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8일 오후 3시 34분 캐나다 에드먼턴공항에 도착했다.

한국 시간으로 6월 18일 아침 8시에 광주를 떠나서 고속버스로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오후 3시 45분에 에어 캐나다로 출국해서 비행기에서 하룻밤을 지내 캐나다에 왔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어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했고, 공항에서 4시간을 기다려 에드먼턴 오는 비행기로 여기 도착한 것이다. 광주를 출발하여 거의 24시간 만에 이곳에 왔으니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이곳 시간으로 6월18일 오후 3시 34분. 공항에 둘째 딸(용우)과 아들(은득)이 마중을 나왔다. 엄마는 양팔을 벌리고 딸과 아들을 끌어안는다. “오랜만이다. 고생 많이 하지?” 캐나다 이민 10년이 순탄하다 했지만 그래도 남들 겪는 고생을 다 한 것이 아닌가.

지난 5월, 딸에게서 받은 편지다. “이제 나도 한국 나이로 44살이 되었네요. 이제 흰머리도 제법 많이 나고 (아빠를 닮아서) 눈가에 주름도 많이 잡히네요. 어디 보자. 우리 아빠는 이제 75세, 우리 엄마는 70세... 우와 세월이 참 빠르게 느껴져요.”

딸의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이 젖고 가슴이 먹먹했었다. 지난번 평창동계올림픽에 자원봉사자로 왔지만 평창에서 광주에도 못 내려오고 돌아갔었다. 직장을 너무 오래 비우게 되었다며.

캐나다에 2009년에 들어왔으니 이민 10년이 된 셈이다. 부부가 한국에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왔었다. 나도 목회생활에서 조기 은퇴하던 해였다. 캐나다에 들어와 보니 손자 녀석이 너무 짠했다. 아직 아빠가 들어오기 전이어서 엄마와 단둘이었는데 엄마가 어학 교육을 받느라 아이를 이웃에 맡기고 다녔다. 그때 방문한 나는 아내와 함께 어린 것을 데리고 있으면서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었다. 언어도 안 통하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 아이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때 마음이 심란했다. 한국의 좋은 직장을 버리고 이것이 웬일인가 싶었다. 무엇을 기대하며 이렇게 고생하는가 하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고생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고는 마음을 굳게 다짐했었다.

그랬던 아이가 올가을이면 중3이 된다. 엄마 아빠도 가정과 직장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며느리가 초등학생인 남매를 데리고 달려왔다. 둘다 캐나다에서 출생한 아이들이다. 우리말이 서투르다. 안아주고 반겨준다. 딸네 가족 셋과 아들네 넷이 밥상머리 모였다. 모두들 어찌 반가운지

믿는 자들이면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고백하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다.”고. 그렇다, 지내온 모든 일에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오늘이 있겠는가. 범사에 선히 인도하셔서 지금 여기까지 왔으니 이후로도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합당한 길로 인도하시리라 믿음으로 기도하고 한 목소리로 ‘아멘!’이라 고백한다.

한국을 떠나서 낯선 캐나다에 들어와 사람들과 자연 환경과 생활에 적응하며 뿌리를 내리는 일에 남다른 고생을 했다. “너희들이 대견하다.” 칭찬하며 위로한다.

기도하며 믿음으로 바르게 살며 더 힘써 나가자고.. 

한자리에 모인 가족. 캐나다 에드몬톤에서 2018.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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