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차] 무엇이 하나님 마음에 딱 맞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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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차] 무엇이 하나님 마음에 딱 맞았을까?
  • 백동조 목사
  • 승인 2017.08.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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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교갱협 제22차 영성수련회 저녁집회

사도행전 13장 22절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역대 교갱협 영성수련회에서 저녁집회를 많이 인도하셨던 분은 두 분이셨습니다. 옥한흠 목사님과 정필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 분들의 말씀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년에 한 번이었지만 그 분들의 말씀이 내 영혼에 그대로 스며들고 도전이 되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목사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가 교회를 위해서 있지 교회가 목사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섬기는 종입니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는 내용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정필도 목사님은 강단에 서실 때마다 안 빼놓고 하시는 말씀이 “목사가 행복해야 교회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들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말씀의 성경적 근거가 있는가? 저 말이 신학적으로 맞는가?” 하는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행복에 대한 성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옥한흠 목사님이 “그리스도를 닮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하면 제자훈련을 하면서도 “내가 정말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자신도 그리스도를 많이 안 닮아 있는데 훈련생들을 보면 정말 깝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종자들이 될까?’ 그리고 또 제자훈련하고 한 3년 지나면 풀어져서 ‘저것이 제자훈련 받은 것이여? 안 받은 것이여?’ 의심이 되고 그럽니다. 이런 깨달은 것들을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 정말 행복하십니까? 환경은 힘든데 진짜 예수님 믿으면 행복합니다. 그런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여러분 사기 치는 겁니다. 내 자신을 속이는 겁니다. 내가 기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데 기쁜 소식을 전한다? 이것은 굉장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과 “개혁,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뜻을 아시겠습니까? 그 믿음이 어떤 개념입니까? 진짜 행복하지 않다면 진짜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믿음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예수 제대로 믿는 사람은 환경을 초월해서 불행할 수가 없어요.

오늘 본문을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까 진짜 내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내가 다윗에게 내 뜻을 다 이루게 하겠다.’ 여러분 뭣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을까요? 그 본문 가지고 설교들 많이 하셨지요? 무엇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습니까?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가서 기름 붓는 장면이 있습니다. 삼상16:7에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의 외모를 안 봐. 나는 중심을 본다.’ 그러면서 삼상 16:12절에 ‘사람을 보내서 다윗을 데려왔는데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아니 하나님이 외모를 안 본다는 말씀이나 하시지 말으셔야지 전라도 버전으로 허벌라게 많이 봐부시고만...

이런 성경 해석상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서 먼저 ‘나는 외모 안 본다. 나는 중심을 봐.’ 이렇게 해놓으신 겁니다. ‘얼굴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는 것은 외모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표현해주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문자적으로 성경을 보면 다 성형수술 해야해요. ‘얼굴이 아름답더라.’의 히브리어 단어는 ‘토브’라는 단어로 행복입니다. 이 ‘토브신학’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 나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토브’를 누리는 자의 시가 시편23편입니다. 직업으로는 목동이지만 ‘나의 구주이시고 그 분이 나를 기르시는 목자이시고 그 분이 나를 지키시니 그 분 안에 있는 나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딱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토브’의 상태가 얼굴과 표정을 통해서 드러나는 겁니다. 사실 낙하산하고 낮 짝은 안 펴지면 죽거든요. 목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교회 절대로 안되요. 힘들어서 교회 왔는데 강대상에 서 계신 분이 자기보다 더 힘들어 보여서 ‘오매, 내가 도와줘야 쓰겄고만’ 이렇게 생각하면 무슨 목회가 되냐구요.

사무엘상 17장 11절을 보세요. 사울왕과 이스라엘 공동체가 골리앗과 블레셋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있는지 보세요. 이들은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믿는 척하는 종교인들 이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믿음인데 믿음이 없으니까 떨고 자빠져 있어요. 그러나 다윗의 심령 안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에 블레셋과 골리앗 앞에서 당당합니다.

여기서 봐야할 중요한 것은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희귀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이 있고 그들이 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에 참여는 하지만 믿는 척하는 종교인이 너무 많습니다.

골리앗을 향해서 나아가는 다윗의 자신감을 보십시다. 너무 멋집니다. 오늘 생각해야 될 말씀은 누가복음 18장 8절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을 때 진짜 믿음은 다윗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터져나오는 것이 시편 23편입니다.

저는 모세를 ‘토브’ 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하나님이 봤을 때 진짜 믿음을 보았고 진짜 하나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출애굽기 2:2를 보면 모세의 어머니 요배겟이 모세를 살리는데 무엇을 보고 모세를 살립니까? 여기서 ‘잘 생긴’이 원문으로 ‘토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본 것입니다.

모세가 모세오경을 저작하는데 그것은 어머니 요배겟을 통해서 들었던 구전들 입니다. 그러니까 요배겟이 모세에게 말하기를 너에게 ‘토브’가 보였기에 죽이지 않았다는 것과 천지창조와 인간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 하신 것이 바로 ‘토브’였음을 말합니다. 창1:4에 보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토브’입니다. 창1:10, 12절, 18절 22절에도 ‘토브’하였더라가 나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창1:33에 ‘참으로 좋았더라.’ ‘토브’하였다. 가 나옵니다. 그런데 아담에게 죄가 들어가는 순간 ‘토브’가 무너져 내립니다.

그럴 때 니가 잃어버린 ‘토브’를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무너진 ‘토브’를 회복하는 축복의 언어로 등장하는 단어가 ‘샬롬’입니다. ‘토브’와 ‘샬롬’의 히브리어 어원적 뜻이 동일합니다.

신명기 10장 13절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성경의 모든 메시지는 ‘오늘 네 행복을 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오늘 누리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토브의 답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토브’ 메뉴얼입니다. 율법이나 어떤 말씀이든지 그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오늘의 행복을 위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구조는 1장 1절부터 31장 30절까지는 설교로 되어있는데 이 내용을 여러번 반복합니다. 그리고 32장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33장 1절부터 25절까지는 모세가 각 지파별로 축복하고 34장 느보산에 올라가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임종을 맞습니다. 그 사이에 낀 구절이 26절부터 29절인데 26절에 ‘여수룬이여’가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애칭입니다. 출애굽에서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여인의 후손으로 오시는 임마누엘 이신 메시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성전삼고 처소 삼으시려고 오셔서 나를 그 분의 팔에 안고 계시는 신약시대까지의 메시지입니다. 신명기 33장 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기서의 행복은 ‘애쩨르’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을 하고 느보산에 올라 임종을 맞이합니다. 누구나 중요한 말로 유언을 남깁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우리 같이 구원을 받은 자가 누구냐 하면서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라는 말을 합니다. 행복 의식이 사역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는데 여기는 굉장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복음을 설명한 이후에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그 기쁨이 바로 ‘토브’, 하나님 나라의 정서적 개념입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17장 13절,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합니다. 그 ‘토브’가 순교 당하기 직전의 스데반의 표정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순교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신 그 분이 돌에 맞아서 뇌가 터져 죽어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기쁨을 부어주시거든요. 그러니까 카타콤에 들어가고 감옥에 가도 감당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완전히 연합된 것입니다.

바울 서신의 핵심 키워드는 ‘예수 안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에 믿음의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현재형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까지 시험하는 것을 멈추지 마라는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95개 조항을 보면 정확하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내적 회개가 삶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아닙니다. 사제 앞에서 고백을 하고 어떤 제사 의식을 했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전인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면 구원받았다고 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세요. 그러면 맞았다고 합니다. 이러니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믿음이라는 개념은 모자이크 작품처럼 다양한 면들이 모여서 종합 세트를 만듭니다. 교회 신학 교수님들이 믿음의 개념을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개념을 손에 쥐어주지 않으니까 지적으로 알고 정적으로 느끼고 확신하면 믿음인 것으로 오해했지요. 제대로 믿음으로 이끌지 않으니까 복음을 경험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에 보면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의 주제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천국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성부, 성자, 성령님이 누리는 ‘토브’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 내 안에 거하라, 연합이 믿음이고 회개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15’에 보면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개념으로 몰고 가서 율법적으로 오류에 빠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적인 멍에를 짊어지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낙원의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면서 그냥 소망 삼고 살아가자는 것도 예수님의 가르침하고는 맞지 않습니다. 주기도문의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 나라는 지금 임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전하신 복음의 주제는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여기서도 주제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다음 ‘사도행전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주제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도행전 20: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사도행전은 마무리 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에 관한 것을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거기에 흐믓한 기쁨 바로 희락이 곁들여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개념에 대해서 한국의 대부분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다스리심, 통치에 갇혀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 개념에서 보면 신분과 소속 개념입니다. 예수 안에 있느냐? 흑암의 권세 속에 있느냐? 내가 세상에 속한 자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냐? 가장 우선되는 개념입니다.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 이렇게 말할 때 저는 영국황실보다 탁월한 하나님의 가족이야. 완전 로얄 패밀리입니다. 이것이 어마 어마한 것입니다.

돈이 없다는 것 때문에 기죽을 필요가 없어요. 모든 인간은 알몸으로 와서 알몸으로 갑니다. 아무것도 갖고 가지 못해요. 그러니까 큰 교회를 사역하든, 작은 교회를 사역하든, 육신의 장막을 벗어날 때 누구나 알몸입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섰을 때 너는 나를 위해서 잃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늘에 상급이 많습니다. 받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고생을 많이 하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여러분 부목사 때는 어떻게든지 빨리 당회장이 되고 싶죠. 당회장이 되면 부목사 생활을 즐길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짜입니다.

정말 생각해보면 세상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내 안에 그 분이 계시면 무섭고 두려울 것이 뭐가 있습니까? 진짜 예수님 믿는 사람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 맡아서 고생 하면 할수록 하늘에 상급이 커질 것이고 교인들이 너무 잘해줘서 꽃가마 타면 솔로몬처럼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환경이 너무 좋으면 변질될 가능성이 커요.

목사가 행복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의식을 가지면 너무 행복합니다. (로마서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길 때 하나님이 너무 너무 기뻐하십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제자가 존 파이퍼이고 그 다음이 팀 켈러입니다. 그들은 모두 행복목회 운동을 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70개의 대소요리 문답을 ‘결단문’으로 바꿉니다. 인생의 제1되는 목적은 ‘내가 행복하고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고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면 내가 최선을 다하리라.’ 내가 행복할 때 하나님이 행복해 하시고 내가 슬프고 괴로울 때 하나님도 마음 아파하시는구나. 나의 행복과 하나님의 행복은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존파이퍼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때 예수님은 내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인생의 제1되는 목적과 동전의 한 면이고 즐거워하는 것이 또 동전의 다른 한 면입니다.

바울은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당했는데 언제나 의와 평강과 희락이 흘러나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사람이 진짜 목회자입니다. 목회자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복중의 복이 예수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는 것이고 그 분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4장 18절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으로써 살아야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이웃에게 칭찬을 받느니라’ 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고 ‘너는 소금이다. 너는 빛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흑암의 권세 속에서 바로 네가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 나라의 맛을 내지 못하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낼 수 있겠느냐는 그 개념입니다.

왜 하나님의 로얄패밀리를 세상에 두셨습니까?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델로 두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훈련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줄 수 있도록 모델하우스를 세우는 것입니다. 근데 한국교회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만 확인하고 물질의 복을 받으면 교회에서 왕노릇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20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이 말씀은 음식으로 하나님의 세계 복음화 전략을 무너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보여주고 나누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데 이것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팔복은 마카리오스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이 산상수훈을 하나님 나라와 연결시키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이 누리는 완전한 복, 가장 지고한 존재가 누리는 마카리오스를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옥한흠 목사님은 산상수훈을 ‘하늘에서 온 행복’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십니다. 팔복의 주제는 바로 마카리오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기도문의 주제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주제가 뭘까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와 믿음의 관계를 설명하겠습니다. 요한일서 5장에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 믿는 자에 동그라미 하세요.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그리고 낳아주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 마다 그에게서 난 자, 그에게서 난 자,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 = ‘거듭난 자’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 ‘형제를 사랑하는 자’ 가 같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2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계명을 지키는 것과 믿음은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계명을 안 지킨다면 이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나를 믿는 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믿는 자는 나를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요" 이것이 전부 중첩해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계명 지키는 것을 똑 같이 말하니까 혼돈이 오는데 요한일서 5장 3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있다" 이 둘은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 둘을 분리한다면 말장난일 뿐입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5장 4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님을 믿는 자 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 세상을 이기는 것은 바로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이듯이 내가 그리스도와 완전히 연합이 되었다. 이런 사람은 계명을 지키고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전체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가 있습니까?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대 산맥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이 내 죄를 속량하신 그 십자가 복음 안에서 너도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과 하나 됨 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 바울의 신앙고백이 내 신앙고백이 되면 그 사람이 바로 믿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님 안에서 사는 삶이 믿음입니다. 이 상태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고백을 할 때만 대 계명을 살 수가 있고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때 대 사명을 이룰 수가 있어요.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세상이 두렵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 것이 부럽지도 않아요. 그 사람이 바로 다윗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진짜 믿음의 사람입니다.

히브리스 11은 믿음 장인데 11:33에 보면 다니엘은 당시에 완전히 하나님 안에 있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를 하다보니까 사자굴이 두렵지가 않았어요.

히브리서 11:36에 보면 또 어떤 이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다고 나옵니다. 이들은 스데반 집사와 같이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강도사 시절에 싸우기만 하는 교회에 수습하러 들어가서 피가 쏟도록 열심히 해서 교회를 아름답게 안정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서울에서 목사님을 당회장으로 청빙해 왔습니다.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을 안 알아주는 것을 보면서 내가 꼭 이 목포 땅에 교회를 설립해서 서울 사랑의교회와 같은 제자훈련을 통한 복음적인 교회를 세워서 낙후된 이 도시에 서울 강남의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회를 세우기 원했습니다.

목포에 최초로 프랜차이즈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그대로 듣고 그대로 할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왜 그러느냐면 아무래도 내 설교보다 옥목사님 설교가 더 좋을 것 같아서 제가 전달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곽선희 목사님이 말하길 설교를 잘하고 싶으면 모방을 하라고 했습니다. 볼링, 골프, 탁구도 모방을 통해서 기본기가 형성이 되고 기본기가 형성되면 자기 기량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제 시집간 새댁이 끓이는 된장찌개하고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우리 어매가 끓이는 된장찌개하고 같지가 않습니다. 서울대 대학원을 나와도 못 따라 갑니다. 진짜 고수의 설교, 그것을 잘 반복을 했더니 그 분 처럼은 안되도 약간 비슷하게는 되더라구요.

이번에는 권성수 목사님의 책을 읽고 은혜가 되어서 그 책을 기준으로 한 2개월 동안 설교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옥 목사님을 그대로 밴치마킹했습니다. 배울려면 짜깁기 하면 안되고 그래도 해야 됩니다.

그런 교회를 하리라는 생각으로 13평 아파트 1년에 사글세 110만원 짜리로 1톤 봉고에 처자식을 태우고 가는데 눈물 밖에 안나옵디다. 그 때 예수님, 감사합니다. 13평 아파트에서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할게요.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저를 어떻게 쓰시는지 제가 체험해보고 싶습니다 하면서 사례금 없이 3년 동안 살아보았습니다.

참 우리 하나님은 눈치도 빠르고 귀도 엄청 밝아요. 여름이 되면 달구새끼 백숙이 먹고 싶거든요. 그러면 여름에 심방갔다오면 그것이 와있어요. 그런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신학생 때, 강도사 때, 또 목사 막 되가지고 동료 노회원들 멸시천대를 많이 받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공주의 손을 통해서 모세를 끌어내신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심을 나는 믿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 이 말씀을 읽을 때 ‘아따 예수님이 후카시를 너무 넣어부렀네.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하리라 해서 믿을 라고 했는디 나보다 더 큰 일을 해분다고 하니까 오매, 오매, 후까시가 너무 심해부러가지고 예수님을 진짜 믿어야 쓸란가 믿음이 흔들려 부러요.’ 그래가지고 좀 이겼는데 ‘너희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어도 야 이 산을 들어서 바다에 땡겨불라해도 되야분다.’ ‘오매, 오매, 뻥이 심해도 너무 심하고, 후까시가 심해도 너무 심해서’ 그런데 사실은 정말 산 앞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그 산은 절대로 옮겨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언제나 흔들립니다. 그런데 예수믿고 지금까지 내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그 산 앞에서 기도하면 그 산이 옮겨질 것 같지 않았는데 내가 하나님께 가지고 있는 믿음은 겨자씨 한 알 만큼 흉내를 내는 것 같은데도 그 모든 산들을 다 옮겨주셨더라구요. 성경이 사실입니다.

저는 지금 제가 사는 것이 꿈꾸는 것 같아요. 집사람하고 우리 교회 들어가다가 "여보, 여보, 이교회가 어떤 교회여?" "목포사랑의교회여~" "오매, 오매 이 교회 목사님은 누구당가?" "백동조 목사님이여." "오매, 오매 나네" 하면서 들어가는 겁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길 원하시는가? 아무리 힘든 골짜기여도 하나님을 기대하고 따라가 보세요. 정말입니다. 그래서 산전, 수전, 공중전, 해상전을 거쳐서 사자굴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압니다.

말라기 1장과 2장은 종교인 공동체를 깨우치는 하나님의 몸부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를 통해서 구속 역사가 이뤄지는데 구약시대를 마무리하고 신약시대로 넘어올 때 신앙인은 시므온, 안나, 마리아, 요셉, 세례요한의 부모뿐이었습니다.

예수님 초림 때도 신앙인이 희귀했습니다. 예수님이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는데 재림 때도 진짜 예수 믿는 자가 희귀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가 나오고 일곱 인이 4장에서 떼지는 데 일곱인이 떼지기 바로 직전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미지근하다. 차든지 덥든지 하라는 것이 뭐냐면 진짜 믿음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된다는 겁니다. 놀라운 것은 두아디라교회는 이세벨에게 대부분이 넘어가도 남은 자가 있었어요. 버가모 교회도 니골라당 교리에 넘어가도 남은 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교인은 많고 예배당은 큰데 예수님이 문 밖에 서 계셨습니다. 이 요한계시록에는 믿음을 지키는 자, 지킨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제가 40대 때 열여섯번 부흥회를 간 교회가 있어요. 우리교회는 250명 모이고 그 교회는 2,500명 모이는데 60대 되시는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백 목사님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저는 심각한 기도제목이 있는 줄 알았어요. 기도제목은 ‘나, 예수님 잘 믿게 해주세요.’ 그 때는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내가 그 나이가 먹어가면서 보니까 그 어른의 기도제목은 최고 였습니다.

그래서 한경직 목사님이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한결 같은 말은 ‘예수 잘 믿으세요.’ 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것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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