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목협 제26차 열린대화마당

A. 들어가는 말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며 사회로부터 누리는 혜택만큼 세상을 섬겨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울하게도 하며 때로는 절망하게 하는 일들이 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북의 대립과 갈등의 심화.대한민국 내의 지역간.계층간.세대간 갈등과 경제적 위기와 양극화 현상, 거기에 더하여 극도의 개인 이기주의와 도덕 불감증에 수반되는 가치관의 상실 등은 위기라고 할 만하다. 교회가 해야할 일은 이를 치료하고 꿰매고 지향할 가치를 창출하고 든든한 사회기반 구축의 역할 감당일 것이다.

그런데 근간에 교회가 스스로 사회를 향한 지도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므로 조롱거리처럼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권 싸움을 내부에서 수습하지 못하고 사회법정에 의뢰하는 예가 여러 건 발생하고 있음은 수치일 뿐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야 할 교회가 그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이런 류의 일들로 도덕적 권위마저 상실하여 사회를 이끌고 갈 사표가 되지 못하고 있음이다. 역사적으로 법관이 공정하지 못하고 종교가 존경 받지 못한 사회는 위기를 맞았음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를 절망케 할 요인이 오늘 우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의 위기의 실체를 점검하고 돌이켜 다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을 인식하게 된다.

 

 

B. 한국교회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1. 외적인 요인

1) 어둡기만 한 한국교회의 미래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의하면 자원고갈(에너지.식량).기후 변화에 의한 대재앙 2030년에 이르러 모든 성장이 멈추게 될 것이며 인류는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려는 몸부림을 치게 될 것이라 하였다.

한국교회도 저출산 노령화의 급속한 진행과 경제위기에 따른 재정의 감소 등으로 사역 약화.선교 동력 저하와 함께 교회의 몰락까지를 염려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며 어쩌면 교회 부도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미래에 직면해 있으며 어쩌면 앞으로의 10년이 몰락과 부흥의 기로가 될 것이다.

2) 이단 사이비 집단의 발호

교회를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를 혼란케 하며 지탄을 받게 되는 대부분의 이단 사이비 집단들은 기독교 교회라는 간판을 쓰며 그 대표자들을 목사라는 호칭을 쓴다. 그들은 기독교도 아니며 기독교 목사도 아니지만 그들의 행태로 인하여 교회가, 그리고 성직자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양상과는 다르게 이단 집단들이 집요하게 그리고 치밀한 계획하에 교회로 침투하여 교회의 지도력을 무너뜨리고 그 교회를 장악하려 한다는 사실에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더 한심한 것은 연합기관 까지도 이단 논의와 시비에 빗나간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3) 반기독교 세력의 교회 파괴 운동

교회가 빌미를 제공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극히 일부의 사건일 뿐이다. 그런데 그 사건을 여과 없이 악한 의도로 선전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보 공유의 틀이 다양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자기를 밝히지 않고 숨어서 총질을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상파 TV 방송에서조차 교회를 해롭게 할 수 있는 방송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바로잡기 위한 언론의 사명이라 하지만 객관성의 상실과 형평성 유지도 차치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방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선교에 치명적 저해요소가 되며 사회에 기독교에 대한 비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이 또한 한국교회를 위기에 빠지게 하는 큰 요인이 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2. 내적인 요인

1) 끝없는 다툼

근래에 한국의 대표적 교단이라 할 수 있는 교단 가운데 두 교단이 교권다툼으로 그리고 연합기관마저 자리다툼으로 사회법정의 재판에 회부된 바 있고 그것은 지금도 미제의 사건으로 진행 중에 있다. 각자의 주장에 의하면 한결같이 자신이 주장이 성경적이며 교단법의 적통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아집이고 독선이다. 그들이 주장하고 싸우는 동안 얼마나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이 상처를 받고 있는가를 돌아 볼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교회를 세우고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 놓은 많은 순교자들을 생각한다면 감히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련만 양심에 화인 맞은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2) 체제의 다원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본래 ‘하나의 교회’이며 우주적 교회는 하나님이 부여하는 ‘하나됨’을 경험하는 공동체이다. 기독교는 각자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는 자생력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것의 순기능은 부흥과 성장이지만 역기능은 교회 분열과 갈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를 대변하는 양대 기관으로 한국기독교총엽합회(CCK)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있다. 때로는 한 사건에 대하여 다른 성명이 발표된다. 예컨대 사형제도에 대하여 한쪽에선 찬성하고 다른 쪽에서는 폐지를 주장한다. 국가보안법과 인권문제.국가안보와 대북문제 등에서도 다른 입장이다. 더욱이 한기총(CCK)은 극심한 내홍을 겪으면서 한국교회연합(CCIK)으로 분열 되면서 연합기관의 대표성의 혼란과 영향력의 감소를 초래하고 있는 반면 대 사회적으로는 힘을 상실하게 되는 면이 있는 것이다.

3) 왜곡된 신앙

한국교회는 전통적인 한국인의 종교심성과 부합된 기복신앙에 기인하여 부흥되고 발전되어 온 일정 부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신앙의 형태가 나와 하나님의 종적인 관계가 주류이며 나와 너의 횡적인 관계는 다소 소홀한 점이 있다. 이런 것들은 다분히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침잠되는 삶으로 이끌게 되며 신앙인의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무관심을 갖게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활과 연결되지 못하는 신앙인을 양산해 낸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한국교회는 민족의 아픔과 함께한 교회이다.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집단이다. 한국교회는 그 어느 기관이나 단체보다 소외계층과 도움이 필요한 곳에 그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교회이다. 이것은 역사적 기록이나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통계에서 입증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분명히 사회의 소금의 역할을 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세상의 등불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오늘에 와서 사회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다른 종단에 비하여 약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교회의 힘이 결집되지 못하고 흩어져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함은 역사적 소명이기 때문이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교회는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당위를 그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허다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긍정적인 면도 있는 것이며 교회가 대내외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교회는 여전히 세상의 소금이며 사회의 등불인 것이다.

C. 한국교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1. 교회론의 재정립 – 거룩한 공동체로

교회는 본래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하나(Holy Catholic One Church)이다. 그 개념들은 결국 ‘거룩함’에 용해 될 수 있으며 그 기조에서 교회의 참된 모습의 원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거룩함을 잠식하는 요인들로 세속화.물질주의.교권주의 등등이 있을 것이다.

안수(安手)받은 교회 직분에 대한 겸손함과 성실성이 요망된다. 조용하지 못한 교회, 교만스럽게 보이는 교회, 혼란스런 모습의 교회는 결코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국교회는 모든 법정 다툼을 즉시 중지하여야 한다. 모든 분열과 분파 활동은 용인 되어서는 안 된다. 연합과 일치를 지향하고 화합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런 노력들을 통하여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Niebuhr와 Williams,의 공저인 「The Ministry in Historical Perspective」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교회사역의 명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Ministry to the changing the world)이라 하였다. 교회가 거룩한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은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함이다. 교회가 자기 자리 찾기에 성공하면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Message)가 위기의 세대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2. 예배의 복원 – 예배공동체로

종교가 성립되는 요건으로 신앙의 대상, 경전, 예전 등이 있는데 기독교 예전은 종교로서의 신비성이 감소되는 추세이다. 감성에 호소하는 예배와 집회는 신비성과 경건함이 많이 희석되고 마치 무대 연출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 예배의 특징을 ①내용 없는 과열된 감정 ②비뚤어진 신비주의 ③바르지 않은 역사관 및 운명론 ④복에 대한 그릇된 생각 ⑤미신적 요소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예배자의 심성 구조상의 문제점이라 한다면 예배의 내용 구조의 문제점으로는 ①고독한군중-관람자적태도 ②Synaxis와 Eucharist의 불균형 ③Church Year(교회력)과 Lectionary(성서일과)의 불통용 ④Diakonia(섬김)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예배 등이 지적되고 있다.

그처럼 자주 그리고 그처럼 열심히 드리고 있는 한국교회의 예배가 과연 예배의 본질에 부합되는 것이며 예배의 기본목표에 도달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이다. 또한 계시로 임하시는 하나님과 신앙 안에서의 인간의 응답이 만나지는 현장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기독교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창조주이시며 섭리자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분명히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만나며, 성령의 도움을 받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 의식적 응답이며 또한 삶의 현장에서의 섬김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확한 예배 복원이 교회의 교회다움의 회복과 신앙인의 사회적 삶의 바른 지향을 통하여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도록 하게 될 것이다.

3. 교회연합과 일치운동 – 하나됨의 훈련

1)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의 전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는 말씀은 매우 단순하고 명료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에 절대가치를 두고 있는 한국교회는 사회의 질타를 받을 정도로 분열을 계속하며 심지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에 이르렀다. 이것을 극복하고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을 성공하기 위하여 먼저 이해하여야 할 것들이 있다.

①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어야 한다.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은 모든 교회와 교파간의 차이를 없애고 조직적으로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혹자는 이 운동을 혼합주의 혹은 신앙적 배교행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운동은 결코 기구적 하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은 교파간 교단간의 대화와 이해의 폭을 넓히며 공통점을 찾아 함께 할 수 있는 사업들을 추진하는 연합운동이며 교리와 장정, 정치제도의 통일을 수반하는 일치 운동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② 성경해석 방법론과 신학적 차이를 극복하여야 한다.

교단이 분열되는 이유가 성경비평주의에 대한 태도에 기인된 적이 있다. 비평학적 성경해석방법의 등장 등으로 한국교회의 보수.진보로 분류되는 학자들이 신학적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신앙에 있어서 성경해석의 문제를 서로간에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이 상대를 일방적으로 단정 짓는 과오를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리와 신학이 교회연합에 장애가 된다는 소리가 들려 온지 오래지만 이에 대한 상호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분열의 벽을 제거하기 어려울 것이다.

③ 복음의 절대성과 교단.교파의 절대성을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개교회를 성장시키려는 지도자들은 소속 교인들에게 ‘자기 교회의 절대적 가치’를 강조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다른 교회와의 차별성이 교회 부흥의 전략으로 채택 된지도 제법 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절대성이 아닌 복음의 절대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 외의 절대성 주장은 모두 오만이다. 개교회와 교단이 경쟁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 존재의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려는 유혹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흔히 ‘장자교단’이라는 용어나 ‘신사참배반대’에 대한 독점, ‘민주화의 화신’이라는 자기 이미지 등과 각기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 교회 정치제도에 대해서도 절대화 하는 것 역시 지양되지 않으면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에는 장애가 될 것이다.

2)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의 당위

교회의 일치와 연합은 시대적 요청이 그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일치에 대한 성경적 요청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선언한다(엡 1:10). 연합의 당위성을 논하려면 교회는 과연 어떤 존재이기에 하나 되어야 하는지를 숙고하는 것은 필수 전제일 것이다.

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표현이다.

교회는 ‘그(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일컬어진다. 이는 교회가 예수님의 인격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실체라는 의미이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세상 사람들이 가시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선포하고 드러냄으로 표현하는 것이 교회라는 뜻이다. 세상은 오직 교회(성도)를 통해서만 예수님을 볼 수 있으며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교회 안에서 세상을 향해 역사하신다. 이는 교회는 예수님의 외적인 표현으로서 그분의 인격과 성품을 닮을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교회는 단순히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이 드러나도록 생각하고 바라보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② 교회는 창조주-피조물 관계의 우주적 모델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

교회가 ‘그의 몸’이라는 표현은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표현한다.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몸’이다. 이는 교회가 자기의 주인과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깨닫고 인식하며, 고백하며 진심으로 따르는 공동체임을 의미한다. 강압이나 부득이함이 아니라, 또한 입으로만 예수님을 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인생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통제와 지배를 받는 존재임을 기쁘게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기쁨으로 주인을 섬기는 진실된 종의 모습이 드러나는 삶이다.

③ 교회는 피조 세계 재창조의 선취 모델이다 : 회복이 교회 안에서 먼저 일어남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 곧 죄로 타락한 피조 세계를 회복과 재창조하시는 주님의 ‘충만’이다. 이는 만물을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합당하도록 회복하시는 예수님의 역사가 먼저 교회 안에서 성취된다는 뜻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과 주권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선포되어 장차 만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교회 안에서 먼저 이뤄짐을 말한다. 상처와 절망으로 무너졌던 심령들이 치유되고, 파괴된 관계가 회복되고, 이기심과 증오 그리고 편견으로 얼룩진 가치관이 사랑과 섬김의 가치관으로 바뀐다. 궁극적으로 죄인과 하나님의 관계가 원수에서 가족으로 본질적.실제적으로 변화된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전 우주적으로 이뤄질 이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교회 안에서 먼저 선취(先取)된다. 이것이 ‘교회는 그의 충만’이라는 표현의 의미이다.

④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교회가 예수님의 ‘충만’이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만물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를 통해 교회에 의해 이루어짐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존재와 능력이 꽉 차게 드러내는 존재로서 온 피조 세계의 회복을 주도하는 주님의 도구이자 실제적인 엔진이라는 뜻이다. 세상을 향한 주님의 회복사역을 실행하는 실제적인 기관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충만케 된 교회를 통해 온 우주의 회복을 주도하신다.

이러한 교회의 정체성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한국교회의 분열에 대해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교회의 분열은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역동적인 역사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한국의 근현대사에 있어 민족에 소망과 위로를 주었으며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감당한 교회의 역할, 그리고 어렵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돌봄 등 많은 일을 했음에도 거듭된 한국교회의 분열로 인해 근래에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는 결코 긍정적이지 못하다.

4. 지도력의 재발견 – 결국 사람이 문제이다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의 지향점은 분열과 팽창의 역기능 극복, 교회정치의 차이점에 대한 이해, 세상을 섬기는 사회봉사를 통한 연합 그리고 공동예배를 통한 하나됨의 회복, 신학적 보편성의 확보, 연합을 통한 남북통일 지향 등이 있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와 같은 일들을 이루어내기 위한 일차적인 책임은 지도자에게 있다. 개교회와 기관의 책임자와 교단 및 연합기관의 대표자 그리고 신학자와 교회 행정가 등의 지도자다움과 지도력에 따라 한국 교회의 오늘과 내일의 모습이 결정지어지게 될 것이기에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1) 神學의 정당성과 信仰의 확실함이 있어야 한다

지교회(개교회)나 교단 그리고 연합기관에는 각기 다른 생각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자기의 의견과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게 된다. 이러할 때에 지도자의 역할이 필요하게 된다. 발생한 사안에 대하여 이해득실에 따라 접근한다거나 정치적으로 또는 전략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그 때는 해결된 듯 하지만 반드시 후유증이 생기고 부작용을 낳게 된다.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준은 신학적 정당성에 맞추어야 한다. 교회의 존재 이유와 그 독특한 사역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없는 지도자는 원칙보다 정치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들며 더 위험한 것은 자기가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결정하고 결행함에 있어 성경적 신앙고백에 근거한 신앙적 확실함이 있어야 한다.

Colin Williams의 『The Church』에서 교회지도력의 세 가지 모형을 제시하고 있는데 ①Abraham Model - Faith ②Moses Model - Law ③Pauline Model - Faith and Institutional 로 설명하면서 바울에게 와서 종합되며 그래도 신앙이 우선이고 조직은 신앙을 위한 도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는 특히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이끌고 가는 지도자는 정치와 조직운영에 대한 지도력도 있어야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신학적 바탕과 신앙적 태도 즉 원칙과 철학이 분명해야 한다. 거기에서 권위가 발생하며 그 권위가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 나가는 근거가 될 것이다.

2) 聖經的 가치를 지키며 歷史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다. 그리고 세상을 섬길 뿐 아니라 세상을 선도하여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부합되도록 역사(歷史)의 방향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이어야 한다. 성경적 가치에 배치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영화 다빈치코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창조론을 배제하고 진화론만 강조하도록 하는 편수지침, 양성평등론에 입각한 동성애자 옹호 등 수없이 발생하는 사태는 분명 하나님의 섭리에 역행하는 것들이다.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이혼율과 저출산, 남북대치 상황에서 극심한 국론 분열과 갈등 및 사회혼란에 대처하는 성경적 가치관을 지키려는 확신이 없이는 교회를 그리고 연합사업을 책임져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어 교회가 기여한 역할은 지대한 것이었음에도 근래에 다소 악의적인 반기독교운동에 시달리는 것은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성해야 할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 땅에서 그리고 열방을 향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수임한 것이다. 정의구현과 소외자 돌봄 통일 지향적 자세가 요청되며 무엇보다 화해자(和解者)의 역할을 감당하므로 이곳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할 수 있는 사명자가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3) 더불어 일하는 지도력을 가져야 한다

대개의 문제는 독단에서 발생한다.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참모의 역할을 뿌리치고 충성만을 요청하는 지도자에게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교회 내의 다툼, 교단의 나누어짐, 연합 사업의 흐트러짐 등은 더불어 할 줄 모르는 아집과 고집과 교만한 지도자들이 만들어낸 결과들이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 제대로 된 소통, 참된 동행이 있다면 한국교회는 보다 많은 결실을 거두고 교회와 사회에서 칭송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지도력의 유형은 여러 가지로 분류하며 그 나름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 지휘 기술성이 강조되며 성과주의를 지향하는 지배성 지도력이 다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이 시대가 요청하는 것은 슈퍼스타(Super Star)가 아니라 더불어 할 줄 아는 지도력을 요청하고 있다. 훌륭한 참모와 진정한 조언 및 조력자를 얻은 지도자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으며 실패할 수도 없는 것이다. 더욱이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라며 더욱 공동사역(Team Work)을 할 줄 아는 지도자가 요청되는 것이다.

4) 信賴와 尊敬을 받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지도자는 공평무사하여야 한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사안을 판단하고 결정함에 있어서 절대로 공평무사하여야 한다. 이는 객관적 판단 기준이 분명해야 함과 동시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야 가능한 일이다. 비로써 구성원의 신뢰와 공감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지도자는 결함이 없어야 한다. 결함이 없어야 자유함이 있고 자유함이 있어야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구성원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이 시대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모든 단체.기관의 제도와 규정이 지도자(長)를 추대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하여 선출하고 당선된 자를 지도의 자리에 앉게 하는 것이다. 그 선거과정에서 상처를 입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흑색선전.금권선거.파벌조성 등 이런 것들이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것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을 때 어느 한 개인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새로워지며 위기 극복의 틀을 이루어 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지도적 위치(자리)에 있는 지도자 보다 그 분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 빛을 발하고 영향을 미치는 그런 어른들(참된 지도자)을 지금보다 더 많이 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

D. 나가는 말

한국교회는 위기에 직면했다. 성장둔화와 반기독교 세력에 의한 무차별 공격, 이단사이비집단의 발호와 교회 내의 잘못된 행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중에서도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도 못하면서 한 없는 교권투쟁으로 인한 교회와 교단분열, 물질만능주의로 얼룩진 교회 정치풍토 등은 속히 해결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도자의 자기혁신과 지도력의 개발을 통해 한국교회는 갈라지는 모습에서 하나되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며 그래서 교회의 본래적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이라고 생각한다.

구약성경 미가서 6장 8절 말씀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공동번역에서 ‘겸손하게’를 ‘조용하게’로 번역하였다. 한국교회가 너무 시끄럽고 요란하다. 조용히 순간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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