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목회의 길로 들어서고 지역교회 목회의 직에서 은퇴하고 이제 선교사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내게 이 일은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미완성 과제다. 글로 담아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는 목양의 길이다.

50년의 삶을 평생 이 사역에 몸 바치신 지금도 살아계신 99세 되신 아버님의 서재에 걸려 있는 편액에는 목양일념(牧羊一念)이란 사자성어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과거 우리 어른들의 세대엔 가정사역 또는 교회와 가정에 대한 균형 있는 이해 대신 교회가 최우선이었으며, 목양과 교회를 위해서라면 가정과 가족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 과정의 모든 어려움과 희생을 사모와 자녀들은 그 의사와 관계없이 겪을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아버님처럼 목양의 길로 부름 받아 신학을 시작하고 부교역자를 거쳐 개척하여 담임목자로 20여년을 섬긴 후 선교지에서 되돌아보니 여전히 60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 길은 그리 만만하거나 가볍지 않게 보인다. 아니 말할 수 없는 압박감과 부담, 팽팽한 긴장감이 때론 온 몸과 영혼에 엄습해 옴을 느낀다.

도대체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며, 그들을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거룩하며 위대한 백성으로 세운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목회자로 부름 받은 소명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신비에 대해 가늠하지 못한다. 그저 순종으로 묵묵히 이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한 사람을 살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운다는 것은 다름 아닌 목회자 자신의 모든 삶과 생명을 기꺼이 나누며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스스로 보는 내 모습과 그 한계 앞에서 어찌 절망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늘의 시은소(施恩所)에 들어가 새벽마다 울부짖으며 그분의 자비와 긍휼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목양의 길, 목회자로서의 사역은 내 수준과 능력으론 다른 일이나 직업과 병행 자체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하나에만 내 전부를 쏟아 사람을 세우려 해도 번번이 실패와 부족함을 통해 느끼는 자괴감 때문 아프고 괴로웠는데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나 틈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 삶과 사역을 통해 단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으로, 또는 주님의 신실한 제자로 세워졌다면 단 한 점도 과장이나 거짓 없이 그것은 오직 100%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 때문이다. 자랑할 게 없는 인생을 살고, 바울 사도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몸으로 깨닫고 있다. 부디 주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그날까지 내게 맡기신 이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만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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