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C 교계전망대

오프닝 :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일 무서운 것은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순실 사태로 인해서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모두가 위기라고 말하는 때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과연 주님의 교회는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회복의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FEBC 교계전망대에서는 국민 전체가 아파하고 분노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지난주부터 이번주까지 두 주 동안 ‘분노하는 사회, 어떻게 회복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그 어느 공동체보다도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함께 울고 웃어야 할 주님의 교회가 어떤 방향을 모색해야 할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이시면서 서현교회 담임이신 김경원 목사님, 또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지형은목사님 모셨습니다.

사회자 : 저희는 지금 위급한 때를 지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결국 기독교가 20%가 넘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한국사회의 근대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도 하는 시점에서 교회가 과연 제대로 성도들을 목양해서 각 영역 속에 제대로 세웠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경원 목사님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경원 : 이 사건을 보면서 교회적인 입장과 또 목회자의 입장에서 그런 생각을 먼저 가져봅니다. 교회가 잘했더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텐데, 목회자가 좀 더 잘했더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도가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제대로 잘 살았다면 이런 사태가 안 생겼을 것이라는 자책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가집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이 사건을 보고 일반 국민들은 이 사건의 발단이 누구 때문인지와 그를 비판하고 있고 그것이 정당하긴 하지만 교회적인 입장, 목회자와 성도적인 입장에서는 단순히 누구를 욕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교회가 끌어안고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그런 책임의식을 느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형은 : 목사님께서 큰 틀에서 말씀해 주셨는데 좀 더 세부적으로 보겠습니다. 최순실 사태에서 뭐가 문제인지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돈과 권력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대기업 총수들은 자기들은 당한 입장이라고 하지만 당한 것만이 아니라 대기업이 정경유착으로 찬조금을 냈었고 어쨌든 근본적인 문제가 돈과 권력입니다.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끊임없이 추구한 것이 권력이었고 그 권력을 통해서 돈을 끌어 모았죠. 그렇다면 이 사건에 연루된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돈과 권력이면 다라는 것인데 한국교회는 여기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교회는 워낙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일률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한국교회가 적어도 일반사회 속에서 비춰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가 한국교회를 볼 때 ‘세상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쫓지만 교회는 안 그래’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저같은 목회자들과 장로님들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스스로 신앙적 양심으로 교회와 자신을 살피면서 돈과 권력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섭리하신다고 말하는데 과연 여기에 대해서 진정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제가 느끼기에는 진정성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만 한국교회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더 철저하게 자기를 돌아보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 자기반성에 인색한 공동체일수록 쉽게 와해된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결국 이런 시기에 한국교회에 오피니언 리더들, 특별히 목회자들의 리더십이 새로워져서 한국사회 전체를 이끄는 리더십으로 고양되어져야 하겠는데, 특별히 오랫동안 목회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 오셨으니까 두 분께서는 어떤 주문을 목회자들에게 하시겠습니까?

김경원 : 지형은 목사님 말씀하신 것이 아주 정확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돈과 권력과 이런 문제에 있어서 세상이 교회를 인정하느냐? 참 부끄럽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결론을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세상이 가진 가치관과 오늘날 교회의 가치관에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복적입니다. 교인들이 하나님의 복을 기복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부끄럽게도 목회자가 기복사상에 발맞춰서 강단도 기복적 강단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만일 권력이 주어질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권력지향적으로 되어버리는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보면서 철저하게 리더들을 시작으로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시작되어야겠습니다. 목회자들과 교인들도 세속적이고 세상과 차이가 없으니까 교회가 세상을 책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우리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고 교회 지도자들이 이 사건을 통해 다시 성경적 가치관의 회복운동을 일으키고, 리더의 영향 속에서 성도들의 가치관을 회복하고, 그들이 세상 속에 있는 위치 속에서 제대로 성도답게 처신함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지형은 : 목사님의 말씀을 받아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성경적 가치관을 다시 회복해야 하고 다시 세우자고 하셨는데 돈과 권력을 쫓는 것은 성격적 가치관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했는데 진리 곧 성경이 가치관이죠. 성경적 가치관을 제대로 깨달으면 돈과 권력, 맘모니즘의 노예가 되는 것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이 과연 일상과 사회적인 삶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질문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평소에 그런 생각을 종종 하는데요. 교회가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 입장이 분명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하나가 법치민주주의, 두 번째가 상생의 시장경제, 세 번째가 인도적 인륜도덕입니다. 법치민주주의는 성경이 말하는 정치 형태를 얘기할 때 인류역사의 발전 중에 가장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독재는 아닌 것이 분명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법치민주주의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얘기를 하면 신앙이 굉장히 깊은 분들이나 리더들 중에서는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라고 얘기하시기도 합니다만 교회사적 성서적 근거가 다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무시할 수 없지만 구약에서 모세가 통치할 때도 사실 사람들과 같이 어우러져서 이끌어 나가는데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현장에서 실현되는 과정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해석하는 해석이 절대적이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회가 법치민주주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상생의 시장경제는 사실 30여 년 계속되어 온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수명을 다했고 이것으로는 세계가 다 살지 못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를 이끌어 온 사람들도 하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에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말고 다른 성서적 대안이 있느냐? 사실 오랫동안 얘기해 온 성경적 토지 정의, 희년 개념 그런 대안입니다.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펼쳐질 때는 전문가들이 다듬어야겠지요. 인도적 인륜도덕,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죽어가는 사람 먹이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한국교회가 어려운 사람 편에 섰느냐? 한국교회는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 편에 서지 않았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에 대해서 한국교회 입장이 분명해야 성경적 가치관에 섰다는 것을 현실에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한국교회가 그렇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사회자 : 그렇다면 이 부분을 제대로 된 자기반성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형은 : 그래도 여전히 소망스러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교회 운동은 참 좋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한 가지로는 한국교회가 나갈 길을 100% 설명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적어도 한국교회 내부에 있는 약하고 병들고 타락한 모습, 현재의 병든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을 탈피할 수 있는 몸부림으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작은교회 운동도 그렇고 요즘에 점점 임지가 없어지니까 자비량 목회운동 이런 것도 생겨나는 것 같고요. 그래도 여전히 한국교회는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절대주권, 섭리적 은총에 신실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 김경원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의 소망의 그루터기로 서 있었던 역사적인 상황들이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으실까요?

김경원 : 지금 최순실사태 속에서는 교회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리 안에도 있고 세상 속에서도 많이 비춰져서 교회는 정경유착과 권력의 시녀가 되어 부정적인 일만 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어떤 면에서는 교회가 정권가 거리가 멀어진 상태에서 그 역할을 한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6·25 때에 전쟁 상황 속에서 피난민들이 중심되어 부산 초량교회에서 일어난 나라를 위한 구국기도운동이 있었는데 그것이 큰 전기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전쟁의 상황을 역전시켜 주셔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지요. 물론 일반 역사와 전쟁사나 정치사에서는 그것이 나타나지 않지만 교회 역사 속에서 볼 때에는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회개하고 도우심을 구했을 때 그런 일들이 일어났죠. 4·19, 5·18 등 여러 사건 속에서 위기 때마다 성도들이 정말 나라를 위해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면서 기도하고 힘썼거든요. 결국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주권적으로 역사하셔서 오늘의 선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이것이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세속적인 정치사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신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러했고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 속에서도 이런 기대를 해봅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오히려 교회가 회개하고, 하나 되고, 자정 운동을 벌이고, 나라를 위해서 더 간절하게 기도하는, 나라를 생각하는 그런 교회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구원해주실 역사가 나타나지 않겠냐는 것이죠.

지형은 : 보통 우리 대한민국의 해방 이후에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면 흔히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으로 크게 나뉘는데요. 해방 후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을 큰 틀에서 보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도식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산업화와 민주화에 교회의 순기능과 역기능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산업화는 먹고 살아야 했기에 중요했습니다. 전쟁 후 폐허의 상황에서 이만큼 살게 된 것에는 산업화가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한참 유행했던 적극적인 사고방식, 긍정적인 희망의 메시지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자체가 복음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로 복음을 대체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명백한 타락이고 심지어는 배교라고까지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기독교 신앙고백에 근거해서 기독교인이 긍정적이어야지 부정적이어서 되겠습니까? 희망적이어야지 절망적이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사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메시지는 산업화하는 데에 우리 국민 전체의 정신적인, 기본적인 내면의 자세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돈, 권력, 세속적인 성공에 너무나 매몰된 것은 부정적인 면이 있지요. 그리고 민주화도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그야말로 고난의 가시밭길, 형극의 길을 간 것은 기독교 진보그룹이었습니다. 저는 기독교 안에서 진보와 보수는 두 바퀴로 함께 가야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진보, 보수 성향이 분명한 사람이 저쪽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종교현상이라는 생태구조에서 저쪽이 없으면 이쪽도 결국 같이 악해집니다. 그래서 극좌와 극우는 둘 다 나쁘고 어느 정도 선을 그을 것이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중도보수, 중도진보는 명백하게 같이 있어야 교계나 사회가 굴러갑니다. 민주화 운동에서 한국 기독교가 해온 역할을 빼고 민주화를 얘기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교회는 양 쪽에 중요한 기여를 했고 또 양쪽에 있어서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는 것이죠.

사회자 : 큰 틀에서 목회자들과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얘기를 해주셨는데 이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또 목회자들에게도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그렇게 말씀하셨을 텐데 각자의 자리에서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건강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말씀씩 해주시고 방송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먼저 김경원 목사님 말씀하실까요?

김경원 : 이 사건은 두 말할 것 없이 검찰이 법적으로 분명히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건을 놓고 과연 국가를 위해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하지 않고 정치권들이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진보건 보수건 상관없이 똑같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이런 기대를 해보는데요. 예를 들어 국회의원 가운데서 삼분의 일이 기독교인일 때는 크리스천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초월해서 모여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자기 당을 뛰어넘는 논의를 하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해법을 제시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진정한 크리스천 정치인이 아니겠는가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그래서 이 상황 속에서 그런 운동이 국회의원들 안에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원론적으로 아는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현장 속에서 정말 그리스도인답게 늘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것이 필요하고 교회는 정말 이 문제를 두고 더 많이 기도하는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형은 : ‘분노하는 사회, 어떻게 회복을 얘기할 수 있을까’가 주제인데 분노 그 자체가 선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과정적으로 보면 분노는 절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입니다. 일종의 에너지이니까요. 그런데 분노가 불안으로 바뀌면 에너지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분노의 에너지가 좋은 쪽으로 전환이 되어서 회복될 수 있으려면 그것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분명해야 됩니다. 기독교적인 희망은 조건이 없는데도 희망할 수 있는 절대희망 아니겠습니까? 십자가는 사실 아무 희망도 없는 곳인데 거기에서 하나님의 부활로서의 희망을 보여주신 것이니까 어떤 면에서 이렇게 어려울 때에야말로 우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분노의 에너지를 다시 회복하는 데에 희망을 통해서 회복시키는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 기독교 복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더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삶의 현장에서 좀 더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이 사회가 회복되는 저력과 토대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사회자 : 거룩한 분노, 창조적인 분노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기도를 통해서 표현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식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일하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일하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주신 것 같습니다. ‘분노하는 사회, 어떻게 회복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교회가 희망을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이시면서 서현교회 담임이신 김경원 목사님, 또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지형은목사님 수고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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