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주 장로 이야기(4)

나를 싫어한다.
얼굴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경기라도 하듯 화들짝 놀라고 피해간다. 당황스럽다. 못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해 끼칠 일도 안했는데... 나는 사람이 아닌가?
고복남(가명) 장로 이야기이다.
자서전 형식으로 강창석 시인이 쓴 [엄니의 희생]을 슬픈 마음으로 읽었다. 한센인에 대한 지나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아야한다. 시린 바다처럼 파랗게 멍든 한센인 들의 슬픔을 이 글로 대언하고 싶다.

사람들 눈을 피해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했던 어린 복남이,
그도 부모에게는 귀한 아들이었다. 18세가 되도록 어머니의 한스러운 눈물이요, 내버릴 수 없는 무거운 짐이었다. “엄니와 누나의 무거운 짐짝, 거치적거릴 수밖에 없는 몸” 이미 어디로 떠났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철들어가는 복남이의 생각이었다.

1953년 5월 18세 되던 해,
한국전쟁이 몇 년 째 이어지면서 세상은 어수선했다. 농촌에서는 매년 겪는 배고픈 보릿고개를 겪고 있었다. 보리밭이 파랗게 출렁일 때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보건소 직원들이 경찰과 함께 복남이네 집에 들이닥쳤다. 방문을 잡아채어 열어젖혔다. 두 사람이 달려들어 복남이 양쪽 팔을 껴안아 붙잡았다. 강제 연행이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웬일인지?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예고 없이 당한 일이다.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엉겁결에 달려와 앞을 가로막았다.
“아짐씨, 병원으로 데려가서... 소록도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끔 도와드리려 합니다.”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그럴 수 없다며 흥분했지만 아들은 끌려가고 있었다.

복남이는 내 발로 걷겠다며 어머니를 설득한다.
“엄니, 요번 참에 병원에 가서 제대로 치료받고 나으면 당당히 돌아올게라. 진정하시고 절, 소록도로 그냥 보내 주시시오.” “안 된다. 이놈아! 가긴 어딜 간다 말이냐. 이 어미가 죽는 꼴 볼일 있냐... 어미 혼자서 어떻게 살라는 거나.” 아우성이고 몸부림이었다.
붙잡혀 온 사람은 30여 명이었다. 정부 방침에 따라 한센병자들을 소록도에 강제 수용하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는 작년에 잡혀가다가 도망쳐 나온 사람이 섞여있어서 불안한 이야기가 돌았다. “소록도갱생원에 끌려가면 고향으로 돌아올 기회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동요하며 합세하여 소란을 피운다. 출입문을 부술 작정으로 달려든다. 소란이 일 때 소장이 달려왔다.
“여러분, 왜 걱정들 하십니까.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절대적으로 해를 입히려고 데려가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 치료를 받지 않으면 건강 찾을 기회를 놓칩니다... 지금부터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모습은 보기 흉하도록 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불구의 몸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면 지금 댁으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저희들과 함께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읍시다.” 진지한 설득과 호소에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병기(병색)이 깔린 얼굴들인데 치료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보다 더 심하게 될 것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한 것이다.

복남이는 하나님을 떠올렸다.
그리고 두 손을 합장한다. 어머니가 치성을 드릴 때 합장하고 절하는 것을 보았던 터라 그렇게 비는 것이다. ‘그래, 가자!’ 마음을 다잡으며 하나님께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하고 속삭였다. 마음의 소원이었다.
소록도로 떠나던 날. 직원들이 가족은 함께 갈 수 없다 만류하는데도 어머니는 한사코 아들이 탄 트럭에 올랐다. 직원들이 돌아올 때 모시고 오겠다면 동행을 허락한다.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차가 앞뒤를 지켰다. 사형수가 이렇게 끌려가는 것일까. 치료는 가능할까? 돌아올 수 있을까. 황톳길 먼지가 뿌옇게 따라온다. 일행의 얼굴은 흙먼지투성이가 되었다.

녹동항 선창에 내린 것은 밤 10시쯤. 대기한 배에 올랐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보내야 했다. 찬바람 부는 선창에서 통곡하는 어머니.. “.복남아...” 어머니의 애간장 끓는 외침은 밤바다의 파도에 삼켜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간다.
소록도, 과연 어떤 곳일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복남이의 간절한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배는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리며 밤바다를 가고, 하늘에는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소록도남성교회 박복자 권사와 황영준 목사의 기도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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