀의 주장이 단박에 실현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지금 맑은 하늘과 깨끗한 냇물을 보고, 맑아진 공기를 숨 쉬고 있다. 
1992년에 발표된 한영애의 노래 <조율>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들어 있다.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 검게 바다로 가고
드높았던 파란하늘 뿌옇게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숨어계신 하나님(Deus absconditus)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익숙한 말이다. 한영애씨의 노래는 비록 환경을 비유로 사회적 불의를 비판한 노래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겐 글자 그대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이 세계의 환경을 ‘조율’해 주신 것 같다. 우리는 코로나19가 베네치아의 운하를 맑게 만들어 돌고래가 돌아오게 했고, 인도의 뉴델리에서는 거기서 200km 떨어진 히말라야가 보인다고 한다. 멕시코 아카풀코 해변은 1950년대까지 명물로 유명했던 형광 플랑크톤이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사라졌는데 60년 만에 이들이 돌아와 밤바다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한다. 이런 회복된 환경은 글로벌 경제가 재개되면 다시 사라질 환경일 것이다. 

지난 1월 23일 미국의 핵과학자회(BAS)는 인류 종말을 경고하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 바늘이 11시 58분에서 11시 58분 20초로 종말에 더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이 시계는 원래 핵무기를 사용한 인류 멸망의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발표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진 가뭄, 폭염, 대형 산불, 홍수 등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2018년 남아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는 100년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급수 중단을 실시하고 정부는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다. 동남아시아는 지난 30년간 가뭄으로 6,60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2018년에 일본에서는 섭씨 41.1도의 폭염이, 미국 LA에서는 섭씨 42.2도의 폭염이 찾아왔다. 2019년에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6월에 최고 기온을 연일 경신하면서 많은 사망자가 생겼다. 호주에서도 섭씨 45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기록되었고, 이는 대형 산불화재와 무관하지 않다. 호주의 대형 산불은 호주 전체 삼림의 약 12%를 태웠는데, 이는 남한 면적보다 11만㎢ 넓은 면적이다. 대형 산불 이후 호주는 400㎜의 비가 쏟아져 이제는 홍수를 걱정하고 있다. 시드니 남부지역은 누적 강수량 698㎜에 달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인 폭염의 원인은 찬 공기와 더운 공기를 섞어주어 지구의 온도를 일정수준으로 유지시켜주는 제트기류의 약화에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를 위한 노력으로 온실가스 감축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 등을 위해 나라마다 다른 수준의 노력을 보인다.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이행지수’를 적용하는 60개 국가 가운데 2018년에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58위, 2019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이란에 이어 57위를 했다.

코로나19 이후로 EU의 그린 딜 책임자인 프란스 팀머만즈(Frans Timmermans)는 그린과 디지털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나라의 KDI에서도 제레미 리프킨이 말한 ‘그린 뉴딜’에 집중해야 한다고 정책적 제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제안한 한국판 뉴딜에 포함된 그린 뉴딜이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 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생태계에 대한 각성은 신학적으로도 중요하다. 한국 교회는 다양한 형태의 생명살리기운동과 생태운동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오늘의 코로나19 사태는 그런 노력이 더욱 근원적이고 철저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 앞에는 이런 환경 문제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반성을 하고 실천으로 옮길 것인지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 

사. 4차 산업혁명: 필연의 길과 소외

코로나19는 사회적으로는 언택트(uncontact) 문화를 가속시키고, 산업적으로는 감염의 위험을 낮추기 위한 로봇 및 드론의 사용이 확산될 것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쇼핑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로 또 주요 의사결정이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의 다양한 활용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초고속정보인터넷망을 갖추고 있고 온라인 유통구조와 배송 시스템도 고도화되어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과학적 기초나 실질적인 정책 등에 있어서는 뒤쳐져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사회를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최적의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대학의 경우에도 교수들이 대부분 미루어왔던 온라인 강의에의 참여를 조금의 저항도 없이 받아 들여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아 갔다.

4차 산업혁명에로의 국가 기술정책의 방향 전환이 필요함과 더불어,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는 디지털 리터러시 및 변화된 노동 환경으로 인한 새로운 불평등의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일으키는 혁신은 고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여버리는 약탈적 형태의 혁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소득 문제나 전국민 고용보험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와 더불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이에 대한 깊은 숙의가 요청된다. 부실한 고용의 문제를 다루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우리의 취약계층은 방역 및 생존의 2중고를 겪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울리히 벡의 말처럼, 위험사회의 불가피한 특징 중 하나가 ‘위험의 불평등’이다. 불평등한 위험의 상황은 가난한 국가의 시민들과, 소외계층에 속한 이들에게 더 큰 위험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그 변화에 잘 적응하는 자들을 성공한 자로 만들고 적응이 늦거나 적응을 못하는 자는 도태하게 만든다. 따라서 변화의 시대에는 능력주의가 주도하는 사회가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능력에 따른 빈부격차가 더욱 심각하게 되고, 취약 계층에 속한 이들은 더욱 심각한 지경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한편으로는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염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영업자들의 파산과 일자리 감소를 염려한다. 이런 격차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능력주의의 타당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가 어떤 가치에 따라 어떤 정책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시민으로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은 개인과 사회가 어떤 관점을 가지도록 교회가 독려하고 설교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연결될 것이다.

 

4. 맺는 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미래학자들은 현재의 변화를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봄으로써 미래에 대해 예측을 시도한다. 그러나 미래의 본질적 특성은 예측불가능성에 있다. 한나 아렌트는 미래에 대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것이 예측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 라디오 방송 대담에서 한 참가자가 가을에 2차 대유행이 온다고 했지만 갑자기 코로나19가 사라져버릴지 어떻게 아는가라고 말했다. 아무도 그렇게 될 것이라 희망하지 못하지만, 미래의 일이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누구나 그 말에 가볍게 동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개연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말이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해 말한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예측과 전망이 시간이 갈수록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서 정리한 현재의 변화의 모습도 가능한 가장 최근의 자료를 찾아야만 했고, 미래 전망도 가장 최근의 논의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했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인의 일상을 멈추어 세워버린 이 시점에 우리는 반드시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부담을 지닌 주장들이었다. “위기가 기회라면, 우리는 이 위기를 그냥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한국 교회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 사회에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면, 그 성찰은 교회로부터 나와야 한다. 한국 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면, 교회가 한국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촉구하지 못하는 바로 그 모습을 성찰해야 한다. 그 외의 여러 일들은 이런 본질적인 것에 비하면 부수적일 뿐이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결국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선(the common good)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젝도 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연대의 확립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근본적인 성찰을 수행하는 기관은 그리 많지 않다. 교회가 져야 할 사회적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성찰을 하는 것이고, 그 성찰의 내용을 사회에 던져 사회로 하여금 성찰케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19는 하나님께서 교회가 한국 사회 안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주신 기회인 것이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하나의 세계가 자발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변화의 기회가 코로나19를 통해 주어진 것이다. 소위 뉴노멀이라는 것도 새로워진 세계에서 갖추어야 할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뉴노멀의 모습이 피해야 할 것은, 본질은 인간의 탐욕과 죄성에 여전히 기반을 둔 채 오직 외적인 양태만 달리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가 조금이라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작은 기도의 힘을 보태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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