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4) 제21차 영성수련회 새벽기도회

사사기 8:22-28

오늘 본문은 기드온의 결론 부분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의 그 능력과 권세를 보면서 기드온에게 우리를 다스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기드온은 그 요청에 겸손히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기드온은 나도 우리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위대한 사사로서 압제에서 백성들을 건지는 아주 귀한 일을 하는 자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부적절한, 바르지 못한 면을 보여주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누구나 다 양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드온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의 면을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면과 하나님의 영광에 앉게 되는 자의 면을 보여줍니다.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라는 백성들의 요청은 기드온이 지금 가장 필요한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기드온이 그들이 백성들로부터 인정받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이렇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기드온이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는 자로서 빚어진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훈련된 사람으로 과정을 잘 마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는 과정들을 잘 마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교갱협도 이 시대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켜서 좋은 교회를 세우고, 민족을 세우는 하나의 훈련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고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이런 하나님께서 훈련의 과정들을 잘 마치고 쓰시기 위한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잊지 못할 사사로서 기드온이 자신들에게 남겨준 귀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어떻게 해서 기드온이 그들에게 인정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는가? 6-8장 속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의 신뢰를 확인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듭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6장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징표를 보여달라는 요청을 하나님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준비의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기드온에게 없었다면 위대하고 거대한 군대를 대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는 승리케 하신다는 확신을 가진 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300명의 위대한 군사들로 물리치신 것입니다.

또 기드온에게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요청한 두 번째 이유는, 기드온이 위기를 잘 극복한 자이기 때문에 요청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회의 길은 언제나 위기를 만날 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위기를 자의든 타의든 둘다 넘어가야 합니다. 기드온도 이 위기를 승리하기 위해 만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300명으로 물리치고 나서 마지막 부분에 에브라임 지파를 통해서 적들을 무찔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것이 기드온 자신이 자초한 영적인 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자신의 계획 때문에 오히려 위기를 만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사역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우리의 영광을 생각하고 우리의 행위를 나타내는 일로 인해서 어려움을 자초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드온이 300명으로 승리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완전히 승리케 하신 하나님의 일에 기드온 자신이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없지 않을까 하여 내가 그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바르지 못한 생각 때문에 일어난 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이 다 이뤄지실 줄로 믿습니다.

기드온에게 위기가 실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전쟁을 마치고 나서 "왜 우리를 처음부터 전쟁으로 부르지 않았냐?"며 불평하며 기드온에게 대들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러한 위기도 겸손함을 가지고 잘 이겨냈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는 잠언 15장 1절 말씀을 가지고 기드온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유순한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8장 2절에 보면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에브라임의 불평과 또 이러한 영적인 위기를 자신이 낮추고 그들이 자신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큰 내부적인 갈등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처럼 기드온의 이런 행동과 삶을 보고 당신이 우리를 다스려 달라고 요청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 모든 것을 거절하는 정직성이 있었습니다. 정직성은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셨기에 나는 다스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기드온이 전쟁 속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 한사람이 적군 450명을 물리쳐야 하는 이 싸움. 13만 5천명에게 300명이 싸운 것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우리가 또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기드온은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목회자로서 가져야 할 정직성을 갖고 있는지 용기 있게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행하셨음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인지하고 고백하는 정직성이 있었습니다.

또 부정적인 면은 어떤 면인지 보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고 나도 네 아들도 다스리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서 기드온은 왕을 생각하게 되고, 또 전리품에서 귀고리를 자기에게 가져오게 하고, 또 그것으로 금 옷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대 제사장이 성읍에서 입는 옷이었습니다. 그 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냅니다. 이곳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참 장소를 나타내는 곳이고 위기 때에 하나님이 뜻을 분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이곳을 만든 것은 결국 자기 동네에 예배장소를 만들어 놓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하고, 또 자기 동네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기드온이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 지위를 높이고 강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자기 지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또 하나님께 쓰임 받는 데에 모든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끌지 못하게 했고, 또 하나님 앞에 우상을 섬기는 결과를 가져온 겁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9장까지 나타난 걸 보면 기드온은 점점 왕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아내를 두고 또 아내들로부터 70명의 아들들을 두었습니다. 또 첩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아비멜렉, 그 아들의 이름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기드온은 겉으로는 왕이 되는 것을 거절했지만 현실에선 그것을 실행했습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 가져왔는데 그것은 왕을 상징하는 장식이었습니다.

백성들을 다스려 달라는 '다스림'이라는 단어는 주권을 가지고 다스려 달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왕과 하나님께 사용되는 같은 단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왕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기드온의 왕권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이제 이 현실 속에서 이러한 상황에 점점 더 빠져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은 자신들의 거하는 위치에 도태되었던 것 입니다. 위기를 잘 극복했던 기드온은 결국은 왕이라는 욕심을 거부하지 못하고 온 백성들을 죄악의 길로 다시 들어서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도 이 아침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주님은 진정한 왕으로 모든 봉사를 받으실 권리를 갖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권력으로 지배하려는 유혹을 거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또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영을 주셨다는 것을 감사히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선 늘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고 갈 줄 아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정직한 목회자로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