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2) 한목협 제22회 전국수련회 및 포스트 코로나19 연구프로젝트 제2차 발표회 주제발제(2)

국가 재난의 중심에 선 교회

최근 국가가 사회적 재난을 경험할 때 한국의 기독교는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생각해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묘하게도 최근 국가의 굵직한 재난이 닥칠 때마다 교회의 모습을 띤 이단 종파의 숨겨진 이야기가 노출되곤 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이름을 내세운 구원파의 교주 유병언 씨가 세월호 선사 청해진의 실소유주로 알려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국정농단 사건 때는 특별검사의 핵심수사 대상 중 하나로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천도교 등을 융합한 영세교를 창시한 고 최태민 씨와의 연관성을 다루기도 했다.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또 다른 이단종파인 신천지 교회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7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여러 기관에서 교회의 소모임을 제한한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규탄하는 성명을 일제히 발표하고, 소모임 금지 조치에 대한 정부의 재고를 요청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김태영 목사는 “지난 5개월 동안 우리 교단을 비롯한 한국교회는 방역당국의 지침을 따라서 코로나19의 예방과 퇴치를 위하여 노력해 왔다”며 “이런 가운데 교회 발 확진자가 간간히 나온다고 해서 모든 교회를 집단 감염지로 몰아가는 행태는 묵과할 수 없다. 국무총리의 발표는 (교회의) 수고를 무시하고 모욕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너무나 아쉽게도 여러 공중매체를 통해 연이어 보도되는 일반 교회의 집단감염 소식과 한국교회의 저항은 적잖은 일반 국민들에게 기독교인들 전체가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들처럼 인식되기 쉽다. 국가 재난이 닥쳤을 때, 정부나 일반 국민들이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들의 위로와 예언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한국 교회는 그런 목회적인 메시지나 예언자적인 경고를 전달할 수 있는 위치를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 가운데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국가 전체를 향해 지니고 있었던 선도적인 역할을 대조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조선 땅에 기독교가 뿌리 내릴 수 있었던 사건도 국가 전체가 전염병과의 대대적인 전쟁을 치루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조선의 백성들에게 가장 무서운 전염병은 콜레라였다고 한다. 1895년 청일전쟁이 끝나고 만주에서 발생한 콜레라가 한양을 덮쳤다. 조선 정부는 가장 먼저 연희전문학교 교장인 올리버 애비슨(Oliver R. Avison) 선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그에게 종교적인 메시지를 요청한 것은 아니었다.

애비슨 박사는 즉시 방역대를 조직하고 곳곳에 전담 진료소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소외된 계층의 민중들도 읽을 수 있도록 쉬운 한글로 포고문을 만들어 사방에 붙이고 멸균을 위한 손씻기 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콜레라 치사율이 거의 90%에 육박했던 당시 조선 민족은 이러한 운동 덕분에 감염자의 60% 이상이 살아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콜레라가 악귀로 인해 생기는 병이라고 부적을 붙이던 조선 민족들에게 단순히 과학적인 방역지식을 전달한 것이 기적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당시 조선 민족은 신분을 가리지 않는 아가페 사랑, 친 가족들도 멀리 했던 전염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선교사들이 보여준 실천이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전염력을 가지고 소망을 가져다 준 기적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한다. 

재난의 중심에 선 교회는 그저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일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평화운동가이자 사진작가인 이시우씨는 우리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라 언급한 적이 있다. 세상의 아픈 곳, 재난의 중심으로 향하는 교회가 많아져야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의사였던 애비슨 선교사처럼 트라우마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소개하면서 재난의 중심에서 한국 교회가 사회적 트라우마에 참여하는 방식을 제안해 보려고 한다.

 

트라우마의 핵심은 ‘암묵기억’ 

2004년에 개봉된 <첫 키스만 50번째>라는 제목의 코미디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1년 전 교통사고 이후 사고 당일로 기억이 멈춰버린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로 등장한다. 남자주인공과 만나 데이트를 즐기고 첫 키스를 하지만, 다음날이면 그가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픽션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이런 증상을 가진 환자는 실지로 존재한다. 이러한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들은 정말 모든 것을 거짓말처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의사 에두아르 클라파레트(Edouard Claparede)는 바로 이러한 여성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의 환자들은 심한 경우 불과 몇 분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당연히 며칠이 지난 후 만나는 환자는 늘 처음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클라파레트는 임상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실험을 실시했다. 늘 환자를 만나면 악수를 하곤 했던 클라파레트는 손에 압정을 숨기고 악수를 시도했다. 압정에 찔려 깜짝 놀라게 된 환자는 즉시 손을 뺐고, 의사는 실수라고 사과했다. 이후 그 환자는 다음 진료시간에 의사가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자, 무의식적으로 악수를 피했다. 이유를 물어도 환자는 왜 그런지는 그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일까?

기억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익숙한 이들은 이러한 현상을 쉽게 이해하곤 한다. 클라파레트 환자의 기억은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그의 기억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기억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외상피해자가 외상 후 기억을 어떻게 불러내는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적극적으로 발전하여 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외현기억(explicit memory)과 암묵기억(implicit memory)에 대한 구별이 등장했다.

외현기억은 사실과 개념으로 이루어진 기억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진술하는 말이나 문자로 이루어진 기억으로 서술기억(declarative memory)이라고도 한다. 데이트를 한 사실과 그 날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클라파레트의 환자는 외현기억이 비정상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생존자를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할 때 심리적인 외상을 경험한 4월 16일에 대한 기억을 묻고, 내담자가 그 기억에 대하여 회상하고 서술할 수 있다면, 이는 외현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암묵기억은 언어적으로 회상하여 그 사건과 사실을 진술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암묵기억은 무의식적인 과정으로 언어와는 무관하게 신체감각에 관련된 기억이다. 운전연습을 처음 할 때, 운전교습강사는 초보자에게 먼저 외현기억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예컨대, 급정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브레이크를 꼭 세 번을 나누어 밟으라고 지시하고, 이를 기억한 운전자는 외현기억에 의거하여 브레이크 밟기를 실시한다. 하지만 실제로 운전이 능숙하게 되는 오랜 과정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일은 따로 인지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자동적인 동작수행으로 발전한다. 이 때 사용되는 기억이 암묵기억이다. 

어느 시점이 되면 시작과 끝맺음에 대한 의식적인 노력 없이(예컨대, 브레이크를 세 번 나누어 밟는 의식적 노력) 자연스럽게 암묵기억이 진행되기에 절차기억 혹은 비서술적 기억이라고도 한다. 누구나 익숙해지면 자동차 운전을 하는데 신체와 감각에 내재된 암묵기억이 작동된다. 그 때가 되면 당연히 초기에 운전교습학원에서 들었던 설명을 외현기억으로 기억하여 운전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암묵기억은 신체의 무의식적인 기억과 깊은 연관이 있다.

둘째로 암묵기억은 신체에 위협을 주는 공포를 경험한 후에 신체에 남아있는 기억이다. 클라파레트의 환자들이 단기 기억상실증 중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암묵기억이다. 신체가 기억하는 압정에 찔린 경험, 즉 트라우마 경험은 그 사건의 전말을 서술적으로 기억해 내는 외현기억으로는 회생되지 않지만, 암묵기억으로는 남아있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보도를 접하는 동안 TV 화면 속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를 보는 순간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고 감각이 둔해지는 경험을 한다는 이들이 많았다. 그 중 오래 전 수해를 입고 가족을 잃은 희생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다시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기도 했다. 

최근 대표적인 사회적 참사라고 불리는 세월호 유가족이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보여주는 여러 아픔의 이야기들은 이미 과거의 상처를 잊은 줄로만 알았던 이 땅의 많은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암묵기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암묵기억의 회상과정은 언어를 매개로 한 기억과는 별개로 자동적인 신체반응과 연관되어 있다. 세월호 생존자들에게 이제 사고는 끝났고, 4월 16일은 지난 과거 일이라고 기억하지 말라고 해도, 설사 외현기억은 지울 수 있지만 암묵기억은 집요하게 그들을 괴롭힐 수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만약 부엌에 들어가기 전부터 머리 속으로는 솥뚜껑을 보고 놀라지 말자고 아무리 스스로 다짐해도 정작 솥뚜껑이 눈앞에 나타나면 온 몸에 힘이 빠지고 경직될 수 있다. 수해로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안전요원이 있는 수심 1미터 남짓 되는 안전한 수영장이라고 해도, 발조차 담글 수 없다. 이유는 이미 과거사건에 대한 외현기억이 아니라, 신체 안에 깊이 각인된 공포에 대한 암묵기억이 피해자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자녀나 부모를 잃은 유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19 대유행 이후 다시 한동안 잊고 살아왔던 죽음의 공포로 빠져 들어간다. 그들을 다시금 과거의 사건으로 몰아가는 것이 바로 일상생활 중 트라우마를 반복하게 하는 암묵기억 때문이다.

 

암묵기억을 위한 교회공동체의 대처 

인간의 암묵기억은 생존과 관련되어 있다. 신체의 위협을 가하는 어떠한 공격이나 죽음을 연상케 하는 공포체험은 신체에 깊이 각인되기 때문이다. 아무런 내용도 기억할 수 없는 클라파레트의 환자가 기억해낸 트라우마에 대한 암묵기억은 무의식중에 환자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기능하도록 준비된 기억이다. 암묵기억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최후의 보호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경험인 죽음에 대처하는 자원 중 하나가 바로 종교다. 실은 종교를 가진 인간은 죽음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심리적인 위기에 종교적인 대처를 하기 마련이다. 종교적 대처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종교심리학자 케네스 팔가먼트(Kenneth Pargament)와 컬티스 브란트(Curtis Brant)는 개인이 종교를 가지고 심리적인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님과 파트너로 함께 일한다는 ‘협력적 대처(collaborative)’, 교회나 성직자로부터 도움을 청구하는 ‘종교적 지원(religious support)’,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는 하나님께 분노하는 ‘분노형(anger at God)’, 그리고 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나를 벌하셨다는 ‘처벌적인 종교 평가(punitive religious appraisal)’ 등으로 나눈다.1)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을 섬기는 목회현장에서 성도들이 경험하는 종교적 대처는 어떤 방식일까?

일차적으로 종교기관인 교회나 목회자에게 도움을 구하여 종교 공동체가 자신의 비극적인 경험을 극복하는 중요한 자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동안 자신이 충실히 종교적인 의무를 다하면서 교회공동체에서 생활해온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참사 가운데 가족을 잃는다면 비극적인 자신의 트라우마를 신앙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교회출석을 중단하였을 수도 있다. 단순하게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은 4가지 종교적 대처 유형이지만, 실은 한 개인의 대처방식은 하나로 특정할 수 없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을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여주인공 신애가 보여주는 급변한 신앙적 태도는 트라우마 피해자가 겪는 다양한 종교적 대처 유형의 얽힌 관계를 잘 보여준다. 남편을 사고로 잃고 남편의 고향에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마저 범죄의 희생자로 살해된 트라우마를 가진 신애가 찾아간 교회 공동체는 그의 심리적 위기에 중요한 대처 자원이 되어 주었다. ‘종교적 지원’으로 시작된 종교적 대처는 머지않아 영화의 말미에 가면 하나님을 대항하여 분노하는 ‘분노형’으로 돌변한다. 트라우마를 다루는 신앙 공동체의 대처 방식은 한 개인의 종교적 대처에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영화의 여주인공 신애가 경험한 교회공동체는 신애가 겪은 트라우마를 안전하게 담아주는 역할을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죽음, 그것도 비극적인 죽음이나 원통한 죽음의 경우 종교를 통한 대처방식은 트라우마 기억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에 강조점을 두고 깊이 성찰해야만 한다. 공동체 안에서 점점 불안해진 밀양의 여주인공 신애의 트라우마 기억은 암묵적으로 발현한다. 교회 공동체와 함께 노상에서 찬양을 부르면서 안전감을 경험했던 신애가 왜 영화의 끝에 가서는 부흥집회에서 예배를 훼방하고 하늘의 신을 향해 전투의식을 고취하게 된 것일까? 그의 분노와 과도한 각성상태는 단순히 신에 대한 반항이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낀 트라우마 피해자는 다시금 꽁꽁 숨겨놓았던 암묵기억이 되살아나고 말았던 것이다.

신애의 트라우마 기억은 외현기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암묵기억은 그에게 절실하게 안전한 공간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가 만난 종교 공동체는 초기에는 그에게 울타리 역할을 하면서 외부환경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하지만, 그가 종교 공동체에서 맨 먼저 들은 이야기는 자신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일지 모른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강조되면 될수록 내가 갚아야 할 죄의 빚도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용서하지 못한 원수에 대한 용서의 빚까지 생겨나면서 신애는 이제 교회나 공동체의 도움을 받는 ‘종교적 지원’의 대처 방식을 넘어 신앙적 명령에 좇기는 불안한 피해자로 전락한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는 일을 감행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서 만난 살인범으로부터 들은 하나님에 대한 간증은 자신의 내면에서 신애와 협력해야 할 하나님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져버리고 살인범을 선택한 느낌이었다. 공포 가운데 처절하게 혼자였던 그에게 잊고 있던 자신의 암묵기억이 떠올랐다. 이후 신애가 속한 교회공동체는 신애의 공포경험에서 비롯된 암묵기억을 이해하지 못했다. 신애에게 아무리 인류를 구원해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라고 해도 그건 무리한 주문이었다. 희생자의 암묵기억을 이해하지 못하면, 희생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 될 수 없다.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일이 그저 외현기억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한다는 것은 예수가 경험한 십자가의 암묵기억과 만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설교를 기억하고 신학적인 해석을 기억하는 외현기억만으로는 예수의 비극적인 삶과 그의 고통과 하나 될 수 없다. 성경공부나 설교에서 배운 예수에 대한 외현기억만 가지고서 용서를 시도했던 신애는 결국 트라우마를 재경험하면서 암묵기억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는 교회란 예배당 건물이 아니라는 말을 수없이 해왔다. 모름지기 교회란 목회적인 실천 속에서 그리스도의 기억을 재현하기 위한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배의 핵심주제는 ‘기억하기’(remembering)가 되어야 한다. 

신학적으로 ‘기억하기’란 사고와 인지 기능이 아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의 희생자들은 자신의 트라우마 기억을 몸과 영혼 깊숙이 숨긴다. 트라우마 피해자를 위한 기독교 공동체의 ‘기억하기’란 몸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이에 공동체는 무엇보다 불안과 위협에 휩싸인 피해자들의 신체와 감정이 평안함을 경험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특히 예수에 대한 기억은 트라우마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리스도의 트라우마에 동참하는 공동체

미국의 여성신학자 플로라 케쉬게간(Flora Keshgegian)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예수 자신에게나 제자들에게 외상에 근거한 고통의 기억이었다고 제안한다.2)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인종학살과 그로 인한 생존자 아르메니아인 3세인 케쉬게간은 십자가 사건 그 자체가 인간에게 힘을 부여하거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십자가를 트라우마 기억으로 인식할 때에만 인간에게 변혁과 힘을 부여하는 사건으로 재인식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를 단지 죽음을 이긴 초영웅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값싼 위안만을 제공하고, 결국 고통당하는 피해자에게는 다시금 억압과 수동적 순종을 강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부활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다.

부활은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한 영웅 예수에 관한 것도 아니고, 악으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우주적인 전쟁을 하는 전능한 신에 관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활은 “계속되고 끝내 이기는 생명의 힘(power of life to persist and to prevail)”에 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때때로 죽음이 더욱 강력해 보일때일지라도 생명을 긍정하는 것이다. 강조해야하는 것은 개인의 생존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의 지속성이며, 이는 공동체 안에 그리고 공동체를 통하여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많은 교회 공동체는 신체에 대한 영적인 해석으로 부활을 미화하고, 신체적 고통을 희생시킨다. 트라우마의 고통을 참고 이긴 자가 얻는 보상으로 부활이 제시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영적 전쟁을 위해 인간 예수를 희생시킨 우주적인 하나님께서 십자가라는 고통을 거쳐 부활 승리한다는 등식을 영혼구원의 신학적인 외현기억으로 제공하여 왔다. 결국 트라우마의 암묵기억이 회상되는 이들에게 교회 공동체는 여전히 불안과 위협이 가중되는 장소로 변모될 수 있다. 

트라우마의 상처와 아픔의 기억을 지닌 이들에게 교회 공동체는 치유와 회복성의 신학을 실천하는 장이자, 예수가 경험한 트라우마에 대한 암묵기억을 함께 회상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부활은 트라우마를 도외시하거나 망각하는 도구가 아니라,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생명을 기억하는 것이다. 케쉬게간은 한마디로 부활은 “생존을 위한 투쟁(the struggle for survival)”이요,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은 “저항과 회복성을 기억하는 것(to remember resistance and resilience)”임을 강조하고 있다. 부활신앙이란 십자가 사건의 암묵기억을 공동체적으로 회복하는 일이다. 기독교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십자가 기억은 기독론의 외현기억을 재현하는 것 뿐 아니라, 예수가 겪은 트라우마의 암묵기억을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관계적으로 재현하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지역 공동체 전체가 겪는 집단적 트라우마에 적절히 대응하고 실천한 교회 공동체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으려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마을이 자랑하던 안산시 단원구의 가족공동체 정신은 큰 위기를 맞았다. 유가족은 이웃의 시선에 부담을 갖기 시작했고, 보상에 대한 민감한 관심은 유가족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기도 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길어지고 유가족의 장외투쟁이 지속되면서, 국민들마저도 차가운 시선으로 유가족의 진의를 의심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단원구에 소재한 명성감리교회는 맨 먼저 힐링센터 0416 ‘쉼과힘’이란 이름의 쉼터를 만들어 마을을 향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을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고, 마을의 누구나 세월호를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다시금 예전의 따뜻한 마을로 돌아가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세월호 관련 유가족이나 생존학생들에게 트라우마 치료전문가 뿐만 아니라, 마을 이웃의 따뜻한 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감이고, 때로는 전문가들조차도 불안해하고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웃은 가장 안전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이 교회공동체는 재난의 중심에 서 있는 트라우마의 아이콘 안산이 어떻게 치유의 아이콘 안산이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첫 번째 해법으로 찾은 과제는 공동체 전체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단순히 사건의 발생과 과정 및 결과 등을 기억하는 외현기억의 기록은 역사가들의 몫이다. 트라우마 기억을 함께 공유하면서 그들을 다시 우리로 안전하게 품어내는 일이 리멤버(re-member), 기억하는 일의 핵심이다. 그래서 외현기억과 암묵기억은 존재론적으로 다른 차원의 기능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외현기억은 머리로 하는 일이지만, 암묵기억은 온 마음으로, 발로, 가슴으로 공동체가, 온 마을이 함께 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신학적으로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개인과 집단이 가진 트라우마의 암묵기억을 공유하는 일이다. 십자가는 트라우마의 원형이요, 암묵기억과 트라우마 기억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치유자원이다. 

코로나 19는 다시금 우리를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한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예배는 무엇인가? 세상 가운데, 그리고 재난 중에 불안해 하는 이웃들에게 교회는 어떤 공동체여야 할까? 코로나 시대에 트라우마를 겪는 교회 밖 이웃을 위해 교회가 진정한 쉼과 힘을 주는 공동체가 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치유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교회는 무엇보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암묵기억에 민감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는 다양한 상처와 트라우마의 암묵기억으로 인해 극도로 공격적이 되거나 집 안으로 숨게 되는 이웃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이들을 위해 열린 쉼터로서의 교회는 숨겨진 상처에 민감한 공동체여야 한다. 자칫 이들이 이단 종파의 공동체를 열려있는 유일한 쉼터로 여기지 않도록 막는 일이 중요하다. 결국 기억(re-member)한다는 것은 숨어 있는 트라우마 기억들을 다시금 안전하게 연결하고 십자가의 품 안으로 품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신체와 마음 깊은 곳에 무의식적으로 숨겨진 암묵기억을 찾아내고 십자가 앞에 내어놓는 일이 트라우마에 대한 개개인의 기억은 물론 집단의 기억을 목회적으로 치유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란 언급처럼, 재난의 중심, 세상의 아픔의 중심에 서는 교회는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 이는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마땅히 실천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다.

 

주.
1) Kenneth I. Pargament & Curtis R. Brant, “Religion and Coping,” in Harold G. Koenig, ed., Handbook of Religion and Mental Health (San Diego, CA: Academic Press, 1998), 112-128.

2) Flora A. Keshgegian, Redeeming Memories: A Theology of Healing and Transformation (Nashville, TN: Abingdon Press, 2000),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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