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주 장로 이야기(1)

 

“울었다.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망연자실이었다. 이렇게 서럽고, 억울하고, 슬픈 인생을 살았단 말인가. 소록도에 다니며 자주 만났던 고복남(가명) 장로의 지난 세월 이야기는 소설로도 쓸 수 없는 그런 슬픔이었다. 누가 이런 생각이나 상상을 했을까. 그러나 이런 눈물은 한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센인들 한숨이고 피멍이고 생채기였던 것이다.”

소록도 시인 강창석이 쓴 수필집 『엄니의 희생』에 내가 쓴 ‘추천사’ 한 부분이다. 8세 때 한센병이 발견되었던 복남이. 아버지를 일찍 잃고, 어머니와 누나와 셋이 살았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들의 병을 나아주려 했지만 일가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의 외면과 배척은 견디기 어려웠다. 어머니의 눈물의 삶이다.

박 장로는 같은 병을 앓았던 부인, 또 한 분 슬픈 엄니를 남겨두고 2015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떠날 날이 가까운 것을 알았던지, 강 시인에게 자기 이야기를 쓰게 했다. 그렇게 쓰여 진 글이라 본인의 언어나 문체와는 다르게 다듬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센인들의 눈물과 한숨을 이해하는 면에서 유익하겠다 싶어, 필자의 승낙을 받아 이야기를 써본다.

첫 이야기는 발병 때이다.
전남 장성군에 속한 농촌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1935)로 태어났다. 부친을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농사를 지었으니 딸도 아들도 그렇게 살았다.
8세 때였다. 골목에서 놀던 복남이가 무릎에 상처가 났다. 읍내 한약방을 찾으니, 피부감각이 둔한 ‘마모’라 했다. 그 후로 상처가 아물지 않고 환부에 진물이 심했다. 얼마 후에 찾은 곳은 광주기독병원이었다. 의사가 복남이를 돌려 앉히고, 무릎에 손을 댔다. 반응이 없다. 감각이 없단다. 다시 돌려 앉히고 자극해보지만 느낌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한센병.” 진단이 내려졌다. 청천벽력이었다. 웬 날벼락인가.
아~, 이 충격. 철없는 아이의 어머니 “어머니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글썽인다. 복남이를 품에 꼭 껴안는 어머니. 말없이 속울음을 삼킨다. 어찌해서든지 너 병을 꼭 고쳐주마.“ 피눈물 같은 어미의 넋두리다.

다시 한약방을 찾았다.
나쁜 피를 뽑아낸다며 무릎 부위에 피를 내고, 나쁜 기운을 제거한다며 손톱과 발톱에 숯불을 피운다. 심한 화상을 입었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9세 때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나왔지만 그런 형편에 입학할 수도 없었다.

소문이 금방 퍼졌다.
발 없는 말이 동네 골목을 돌고 돌담을 넘어 집집마다 번졌다. 동네 사람들이 갑자기 쌀쌀하게 외면했다. 동네를 떠나라는 눈치였다. 동무들도 멀리했다. 복남이 하고 놀면 밥도 안주고 쫓아낸다는 엄마들의 엄포였다.
샘물도 못 길러가게 했다. “복남이 엄니, 아들이 병들었으면 양심이 있어야제. 어디다 전염시키려고....” 노골적이고 가시 돋친 언사였다. 같은 성씨 집성촌이지만 일가친척은 더 냉담했다. 병든 자식을 둔 어머니는 죄인이었다. 한 마디 대꾸도 못 했다.
복남이가 논일을 하고 손을 씻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병든 것이 어디서 손을 씻어.” 하고 나무랐다. “거기서 씻지 말랑게.”하고 악을 썼다. 한 동네서 살수 없으니 떠나라는 경고였다.

어머니가 마당에 샘을 파자고 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아무도 일을 해주지 않았다. 모두 외면했다. 모녀가 호미를 들고 나섰다. 단단한 마당에 물을 쏟아 부어 흙을 부드럽게 해서 한 주간을 파낸 후에야 물이 고였다. 눈물이 고인 서러운 샘 아닌가.
그렇다고 잠잠해지겠는가. 앞집 부인이 수채로 하수를 흘려보내지 말라며 시비했다. 가뭄이 들었다. 샘도 말랐다. 엄니는 물동이를 이고 뒷산으로 올라가 바위 틈새 이끼에서 떨어지는 눈물 같은 물을 받아왔다. 피눈물을 마셨다. 이런 모든 구박은 한센병을 전염시킨다는 생각에서 나온 트집이었다.

그러나 복남이의 병세는 더 심해졌다.
온몸에 연분홍 꽃(결절)이 돋아나고, 몸을 긁으면 진물이 흘렀다. 어머니는 소금물로 씻어주었다. 약도, 치료받을 곳도 없었다. 열다섯 살 누나는 복남이가 잠든 밤이면 마당가에 주저앉아 슬피 울었다. 한센병은 가족이 겪는 불가항력이요, 좌절이요 슬픔이요 차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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