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목협 제26차 열린대화마당

1. 교회 위기의 사회적 배경

1958년생, 1959년생을 정점으로 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가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학생회로 밀려들던 1970년대 초반부터 한국 교회는 양적 부흥기를 맞는다. 이후 1990년대로 접어들어 1950년대 후반의 베이비붐 세대와 1970년 대 초반의 인구증가분이 성인이 되면서 교회 주일학교.학생회가 침체기로 접어들기 시작하고 교회학교의 침체가 대학.청년회로 옮겨지면서 교회에 청년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한국 교회는 새로운 성인 신도가 계속 유입되고 교회 규모가 유지되는 것에 안주해 교회학교 등 선교의 인구적 기반이 취약해지는 것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내적 인프라와 선교전략의 수립보다는 교회 건축의 대형화와 외형적 교세 확장에 치중하면서 위기관리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 인구학적으로는 현재 인구증가가 둔화돼 거의 성장을 멈추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2세들이 아이를 낳는 2010년~2020년 기간에 출생이 약간 늘어났다가 이후 다시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고 2018년부터는 인구감소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교회 학교로 어린이를 끌어들일 마지막 기회가 다가오는 셈이다. 인구는 한 번 줄어들면 다시 늘어나기 지극히 어려운 속성을 지녀 교회 교육과 교회 학교 운영, 교육 커리큘럼 등 전반적인 전략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하겠다.

교회의 성장과 관련한 또 다른 위험요소는 역시 이단사이비의 횡행이다. 2005년 인구센서스로 볼 때 개신교 인구는 861만 명이다. (종교 인구 2500만의 18.3%). 10년 전 조사 때 876만 명에서 줄어든 규모( 종교인구 구성비로는 19.7%에서 18.3%로 감소한 규모). 가톨릭은 급증하여 5백만을 넘어 515만 명이다.(구성비로는 10.9%이고 10년 만에 가톨릭교도가 74.4%가 증가했다). 불교도는 1,032만에서 1,072만 명으로 증가했다. 1995년과 2005년을 비교하면 우리나라 종교 인구는 2,260만에서 2,497만으로 10.5% 증가했다. 유독 개신교만 감소한 셈. 원불교도 이 기간에 49.6% 증가한 걸로 나타나고 있다.

또 하나 문제는 인구센서스에서 개신교라고 답한 사람들 중 이단 사이비 교파 신도가 얼마나 될까하는 것이다. 대략 150만 정도로 추산하지만 더 높게 잡기도 한다.

 

 

2.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은 위기관리와 위기극복의 프로세스와 책임주체가 갖춰져야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저가 항공사 젯 블루
- 2007년 미국 동북부 폭설 때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해지고 자사 여객기의 결항이 시작되자 최고경영자는 곧바로 텔레비전에 출연을 자청하고 나서 고객들에게 사죄했다. 그리고 사과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렸다. 갑작스런 폭설로 여객기가 결항된 것을 자사 책임으로 돌리고 사과에 나선 덕분에 젯 블루의 신뢰도는 급상승하고 경영기반을 튼튼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위기관리 프로세스의 실패 사례는 세월호 사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책임과 권한이 불분명한 채 비전문가인 총리.장관이 현장 지휘책임을 맡으며 혼선을 빚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 비하면 정부의 종합상황대책본부는 훨씬 앞서 있다. 한국 교회는 수습대책 본부도 없거니와 대책본부를 꾸릴 주체도 불분명하다.

교회협, 한교연, 한기총 .... 어느 연합기구도 대표성을 갖고 나서지 못하는 데다 서로 견제하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교단장협의회가 구성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회의 대응과제를 논의했지만 교단장 협의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부분적이다. 정치적 배경과 급조된 만남이어서 그렇다.

개혁과 쇄신에 있어 한국 기독교는 아래로부터가 적합한데 교단장부터 만나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는 주체로서 작용하지 못한다. 가톨릭의 경우 교도권의 행사 권한이 주교회의와 사제에게 있기 때문에 항상 위에서부터 쇄신의 요구가 신도에게로 내려온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밑에서의 쇄신 요구를 교단과 목회자들이 방어적으로 받아들여 회피해 왔기 때문에 급조된 위에서부터의 쇄신 요구는 적절치 않고 통하기도 어렵다.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위기관리의 주체’부터 해결이 불가능하다.

방법으로는 다수의 교단과 교계기관이 느슨한 협의체라도 구성해 대기독교 국민여론과 이미지 개선을 위한 공동의 위기관리를 결의하고 씽크탱크와 실행본부를 운영하고 여기에 개혁운동 단체가 참여하는 방안, 아니면 이에 준하는 비슷한 모색들이 필요해 보인다.

3. 위기관리의 단계

사회 속에서 조직이나 그룹의 위기의 공통점은 “위기는 온다, 무조건 온다” “위기가 오는 때는 누구도 모르고, 오면 누구나 위기인 줄 안다” 이것이 위기의 특성이다. 위기에 잠겨 허둥대기 전까지는 좀처럼 위기대응이 이뤄지지 않는다. 교회 뿐 아니라 사회의 대부분 조직이 겪는 일이다. 위기관리는 단계별로 나눈다면 다음의 과정을 거치며 진행된다.

1. 예측  2. 방지  3. 국한  4. 재발방지
1. 징후의 탐지  2. 위기의 인식  3. 위기 예방  4. 위기 준비  5. 위기 봉쇄 및 회복  6. 위기 평가 및 학습

가장 중요한 건 미리 징후를 예측하는 것이다. 만약 내부나 주변에서 불평불만 증가, 주도권 다툼, 경영권 다툼, 차별, 예산의 누수(횡령,착복), 피케팅, 소송 등이 벌어진다면 그 조직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일이 조직을 위기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행동을 벌이거나 저지를 수 있을 만큼 조직에 대한 여론이 안 좋고, 조직 문화가 무너져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위의 징후 예들은 일반 기업체에서 위험을 스캔할 때 점검하는 사항들이다.

이를 한국 교회에 대입해 보면 한국 교회는 불만, 안티, 주도권 다툼, 차별, 예산 착복, 피케팅, 내부 고발, 소송... 거의 모든 징후가 동시에 발생해 심각한 지경임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은 위기를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흔히 “처음 알리는 자는 해고, 두 번째 알리는 자는 승진”이라는 아이러니한 관행을 이야기한다. 조직의 위기를 알리는 내부 고함과 고발에 어떤 열린 태도를 보이느냐도 중요하다.

4. 위기의 대응은 사회의 관점, 사회의 문법으로

무엇보다 진실이 최고의 대응이다.

1. 비위/비리의 단절
2. 리스크 평가의 솔직함 
3.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것 & 최선을 경주할 것
4. 사회의 언어와 문법을 쓸 것

 

한국 교회의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제각각 임의로 움직이는 개교회들을 컨트롤 하는 것이다. 문제가 많아 위기를 맞았다 치고 그 후 위기의 관리와 극복 중에는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돌발변수가 없어야 한다. 대형 교회의 세습, 논문의 표절 시비, 금전이나 성적 문제로 인한 추문 ... 등. 이것들이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위기에서 정상궤도로 돌아가기 위해 위기관리를 하는 중에 추가로 벌어진다면 부정적 여파가 훨씬 크다.

그런 점에서 위기를 감지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중에 터져 나온 조용기 목사 사건이나 사랑의 교회 파문 등은 위기 해결 중에 터진 사태로 간주할 일이다.

또 다른 위기관리 실패의 요소는 자기의 언어로 자기가 변호하고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반성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 재벌 그룹이 대국민사과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재벌 그룹의 어법은 ‘잘못했다, 사회에 돈을 내놓겠다’이다. 그러나 비판하는 이들의 어법은 부당한 지배구조와 세습이다.

한국 교회의 위기관리에서 교회가 갖고 있는 어법과 일반 사회의 어법은 무엇이 다를까? 쉽게 구분하면 “기도하고 회개하겠습니다!” vs “비우고 헌신하라”

과거에서 예를 찾자면 사학법 개정, 재개정 파동이다. 사회와 부모들의 관심은 아이들의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고 충실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교단들은 경영권에 대한 간섭과 재산권의 약화를 앞세웠다. 그 표현방식 역시 ‘기도회’, ‘삭발’, ‘십자가 행진’ 등이다. 이것이 복음적 방법인지는 모르지만 기득권과 관련해 목회자들이 머리까지 깎고 십자가 행진을 하더라는 여론은 지독하다는 쪽으로 기울었지 그만큼 학교를 사랑한다는 쪽으로 기울지는 않았다.

특히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의 여론 속에서 갖고 있는 요소 중 부정적으로 비추기 십상이나 교회가 개선하기 난감한 부분들도 있다. 그 중 하나는 토템이다. 기독교인은 예수를 섬기는 배타적인 집단의 구성원이라고 간주한다. 크리스천들이 세상 사람들, 세상 문화, 세상 것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 기독교인도 예수를 토템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사회 속에서 배타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힐난한다.

5. 교회 위기의 극복을 위한 제언

* 미국 개신교의 쇄신 부흥 운동과 한국 교회

- 한국 교회는 미국 개신교의 흐름을 일정 시간을 두고 뒤따르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 텔레반절리즘의 등장과 쇠퇴

1970년대 이전에는 부흥회를 통한 개신교 부흥시대가 진행되었으나 부흥회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부흥사들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부흥회를 열어도 개신교의 성장은 한계에 부딪혀 진전이 없고, 미국 사회와 교계가 부흥사들의 선동적인 설교를 부담스러워 하며 피하기 시작한 것이 쇠퇴의 배경이다. 

이에 일부 부흥사들은 미국 근본주의 신앙에 바탕을 둔 보수적인 대형교회들이 소유하고 있던 텔레비전과 라디오 채널로 진출했고, 개인기에 치중한 방송 설교가 시작됨. 이것을 텔레비전과 에반절리즘의 합성어 텔레반절리즘이라고 부른다.

텔레반절리즘은 꺼져가던 전도 열기와 영성에 부흥의 불을 붙였고, 계속 발전해 부흥사 설교보다 세련되고 화려한 영상효과를 더함으로써 개신교 부흥을 이끌어 냈다. 그러다 텔레반절리즘의 역할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간단히 설명해 장작이냐 기름이냐 .... 라는 문제제기다.

1. 텔레반절리즘 설교는 시류에 편승한 긍정적 사고방식과 처세 성공술, 가화만사성을 위주로 해 깊이가 부족하다.
2. 신앙을 상품화하는 느낌이다.
3. 인간의 치유와 하나됨을 이끌어 내는 예배라기보다는 쇼타임에 가깝다.
4. 부흥사는 부흥하는데 교회의 부흥은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

 

결국 방송을 통해 쇼맨십을 선보이며 인기를 구가하던 방송전도사들은 1990년대 접어들며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 “워십 & 프레이즈”시대가 그 이후에 개막됨

찬양과 경배라는 음악적 요소를 극대화한 새로운 스타일의 전도부흥 시대가 개막됐다. 역시 시대적 트렌드로 존재하다 쇠퇴하고 있다.

1. 예배의 본질에서 멀다.
2. 외부 자극에 의한 분발에 의존하고 있어 자발성과 적극성의 결여.
3. 수동적인 교인들을 양산함으로써 교회의 쇄신과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음.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키덜트의 양태와 유사한 문제점을 노출시킴.

 

* 가정교회 운동

홈 처치(가정교회) - 목회자 아닌 평신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 목회자의 사적인 교회부흥 갈망이나 목회자에 대한 급여와 은급 부담이 필요 없는 형태. 가정교회가 하나 하나가 예배.친교.교육.전도.선교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데 전체 재정, 연합예배, 성찬 등의 전례 등은 상위의 교회에 의존하는 형태이다.

교회가 분화해 소구역 별로 평신도 지도자 지도 아래 교회를 이루고 전체 교회는 느슨한 연합 형태로 존재하며 목사는 이런 연합체를 이끄는 리더로 존재함. 미국이 주 정부와 연방 정부가 개벌 헌법과 정부를 운영하나 하나의 연합 국가 시스템을 갖추는 형태와 비슷해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한국 교회의 80% 이상에 이르는 작은 교회들은 자립이 어렵다. 그런데 규모만 작을 쁜 교회가 운영되는 형식이나 방식, 목표는 큰 교회와 마찬가지. 교회의 생존과 부흥이라는 절박한 목표에 쫓겨 지역사회나 주민, 성도들에게 기여보다는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목사와 성도가 교회 성장 지상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조로 보고 한국 일부 교회도 받아들이는 추세. 초대교회의 원형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도 있지만 신학적으로 논란이 있어 한국 교회가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 이머징 교회 운동

포스트 모더니즘을 수용해 교회의 문화적 변혁을 통한 선교를 꾀하는 교회 운동이다. 성도들의 관계와 경험의 공유를 중시한다. 그 목표를 위해 예술을 활용하고, 선언적 교훈적 명제보다는 이야기로 접근하는 성향이 짙다. 다문화적이고 고대 사회의 상징과 세속문화 모두를 거부감 없이 차용해 쓰는 것이 특징이다.

새로운 세대를 상대하려면 전통적인 형식을 넘어 무언가가 필요한 것 아닌가? 교회의 포스트모던 적응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목회의 방향을 개교회 부흥, 우리 교인 중심의 폐쇄적인 것에서 교회 외부를 지향하는 것으로 전환한 형태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레드지브라
- 사창가의 나이트클럽 인수한 뒤 개조해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대중문화를 접목시킨 멀티미디어 예배를 드린다(부산 수영로교회 엘레브).

시애틀 텐트시티 축제
- 노숙자들을 위한 춤추는 파티. 노숙 아이들용 장난감도 준비되고 각국의 음식들도 준비된다.

*  선교교회 운동

교회 내부 사람들의 필요 아닌 교회 바깥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교회 운동이다.

힙합 교회
- 힙합이 생활인 흑인 도시청년들에게 접근.
- 힙합, 하우스 파티, 하우스 언플러그드.
다양성교회
- 다문화를 기본 조건으로 지역사회에 밀착한 목회.
- 지역 예술가의 공간, 지역주민 반상회 터전.
- 지역 노숙자, 지역 아이들 컴퓨터 교실.
- 양로원.요양원 자원봉사.
카페 
- 도박 중독, 약물중독, 알콜 중독 등 치유 지원.
교회연합 페스티벌
- 물물교환, 음악회, 연극, 어린이 스포츠...
교회 교육
- 수프 만들기, 빵 만들기, 반찬 만들기...
- 가난한 가정은 헌금 대신해 기술 교육 받고 물건을 지역사회에 납품함으로써 재능으로 헌금을 대신해.
이민 교회 VS 다문화 교회(모자이크 운동)
길드 형 교회, 직장 신우회, 전원 교회, 심플 처치...

*  수도원 운동

수도원 생활의 영성에 매력을 느끼는 인구가 증가 추세이다. 템플 스테이가 호응 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가 발전시킨 기도원 운동과는 차이가 있는 듯하다. 가정과 사회에서 잠시 격리돼 영성에 집중하는 시간 가지고 ... 때로 공동생활과 노동을 통해 삶의 소박하고 진정한 기쁨 이루려는 신앙운동이다.

1. 도시 중산층 수도원 운동
2.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수도원 운동
- 의료 서비스, 생계 위한 창업 지원, 어린이 사역.
- 성매매 희생자 사역, 에이즈 사역, 소년병 사역.

이밖에도 이후 한국 개신교에 불어 닥칠 위기들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을 바탕으로 한 교회의 위기는 아직 한국 교회에 들이 닥치지도 않았다.

첫째는 주일 성수. 기성 교회에 출석해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 주일성수의 유일한 형식인가에 의문 제기될 것.
둘째 기성교회의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성직의 등장과 안수권에 대한 저항. 
셋째 기성교회의 헌금 형태에 대한 저항.
넷째 목회자의 납세와 직업 소유.

등등 그동안의 교회의 문법을 근본부터 뒤집는 트렌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어디로 갈 것인가?

프랑스 역사가인 샤를 페기는 지적하기를 “교회는 늘 지각하고 숨이 차 헐떡이며 쫓아온다”고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하나의 구호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대의 징표를 읽어라, 교회로서 응답하라 ~!”

시대의 변화를 읽는 것과 목회는 어떻게 얽힐까? 과거 가톨릭교회는 유럽 수입품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며 이에 대한 거부감이 약점으로 작용했다. 개신교는 오히려 자유롭게 한국인의 저돌적이고 속도감 있는 심성에 맞추어 친화력을 높였다.

그러나 다수 국민이 유럽 명품을 선호하는 새로운 사회 풍토 속에서 가톨릭의 수입품 냄새는 오히려 명품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장점으로 바뀐다. 이처럼 시대와 사회 풍조의 변화는 교회의 위기관리와 목회현장에 연관되어진다.

* “교황이 온다!”

겸손과 단순함, 진정성이 담긴 언행, 유머를 섞은 쉽고 구체적인 표현, 그리고 언행의 일치를 갖춘 교황이 등장했고 우리나라에 온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신자유주의의 혼돈 속에서 정신적 영적 인도를 갈구하는 절박함이 있는데 교황이 답을 하고 나선 것이다.

새로운 교회에 대한 즐거운 상상. 한국 교회에는 이것이 없다. 위기를 넘기려면 사람들에게로 다가가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소통 방식이 아니라 관계의 방식이다. 1차 문제는 방향성의 설정이다. 지금 교회의 위기는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신뢰의 상실이 가장 치명적이다. 따라서 우리의 필요, 교회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필요를 채우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 교회 쇄신의 1차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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