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숙 이야기(4)

자신을 ‘실격한 순교자’라 말하는
안이숙의 『죽으면 죽으리라』를 읽으면 구구절절이 큰 감동이다.. 8·15 해방과 출옥성도들 이야기는 은혜충만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모질게도 핍박하던 일본은 결국 불심판을 받은 것 아니었던가!

1945년 8월15일.
일본은 하나님이 내리는 불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외쳤던 안이숙은 조국 해방에 깜짝 놀랐다.
한 간수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일본이 항복을 했대요. 그것이 정말일까요? 일본은 미국에 항복하고 조선은 독립국가가 된대요. 천황폐하가 친히 일본의 항복을 방송했대요.” 하고 말했다. 간수들이 지키던 감방 문이 열렸다. 웬일인가. 옆방에 있던 조수옥씨를 만나서 함께 춤을 추며 감옥 안을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했다. 소리소리 지르며 찬송가를 불렀다.

시편 126편을 읊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결국 순교를 못했구나. 순교의 대열에서 떨어졌구나. 자격 부족일 것이다.”라고. ‘낙재생!’ 섧고 분했다.
“아! 하나님은 세상을 바꾸어 놓으셨구나. 이렇게도 홀연히... 쇠사슬도 벗겨지고, 나를 학대하는 자, 나를 미워하는 자, 나를 구박하고 구속하는 자도 다 물러나는구나... 이 쇠문도, 높은 담장도. 아! 그리고 내 죄명도 다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아! 예수를 내 마음대로 믿고, 높이고, 자랑하고, 사랑하고, 따르고 순종하고, 그에게만 충성을 내 힘껏 할 수가 있게 되는구나! 기도도 큰소리로, 찬송도 내 힘껏, 봉사도 내 마음 다 바쳐서 그에게만. 아이구 좋아. 참 좋아.”하며 흥분했다.

8월 17일. “히가시 간수의 말에 의하면 내가 사형 받을 날은 8월18일(일본 당국은 안이숙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을 8월 18일 오전 중에 처형할 계획이었다 한다.)” 그런데 웬일인가?
바로 그 하루 전인 17일 밤 11시. 형무소 문이 열리고 출옥성도들과 함께 안이숙은 형무소를 나왔다. 밖에는 수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사람이 안이숙을 데리고 나오자 출옥 성도들을 만난 교인들은 ‘만세!’를 부르고 찬송했다. ‘예수의 이름 권세여 엎디세 천사들...‘ 죽을 자들이 살아나오는 기적의 순간이요, 감격의 순간이었다. 천지가 뒤집힌 놀라운 역사, 하나님의 간섭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성도들은 출옥성도들을 인력거에 태우고 찬송하며 밤거리를 행진했다.
평양성에 승리의 찬송이 퍼졌다. 숨어있던 교인들도 산과 굴에서 나왔고, 순교자의 가족들은 대성통곡을 했다.
안이숙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었다. 출옥성도들은 안이숙의 집에 모였다. 모두 앉고 서고해서 마당과 방에 가득했다. “형제자매들이 소리를 높여서 출옥 성도들과 같이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찬송이 변해 울음이 되고, 출옥하신 이기선 목사님이 기도를 드리는데 울음바다로 변했다. 감옥에 넘어갈 때엔 28명이었는데 출옥자는 그 절반인 14명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이렇게 출옥의 순간을 소개하고 있다.
안이숙은 일본인 판사에게 호의에 감사인사 드리러 갔다. 그에게 “저는 아무 것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다만...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고 구원 얻으시라고 권면하고 싶어서 왔어요.” 했다. 그의 대답은 생각 밖이었다. “저는 벌써부터 그 신앙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성경은 숨어서 많이 읽었지요. 사실은 조사하기 위해서 읽은 것인데 항복을 한 셈이지요.” 하였다. 아! 하나님의 은혜여. 하나님의 능력이여.

출옥한 목사님들은 전국 교회를 순회하며 부흥회를 인도했다.
교회들마다 회개를 위한 금식을 선포했다. 신사참배를 했던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애통하며 기도했다. 환난과 핍박에도 정금 같은 믿음을 지켰던 순교자들의 피와 출옥성도들의 일사각오 믿음은 한국 교회 부흥의 불씨가 되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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