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예수님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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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예수님의 관심
  • 정연철 목사
  • 승인 2002.08.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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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0) 교갱협 제7차 영성수련회 새벽기도회

마태복음 25장 23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각자의 달란트 대로 쓰십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우리의 목회현장에서 깊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무엇인가? 주인이 먼 나라를 가면서 종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각각 달란트를 맡겨주고 갔다가 주인이 다시 돌아와서 셈하게 되는데 여기서 나타난 주인의 관심이 뭐냐하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했음에 내가 많은 것으로 맡긴다고 하는 이 말씀입니다. 문제는 주인의 관심입니다. 오늘 우리를 불러주신 분이 주인이십니다. 주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관심이 무언가. 우리는 목회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따라갈 때가 많습니다. 비교의식을 가질 때가 많아요.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에 대한 관심은 멀리 둘 때가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세상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큰 것을 원합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 목회현장에서 우리의 관심이 뭡니까? 큰 교회를 갈망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와 같이 큰 교회를 목회할까? 모든 목회자들이 그 같은 꿈과 이상을 가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목회에서 주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큰 것을 원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높은 이상을 원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외적인 것입니다. 어느 학교를 나와서 어느 학위를 가지고 어떤 목회자 밑에서 자라야 그 목회의 앞길이 열린다는 것을 가집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것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시골에서 목회하는 목사님께 용기를 줍니다. 사람의 관심은 작은 것에다 둘 줄 모르고 자꾸 큰 것에다가 비교의식을 가지고 그걸 따라가려고 합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주님이 큰 것을 맡기기 원합니까? 오늘 큰 교회 목회하는 목사님들은 과거에 지나간 목회사역에 보면 그만큼 어려운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들의 눈물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고 몸부림이 있었고 그 과정이 바로 주님의 관심에 인정을 받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큰 목회현장을 맡기신 것이지 처음부터는 그렇게 큰 것을 맡기지 아니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주님이 원하는 목회사역보다는 어떤 사람을 추구하는 목회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교갱협에 속한 이건영 목사님이나 김영계 목사님이 저하고 다 동기입니다. 같이 신학을 공부할 때에 저는 그분들의 얼굴도 잘 몰랐어요. 어느 날 보니까 동기더라구요. 왜 몰랐느냐 하면 저는 시골에 파묻혀서 교회일 하기에 바빴기 때문에 학교를 가도 제일 뒤에 가서 앉았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회로 돌아오는 겁니다. 그 때 제가 섬긴 교회는 기성교회에서 개척을 해서 실패한 교회였습니다. 기성교회에서 많은 목회자를 보내서 그 교회를 성공적인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했지만 그곳 사람들이 완악해서 도무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교회를 후암제일교회에서 인수를 하였습니다. 후암제일교회에서 인수한 것은 그곳에 후암제일교회 공원묘지가 있어서 그걸 관리도 할 겸 그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이학인 목사님이 계셨고 그 후에는 이용걸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많은 목사님이 그곳에 파송해서 오셨는데 교회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교회 건물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십자가를 달 수도 없었는데 첫째는 사람들이 완악했고 두번째는 허가가 안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후암제일교회에서도 그곳의 사역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가 제가 청계산 기도원에서 이용걸 목사님과 잠깐 시간을 가지는데 이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런 곳이 있어서 기도하는 목사님을 모시고 싶은데 잘 아는 분이 있느냐고 하세요. 그래서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가운데 어느 날 아침에 주님이 저보고 "네가 가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주님, 그곳은 훌륭한 목사님들이 다 가셨다가 그냥 온 곳인데 제가 어떻게 그곳에 가서 그 완악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자꾸 저보고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보따리를 싸서 처음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주일날 강단에 섰는데 교회가 세평 짜리 기도회 처소였습니다. 십자가도 없고 부락은 70호 정도 밖에 없는 곳입니다. 알았더라면 이곳을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한 번도 그곳의 환경과 여건을 살피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무조건 그곳에 갔던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강단도 없는 곳에 서서 설교를 하는데 교인이 한가정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역사는 10년 이상 됩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다녀가셨습니다. 한 가정을 데리고 설교를 한다고 하는 내 자신이 따분하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하고 그렇게 한가정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났는데 조금 있으니까 발자국소리가 들리고 마을의 청년들이 와서 저를 끄집어내서 마당에다가 개 잡듯이 잡아패는 겁니다. “이 젊은 친구 왔으면 마을에다가 신고를 해야지 어디 겁없이 이곳에 복음을 전하느냐. 전도사 양반.” 그러면서 얼마나 맞았는지요. 힘이 없어서 맞았겠습니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런 고통과 그런 아픔이, 경기도 광주의 양지교회라는 곳에서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신학교를 다니면 차를 다섯 번 갈아타야 했습니다. 그리고 5년간 사역을 하면서 새벽기도를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새벽기도 4시에 하고 10리를 걸어서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걸어나와서 광주에 가서 차를 타고 성남 가서 차를 바꿔타고 하면서 총신대학까지 가려면 다섯 번씩 차를 갈아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도 졸업할 때까지 새벽기도를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고 한이 없지요.

주님 앞에 제가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이왕 이곳에 저를 보내주셨다고 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 집들은 저렇게 호화롭게 잘 지어놓고 있는데 하나님의 교회가 이래서 되겠습니까? 하나님 성전을 짓게 해주세요. 성전을 지으려면 먼지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는 산에 가서 3일간 금식기도 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세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하나님의 응답을 듣는 가운데서 목회에 자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지역에서 제일 부잣집가정의 어른이 예수 믿고 돌아와서 그 아래 사람들도 다 예수 믿도록 하나님 허락해주세요. 그 가정에서 사람이 미치든지 암병이 걸리든지 교회에 나오지 않고는 안되는 환경으로 만들어주세요.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해주세요.’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 지역은 손씨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달 정도 기도하니까 기별이 오는데 그 가정에 혜림이 할머니라는 분이 암으로 서울의 원자력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겁니다. 그 다음 소식이 들려오기를 가망이 없다는 겁니다. 그 다음 며칠 있으니까 묘지를 보기 위하여 사람이 이 산 저 산 다닙니다. 나중에 보니까 그 혜림이 할머니께서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이제는 임종의 때만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 때 제가 바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구나 싶어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그 며느리 되는 분이 물을 떠서 저한테 뿌립니다. 재수없게 어딜 남의 집에 들어오느냐고, 그리고 한 일주일 후에 두 번째 가니까 소금을 가지고 뿌립니다.

그 다음 세 번째는 제가 가지 않고 그들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학교를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거의 밤12시가 됩니다. 막차는 끝나고 광주에서부터 거기까지 걸어와야 됩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인데 그 혜림이 어머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도사님, 지난번에는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저희 어머님께서 전도사님을 뵙자고 합니다.” 그래서 가보았더니 그 할머니께서 비쩍 말라서 고기를 말려놓은 것 같은 정도인데 숨만 끊어지면 죽는 겁니다. 새까맣게 타가지고 방문을 여니까 냄새는 얼마나 고약하게 나는지요. 가까이 갔더니 그 할머니가 자기도 예수를 믿으면 살 수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예수만 믿으면 삽니다. 예수만 믿으면 삽니다.” 그랬더니 살려달라고 저의 소매를 붙잡고 놓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혜림이 할아버지를 불러서 “이 할머니께서 예수 믿으면 사는데 조건부가 있습니다. 앞으로 열흘간 기도하면 사는데 열흘간 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되 손씨 문중의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아침저녁 예배를 열흘만 드리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고쳐주십니다.” 그랬더니 문중에 상의해보고 연락해주겠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연락이 오는데 조건부가 만일 열흘간 예배를 드려서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할거냐는 겁니다. 교회가 없어지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교회가 없어지기를 바라니까요.

지금 같으면 그렇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무슨 맘을 가지고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때로는 무식해야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 정신을 가지면 못하거든요.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살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왜 그 가정에 열흘을 작정했느냐 하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비록 열흘간 복음을 전해서 이 병이 낫지 않더라도 저들 앞에 제가 복음을 전할 기회는 있었지 않느냐? 저들이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했는데 이 열흘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가? 그걸 전하는 것만으로라도 제 책임을 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열흘간 복음을 전했습니다. 문중들을 다 모아놓고 교회는 작아서 못들어오니까 그 댁 큰 마당에서 듣든지 안듣든지 아침과 저녁이 되면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런데 9일이 되어도 기별이 없는 겁니다. 내일은 작정된 마지막 날인데 그 날이 바로 주일이었습니다. 9일간도 기별이 없는데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저는 도망가려고 보따리를 싸놓았습니다. 내일 저녁까지 예배드리고 아무 기별이 없으면 거기 있다가는 맞아죽을 건 뻔하니까요. 주일날 아침에도 다시 예배를 드리고 간절히 기도해주고 왔습니다. 예배시간이 11시인데 조금 있으니까 두 분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지나가는 분들이 시간이 되니까 예배를 드리러 오는가 보다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고치지 못한 암환자, 그 할머니께서 며느리의 손을 붙잡고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영혼구원 아닙니까? 오늘날 목회를 하면서 우리의 관심이 뭡니까? 자꾸 큰 교회 바라보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가진 학벌에 위축되지 말고 주님이 원하는 관심이 영혼구원인데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면 우리의 사역이 달라집니다.

두번째 주님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할 줄을 모릅니다. 어떻게 하든지 큰 것, 내가 어떻게 해야 저런 교회를 목회할까? 내가 어떻게 해야 저런 차를 탈 수 있을까? 큰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큰 것에만 여러분이 초점을 맞추었지만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 영혼을 데리고 5년간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영혼을 데리고 목회하는데 유혹이 왔어요. 무학교회 뒤에 성신교회인가 성산교회인가 모르겠어요. 그 교회 은퇴할 목사님께서 저보고 담임목회자로 세우기 원하니 설교하러 오라는 겁니다. 아직도 신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었는데 제 생각에 ‘야, 나도 저런 교회에 갈 수 있구나!’ 하고 마음이 흥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을 보러 가서 설교를 하는데 그만 선풍기가 돌아가는 바람에 원고가 날아가서 밑에 떨어져버렸습니다. 난감했습니다. 시골에 묻혀있던 전도사가 서울 장안에 들어왔는데 그래도 설교를 통해서 뭔가 좀 은혜를 끼쳐야겠는데 준비한 설교 원고가 날아가 버렸으니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그런데 지혜가 옵니다. 너의 보고 들은 것을 전하면 되지 않느냐. 네가 만난 예수를 전하면 되지 않느냐. 그래서 통성기도를 시키고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들의 마음이 열리고 아멘 소리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통성기도를 시켰더니 교회가 떠들썩합니다. 설교를 끝내고 당회실에 들어갔는데 나보고 결혼했느냐고 물어요. 저는 아직 결혼 안했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하고 목사님하고 상의를 하시고 제가 나왔습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오늘날 우리 목회자가 작은 곳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도시냐, 시골이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크고 작은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것을 맡긴다는 겁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내가 어떤 목회현장에 있든지 시골도 좋고 도시도 좋습니다. 지금 개척을 해도 좋습니다. 그곳에서 나에게 맡겨주신 그 목양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가, 얼마나 헌신하는가? 이게 바로 주님의 관심입니다.

그 곳에서 5년간 사역을 하면서 교회도 짓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지은 역사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교회를 지을 수 없는 네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상수도보호지역, 자연녹지, 그린벨트, 군사보호지역” 이 네 가지로 묶여서 법이 바뀌기 전에는 절대로 교회를 짓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능치 못한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법도 만드십니다. 서류를 갖추어서 중부 면사무소에 접수를 시켰는데 여섯 번 반류가 되었습니다. 조건은 똑같습니다. 위의 네 가지 때문에 교회를 건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에 접수를 하러 갔더니 면직원이 전도사님 당신도 사람이냐고, 안되는 것을 왜 자꾸 접수를 시키느냐고 화를 냅니다. 그래도 광주군청에 한번 내보라고 하고는 제가 갈 곳은 기도원 밖에 없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또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기도할 때는 방석 깔고 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그저 응답이 올 때까지 나무뿌리를 붙잡고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보시옵소서. 사람이 못하는 것 하나님이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되겠습니다. 저 무지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게 해주세요.’ 그렇게 3일간 기도를 마치는데 마음 속에 기쁨이 넘치고 즐거움이 넘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집으로 내려오는데 한 10시가 되었어요. 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나면서 “전도사님 아니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제 찾아오니까 안 계시던데요.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빨리 지으세요.” 해서 일곱 번만에 허가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법을 바꿔주시더군요.

문제는 주님의 관심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를 짓고 5년의 세월이 흘러가면서 경기도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와서 마음에 끌리는 대로 경남 양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는 통도사가 있고 대원사가 있고 그 아래 법우사가 있습니다. 총신 졸업반 때에 졸업을 하고 3월 28일에 그곳으로 임지를 옮겼습니다. 그곳에 갈 때도 한 가정만 보고 갔습니다. 그 한 가정의 집안에서부터 예배를 드리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20년째 목회를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뭔 줄 압니까? 작은 일에 충성하니 큰 것을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더라도 절대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은 부목사로 계셨는데 담임목사님께서 하루에 심방을 30가정씩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부목사님은 심방할 가정이 없는 겁니다. 명령은 내려졌기에 안할 수는 없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 5시가 되면 교회에 들어와서 허위 보고서를 썼습니다. 지금 그 분의 목회사역에 길이 열리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가 있습니다. 담임목사의 마음은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이유를 붙여서 피해갈 수 있지만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전도사든 부목사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관심입니다.

제가 양산에 개척할 당시에는 비록 한 가정이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그 영혼을 귀중히 여기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워놓았더니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또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한 영혼을 바로 키우지 못하고 바로 세우지 못하면 그 한 영혼까지 다른 곳으로 보내십니다. 주님의 관심은 큰 것이 아닙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과부가 드리는 동전 두 닙입니다. 그게 바로 주님의 관심입니다. 이것을 바꾸기 전에는 우리의 목회에 하나님의 복을 받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도시면 어떻고 시골이면 어떻습니까? 교인이 많고 적은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맡겨준 그 영혼에 대해서 목회자로서 그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바로 세우고 있느냐 그것이 우리 주님의 관심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그 영혼을 맡겨주셨으면 그 영혼을 실족시키지 아니하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땀흘리고 수고하는 대가가 있을 때에 목회를 축복해 주십니다.

양산에서 목회한 지 20년이 되면서 처음에 그곳에 가서 개척해서 목회를 할 때에 고신 교단으로부터 그쪽 교인이 자꾸 오니까 때로는 이단이란 소리도 듣고 때로는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소리도 듣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게 하는 목회를 하다보면 비방을 받기도 하고 원성을 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주님이 기뻐하는 것에 목회의 초점을 맞추어가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점점 교회를 부흥시켜 주십니다.

지금 교회를 건축하는데 돈 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저는 교회 건축을 하기 위해서 당시 출석교인이 400명 정도 밖에 안되는데 1,850평 교회를 건축을 했습니다. 돈은 작정한 헌금이 4억이었습니다. 건축헌금을 마련해 놓은 것이 4억이었으면 좋겠는데 작정한 것이 4억이었습니다. 그 4억 작정한 것을 가지고 52억 공사를 해냈습니다. IMF를 맞아서 교회를 건축하다가 중단이 되었었는데 교인들까지도 원성이 높았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없으면 없는대로 교회를 짓지 저렇게 크게 지어서 무슨 망신이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문제를 어느 누구하나 나서서 해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은 제가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원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서 금식을 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주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10일 작정하고 올라가서 7일째였습니다. 교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내려가서 도착한 우편물을 하나둘 정리를 하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국제종합토건의 상무님이었습니다. “목사님, 어저께 전화하니까 안 계시던데요. 내일 회사로 들어오시면 저희가 포기각서를 써 드릴 테니까 다른 업자를 선정해서 건축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는 겁니다. 건축업자가 건축을 하다가 부도가 났을 때도 그 분들이 포기각서를 써주지 않으면 다른 업체가 손을 못 댑니다. 그래서 다른 업체에서 지으려고 해도 못 짓는 겁니다. 그 전화를 끊고 나니 우리 주님께서 저보고 그래요. ‘사랑하는 종아,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기느니라.’ 저는 그 때 이 긍휼이라고 하는 말이 실감나더군요.

목회자가 하나님 앞에서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4년 8개월만에 건축이 이루어졌고 계속적으로 교회가 부흥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회를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회는 어떻게 보면 너무 쉽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관심에만 들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신뢰를 받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너에게 맡겨도 감당할 수 있구나 하는 주님으로부터의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알아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인정받기까지는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40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하다보면 목회를 자기 마음대로 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은 자기에게 자유가 없습니다. 종은 주인의 뜻에 순종하면 되는 겁니다. 헌데 때로는 종이 주인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한가지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저희 교회에 34세 된 여전도사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면서 이 여전도사가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습니다. 서원의 내용은 ‘이 성전을 바칠 때까지 시집도 안가고 내게 주신 사례들을 이 전을 위해서 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은 이 성전이 완공되고 입당드릴 때에 제일 좋은 배필을 허락해 주세요. 두 번째 소원은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님께 주례를 받기를 원합니다.’ 이 두 가지의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입당예배는 1월 중순으로 정했습니다. 1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부부가 예배를 드리고는 저한테 묻기를 이 교회에 나이 많은 처녀 전도사가 있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분들이 그 여전도사를 보고 가서는 그 다음날 저한테 전화가 와서 사돈을 맺자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헌신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헌신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한 알의 밀알이 되고 소금이 되어 녹아지면 하나님은 그 대가를 틀림없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입당예배 드릴 때에 옥한흠 목사님께서 오셔서 주례를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결혼해서 중국에 선교사로 가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점진적으로 큰 것을 맡기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농어촌교회에서 이곳에 오신 분들, 개척교회에서 수고하다가 이곳에 오신 분들, 자꾸 높은 데에 뜻을 두지 마세요. 주님께서 나를 주의 종으로 불러주셨다고 한다면 내 인생은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양산에서 목회하는 중에 세 군데에서 목회유혹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방배동의 동광교회인데 개혁측입니다. 그 분들은 제가 가기만 하면 교단을 합동으로 바꾸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사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진주 도동교회입니다. 그곳의 장로님들이 주일마다 저희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그 교회로 오면 원하는 것은 다 하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곳도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세 번째는 대구의 서문교회에서 저보고 오라고 해서 6개월을 씨름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유혹을 받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유혹이고 시험입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그곳에서 충성하지 못하면 다른 곳에 가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절망과 여러가지 갈등을 가지고 위기에 직면해있는 목회자님들, 다시 자신의 목회현장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맡겨주신 영혼들을 잘 세우시기 바랍니다. 세우는데는 눈물이 있어야 하고 아픔이 있어야 하고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본문말씀으로 들어가 보면 칭찬받은 종은 착했습니다. 목회자는 착해야 합니다. 착하다는 것은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요령 피우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작은 일을 맡겨주었더니 잘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거면 다 되는 것 아닙니까? 더 이상 우리 목회자가 바랄것이 뭐가 있습니까? 나를 불러주시고 세워주신 그 주님께서 나를 인정해 주신다면 무슨 큰 교회가 부럽고 박사가 부럽겠습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날이 분명히 옵니다. 그 때 우리는 두 가지 부류로 나뉘어집니다. 충성된 종과 불충한 종입니다. 우리 모두의 사역이 충성된 종으로 헌신하고 섬기셔서 교회가 새로워지고 부흥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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