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청산’도 식상하다. ‘새로운 100년’도 시큰둥하다. 교단지 ‘얼굴들’도 지루하다. 세례교인헌금도 세금 취급이다. ‘총회 개혁’도 그들만의 리그다.

답답한 터널에 출구는 없을까? 적어도 세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정책이다. 정치는 그릇이고 정책은 내용이다. 정책없는 정치는 빈그릇이다. 소리만 큰 정치는 빈깡통이다. 콘텐츠없는 슬로건은 그냥 구호일 뿐이다.

우리 교단 정책이 뭐냐고 물어보라. 답변이 궁색하다. 총회정책연구위원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6월에 서울, 광주, 부산에서 공청회를 연다. 기구혁신위원회와 공동 주최하여 비용절감과 효과증대를 꾀한다. 총회 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하고, 기구조정을 통한 효율성을 점검한다.

101회 총회 총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한다. 목회자 표준매뉴얼도 만든다. 목회현장의 실천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국내외 각 교단의 정책도 비교 연구한다. 정책연구서는 우선 급한 숨통이라도 터 놓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긴 호흡이 시작될 것이다. 중장기 정책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멀리 보면 좀 낫지 않겠는가.

둘째, 어른이다. 집안이든 나라든 어른이 없는게 비극이다. 머리 희다고 어른인가. 나이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다.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고 어른이 아니다.

실력과 인격에 존경받아야 어른이다. 한마디 덕담이 그리운 어른이다. 손만 잡아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어른이다. 이편 저편 싸우다가도 그 분 말씀에 귀 기울이는 어른이다. 과거를 정리해주며 현재를 말하는 어른이다. 미래를 가리키는 손을 가진 어른이다. 손 크고 통 큰 사람이 아니다. ‘감히 나를 우습게 보다니~’ 목소리 큰 사람은 더 아니다.

어른은 마음이 큰 사람이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책임질게’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코람데오를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어른들이 있다면 상실된 권위가 회복될 것이다. 질서도 세워질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일부러라도 어른을 찾아야 할 때다. 결국 인물이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셋째, 간증이다. 은혜가 흐르는 이야기다. 감사가 오가는 고백이다. 그러나 모여서 쑥덕대는 남 이야기는 불편하다. 은밀한 뒷담화는 초라하기까지 하다. 편가르기 성토는 짜증스럽다. 진영 논리는 조잡하기까지 하다. ‘여러분~ 해야 합니다’보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를 듣고 싶다.
하나님이 주어가 된 감동스런 대화가 아쉽다. 목사들이 모여 교회 간증하고, 장로들이 모여 교인 간증할 수 있다. 요즘 총회에 사람이 없고, 연합 활동이 어렵다고 한다. 관심자도 헌신자도 없다고 불만이다.

그러나 간증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 들을 게 있으니 당연하다. 가서 전할 게 있으니 찾아온다. 간증이 흐르는 은혜의 강은 마르지 않는다. 퍼나르기만 하면 된다. 자기 자랑하지 말고 은혜 간증하자.

정책이 없으니 대책만 난무한다. 어른이 없으니 아이가 설쳐댄다. 간증이 없으니 비방만 오간다. 그러는 동안 모두 서서히 무너져 간다. 그러나 여기 까지다. 더 이상은 안된다.

정책은 만들면 된다. 어른도 찾으면 된다. 간증도 하면 된다. 모여서 할 일이다. 뒤에 숨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할 말이 있다. 혼자 잘 되고 싶은 사람, 잘난 척하는 사람, 구린내 나는 사람, 돈에 물린 사람은 빠져라. 당신들의 퇴진이 교단을 살린다. 하나님 공의와 능력의 손을 의식하라. 그 무서운 손이 움직이고 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단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조국교회를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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