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1) 한목협 제18회 전국수련회

1. 들어가는 말

발제자는 얼마 전 교회에서 회의 중 뇌출혈로 쓰러지는 사건을 경험했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CT촬영을 해보니 대뇌안의 기저핵 부위 출혈이었다. 이로 인해 발제자의 오른손과 다리가 마비되는 반신불수 상태가 되었다. 아주 적은 양의 출혈이었지만 몸의 절반이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이 경험을 하면서 문득 오늘의 한국교회가 떠올랐다. 목회자의 각종 추문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다수 목회자들이 헌신과 섬김의 사역에 충실하려 노력하고 있다. 교회를 둘러싼 논란이 매스컴을 크게 장식하지만 대다수 교회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선교와 봉사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 하나가 터지면 마치 뇌 속 혈관이 터진 것처럼 그 파장은 한국교회 전체로 퍼져 교회의 사명수행에 큰 타격을 가하고 교회의 위상을 마비시키고 만다. 목회자 한 사람,성도 한 사람, 교회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한국교회 전체와 한몸을 이루기에 - 비록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외형이 크건 작건 간에 - 교회답지 못한,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언행과 모습은 백배 천배 만배로 증폭되어 한국교회 전체에 어려움을 끼치는 것이다.

저는 요즘 마비된 손가락을 움직이기 위해 낑낑대며 힘을 쓰는 운동을 하고 있다. 이러다 보면 아주 미세하지만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 뿌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지켜보는 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느낌만 들었을 뿐,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한국교회도 많은 이들이 사명감당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문제의 근원을 치료하지 않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의 근원을 확실하게 짚어내고 개혁의 깃발을 든 500년 전 종교개혁, 아니 루터뿐 아니라 그 시기 종교개혁자들의 앞선 노력을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2016년 6월 21일(화) 나사렛대학교에서 열린 한목협 제18회 전국수련회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권혁률 기자(CBS)가 얼마 전 뇌출혈로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으로 인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2. 왜 ‘종교’개혁인가?

요즘 한국교회 안에서는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기념행사에 대한 논의와 준비가 한창이다. 한국교회가 위기상황에 처해있다는 인식으로 인해, 또 한국교회에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할 정도로 대대적인 쇄신노력이 필요하다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에 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큰 실정이라 할 것이다. 이런 전제아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이 과연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점검해보면서 부족하지만 제 의견을 개진해보고자 한다.

우선 이번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필자가 비로소 알게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종교개혁의 원래 용어가 ‘the Reformation’이라는 것이다.1) 최근 들어 종교편향 논란 때문에 ‘Protestant Reformation’이 병용되고 있다.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날 당시 정교일치사회에서 종교개혁은 곧 사회개혁이었다. 가톨릭교회로부터 개신교회의 분리라는 종교적 개혁에 그치지 않고 신성로마제국의 붕괴를 가져온 것. 즉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중세를 끝내고 근세유럽을 형성하는 기폭제가 된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역사적 사건의 귀결인 것이다.

실제로 정치학사전에서도 종교개혁에 대해 “16~17세기 유럽의 기독교권에서 일어난 교회와 사회에 관계되는 개혁운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전유럽적 개혁운동이 ‘종교개혁’으로 번역, 소개되면서 종교내부 즉 교회개혁으로 한정되어 인식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노력은 교회뿐 아니라 교회가 처해있는 못자리인 우리 사회 전반을 개혁하려는 노력으로 보다 포괄적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3. 한국교회의 준비상황

한국교회의 종교개혁 500주년 준비상황을 점검해보면서 드는 느낌은 외형상 다양하고 풍성해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인상이다. 각 교단별 사업뿐 아니라, 각 연합기관에서도 제 각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며 거의 백가쟁명식 분위기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강조할 점은, ‘개혁’에 대한 ‘기념사업’이 아닌, ‘개혁’의 ‘새로운 다짐’, ‘개혁의 실천’이어야 한다는 정신이 기념사업에 철저히 담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으로써 루터의 95개조 격문이 당시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개혁하고 개신교회를 탄생시키는 촉발제가 되었듯이, 한국교회를 개혁하고 새롭게 하는 실천적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각종 캠페인과 토론, 심포지엄은 실질적 개혁운동을 위한 기초작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천’을 도출하지 못하는 토론은 사변적 탁상공론,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힘모아 함께 개혁을 실천해야한다는 것이다. 지금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은 각 교단과 연합기관이 각자 준비하고 있는 모양새임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위해 교단과 연합기관 등 모든 조직들을 총망라한 또 다른 한시적 연합조직을 구성하자는 말은 아니다. 이렇게 한다 해도 별 효용성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교계 풍토를 잘 아는 이들의 중론이다. 즉 한국교회를 전체를 망라하는 종교개혁 500주년 연합기구를 만들어도, 2015년 광복 70주년 연합행사처럼 기껏해야 초대형집회 한번 개최하고 마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큰 것이 한국교회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차라리 네트워크식 연대-예를 들어 한국교회 종교개혁 500주년 공동실천을 위한 연석회의-를 통해 가능한 선에서 공동보조를 취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런 전제 아래 힘모아 공동으로 실천할 내용을 찾아보면 어떨까? 각 교단·단체별 구호보다는, 과거 천주교의 ‘내탓이오’처럼 교회뿐 아니라 사회적 공감도 이끌어낼 수 있는 공동 슬로건을 설정해 보다 임팩트 있는 실천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현재 예장고신 총회는 ‘오직 말씀위에 교회를!’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하고 있으며 예장통합총회는 잠정 주제로 ‘종교개혁 500, 다시 거룩한 교회’를, 예장합동총회는 ‘하나님 말씀에 바로 선 개혁주의 교회’를 선정하는 등 각 교단별로 주제 혹은 슬로건 채택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자체 구호를 ‘나부터 개혁’으로 정한 기독교한국루터회는 ‘나부터!’를 한국교회 공동의 슬로건으로 함께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함께 토론해볼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2016년 6월 21일(화) 나사렛대학교에서 열린 한목협 제18회 전국수련회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권혁률 기자를 대신해 박진석 목사가 원고를 대독하고 있다.

 

4. 종교개혁 정신의 ‘회복’과 ‘발전’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는 데 있어 선제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지금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정신에 올바로 서있는 교회가 맞는지, 종교개혁을 기념할 자격이 있는 교회인지, 먼저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2의 종교개혁’, ‘새로운 종교개혁’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먼저 500년 전의 개혁정신을 제대로 이어받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지적되는 사항은 현재 한국교회는 무늬만 개신교이고, 중세 못지않은 성직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이다. 교회와 사제의 권위 대신 ‘하나님의 은총’과 ‘믿음’을 강조하고 그를 바탕으로 ‘만인사제설’을 주창한 것이 종교개혁인데,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목회자와 평신도를 철저히 구분하는, 마치 중세교회와도 같은 성직중심주의가 만연해 있어 이의 극복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로는, 헌금과 축복을 강조하다 보니 일종의 ‘신종 면죄부’가 등장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요즘 한국교회, 특히 헌금을 강조하는 보수적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십일조로 시험해보라”는 식의 설교가 횡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물질만능주의, 기복주의의 절정판인 중세교회의 면죄부 판매와 유사한 종교적 상황이 한국교회에 번지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신앙고백의 표현이어야 할 십일조가 축복의 수단, 또 다른 기복주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현실에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또다른 면죄부를 파는 형국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이러한 종교개혁 정신의 ‘회복’과 더불어 한국교회가 한국사회라는 콘텍스트 속에서 찾아나가야 할 종교개혁 정신의 ‘발전적 내용’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필자는 이를 3·1운동과 한반도 평화통일운동에서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는 개혁과 회개를 바탕으로 교회의 과제를 도출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명제로까지 발전시켜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오늘의 분단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이 시대 개혁자들의 사명인 것이다. 또 유럽과 달리 다종교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종교와 이념을 떠나 하나되어 헌신하는 것이 이 시대의 분명한 개혁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2019년 3.1운동 100주년과 결합시키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의 한국사회는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신음하고 있으며 교회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봉사적 실천 즉 섬김과 나눔운동에 앞장서는 교회의 모습을 바로 세우는 일 역시 한국교회의 개혁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종교개혁과 교회일치의 문제이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다가 탄생한 개신교회의 역사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같은 정체성 강조가 지나친 나머지 예수님 이래 2천년을 이어온 공교회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극단적 모습이 한국개신교회 일각에서 보여지고 있음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신교회는 역사적으로 초대교회 5대 관구중 하나인 로마관구에서 유래된 서방교회 즉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개혁되어 나온 존재임은 세계교회사가 분명히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초대교회 4개 관구에 역사적 뿌리를 둔 동방교회를 백안시하거나 가톨릭에 대해서도 이단시하는 일부 개신교의 자세는 분명 극복해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교리의 잘못됨이나 차이에 대해서 논하는 것과 교회사적 맥락을 인정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반대로 종교개혁의 의미를 애써 축소시키려는 가톨릭의 태도에 대한 아쉬움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외신 보도에 의하면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할 이유가 없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신앙의 근본적 문제가 아니라 대사 남용 같은 부차적 문제로 교회 열을 초래한 루터의 개혁사상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는 종교개혁의 거대한 물결이 왜 일어났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명 자기반성이 부족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루터교연맹이 주관하는 교회일치 기념 공동예식(10월 스웨덴)에 참석한다고 하니, 가톨릭교회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계기로 교회를 더욱 교회답게 하려는 진지한 대화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5. 나오는 말

지난 2007년 평양대부흥 백주년 기념행사와 2009년 칼빈탄생 500주년 행사 등 최근 한국교회의 주요 기념행사는 당시에는 요란하였으나 지나가고 보니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다. 종교개혁 500주년행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최근 이뤄진 개혁적 성과인 교회세습금지법 제정이나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의 새로운 번역처럼 구체적이고 개교회 현장까지 실제로 확산되는 개혁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교단 선거풍토 개혁과 비신앙적 권위주의 극복, 개교회의 민주적 운영과 투명한 재정원칙 확립 등 구체적 개혁과제를 마련하고 구체적 실천이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신학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의 전시성 잔치가 되지 않도록 젊은층 참여 확대를 위한 고민과 모색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4월 총선과정에서 각 정당들이 내건 슬로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였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 앞에 필요한 슬로건은 “바보야, 문제는 실천이야!”가 아닐까? 한국교회가 개혁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회까지 개혁되는 실천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저는 “뼈를 깎는 자세로 재활노력을 기울인다면 머지않아 온전히 회복될 것”이라는 의료진의 말을 믿는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도 뼈를 깎는 각오로 개혁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온전히 사명을 감당하는 거룩한 교회로 회복될 것을 확실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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