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19) 교갱협 제8차 영성수련회 선택특강

I. 새 교회 건축을 위한 개념적 정리: 자유항목 다섯 가지

새로운 시대의 열린 신학은 교회건축에 대한 개념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행해진 교회 건축들은 권위와 관습에 얽매여 있었던 경우가 빈번하였으므로, 진정한 진리를 통해 자유를 누리려는 신자들을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가두는 공간이 되곤 하였다. 진리를 알고 복음안에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신자들과, 그 성도들이 베푸는 사랑을 함께 누려야 할 이웃들을 위하여 교회의 건축물은 어떤 요인들로부터 자유하여야 하는가 ?

 

1.1. 열악한 교회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 그 윤리적 측면

오랫동안 근검과 청빈의 정신은 개신교 신앙의 중요한 미덕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런데 그 정신은 자주 궁색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많은 교회 내의 신자들은 교회 건물과 시설의 궁색함을 선호하고, 그러한 불편함을 통하여 오히려 청교도적 윤리의식을 즐기기도 한다. 게다가 비신자들까지도 그러한 맹목적 청빈함을 교회에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적 본질을 비껴간 종교적인 체면과 관계한다. 오늘날 한국인의 주거 문화와 작업 공간의 질은 지난 수 십 년 전의 상황에 비해 엄청난 진보를 거듭했다. 그런데 비단 교회당에서만 열악한 과거의 건축환경을 고수하라는 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기독교 내부의 개혁적 윤리에도 반드시 부합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신자들에게는 주거나 일터만큼이나 중요한 생활 공간인 교회가 기능적으로나 미학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건축의 목표 또한 열악한 환경의 제약들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려는데에 있다. 라브리(l'abri : 쉘터, 피난처)라는 말이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교회건축물들이 과연 영적이고 육체적인 피난처의 역할을 잘 담당하고 있는가?

상가의 일부를 임대한 열악한 환경의 교회.
단정하고 실용적인 공간과 형태를 확보한 죽전교회.

 

1.2. 신전개념에서부터의 자유 : 그 신학적이고 형태적인 측면

오랫동안 교회 건축의 모델은 구약성경에서 표현된 성전의 형식을 참고하거나 헬레니즘 건축문화에서 그 힌트를 얻는 경향이 잦았다. 그래서 유럽의 오랜 고딕성당들을 보면 대부분 이러한 신전 건축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신전의 형식을 따르는 구미의 교회건축을 추종하는 한국의 교회들은 인습에 젖어 오랜 세월 해 오던 대로 그저 비판 없이 반복해 온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신은 사람이 만든 건물에 갇혀 있지도 않을뿐더러 교회건물을 너무 성물화 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이제 교회의 건축적 관심은 신을 위한다는 논리에서 벗어나 신자들, 즉 사용자의 삶 중심으로 변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건축은 결코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인간, 그 신자들의 삶을 돕고 지원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신전, 즉 신이 임재하는 특정 장소, 즉 신의 집으로 인식하는 한 교회 건축 작업에 있어서 진정한 개선이 어렵다.

인체 스케일을 넘어선 이집트의 룩소르 신전.
완전한 구형의 이상을 추구한 로마의 판테온 신전.

그래서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건설되고 있지만 그 대다수는ㄴ 왜곡된 형태와 불합리한 기능을 지닌 뾰쪽 탑의 습성에서 거의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한 건축물들은 대부분 중세 고딕 성당의 외부형태나 평면배치를 무비판적으로 따른다. 하늘로 향하던 그 옛날 고딕의 신성한 상징적 충동은 오늘날에도 수없이 그릇되고 왜곡된 조형적 형태들로 변질되고 있다. 개 교회 나름대로 지닌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으나 한국의 현대 교회는 최소 건축의 기능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첨탑의 외향적 효과만이 빈번하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그들 예배당 첨탑의 높이와 규모의 화려함으로 신의 권위를 대치하면서 혹 또 다른 중세를 향하여 어두워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 자체가 바로 실용성의 윤리에 따라 교회를 건축해야만 하는 근거가 된다.

프랑스 초기 고딕의 세느 발레 성당.
이태리 밀라노 대성당의 화려한 첨탑.

 

1.3. 장식적인 전통으로부터의 자유 : 그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측면

로마네스크나 고딕,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들을 보면, 그림이나 조각으로 성서의 내용을 묘사해 두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종교개혁 이전, 성직자들만이 성서를 접할 수 있었던 암흑기 시대의 산물이다. 이 시대의 평신도들은 교회의 벽이나 천장에 묘사된 그림을 통하여 성서에 관한 내용을 희미하게나마 읽을 수 있었고, 벽체에 조각되어 매달린 성상들을 보고서야 겨우 천국과 지옥의 살벌함을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모든 신자들이 성서를 각자 여러 민족의 뚜렷한 언어로 읽으며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회화나 조각에 의해서 성서의 내용를 이해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개신교 교회건축에서는 성상의 형태적이고 장식적인 가치보다 공간의 그 기능적인 미학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건축에서는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대칭의 미학보다 실용성에서 비롯된 균형의 미학을 선호하고, 장식적인 것들로부터 자유하여 기능미를 우선하여야 할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세부조각.
화려한 중세 교회의 한 면을 보여주는 스테인드 그래스.

 

1.4. 권위적 예배의식으로부터의 자유 : 그 기능적 측면

파이프 오르간 음향의 화려한 울림과 어울렸을법한 가늘고 긴 주랑의 공간이나 높고 먼 강대상은 교회건축의 가장 오래되고 흔한 형식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현대 교회의 말씀 중심이나 교제 중심의 사역과는 전혀 무관한, 아주 낡고 구태의연한 제례형식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의 예배당은 경건할 뿐만아니라 동시에 역동적 공간이어야 한다. 회중이 더 이상 관람객이 아닌 예배를 드리는 신자 모두가 능동적으로 참가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교류의 장소이어야 한다. 교회는 고독한 개인들이 어떤 신비적 숭배의 경험을 찾거나, 멀리서 집례자의 행동을 쳐다보는 정적이고 장식적인 자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수직 기둥의 숲이 늘어선 긴 회랑으로 형성된 장축의 공간보다는, 친밀한 분위기를 가진 짧은 거리의 단축 평면이나 부채꼴의 형식이 오히려 요구되는 것이다.

동서양을 무론하고 예로부터 엄숙한 공간의 조성은 항상 빛의 절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만들고, 일부 중요한 조각이나 단상에만 빛을 강렬하게 떨어지도록 조작하는 방법인데, 신자들의 종교심을 인위적으로 유발시키려는 건축적 전략이었다. 물론 건축물 내부에서 자연광의 관리는 가장 중요한 작업중 하나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예배의 기능이 무시되고 제례의식의 분위기만을 위해 어두운 내부를 만들 수는 없다. 예배실은 마치 밝고 쾌적한 강연실처럼 건축되어질 필요가 있다. 현대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퍼포먼스를 효과적으로 수용하려할 때, 밝은 예배실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 된다. 그리고 소위 대예배 중심으로만 고려되어 왔던 중앙 집중형 본당보다, 이제는 풍부한 예배방식이나 소규모 집회, 멀티풀 기독교 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의 부속공간들로 균형있게 구성해가야 할 것이다.

고딕 성당의 장축 평면.
마키의 동경 예수 교회의 밝은 실내외 전경.
마키의 동경 예수 교회의 밝은 실내외 전경.

 

1.5. 비합리적 계획으로부터의 자유 : 그 실제적 측면

제대로 준비되지 않고서 충동적으로 시작되는 교회건축은 많은 내부의 구성원들을 시험에 빠지게 만들뿐 아니라 엄청난 시행과 착오를 경험하게 한다. 말씀에서 강조한 바 대로 망루를 짓기 전에 합리적이고 엄밀하게 모든 측면을 잘 따져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효율적이고 정확한 기획은 재정에서의 실질적 절감과 만족할 만한 결실을 맺는 지름길인 것이다. 그러나 교회 건축의 시작을 우리가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교회가 한마음으로 준비할 때, 아주 미약한 교회도 나름대로 거뜬히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이루어 낼 수 있고, 큰 교회들도 놀라울만한 규모를 잘 감당해 내는 것을 본다. 다만 ‘무대포 정신’을 믿음으로 여기고서 잘 기획하지 않고 서둘러 시작하는 만용이 위험할 뿐이다.

 

1) 올바른 면적 규모 산정의 상식

필요한 실 면적 이외에도 무시되면 안될 공용의 공간이 교회의 경우 전체 면적의 약 20 % 정도 가산되어야 함을 알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면서 교회라는 집회시설이 갖는 특성에 따르면 곳곳에 넓고 높은 홀과 로비, 그리고 복도나 공공의 화장실이 필요하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필수면적을 간과하고 향후에 훨씬 커져버린 규모를 보고 놀라 시급히 계획을 변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가 필요로하는 요구면적을 정할때, 이처럼 공용공간의 면적을 꼭 고려하여야만 규모의 편차에서 유발되는 착각을 방지할 수 있다.

 

2) 올바른 건축비 추산을 위한 결정 요인들

교회가 건축사업을 구상할 때, 필요한 기능과 면적이 결정되면 대략의 사업비를 추산할 수 있어야 사업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어떤 건축물이든지 그 공사비에 대해서는 잡다한 소문이 많이 떠돌게 된다. 그러나 확실한 건축비는 누구도 정확히 설계를 해 보기 전에는 알수 없는 일이다. 통상 건축비를 좌우하는 요인이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섣불리 필요 면적만으로 건축비를 계산하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건축비를 결정하는 요인은 일반적으로 소요면적에 따라서, 설비시설의 정도, 내외장 재료의 종류, 땅의 상태, 도시와 지방의 차이, 건당 면적규모의 차이, 업체를 통한 공사와 직영방식의 차이 그리고 건축 양식과 공법의 차이에 따라 모두 다르게 산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 지어지는 도심의 교회당 건축비가 평당 300만원에서 400만원을 호가하고, 지방의 교회당 건설비가 180만원에서 250만원을 오르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는 제대로 된 건물이 아닌 대충 아무렇게나 지어지는 조립식 건물은 논외로 한 것이다.

 

3) 올바른 설계의 가치

교회 뿐 아니라 일인당 국민소득 일만불 시대를 사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아직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그리 중요성을 띠지 못하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건축사업에서 가장 핵심적 단계인 건축설계의 가치를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앞으로는 모든 분야에서 정확한 계획의 가치가 실행의 단계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갖게 되는 일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통상 설계비는 전체 건축비의 5 % 정도이다. 그런데 이 5 % 에 해당하는 설계비도 투자하지 않고서 좋은 건축물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다. 이는 애초에 불량한 씨를 심고 품질좋은 열매를 기다리는 것과 꼭 같은 태도이다. 최근의 이라크 전쟁이 아주 적절한 예 일수 있는데, 만약 미군들이 오랜 시간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3주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 큰 규모의 전쟁을 종료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치밀한 계획이 시간과 재정, 인명피해 모두를 절감해 준 것이다.

이와같이 건축사업도 정확한 계획의 핵심인 면밀한 설계도의 확보가 가장 우선되어야만 그 계획에 입각한 정확한 시공이 진행될 수 있겠다. 좋은 설계도는 그대로 실행되었을때에 아름다운 건축작품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잦은 변경과 무책임한 재료의 선택이 유발하는 재정적 낭비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

 

4) 올바른 교회당 시공을 위한 지혜들

우리 주변의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건축사업은 실로 많은 비용이 오고가는 사업이다. 그러므로 국가, 기업, 교회할 것 없이 건축 사업의 주변에는 항상 많은 잡음이 따르기 쉽다. 그중에서도 특히 교회건축 사업을 통하여 여러사람들이 심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주 교회내 구성원들이 시공에 참여하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이다. 교회내부의 구성원이 건축사업에 참여하려는데서 발생하는 숱한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예 시작부터 내부사람들이 관계된 기업이 교회건설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못박아 두는 결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부 구성원이 시공하게 될 경우, 그들의 잘못을 교회가 바로 지적하기 어렵고, 교회내에서 참여하지 못한 이들의 불만이 커 질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신자들의 헌금이 특정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쓰여진다는 사실로 많은 이들이 심적 갈등을 겪게 되어 있다. 간혹 자신의 노력과 기술로 헌신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건축사업에서는 이러한 뜻이 자주 왜곡되고 결국 치료할수 없는 갈등으로까지 증폭되는 경우가 심히 많다는 사실을 교회의 지도자들은 명심 또 명심하여야 한다.

그리고 시공이 진행될 때에는 교회내에서 영향력이 강한 목사님이나 건축위원이나 장로님들의 절제가 요구된다. 건축적인 부분은 가급적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그들이 확실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수 있도록 감독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교회의 경우, 교회의 지도자들이 본인들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지엽적인 문제들, 즉 건물의 색깔이나 재료, 부품들의 결정에까지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순간순간 우발적인 의견을 내세우려는 경향이 짙다. 이런 것들은 이미 설계 기간동안 충분히 제시되었어야 했고 일단 시공이 시작되면 전체의 조화로운 완성을 위해서 번득이는 우발적 생각들을 절제하여야 한다. 특히 성가대 지휘자나 방송 및 음향 담당자의 의견이 크게 작용할 수 있는데 이는 교회건축 전체로 볼때 그리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 그들은 항상 그들의 입장에서만 건축을 바라보기 쉽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한창 복잡하게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비전문가가 전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몹시 힘들고, 갑자기 바꾸었다가 완공된 후에야 설계자의 의도를 알고 후회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비록 설계자가 한 두가지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전체로 볼 때에 불필요한 간섭 때문에 최초의 계획이 마구 흐트러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모든 것 위에는 제대로 훈련받은 훌륭한 설계자를 교회가 잘 찾아서 시작하였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겠다.

 

II. 새로운 교회건축을 위한 시도: 네 가지의 실천적 유형

비록 짧은 기간동안 몇몇 교회를 건축하고 그 경험들 속에서 정리되어 가고 있는 초보적인 것이지만, 필자는 자신이 임하는 교회 설계들에서 나름대로의 몇 가지 유형을 갖고서 풀어 가는 습관이 있다. 우선 교회 프로젝트를 의뢰 받고 해당 대지에 가 섰을 때와 각 교회가 지니는 독특한 운영의 방식들이 주어질 때, 그리고 건물전체의 규모와 프로그램이 대략 정해졌을 때, 몇 가지 동물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동물들이 가진 바의 속성으로 교회 건축물의 특성을 분류해 보곤 한다. 이는 마치 신학자들이 신약성경의 사 복음서를 동물에 비유하면서 그 내용이 갖는 특징들을 분류한데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사실 이러한 유형학적인 분류가 착상단계에서부터 창조성을 돕는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아직은 각 교회건축의 특징을 서로 다르게 설명하는 소박한 잣대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동물들에 비유된 특성들이 현재 약 네 가지 정도로 분류되고 내게는 거기서 파생되는 변형의 종류가 상당히 다양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형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은, 이것이 지금까지 필자가 설계한 교회 건축들에 대한 아주 초보적인 반성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교회 건축 작업들에서 더 개선된 가치를 모색하기 위한 간편한 리트머스일 수 있기 때문이다.

 

2.1. 기린형의 기념적 교회건축

기린은 목이 길어서 멀리서도 잘 눈에 띄는 동물이다. 몸통에 비해서 목이 상대적으로 길다. 기린의 체형은 얼룩말처럼 빨리 달리기 위해 디자인 된 것 같지도 않고 노루처럼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니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기린의 유형에 속하는 교회는 전통적인 교회의 외형과 가장 닮아 있다.

고딕식 교회로부터 비롯되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대개 이런 외향을 갖고 있다. 고딕 교회는 중세 도시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면서 도시민의 삶을 종교적으로 만들고, 하늘에 그들의 소망을 두게 하려는 상징적 성격이 실용적인 건물의 기능보다 더 우선시 되었던 교회의 유형이다. 주로 교회가 갖는 기념적 효과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경우이다.

대전 주아내교회, 안양 새중앙교회 그리고 경산교회가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주아내교회의 경우, 유성이라는 관광지역의 특성상 주변에 고층빌딩과 재래식 상가가 밀집하여 현란한 간판들이 즐비한 복잡한 도심 블록의 한쪽 구석에 놓여졌다. 주아내교회는 이런 컨텍스트들 속에서 뚜렷이 드러날 필요가 있었고, 교회가 이미 확보한 넓고 빈 공간을 이용해 도시가 숨쉴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여기서 빈 공간이란 기린의 목처럼 높이 솟은 상징탑 안에 하늘이 보이는 빈 공간이기도 하고, 번잡한 도로에서 뒤로 물러나 비워져 있는 후정의 역할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산교회의 경우는 오십 여 년 전에 지은 본당이 최근에 건설된 주변의 거대한 아파트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왜소해져버렸다. 그래서 이 교회의 구성원들은 단순한 상자모양의 기능적인 신관을 구 본당 곁에 짓고 그 상자 위에 높은 십자가 탑을 세우게 된 것이다. 신관은 단순하게 본당의 배경이 되면서 동시에 주변 도시를 향해서는 뚜렷한 기념성을 지닌 교회로 설계되었다. 안양 새중앙교회는 평촌의 거대 도시 문맥에서 리모델링 작업을 하게 된 것으로 기존의 교회가 가졌던 심한 형태적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기린의 기념성이 요구되었다.

경산교회 내부 전경.
경산교회 외부 전경.
안양 새중앙교회 전경.

 

2.2. 노루형의 도시적 교회 건축

흔히 노루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균형 잡힌 동물로 느껴진다. 머리에 불필요하게 거대한 녹각을 이고 있지 않는 노루는 아주 날렵하고 단출하고 말쑥하며 동시에 단단해 보이기도 한다. 도시 내에 위치한 대부분의 교회들은 노루처럼 탄탄하게 균형 잡힌 형태와 기능적 구성을 필요로 한다. 일체의 불필요한 장식과 낭비되는 공간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건축가와 도시교회 신자들의 우선적인 요구가 반영된 유형이다. 이들의 요구는 주어진 대지의 용적율이 허락하는 최대의 체적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교회의 형태는 철저히 기능의 외향적 결과이다. 그러므로 노루형의 교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수직형태를 가지게 되는 계단탑을 활용하여 최소한의 상징성을 나타내곤 한다. 내면이 꽉 찬 단정한 노루는 불필요하게 화려한 뿔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노루형의 교회는 기능과 무관한 과도한 십자가 탑으로 자신을 장식하는 것보다 소담스럽고 겸손한 교회의 상징만을 추구한다. 대전 목양교회, 죽전 세계비젼교회, 일산 아멘교회, 부천 중동교회등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교회들이 이 교회의 유형에 포함되는데, 그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도시 교회가 유사한 건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목양교회는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진 맏형 노루이다. 비전교회와 아멘교회는 그 동생들이고, 중동교회는 대형교회이지만 여전히 최대의 체적과 기능이 강하게 요구된 도시교회이다.

목양교회 내부 전경.
목양교회 외부 전경.
단순하면서도 꽉 찬 목양교회 평면도.

 

2.3. 캥거루형의 전원적 교회건축

여타 동물과 차별되는 캥거루의 특징은 아기를 담아서 키우는 주머니에 있다. 아기 캥거루는 엄마 품속에서 잘 보호되면서 바깥 세상도 함께 경험한다. 캥거루의 아기집은 외부에 달려있지만 마치 엄마 뱃속 같은 내부의 오붓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전원의 한 가운데나 넓은 대지에 홀로 놓이게 되는 교회들은 아기 캥거루처럼 보호된 외부에서 전원의 풍요를 바라보고 경험할 필요가 있다. 중세 수도원의 중정이 지녔던 가치처럼, 한국 사찰의 가람배치처럼 내면적 마당은 거친 전원의 여러 요인들로부터 외부공간을 순화하여 내면성을 얻기 위한 건축적 전략이다. 양산 영락교회나 서산 명지교회 그리고 초락도 수련원 교회가 이러한 캥거루의 유형에 속한다.

양산영락교회는 새로 개발되고 있는 신도시 택지의 빈 벌판에 세워진 교회이고 명지교회는 산기슭에서 본당과 부속 공간이 완만한 계단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건설되는 유형이다. 초락도의 수련원 교회는 캥거루 유형의 가장 뚜렷한 예로서, 중정의 공간적 가치뿐 아니라 건축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서로 마주보고 함께 둘러치는 강당과 교실 그리고 도서관과 숙소를 보유하고 있다.

양산 영락교회 투시도.
초락도 수련원의 모형.
초락도 수련원의 평면도.

 

2.4. 코알라형의 복합적 교회건축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는 신기한 동물, 코알라는 항상 새끼를 둘러매고 사진 찍은 것을 본다. 만약 우리가 코알라 한 마리를 생포한다면 작은 것은 덤으로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한동안 교회 건축은 '거룩과 성결'이라는 종교적 이유로 본당과 부속 시설이 분리되어 운용되었다. 그러나 본당과 부속시설을 구별짓기 어려운 시골의 소규모 교회나 오늘날 도시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기능들을 모두 수용하려는 교회들은 본당 이외의 여러 기능이 한 건축물 안에서 복합적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커간다. 이처럼 현대는 교회가 주변 이웃을 위해 훨씬 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예배를 위한 본당 이외에도 소위 '열린 교회'를 지향하면서 주거시설은 물론 카페테리아나 독서실, 또는 사회교육 사업과 문화센터의 기능을 포함하기도 한다. 상주 성결교회와 충만한 교회 그리고 실험적인 목동교회가 이 유형에 속한다.

상주교회에서는 중앙 홀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주거와 카페테리아 그리고 우측에는 기독교 교육공간과 예배실들이 위치한다. 충만한 교회는 지상에는 다세대 주거를 포함한 상업시설과 사무실 그리고 지하에는 작은 예배실을 전체에 꽉 채워서 계획한 것이다. 목동교회는 극단적으로 발전된 도심지의 과밀형 교회에 종교건축이 지녀야 하는 풍요로움까지를 부여하기 위한 실험적인 교회이다. 두 마리가 함께 껴안고 살아가는 코알라처럼 교회의 다양한 기능들 모두가 한 덩어리 속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시도된 계획안이다.

충만한 교회 모형.
충만한 교회 평면도.

 

이은석 교수 : 국립 파리 소르본느대학원을 졸업하고 예술사학박사를 취득했다. 국립 파리 건축대학을 마친 프랑스 공인 건축사이며, 1995년 LA한미문화예술센터 국제현상과 2000년 상암 월드컵 경기장 앞󰡒천년의 문󰡓 현상설계에서 각각 1등으로 당선한 바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며, 주요 작품으로는 탑정 문화공간, 꿈의 학교, 목양교회, 경산교회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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