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움] 한국 장로교 정치제도의 현황과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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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움] 한국 장로교 정치제도의 현황과 문제점
  • 손병호 학장
  • 승인 1997.04.2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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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4/28) 장로교정치제도 심포지움

Ⅰ. 서론

한국교회는 장로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장로교회론이나 장로교정치에 관한 원리를 교단 본부나 교단 신학교에서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정립 하여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장로교회는 마치 '독립교회'처럼 제각기 다른 장로교회론에 입각해 있다.

필자는 본론에서 장로교회의 정치원리의 성서적인 역사적 원리를 논하고, 이어서 한국 장로교회의 교회정치의 현황과 문제점들을 논한 후, 결론에서는 2천년대를 향한 한국 장로교회의 바람직한 장로교회의 정치 원리를 재정립하는 연구 기관을 설치할 것과 지속적인 개혁 운동을 펴자는 제언을 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장로교 정치 제도의 성서적 역사적 신학적 고찰

장로교회는 신학이나 실세나 교조(敎祖)나 국가적으로 명명된 교회가 아니다. 장로교회는 신학이나 교리보다는 정치와 체제에 입각하여 명명된 교회다.

장로교회는 목사가 목회를 하는 교회를 기본으로 하고 교회정치에 있어서 장로도 참정(參政)을 시키는 교회를 말하나 지(支)교회에서는 교회정치를 하지 않고 노회와 총회를 통하여 교단 정치를 하는 교회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Presbyterian Church’ 라 한 것이다. 이는 󰡒장로회(Presbytery) 체제의 교회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교회󰡓라는 뜻이지, 장로가 중심이라거나 장로들이 교황이나 감독과 같은 실세에 있는 교회를 말하지 아니한다.

장로교회는 16세기의 요한 칼빈(John Calvin)으로부터 시작된 교회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나 장로교회나 장로교(Presbyterianism)는 칼빈 이전에 이미 사도교회 때부터 있었으며, 사도교회보다 훨씬 이전인 회당교회에 있었으며, 회당교회보다도 훨씬 이전인 모세시대에 이미 있었고 모세보다도 이전인 창세기때부터 있었으므로, 장로교회나 장로교는 가장 성서적이며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교회를 말하며 어느 교회보다도 민주적(民主的)인 교회를 말한다.

 

1) 아브라함과 모세시대의 장로제도

장로교의 원리인 장로회주의는 아브라함때부터 시작된다. 이미 이때에 바로왕궁이나 다른 제국에서도 장로제도가 있었다(창50:7). 그러나 성서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늙었을 때 자기집 모든 소유를 맡은󰡒늙은 종(장로)󰡓과 약속을 하면서 장로 제도가 시작된다(창24:2이하). 이것이 곧 아브라함과 장로제도의 기원이다.

출애굽기에 와서는 장로제도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출애굽을 의론하라 하신다(출 3:16). 그러나 이때 언급된 장로는 '노인' '연장자' '나이든 분' '원로' '늙인 이' 모두를 말하고있어 오늘의 우리가 말하는 교회의 장로제도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렇게 노인들과는 출애굽을 원만히 의논 할 수가 없자 모세는 재덕(才德)을 겸한 원로들로 '70인의 장로제도'를 취한다(출24:1, 9). 이것은 곧 장로직의 대의직(代議職)을 말하며 노인들 중에서 뽑힌 원로들로 의회제도(議會制度)를 시작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장로들은 행정관(行政官)이나 재판관(裁判官)들은 아니었다. 우리말에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으로 언급이 되어 있으나 이들이 곧 행정직과 사법을 행하였다(출 18:19이하).

'70인의 장로들'은 제사장(祭司長)도 아니었다. 제사장직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수행하였다(출28:1이하). 이것이 출애굽 중에 있었던 모세시대의 장로제도였다. 이 제도는 4권분립(4權分立)이었다. 입법(立法)은 하나님이, 의회(議會)는 장로들로, 사법(司法)이나 행정(行政)은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으로, 그리고 종교(宗敎)나 제사(祭祀)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수행한 것을 말한다.

 

2) 왕국의 멸망과 포로시대와 회당의 장로제도

왕국시대에는 왕(王)이 집권을 하자 일인 통치하에 들며 상대적으로 의회제도나 대의제도가 유명무실하였다. 그러나 왕국시대에는 제사장들과 성전종교가 전성을 이루었다. 왕국이 멸망을 하고 바벨론으로 포로가 된 후 왕족이나 제사장족들은 환란 중에 있어 민족의 원로(장로)들이 나라와 민족의 각성 운동을 벌이며 율법교육과 예배를 주도하게 이르렀다. 이것이 회당의 기원이었고 귀환을 하자 유대인들은 성전종교를 회복하면서도 회당(Synagogue)운동을 병행하였다. 이때부터 성전종교와 병행하는 회당은 준(準) 종교적이었다.

성전은 제사장 중심으로 거국적인 제사종교로 행사되었으나 회당은 장로 중심으로 지역적인 교육과 친교와 기도와 예배의 준 종교로 행사되었다.

 

3)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장로제도

귀환후 회당종교와 율법종교는 전성을 이루었다. 예루살렘에만 480여개의 회당이 있었다. 회당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외우고 묵상하며 노래하며 쓰고 붙이는 등의 율법운동이 대단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민족적인 운동은 율법주의(律法主義)로 전락을 했다. 주님의 성육신(成肉身)은 율법주의 때문이었다.

주님은 성전종교, 회당종교와 처음부터 좋은 사이가 되지 못하였다. 결국 주님은 성전종교, 회당종교가 아닌 교회와 복음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십자가는 여기서 온 것이었다.

주님은 성전종교와 회당종교에서 떠나고 나올 것을 단호히 말씀하셨다. 그것이 그의 󰡐에크레시아󰡓였다. 주님은 그의 교회(My Church)를 세우시며 성전이나 회당의 직제나 체제보다는 교회의 체제와 직제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세우신 직제는 다만 '사도직'이었다.

그후 주님의 사도들은 사도교회에서 사도들을 도울 봉사자들을 세웠다. 회당에서 자기 직업(職業)을 가지고 회당에서 봉사하는 장로직을 교회로 도입(導入)하였다. 물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며 개종(改宗)을 한 자들 중에서 사도(使徒)들과 교회가 장로로 임명(任命)을 하였다.

 

4) 종교개혁과 장로교회

로마가톨릭교회는 성서에 전혀 근거하지 않은 교회론에 있다. 그러므로 개혁자들은 성서로 돌아간 교회론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교황체제와 감독체제를 거부하고 목사와 장로제도를 회복하였다. 칼빈은 장로직을 제네바 교회에 회복을 하였으나 그는 장로직만이 아닌 감독직(Episkopos)의 교회도 반대하지 않았다.

칼빈주의(Calvinism)는 칼빈의 신학을 말하는 것이지 장로회주의나 장로교(Presbyterianism)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칼빈 서거 80여년 후 영국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총회에서 장로교회의 정치 헌장(Form of Presbyterial Church Government)이 채택되었다. 그중에서 중요한 직제론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의 덕성 함양을 위하여 그리고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임직하신 자들은 임시직으로 사도, 복음전하는 자, 선지자들인데 그런 직분자들은 당시로 끝이났고, 다른 정규직과 항존직으로는 목사, 교사, 다른 치리자들과 집사이다."

제사장들이 레위인들과 함께 치리를 하였듯이 그리스도께서도 교회에 치리직을 세우셨는데, 말씀 사역을 하는 목사 곁에서 목사와 함께 치리의 은사를 수행하는 자들을 개혁교회에서는 '장로(Elders)'라 한다.

① 미국 장로교회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200여 년 동안 쓰던 미국 장로교회는 미국의 성장과 함께 변질적인 장로교회론과 직제를 주장하였다.

② '두 종류의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 '목사'

미국 장로교회의 일부에서 목사를 구약의 제사장이나 신약의 사도직에서보다 장로직에서 나온 '가르치는 장로'가 곧 목사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 유일한 성서적 근거는 딤전 5:17에 두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라는 본문이었다.

그러므로 1840년대의 미국 장로교회는 목사도 장로며 장로도 목사라는 주장도 하였다. 그러면서󰡒두 종류의 장로설󰡓을 펄쳤다. 두 종류의 장로는 즉 '치리하는 장로(Ruling Elder)'와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르치는 장로가 곧 목사'라고 하는 주장이었다. 이에 동조를 하는 자들 때문에 장로도 1842년에 안수(按手)로 임직이 되었고, 1843년에는 장로가 목사 임직의 안수를 하기도 하였으며, 1879년 마침내 미국 장로교회는 크게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런 문제는 1643-7년 영국 웨스트민스터(Westminister) 총회에서 충분히 논란이 있은 후 이미 정리가 된 것이었으나 그 불꽃은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 사도 당시의 '두 종류의 장로'가 있었다 한들 '가르치는 장로'가 곧 목사나 사도나 선지자나 복음전하는 자라는 것은 그 누구도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인 것이다.

에베소 4:11에는 장로직이 전혀 언급없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하고 있다. 장로직은 말씀이나 교리나 복음을 전하는 직분이 아닌 그런 사도직의 협력직 봉사직 보조직었던 것이다.

그리고 장로직을 교회로 도입한 이유 중에는 장로가 이미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전적으로 성전에서 십일조를 받는 제사장들을 교회로 도입할 때 오는 경제적인 부담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주후 50년 경에 가르치는 장로가 직업적으로 노임(勞賃)을 받거나 사례비(謝禮費)를 받고 설교(說敎)와 교리(敎理)에 전념을 할 만큼 교회가 오늘 이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도 장로들에게는 그런 일을 시키지 않는데 지극히 초기교회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였겠느냐?하는 것이다.

우리 말의 '수고'라고 한 영어의 'Labor'나 헬리어의 '코피온테스(kopionthes)'는 단순 수고가 아닌 노임이나 임금이나 사례비를 받을 때 쓰는 단어라고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총회에서 󰡒두 종류의 장로설󰡓을 일축하며 나온 말이었다. 더욱 아연하는 것은 가르치는 장로가 목사라는 것은 목사직의 전신인 제사장직이나 사도직이 장로직으로부터 기인되었다거나 파생이 되었다는 것인가? 목사직을 장로직에 종속을 시키는 것은 지극히 인민적(人民的)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③ '목사'는 '장로'가 아니며 '가르치는 장로'가 아니다.

미국 장로교회는 1백년이 넘게 '치리 장로(Ruling Elders)'와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s)'제도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가르치는 장로'가 곧 '목사'라고 하였다. 물론 다 전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미국 장로교회가 갈라졌전 두 장로교회(PCUSA & PCUS)가 1986년 합하며 그동안 사용하던 치리장로(Ruling Elder) 나 가르치는장로(Teaching Elder) 가 말끔히 없어지고 장로는 그냥 'Elder'로, 목사는 'Minister of Word and Scraments'로 하고 있다. 100년 이상의 굴절된 역사가 이제서야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는 아직도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의 '두 가지 장로론'에 있다. 제사장직이나 사도직이나 목사직은 절대로 장로직에서 나오거나 파생되었거나 기인이 된 직분이 아니다. 장로직은 아브라함때부터 그리고 모세시대와 사도시대와 개혁시대에도 그 기원을 달리 하며 본분과 사명을 달리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장로교회의 모든 정치 문제는 바로 이 '두 가지 장로설'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헌법은 개정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헌법은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항존직은 장로, 집사, 권사며(행20:17, 28; 딤전3:1-23) 그 시무는 70세까지로 한다."
"장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1. 설교와 치리를 겸한 자를 목사라 하고 2.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한다."

 

2. 한국 장로교회의 정치 현황과 문제점 고찰

1) 장로교회의 교회정치의 기본 원리

한국 장로교 교회정치의 모든 문제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목사도 장로라는 잘못된 헌법 때문이다. 이것만 고치면 정치적인 문제는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장로교회론에 입각하면 교회정치도 달라진다.

① 장로교회는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에 입각한 교회

장로교회는 신학으로 교회 이름이 표방된 교회가 아니다. 장로교회는 교회정치로 이름이 지어진 개혁교회다. 개혁교회인 장로교회는 개혁신학을 중심한다. 장로교신학이란 별도로 있지 않다.

② 장로교회는 교황정치와 감독정치를 반대하는 교회

장로교회는 교황정치와 감독정치를 반대하며 교황교회와 감독교회를 반대하는 교회다. 목사가 목회(牧會)를 하고 정치나 치리는 장로들과 함께하는 교회를 말한다. 그러나 오늘의 장로교회 안에 '신교황들(Neo-Papacies)'과 '신감독(新監督)'들이 날로 범람하고 있다.

③ 회중교회정치와 민중교회 정치를 반대하는 교회

장로교회는 회중들이나 교인들이 주인이 되는 회중교회나 민중교회(Peoples Church)를 반대한다. 교회의 주인과 주권자는 교황도 감독도 아니며, 목사도 장로도 아니며, 교인들이 아닌 주님이신 교회를 말한다.

④ 공화정치와 정당정치를 반대하는 교회

장로교회는 교회의 통치자를 사람들로 보지 않으며 각종 교회의 지도자들은 주님의 종으로서 각기 직분과 은사로 역할 분담을 할 뿐이다. 따라서 교회나 노회나 총회에서 특정 직분자들이 파당을 만들거나 정당을 만들듯이 하여 여(輿) 야(野)로 나누고 정강(政綱)으로 대결하거나 대립하는 정치를 말하지 않는다.

⑤ 고위성직제나 성직자정치를 반대하는 교회

장로교회는 교회내의 성직을 계급화하지 아니하며 모든 제직들을 성직자화 하여 성직자 정치를 하는 교회를 말하지 않는다. 장로교회는 성직자정치를 반대하여 종교개혁을 한 교회이며, 그렇다고 장로를 성직자로 하여 교회정치를 하는 교회도 아니다.

⑥ 장로는 대의직(代議職)이며 의회직이며 치리직이나 '목회직'이 아니다.

장로교회는 장로직을 세례교인 몇명당으로 선출하는 대의직이며 노회와 총회로는 대의원으로 나가는 의회직이며 참정 중에 치리(재판)를 할 일이 있을 때 치리(治理)를 하는 치리직으로 뽑히는 직분이지 목사처럼 전공을 하고 전문가로서 목회를 하는 목회직(牧會職)으로 뽑히지 않는다.

⑦ 장로교회는 장로 임기제(任期制)를 실시하는 교회

장로교회는 대의직과 의회직을 원활히 하고자 대의직인 장로직을 참정케 하고 치리케 하는 의회직으로서 임기제(Term Service)를 실시하는 교회다. 임기제는 대의직과 의회직의 기본이다. 이는 원활한 대의직과 의회직과 치리직을 위하여 세계가 다 임기제를 실시하고 있다.

⑧ 목사직은 대의직이나 장로직이 아니므로 임기제에 해당되지 않는다.

목사는 대의직이 아니며, 참정직이나 의회직이나 치리직 이전(以前)의 목사직(牧師職)으로서의 근본과 본분에 있다. 즉 목사는 교회와 목회를 위한 전공직이며 전문직이며 직업직이며 소명직이고 사명직으로서 임직이 되므로 대의직인 장로들처럼 임기제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⑨ 장로교회는 '장로들의 교회'를 말하지 않는다.

장로교회는 'Prsbyterian Church(장로회체제의 교회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교회)'를 말하지, 문자 그대로 '장로들의 교회(Elder󰡑s Church)'를 말하지 않는다. 장로교회는 '장로회체제'의 교회를 말한다.

⑩ 장로교회는 상회에서 헌법을 제정하고 정치를 하며 지 교회에서는 목회와 행정과 치 리를 하는 교회

장로교회는 지(支)교회나 개(個)교회에서 교회 헌법(憲法)을 제정하지 않으며, 교리를 제정치 아니 하며 정치를 하지 않는다. 장로교회는 노회(老會)에서 교회정치를 하고 총회에서 헌법을 제정하는 교회를 말한다. 지교회에서는 목회와 행정만 하며 교인들에 대한 고소나 고발이 있을때 치리를 하는 교회를 말한다.

 

2) 노회(Presbytery) 정치의 문제점

역시 노회 정치의 문제점도 아래와 같은 원리를 모르는데서 모든 정치적인 문제가 오는 것으로 본다.

① 노회(老會: 長老會)는 지 교회와 당회의 상회

장로교회는 노회를 상회(上會)로 하는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총회를 최고회의로 하는 교회를 말한다.

② 상회인 노회는 목사직을 임직하고 관리하며 지 교회로의 파송과 위임을 한다.

장로교회는 지 교회가 목사직을 세우거나 임직하거나 선출하거나 파송하거나 위임을 하지 않고 상회인 노회에서 임직하고 관리하며 파송하고 위임을 하는 교회를 말한다.

③ 노회는 목사의 인사행정(임직, 파송, 위임, 사례비, 은급비) 을 주관한다.

주께서 사도들을 부르시고 교육하시고 보내시고 위임을 하셨듯이 주님은 노회를 통하여 그렇게 하신다. 따라서 목사의 인사행정도 지교회가 주도권을 가지지 않고 노회가 전권을 가지고 시행하는 교회를 말한다. 이를 위하여 통합교단은 '목회부'를 노회 안에 상설부로 두고 원만히 운영한다.

④ 노회는 '노회원 목사'와 '당회원 장로 총대'로 구성

노회는 노회의 정회원이며 상임회원인 목사 전원과 지 교회와 당회에서 대의원 총대로 파송되는 장로들로 구성된다. 목사는 노회의 총대가 아니다. 호명도 그렇게 하면 안된다.

⑤ 장로는 목사 임직 안수에 가담하지 못하며 위임을 집례하지 못한다.

장로는 목사가 아니며 목사의 교육을 맡은 교수가 아니며 목사를 인허하는 인허자가 아니며 목사를 고시하거나 면허하는 면허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목사 임직이나 위임에 장로는 관여하지 아니한다. 그것은 전혀 부당한 일이며 당치 않은 월권이기 때문이다.

⑥ 장로는 노회장이 되어서 안 된다.

장로는 이미 세상직의 각종 직업과 직위를 소유한 자로서 교회나 노회의 중직을 전적으로 맡을 필요가 없다. 노회장이나 총회장직은 감투나 이권으로나 명예로 찬탈을 하여서 차지하면 안 된다. 교회나 노회나 총회의 최종 직임은 목사들의 전유직(專有職)인데 이를 세상에서 이미 자기 전문직과 전공직을 가진 장로들이 목사의 전유직을 탐하거나 탈취하는 일은 바람직 하지 않는 것이다.

⑦ 장로가 노회장이 되어도 장로며 설교권이나 성례권을 갖지 못한다.

장로가 노회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장로는 장로이다. 장로에게는 처음부터 설교권이나 성례 집례권이 없다. 그런 장로가 노회장이나 총회장이 되었다고 목사직이 되는 것이 아니며 설교권이나 성례전의 집례권이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회무를 사회하더라도 설교나 교리나 성례전등의 목사의 전유직은 사양하는 것이 전례다.

⑧ 장로의 수가 많은 회무나 노회정치는 주객이 전도 된다.

노회는 목사들이 지교회를 보다 원칙적이고 효율적으로 목회를 하고 정치를 하며 행정을 하고 치리를 하기 위하여 모이는 목사들의 모임으로 시작된 의회(議會)다. 지교회의 대표로 장로들이 한 사람씩 참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장로가 목사의 수보다 많은 노회는 이미 대의정치의 기본 상식의 선(線)을 넘은 일이다.

노회는 목사들의 지교회를 위한 상임회인데 대의원으로 온 장로들이 목회나 행정이나 정치에 수(數)로 주도를 한다는 것은 주객(主客)의 전도이며 장로들이 중심이 되는 회로 바꿔지게 된다.

⑨ 노회는 2개월마다 열려야 하며 목사의 위임은 청빙이 있을 때 자동(自動)으로 하여야 한다.

노회가 모이는 목적은 목사들이 지교회의 목회와 행정과 치리를 원활히 하고자 함이다. 지교회가 노회원인 목사를 청빙하면 노회는 그 청빙으로 지체없이 위임을 하여야 한다. 위임은 지교회나 당회가 하는 것이 아니며 주님께서 상회인 노회를 통하여 하시는 것이며 하루를 목회하여도 주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목회여야 한다는데서 위임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목회부나 위원회에서 파송을 하고 모시기로 하면 그것으로 노회는 바로 위임을 하여야 한다. 그 기간은 2개월여가 걸린다.

이를 장로나 당회나 지 교회가 시험결혼처럼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위임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둔다는 것은 머슴살이나 다름없는 목회가 되는 것이다.

 

3) 당회원은 목사의 목회가 아닌 교회행정의 협력자

① 당회는 '당회장 목사'와 '당회원 장로'로 구성된다.

당회는 당회원으로 구성되지 아니하고 '당회장과 당회원'으로 구성된다. 당회장은 상회에서 파송 또는 위임이 되는 목사며, 당회원은 세례교인 30명당 교인들이 뽑거나 선출하여 주는 대의직이며 총대직이며 대의원인 장로인 것이다.

② 당회장은 당회에서 선출하는 직분이 아니다.

일반 의회에서는 각 회(會)에서 의장(議長)을 선출한다. 그러나 당회는 회무만을 위하여 있는 의회가 아니며 목사의 목회를 위하여 1년에 한번 이상 모이면 되는데 여기에 그 본분이 있다. 그리고 정치를 하는 모임이 아니라 교인들의 치리(재판)을 위하여 있는 모임이다. 이 때 목사가 직권(職權)으로 의장이 된다. 이는 교사(敎師)나 장교(將校)가 학교와 군에서 교실과 소대(小隊)에 임하는 경우와 같다. 교실은 회(會)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 아니며 소대 역시 회의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군부대의 기본 목적을 위하여 있음과 같다.

따라서 당회장 목사는 상회에서 파송 또는 위임이 되는 직분이지 지회에서 선출을 하거나 뽑지 아니한다.

③ 장로가 '성직자'가 되려면 다시 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장로는 세상직과 구별되는 교회의 성직(聖職)이나 소명으로 사명으로 직업적으로 전공직으로 전문직으로 임하는 '성직자(Clergy)'가 아니다. 장로가 그런 성직자가 되려면 소명(召命)에 있어야 하고 자기 직업을 버려야 하고 신학교에 입학 시험부터 다시 쳐야 하며 각종 학점과 고시와 학위과정을 거쳐서 인허와 면허를 따야만 된다.

④ 장로교회는 부당회장 제도가 없다.

장로교회에는 부(副)당회장제도가 없다. 부당회장 제도가 있으면 원(元)을 유고케 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을 하게 되며, 더우기 장로가 부당회장이 되어 당회장 유고시에 당회장이 되는 일에 있게 되면 부당한 자가 부적격자가 법으로 차지하거나 감당하는 경우가 된다. 즉 무인허자나 무면허자나 부적격자가 전문직과 전공직과 소명직과 직업을 빼앗는 결과와 같이 된다. 그러므로 장로교회는 유고시에는 언제나 목사를 재파송하고 재위임한다.

⑤ 장로교회에는 수석 장로제가 없다.

장로교회에는 수석 장로제도가 없다. 수석이나 차석등의 용어 자체가 세속적이다. 장로교회는 고위성직제나 계급제의 교회를 반대한다. 그리고 서열이나 선임을 중시하지 않는다.

⑥ 목사는 재정(財政) 결재를 하여야 한다.

목사는 당회장이며 제직회 의장이요 공동의회의 의장이다. 재정이라 하여 결재를 말아야 하는 어떤 무책임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교회의 모든 목회나 행정이나 치리의 책임자인 목사가 재정만은 타자에게 넘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런 법도 없다. 재정부장은 당회장 위에 있는 직분이 아닌 것이다. 재정부장은 당회장의 결재 없이 전권을 집행할 그런 위치에 있는 것 아니다.

⑦ 목사의 설교권이 침해 될 수 없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代言)이다. 목사의 목회를 받아야 하는 장로들이나 특정인들이 목사의 설교를 간섭하거나 검열을 하거나 문제시를 하면 대언의 설교가 방향감을 잃게 되고 장로들의 비위나 눈치나 구미에 맞는 설교로 전락을 하며 변질을 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설교가 아니며 주님 말씀의 대언이 아닌 것이다.

⑧ 장로는 사주나 주주나 고용주나 채용주가 아니다.

장로는 교회의 지도자이나 목사나 교회의 사주(社主)나 주주(株主)나 고용주(雇用主)나 채용주(採用主)와 같은 자들이 아니다. 그렇게 행사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노회가 '목회부'를 신설하여 보다 합리적으로 지 교회 대표와 협의를 하고 목사의 모든 인사행정을 공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장로교회는 장로들이 주인처럼 그런 일을 하기 마련인 것이다.

⑨ 목사는 지 교회나 당회에서 재판을 받지 아니 한다.

목사도 사람이다. 과오나 유고가 있을 수 있다. 그럴 시에는 지 교회가 자기 목사를 인민재판을 하듯이 싸우거나 내어 좇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를 가르치는 자를, 지도하는 자를, 기도하여 주는 자를 복빌어 주는 자를 돌아서서 원수처럼 적처럼 대하는 것은 천륜이나 인륜을 저버리는 처사인 것이다. 목사의 잘못은 지 교회가 직접 치리하지 않고 노회가 치리를 하는 것이다.

⑩ 목사의 축도는 성경대로 하여야 옳다.

젊은 목사도 목사다. 아들 같아도 목사다. 축도도 성경대로 하여야 한다. 젊은 목사가 목에 힘을 주고 "있을찌어다" 하는 것이 거슬려서 축도까지 바꾸는 것은 한국 장로교회의 종말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무엇인들 못 바꿀 것인가? 그 앞에 누가 감히 원리와 원칙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Ⅲ.결론

1) 장로교 일치 운동보다 장로교의 근본과 원리의 정론을 세우는 운동이 시급하다.

한국장로교회는 112년째 들었다. 그동안의 한국장로교회는 세계적인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에는 장로교회론의 정론을 갖고 있지 못한 교회다. 전공자가 없어서가 아니며 교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런 교회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이다. 시급한 것은 장로교회의 일치 운동보다 장로교회의 정론을 세우는 일이다. 역사는 언제나 기초를 중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지며 붕괴가 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런 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교회에는 미래가 없는 것이다.

가장 성서적이고 역사적이며 신학적이고 민주적인 장로교회가 이런 장벽을 못넘게 될 때는 종말을 맞고 만다. 역사적으로 장로교회는 대의제도와 의회제도로 원로제도와 치리제도로 나라와 민족과 세계 앞에 기여를 크게한 교회다. 그러나 앞으로의 장로교회는 또 다른 차원에서 역사적인 기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

장로교회는 목사만의 교회가 아니며 장로만의 교회가 아니다. 이런 2원론적인 교회론에서 빨리 떠나야 하고 어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에크레시아'였기 때문이다. 장로교회라 하여 장로들이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여야 하는 교회를 말하지 아니한다. 어서 장로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봉사를 하는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대립을 하고 대결을 하고자 하는 집단적인 '장로회'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2) 초교단적으로 전문 연구기관을 설치하고 장로교회의 정론을 제시하며 교육운동을 벌여야 한다.

장로교회는 초 교단적으로 장로교회를 사랑하는 자들로 장로교회의 정론을 정립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전문 연구기관을 설치하고 장로교회의 정론을 정립하여 제시하며 교육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중교회가 되고 민중교회가 되며 인민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회복

장로교회가 아무리 성서적이고 역사적이고 신학적이고 민주적이어도 장로교회가 모든 교회의 근원이나 근본이 아닌 것이다. 모든 교회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이다. 장로교회는 하나의 교파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전제(前提)로 하는 교회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선재(先在)로 하는 교회다. 이것을 잊으면 안되는 것이다.

② 사람들이 주인노릇하는 교회를 지양(止揚)해야 한다.

교회의 가장 큰 적은 악령이나 원수 마귀가 아니며 세상이 아니다. 교회의 가장 큰 적은 사람 자신이며 사람들의 주의와 주장인 것이다. 성령의 반대가 나의 영인 것과 같은 것이다. 장로교회는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는 교회를 지양하여야 하는 교회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장로교회다. 목사나 장로가 주인처럼 굴어서는 안된다. 특히 장로들이 혼자서나 집단으로나 실세를 부리거나 힘을 부리거나 억지를 쓰지 않아야 한다. 교회는 거룩한 공회이므로 사심(私心)을 버려야 하는 곳이다.

③ 소명인(Calling People)과 선출인(Electing People)이 화해와 공존으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며 나라와 민족과 세계평화에 기여를 하는 바른 장로회정치를 하여야 한다.

장로교회는 교회정치로 표방된 교회다. 장로교회는 크게 두 종류의 항존직(恒存職)으로 운영된다. 장로교회는 주님께서 부르시는 소명(召命)의 직분자들과 교인들이 뽑는 선출(選出)의 직분자들이 함께 주의 일을 하는 교회를 말한다. 어느 직분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다. 서로 다른 소명과 사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소명의 직분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명직에 철두철미를 하여야 하고 교인들로부터 선출을 받은 자들은 대의직에 철두철미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목사의 소명은 주님으로부터 받는 사명인 것이다. 그러나 주님보다 교인들의 압력에 더 민감한 것은 교회를 집단화는 잘 할지 모르나 주님의 교회와는 거리가 멀게되는 것이다. 민의나 여론은 민의나 여론일 따름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교회도 늘 2원론적인 사고로 대립하고 대결하며 대적을 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런 사고방식이 종식을 하고 서로 사랑하고 화해 하며 관용과 포용과 아량으로 공존을 하며 공생을 하는 4차원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돌아가는데 있다.

철천지 원수인 이스라엘과 아랍도 화해와 공존을 하는 마당인데 믿음이 같은 사람들 끼리 주도권으로 높다 세다를 가지고 싸우며 감정을 앞 세우는 것은 성숙치 못한 교인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런 일을 공공연히 하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인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될 때 모든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까지 하는 일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돌아가야 하며 장로교회는 장로회정치를 바로 하여야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나 총회나 노회나 당회에서 '장로회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서로 힘으로 혈기로 파당으로 사리와 사욕으로 세상보다 더 못한 정치를 할 때는 사명을 받은 교회자체는 물론 나라와 민족에게도 화가 오며 모든 政治에 혼란과 국란을 주는 모체가 되는 것이다. 정치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모르면 안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정치와 종교와 사회를 동시에 구원하시는 구원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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