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매 주일과 수요일이면
광주에서 새벽에 나서서 소록도까지 달려가 주일예배와 수요일 예배를 인도했었다. 
교역자 한 분이 은퇴하고 자리가 비어 있어서 목사님이 나를 불렀던 것이다.
주일이면 예배를 2, 3회 인도했다.
그 때 권사님 한 분이 주셨던 '꾸깃꾸깃 봉투 하나'가 감동이었다.
그 사랑은 지금도 이어진다. 종종 먹거리며 기름값을 넣어준다.
2014년에 받았던 봉투는 지금도 내 책에 끼워져있다. 버릴 수 없어서.
그때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본다. 나도, 그분들도 건강해서 아직도 이렇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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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준
2014. 9. 15 기독교호남신문

꾸깃꾸깃 봉투 하나

‘찢긴 상처와 애처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록도 주민들, 그들의 손에도 따뜻한 인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록도에 동행해서 나와 함께 예배에 참석했던 빛고을문학반 문우 한 분이 한 말이다. 만나는 교인들 손을 잡고, 반겨 인사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을까. 소록도 구경은 했었지만, 예배당에 들어와 예배에 참석한 것은 뜬금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소록도 선입견은 어떠했을까. 한 맺힌 사람들이 인생을 탄식하며, 눈물로 살아가는 그런 곳이었을까, 아무튼 그들에게 ‘인간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한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으리라.

그렇다. 중병을 앓았던 분들처럼 한센인들도 몹쓸 병을 통과한 슬픈 흔적이 몸에 남았다. ‘치료약이 조금만 일찍 개발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질고의 고통과 슬픔을 온 몸으로 받아야 했던 것이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서 수용소 같은 섬에서 살다가 그대로 죽어간 분들이 많았다. 그들이라고 인간의 오욕칠정 五慾七情이 달랐겠는가. 의식주가 부족하고 불편하고, 인간적으로 소외되고, 여러 가지로 제한된 생활이지만 그래도 남녀가 만나 결혼도 하고, 자녀를 낳고(다는 아니지만), 이웃 간에 서로 돕고, 세상에서 기대할 수 없는 소통이 있는 공동체로 살아왔다.

몸은 병들었어도 영혼은 새벽이슬처럼 맑을 수 있고, 세상 유행과는 멀지만 오히려 순수하여 인간적일 수 있고, 생활이 단순하지만 만족하고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고, 신앙생활로는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는 소망의 사람들 아니겠는가.

무더운 8월 어느 수요일이었다. 광주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해서 11시 넘어 소록도 다리를 건넜고, 11시 40분에 신성교회 수요 예배를 인도했다. 주일과 수요일에 산상보훈 가운데 팔복 말씀을 몇 차례로 나누어 시리즈 설교를 했다. 신앙생활의 근본을 강론했던 것이다. 성경을 풀어서 쉽게 적용하고자 했다.

어르신들이 평균 75세쯤이니, 일흔 하나인 나하고는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체험 공감대가 두터워서, 비교적 소통이 잘되는 편이다. 한국 교회가 눈물과 소망으로 불렀던 복음성가나 찬송가도 불렀다. 이 분들은 과거에 익숙한 편이다.

예배를 마치고는 곧바로 출입문으로 나갔다. 지난번에는 남자들을 만났으니 이번에는 여자 분들과 인사를 한다. 어떤 분들은 밀리듯, 인사도 없이 슬쩍 지나쳐 나간다. 얼굴이나 손을 내놓을 수 없는 장애자들이 그렇다. 그분들까지 붙잡아서 손이나 팔목을 잡고 눈 맞춰 인사를 나눈다. 시각장애자도 마찬가지다. 장작 같이 뻣뻣하고, 낫처럼 허리가 굽고, 고목처럼 얼굴과 몸이 노쇠하지만, 따뜻하고 짜릿하고 정감이 흐른다.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는, 꾸깃꾸깃한 무엇을 손에 쥐여 준다. 봉투 같다. “뭐요?” “아니....” 여비라도 주고 싶어 하는 사랑과 정성이 읽힌다. 받고, 고맙다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항상 앞자리에 앉는 분이라서 이미 눈도 맞추었고, 인사도 나누었던 권사님이다. 성도들의 목회자 사랑과 섬김을 생각하며, 마음 짜릿하고 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올라온다. 감동이다.

이런 감사와 기쁨은 아내와 나누고 싶다. 집에 돌아와 도시락을 싸주는 아내에게 봉투를 건네주었다.  “목사님,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적지만 주유비에 쓰십시오. 말씀의 은혜 감사합니다.” 봉투에 담긴 화폐 한 장, 사랑이 한 가득이고, 눈물 나는 감동 향기이다.

할머니 한 분도 봉지를 건네준다. “내가 꺾어서 말린 고사리...” 소록도 산(産) 말린 고사리와 고추장이다. 사랑하는 교역자를 대접하고 싶은 성도의 사랑, 추석 내내 곱씹었다.

도시락 들고 집사님 댁으로 간다. 주일에는 두 교회 오전 예배를 마치고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된장국 끓이고, 텃밭에서 가꾼 애호박나물에 매콤한 깍두기다. 정성으로 준비한 반찬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기쁨이다.

먼 길 피곤이 순간에 녹아내린다. 예수 사랑, 감사 또 감사.

심령에서 솟구치는 생수 성령
영혼에 흐르는 사랑의 기쁨 감격
하나님께 영광 이웃 사랑, 할렐루야

광주국제기독학교 학생들을 인솔해서 중앙교회 정오기도회에 동참했다.
광주국제기독학교 학생들을 인솔해서 중앙교회 정오기도회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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