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6)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발표회

사실, 평생을 목회하시고 은퇴하신 원로목사님과, 다양한 경우가 있겠지만 그 뒤를 이어 목회를 시작하는 후임목사와의 관계는 목회현장에서 가장 의미있고 또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특별한 경우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이 지상에 있는 교회가 존재하는 한 반복해서 이루어지는 관계입니다. 물론 개척교회의 경우에는 첫 세대에는 전임자가 없겠지만 결국은 후임자를 세워야 하고 개척자 자신은 전임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순환구조에서 지금은 후임자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전임자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상적인 목회를 한다면 영원한 후임목사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개척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 전임자 역시 어떤 모양으로든 후임자의 위치에서 사역했던 시절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임자와 후임자, 원로목사와 후임목사와의 바람직한 관계라는 과제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겪는 각자의 과제가 아니라 평생 목회하고 정년이 되어 은퇴하는 목회자라면 한 사람이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목회현장의 두 가지 과제인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사실 지금까지 이 과제를 잘 감당해 오면서 세대교체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역설적으로 교회의 부흥이라는 이 축복의 자리에서 전임자와 후임자의 관계가 교회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덕이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가 약하고(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목회현장이 열악할 때는 한 평생 목회하고 은퇴할 수 있는 것이 감사였고 어려운 교회를 이어 목회할 후임자가 세워지면 그 대상자가 누구이든지 심지어 아들이라도 상관없이 감사했습니다. 전임자는 어려운 목회를 이어갈 후임자를 보며 짠한 마음을 갖게 되고 후임자는 전임자의 남긴 흔적을 따라가며 전임자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아름다운 관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대, 전임자와 후임자의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서는 이 정신을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역지사지’라는 말의 의미를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영원한 전임자가 없고 영원한 후임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전임자와 후임자에게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 각자에게 주어진 제 몫이 있습니다. 이것은 서로가 상대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임자는 후임자였을 때의 상황을 정직하게 회상해 보면서 그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후임자는 자신이 전임자가 되었을 때 어떤 입장이 될까를 솔직하게 상상해 보며 그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결국은 한 사람이 치루어야 할 두 가지 과제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함께 서 있는 공동체를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같이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소중한 가치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화평’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시대가 주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부흥하던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평안하여!’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전임자이건 후임자이건 그것이 무엇이든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임자는 후임자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전임자는 정년이 되어 시무은퇴하지만 끊임없이 기도와 격려로 후임자를 세워주는 더 중요한 목회를 해야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후임자가 전임자보다 나아서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전임자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 현장에서 목회해야 하는 후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전임자의 칭찬과 격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후임자는 전임자를 존경하고 그에 합당한 예우를 최선을 다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 이 일이 중요한 것을 성도들에게 깨우쳐 주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감당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화평이 깨질 때 치루어야 할 엄청난 댓가를 늘 잊어서는 않됩니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틈 사이로 분열과 파괴의 영들이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각 교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교회의 상황과 형편에 맞는 방법을 함께 찾아 실천해 나가면 됩니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화평의 관계’입니다.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 어떤 희생과 수고가 요구된다 하더라도 각자의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화평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 부부가 화목하면 자식들이 잘 성장하듯이 교회에서 전임자와 후임자가 화목하고 화평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성도들이 행복해 합니다. 그 곳에 더한 복이 임합니다. 

시편 133편 1-3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살짝 바꾸어 보았습니다. “보라 원로목사와 후임목사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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