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대를 흔히 ‘탈근대주의’(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라고 한다. 이 어려운 사상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으나 보통의 간단한 의미로는 ‘절대 진리’도 없고 ‘절대 기준’도 없고 ‘절대 권위’도 부정하는 사상체계이다. 절대 진리가 부인되니 기독교 절대 신앙이 거부되고 절대 권위가 없으니 기성 권위에 반항하고 나아가 삶의 절대 기준이 없으니 기분 내키는 대로 행한다.특히 도덕적 상대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도덕적 상대주의를 나타내주는 표현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라서 무슨 이익이 된다면 부도덕한 일도 스
모 TV사 프로그램에서 "인터넷 약인가 독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설문조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히 중독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의 인터넷에 함몰되어 있는 우리 시대 자화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주제선정으로 여겨집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인터넷을 통해 1초가 멀다하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 속에서 무게중심을 잃지 않고,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일상 속에서 쉽게 확인하게 됩니다. 보다 빨리 새로운 정보를 취득하기 위한 조급증이 언제부터인가 내면세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우리시대의
교회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무엇보다도 사도행전과 에베소서를 통해 이루어졌다. 에베소서에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도를 발견했다면, 사도행전에서는 성령께서 사도들과 1세기 제자들을 통해 직접 기록하신 교회의 원형을 체감했다. 그 흥분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신학대학과 신대원 시절에 새롭게 발견한 교회론의 실제와 적용은 내수동교회 대학부의 제자훈련과 결혼 직후 집에서 가졌던 소그룹 공동체 제자훈련을 통해 검증했었다.에베소서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교회 설계도에 나타난 첫 번째 그림은 교회가 공동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워드 스
21세기에 들어와 공동체의 존속 여부를 결정지을 만한 새로운 가치로 대두되고 있는 요소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투명성'입니다. 데이비드 뱃스톤이 쓴 [영혼이 있는 기업 - 존경받는 기업의 8가지 조건(Saving The Corporate Soul)] (2003년 도서출판 거름 출간)은 인간과 자연을 제물로 삼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투명성'에 근거한 윤리경영이 확보되지 않는 기업은 앞으로 사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즉 돈벌이에만 몰두하는 근대적인 기업
내 생애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조국교회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흥분은 1907년도에 일어났던 평양 대부흥 사건이 기록된 책을 읽는 가운데 일어났다. 아, 조국교회와 이 땅에서도 이런 비상한 하나님의 현현으로 인한 폭발적인 영적 각성과 부흥, 거룩한 삶과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이 나타났던 시기가 있었구나! 꿈만 같은 그 기록들이 실제를 읽으면서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감동과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그 이후 나는 조국교회의 영적 각성과 부흥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현현과 역사하심을 위해 이미 15년 이상 계속 기도하기를 한 순간도
우리가 아는 대로 바닷물이 짠맛을 유지하는 것은 2.8%의 염분이 있기 때문이다. 2.8%의 염분이 전체 바닷물의 짠맛을 유지하고 있는 셈인데, 우리 사회에는 신자들이 20-25%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이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여러 가지 병폐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은 신자들이 사회 속에서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이 땅에 복음이 들어와 얼마 되지 않은 초창기에는 신자들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술, 담배를 철저히 금하는 것이나 주일이면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
16세기 일본은 일본 역사를 통 털어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세 인물이 동시대에 살았던 시대라고 합니다. 천하통일의 동일한 인생의 목적을 가진 이 세 사람은 바로 오다 노부나가(1534~1582)와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시대에 동일한 목적을 가진 세 사람이 선명하리만큼 구별되는 리더십의 개성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이 세 사람이 두견새를 소재로 해서 일본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노래형태인 와카(和歌) 가운데 단가(短歌)의 형식을 빌려 노래한
매월 1일과 15일에 송부 드리는 웹진이 4월 15일 총선으로 인해 하루 늦어졌습니다.이미 총선의 결과만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해석도 많이 접하셨으리라고 봅니다. 16년 만에 이루어진 여대야소의 판세가 어떻고, 향후 정국이 어떻게 운영될 것이며, 경제와 외교의 방향은 어떤 기조로 운영될 것이라는 등 이후의 향방에 대한 여러가지 새로운 가늠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그런데 부활주일이 들어있는 4월의 전반기를 들여다보면 이런 정치적인 사안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역시 앞으로 새로운 가늠자를 놓아야 할 만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대형집회
제목부터 우리에게 생각케 만드는 역설적인 요소가 있다. 영어 단어에서 passion이란 열정이나 열애를 일컫는 단어인데 정관사 the가 붙고 Passion의 첫 글자가 대문자로 사용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뜻하는 내용으로 의미가 바뀐다.왜 그럴까?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복음서에서 공생애 시작서부터 가지고 계셨던 우리의 구원을 위한 죽음의 사명과 그에 대한 자의식이 평생을 통해 너무 분명하고 강렬하게 있으셨기 때문이다.주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죽으심을 예언하실 때에 필연적으로 죽으셔야만 한다는 뜻으로 강조형태(영어의 Must)를
지난 3월 한 달, 우리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던 화두(話頭)는 단연 '탄핵'이라는 어려운 단어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다소 지나친 평가일지는 몰라도 탄핵과 더불어 단연 우리 사회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또 하나의 화제는 모 TV의 사극 '대장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결과에 따르면 지난 7개월 동안 평균 시청률은 45.8%였고,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날은 3월 2일로 56.8%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두 집 중 한 집이 대장금을 시청했다는 결론입니다. 게
교단지 기독신문은 '대통령 탄핵정국과 그리스도인의 자세'란 사설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일부를 인용한다."--- 전략 --- 우리는 탄핵정국이 막강한 영향을 끼쳤던 권위주의적인(수직적인) 정치문화와 산업시대적(아날로그적) 사고의 시대가 가고 상호주의적인(수평적인) 정치문화와 정보화시대의(디지탈적) 사고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세대적으로는 50∼70대에서 20∼40대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것이 정치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그 후예들로 대표되는 군사독재와 경제개발
"학교 강단에서 문자적으로만 가르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에 대해 법리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뿐입니다."일생동안 헌법만을 연구하고 가르쳤던 헌법학계의 한 원로가 대통령 탄핵사건을 놓고 말한 내용입니다. 3월 12일 금요일 정오쯤에 일어난 이 사건의 후폭풍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앉기만 하면 열중 여덟과 아홉은 정치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일례로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게 만드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국회에서 그 난장이 있었던 날 저녁에 횟집에 손님들이 왔더랍니
최근 탄핵정국의 핵폭탄이 온 국가와 민족을 거대한 폭풍처럼 휩쓸며 지나고 있는 중이다. 생각보다 빠른 안정과 회복을 보여 그 동안 숱한 시련과 질곡으로 점철된 민주화의 과정이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도 들며, 감사한 마음도 든다. 탄핵 정국의 정당성이나 의미는 이미 사회에서 상당 부분 진행되었으며, 민심을 따라 이미 결판이 났다고 본다. 다만 법적 판단과 그 최종 결론은 헌법재판소의 판결 및 총선 이후가 될 것이다.그러나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중대한 대목은 바로 4.15 총선이다. 현재와 같은 헌정 혼란과 국가 비상사태 및 이
삼일절 지나고 3월 2일이 되면 따뜻한 봄소식을 교갱협 웹진에 올려놓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봄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망한 것과는 달리 몇 일간 꽃샘추위가 이어질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고, 실제로 칼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봄은 우리에게 올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계절 인사를 드리면서 이제 웹진독자 여러분들의 의견을 긴급하게 수렴해야 할 한가지 사안이 생겨 그 내용을 간략히 말씀드리고, 설문참여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최근 예장합동총회의 '개역개
지난 수요일(2월 11일) 사무실 이사를 했습니다. 국제제자훈련원 센터가 완공되면서 감사하게도 5층에 교갱협과 한목협, 그리고 교단장협의회 사무실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이사 이후 며칠을 지나는 동안 그동안 익숙했던 것과 결별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일례로 출근할 때 무의식중에 옛날 사무실로 가서 몇 십분을 허비한다든가 하는 일 따위입니다. "일상을 바꾸는 일은 지구를 들어올리는 것보다 어렵다"는 누군가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좌우간 변화가 어려
다른 나라에는 없고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을 꼽으라면 긍정적인 것이 많을지 부정적인 것이 많을지 참 궁금합니다. 유독 우리 나라에만 있을 것이라고 보고싶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 교육계에 있는 독특한 트렌드 용어가 최근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른바 '티처보이'라는 용어입니다. 학원과 과외에 중독되어 아예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학생을 '마마보이'에 빗대 만든 신조어라고 합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우리 나라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도는 학교별로 56∼83% 선입니다. 초·중·고생만 과외에 의
청년들의 구직난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직장인들의 정년과 관련하여 '사오정'이라는 용어는 이미 옛말이 되어버렸고 '삼팔선'을 넘어 이제는 '체온'(36.5도)의 지경까지 내려왔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과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들이 평균 12번의 입사원서를 작성한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그런데 더 큰 문제는 취직을 했고, 직업을 가졌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있습니다. 어느 인터넷 취업
2003년을 갈무리하며 한 해 동안 우리 사회의 관심을 모았던 중요한 신드롬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사람들에게 중요한 코드(chord)로 자리잡은 것이 '웰빙(well-being)'이었습니다. 웰빙이란 다른 무엇 보다 건강과 마음의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런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웰빙족(族)이라고 합니다.언론에 보도된 웰빙족의 삶을 한 번 들여다 보았습니다. 일단 먹거리부터가 달랐습니다. 육류보다는 생선류를 즐기고, 유기농 야채와 곡식으로 만들어
들어가는 말만일 교회 갱신을 꿈꾸는 우리가 갱신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갱신의 대상으로 지탄 받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종종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십자가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몸인 교회 갱신을 꿈꾸는 우리에겐 더욱 엄격한 자기 절제와 싸움 및 탁월한 도덕적, 윤리적 책무가 뒤따른다. 이것은 노블레스 오불레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분명 그렇다. 우리는 그 정도가 아니라 코람데오의 차원에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 영광의 소명과 현실의 나 사이에
'Wannabe'라는 생소한 용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했습니다.내용인즉 '~가 되고 싶다'는 뜻으로 1982년 뉴스위크지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단어가 널리 알려진 것은 80년대 중반 가수 마돈나의 패션을 따라하는 여성 팬들이 ‘마돈나 워너비’로 불리면서부터인데 한국에서는 현재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모 여가수를 닮고자 하는 모습으로 소녀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컬어집니다. 소위 그녀의 외모, 말투, 패션, 댄스 등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되며, 수많은 '추종자'들이 생기게 되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