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복남 장로 이야기(2)

사람이 기막히게 어려운 일에 맞닥뜨렸는데 금방 해결 방도가 없고, 미래에 대한 소망도 없다면 죽음의 손짓에 끌려가는 것 같다. 사실은 죽음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셨으니 어떻든 피할 길이나 감당할 능력을 주시지 않겠는가. 이 언약이 신자의 믿음이다.

소록도교회를 여러 해 동안 다니면서
한센인 성도들과 교제를 나눈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또 많은 것을 생각하며 깨닫는 것도 많았다. 그 가운데 한 분이 고복남 장로였다.

▲ 소록도남성교회 찬양대.

고 장로님은 여덟 살.
그 어린 나이에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나이가 더할수록 슬픔은 더 커지고, 외로움과 슬픔에 붙잡혔다. 어머니와 누나에게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하나뿐인 아들이라 애지중지하던 어머니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소작농으로 나섰던 이들에게 한숨이고 좌절이고 시련이었다. 한편으로는 남부끄럽고, 멀리하는 이웃들에게는 죄인 된 심정이었다.
이런 경우,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더욱 절실한 것일까? 병든 자식을 버릴 수 없고, 삶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아비 없는 자식은 어머니의 희망이었는데 한순간 눈물 나는 십자가로 변했다.
복남이 나이 열다섯, 어머니와 누나의 소작농 농사일과 아들 걱정의 한숨소리가 마음을 후벼 팠다. 바깥출입은 고사하고 문을 걸어 잠갔다. 차라리 죽음보다 못한 것 같았다.

한여름 밤, 모기도 극성이었다.
밤까지 방에만 박혀있을 수 없었다. 별들 반짝이는 하늘을 이불 삼고 마당에 돗자리에 누었다. 마른 풀을 모아 모깃불을 피운다. 연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별들이 속삭이는 꿈나라 이야기, 파랑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공상. 친척과 이웃들의 차가운 눈초리. 동네에서 떠나기를 바라는 압력, 파도로 밀려오는 하얀 슬픔의 세월이었다. 낮일에 피곤한 어머니와 누나가 잠들었다. 소년도 한센병 초기에 느끼는 나른함에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복남아! 복남아 일어나, 이것아” 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다.
놀라움과 충격이었다. 복남이가 졸린 눈을 뜬다. 하체가 이상하다. 무엇인가 끊어져서 부~웅 떠있는 느낌이다. 엄니가 복남이의 두 발을 붙들었다. 놀란 복남이 “엄니, 내 발가락?” 세상에 이런 일이라니, “엄니, 내 발가락이?” 어떻게 되었어? 다 타버렸는가?
꼼지락 열 발가락은 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 불에 탄 것이다.
“내 발가락이 왜 요렇게 되았소?” “이놈아‘ 내가 알것냐?” “어메, 내 발이... 발가락이...” 두발 발가락이 다 뭉개졌다.

엄니가 잠결에 이상스러운 냄새를 맡고 깨어보니
아들의 두 발이 모깃불에 얹혀서 타고 있었다. 아들은 무릎 아래로 하체 부분에 감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고,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발갛게 익어버린 살은 뭉텅해져 있었다.
이런 기막힌 일. 충격. 그렇지만 이웃이 알까 봐 숨을 죽였다. 또 다른 흉이 될 것 같았다. 밀집을 태워 재를 상처에 뿌리고 옷을 찢어 동여맸다. 소금물로 씻었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입을 다물었다. 병원에도 못 갔다. 골방에서 일 년을 지냈다.

“원치 않은 병에 걸린 나 때문에
왜 가족 모두가 싸잡아 멸시를 받고 압박을 받아야 하는가? 차라리 나 혼자 사라지면 동네 사람들의 마음의 빗장도 열어질 것인데.”
소년은 신발을 벗고 저수지로 들어갔다. 허리쯤 들어서니 발이 쑥쑥 빠지고 금방 물이 가슴에 차올랐다. 머뭇거리다가 뒤돌아 나와 둑에 주저앉았다.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울고 있었다.

2015년 5월. 8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편한 다리로 살았다.
한 번은 전남대학병원에서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준비를 하다가 고령이라서 포기했었다. 평생 고통이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이 소록도로 수련회를 갔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벌레였어요. 시편 22편 같았지요.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성경을 읽으며 간증을 했다. 그의 나그네 인생은 젊은이들의 눈물이 되고 한숨이 되었다.

이제 그는,
아내의 말대로 한센병자 굴레를 벗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다. - 강창석 [엄니의 희생]

▲ 소록도 남성교회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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