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주 장로 이야기(3)

누명? 억울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날벼락이다.
누가 나를 죽음의 수렁에 처넣으려 하는가? 내 생명을 걸고라도 권리와 명예를 회복하리라.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해명한다. 그러나 이미 진흙탕에 내동댕이치고 믿어주지 않으면 오죽할까.

소록도에서 살다가 나이 많아 세상 떠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영원한 자유 세상으로 떠난 고복남(가명) 장로도 그런 일을 겪었다. 한센병도 서러운데 살인 누명을 썼던 것이다. 8세 때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나병이 전염병이라 이해했던 그때는 사람들이 얼굴 마주치기를 꺼려했고 접촉은 피했다. 터무니없는 억측과 소문도 돌았다. 강창석 시인은 그런 소문을 비언飛言이라 말한다. 안개구름 같은 실체 없는 헛소문 말이다.

고복남 장로의 자서전 [엄니의 희생]을 쓴 강창석 시인은,
입에 담기도 난감한 이야기들을 썼다. 이 글 제목도 ‘아이들 행불되자 억울한 혐의 받아’ 했지만, 사실은 절제된 표현이다. ‘병을 나으려고 아이들을 잡아먹은 살인자로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었다. 동네에서 쫓아내려고 그랬던 것 같다.

일제 때부터 강력하다는(?) 형사였던 경찰이 한 소년을 연행해서 고문하며 조사했다.
억울하게 당한 것이다. 며칠 후에 길을 잃었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한센인들이 한때 겪었던 억울함과 슬픔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고인이 된 고복남 장로가 16세 때 겪었던 일이다. 10대 소년이면 푸른 나무처럼 씩씩하고, 무지개 같은 이상의 세계를 꿈꿀 때아닌가. 그러나 그는 날개가 꺾여버린 새였다.
봄기운 완연한 어느 날 경찰관 둘이 찾아왔다. 조사할 것이 있다며 경찰서로 데려간다. 바깥출입을 전혀 못 했던 소년은 잔뜩 겁을 먹고 불편한 두 발을 절룩이며 경찰지서로 갔다.
면 소재지에 사는 아이들 둘이 사라졌는데, 한센병자가 “병을 낫기 위해 잡아먹었다며 신고하였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일, 있을 수 없는 일, 증거도 없는데 이런 억울한 혐의를 받은 것이다. 불쌍하고 나약한 소년에게 누군가가 덮어씌우는 억울한 누명이요, 억측이요 목을 조이는 올무였다.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던 악명 높은 형사의 신문이다.
“피의자는 아이 둘을 잡아먹은 사실이 있는가?” 눈을 뒤집고 경기하듯 놀랐다. “지금 머 소리 하다요. 내가 왜 아이를 잡아먹으라?. 생사람 잡지 마시시오. 난 그런 일이 없었어라. 그라고 난 집에서 삽짝 밖에도 안 나간디요. 정말이어라.” “서툰 거짓말하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라.” 언사마저 확실하지 못한 소년에게 심한 폭행이 가해졌다.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복남이는 자신의 얼울함을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할 사회성도 없었다. 멀리하는 관청에는 다녀본 적도 없었다.
“왜 대답이 없어? 네가 병 고치려고 아이 잡아먹었지. 남은 시신은 어디다 묻었어.” 기막힐 일이다. 이렇게 생사람을 잡다니. 아닌 밤에 홍두깨 아닌가. 조사는 3일이나 이어졌다. 자백을 강요하는 폭력이었다. 뺨을 맞아 코피가 터지고, 구둣발에 채이고, 몽둥이에 맞아 온몸이 망가졌다. 전깃줄을 몸에 쑤셔 넣고 전기고문까지 했다. 경찰들이 집안을 다 뒤지고, 텃밭도 뒷산도 조사했지만 기대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가친척의 모함일 수 있다.’는 말에 담당 형사가 가택수색을 했지만 헛일이었다. 경찰은 ‘혐의 없다’며 그를 내보냈다.

다리를 3일이나 치료를 못 해서 상처가 심해지고, 냄새가 많이 났다.
어머니는 소금물로 씻어주고 밀짚 재를 얹어 헝겊으로 싸맸다. “미안하다. 너를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했어야 했는디. 이 모든 게 어미의 죗값인 갑다.” 엄니의 눈물이었다.
행방불명이었던 두 아이는 며칠 후에 돌아왔다. 장성역에 구경 갔다가 기차에 올라서 나주에 내렸다. 집 주소를 모르는 어린 것들은 경찰에 맡겨졌고, 며칠 만에 돌아왔던 것이다.

복남이는 조사를 받으며 애가 타서 “아~하나님!” 하고 부르짖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싶었다. ‘하나님!’ 그런 신이 계시는 것일까.
예수 교당이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는데. 그는 목마른 사슴이고,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방황하는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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