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차] 에스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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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차] 에스라의 꿈
  • 정중헌 목사
  • 승인 2016.08.23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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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3) 제21차 영성수련회 저녁집회

성경본문: 에스라 7:6~10

김진홍 목사님이 쓴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김 목사님이 이스라엘에서 농업을 담당하고 있 농수산부 장관쯤 되는 사람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분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김진홍 목사님이 그분께 "어떻게 이스라엘 나라는 그 척박한 땅에서 농수산물을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정말 좋은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농수산물을 수출하는 국가입니까 수입하는 국가입니까? 우리나라는 농수산물을 1년에 1조원을 수입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농수산물을 수입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몇 조원을 수출하는 국가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라고 질문했더니 그분이 하는 이야기가 "이사야서 43장 18절부터 20절 때문"이라고 대답을 하더라는 거예요. 나도 목사로서 성경을 그래도 웬만큼은 안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에 무슨 농수산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니 그분이 이사야서 43장 18절부터 찾아서 읽어주는데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 말씀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전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이 말을 받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과거에 이 광야에 그렇게 먹고살기 힘들었던 과거는 잊어버리자. 그리고 이 땅에 광야에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낸다고 했으니 사막에 강을 내자.

이렇게 이 말씀을 받아들여서 갈릴리 호수에서 430킬로미터를 물을 끌어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물로 농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맨 처음 시작했는데 염분이 많아서 전혀 농사를 지을 수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염분이 많은 땅에 적합한 게 무엇이냐 연구해서 시작한 것이 감귤농장이었고, 감귤농장을 지었는데 그 척박한 땅에 생산성이 안 남는 거예요. 생산성을 어떻게 하면 맞출 수 있겠느냐. 유기농을 하자. 그럼 유기농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작은 땅에 유기농을 하는데 몇 마리의 돼지를 기르고 몇 마리의 소를 길러서 거기에서 나오는 거름으로 농사를 지었을 때 진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는 것을 연구해서 거기에 맞추어서 농사를 시작해서 세계에서 가장 맛있고 가장 품질이 보장되는 농작물을 그들은 생산하게 되었고, 그것을 유럽에 수출을 한다고 해요.

저도 유럽에 가서 이스라엘에서 나온 걸 사 먹어보려 했는데 이스라엘 것이라고 상표가 붙으면 값이 2배, 3배 더 비싸데요. 왜냐하면 완전한 유기농으로 지었기 때문에. 그래서 엄청난 수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김진홍 목사님이 이스라엘 농수산 장관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며 책에 그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받으면서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현실로 실행하는 것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읽어드린 에스라서 7장에 보면 바벨론 나라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 중 한 사람, 그것도 제사장 겸 학자로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쳤고 그리고 바벨론에서는 유능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던 '에스라'라는 인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에스라는 그 가슴에 거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가지고 있던 꿈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다고 하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성경을 보면 6절에도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이렇게 말하고 있고, 7절 마지막에도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올라올 때에"라고 말하고 있고, 8절에도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그리고 9절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여기 6절, 7절, 8절, 9절 이 다섯 절 중 네 절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제2차 포로귀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아닥사스다 임금 때 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이 '아닥사스다'라는 임금은 별로 유대인들에게는 좋았던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4장 23절부터 보면 이스라엘에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진행되다가 성전 건축 중지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구냐 하면 아닥사스다 임금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중지시킨 장본인이 에스라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허락해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도대체 그럼 이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아닥사스다 임금이 왜 에스라에게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을까요? 12절에 보면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제 가슴이 뜁니다. 왜냐하면 에스라가 도대체 하나님의 율법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으면 그 당시에 임금이었던 아닥사스다의 눈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이렇게 표현했을까? 도대체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얼마나 알고 있었으면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자라고 표현할 만큼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고 있었을까?

저도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런데 우리 성도들 앞에서는, 우리 성도들이 생각할 때 '우리 목사님이 최고다.' 이 소리는 듣고 싶어요. 우리 성도들에게만큼은. 그래보려고 성경을 붙들고 참 많이 씨름했습니다. 성경을 구해서 이 성경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우리 목사님이 성경 가르치는 건 최고야." "성경은 우리 목사님만큼 아는 사람이 없어." 이 소리를 들어보려고 참 많이 씨름하고 삽니다.

오늘날은 인터넷이 발달되어서 성도들이 유명한 분들의 설교를 많이 듣기 때문에 주일 설교 준비에 목숨을 겁니다. 왜? 우리 성도들이 인터넷에 들어가서 다 들어보아도 우리 목사님 설교가 제일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겁니다. 지난번에 제가 교통사고를 굉장히 크게 당했습니다. 거의 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가는데 마침 주일 아침이었어요. 그래서 같이 병원에 가던 부목사에게 교회로 가자고 했습니다. 부목사가 놀라서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말리는데 "아니야. 교회 가서 설교해야 해." 하고는 가서 1~3부 설교를 다 했어요. 놀란 건 성도들이었습니다. 1부 예배엔 교통사고를 다 봤으니까. 병원에 가 있어야 하는데 강단에 서 있는 겁니다. 그래서 1, 2, 3부 설교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갔어요. 다른 건 모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만큼은 발버둥치면서 삽니다. 목숨을 걸고 삽니다. 그런데도 맨날 틀리고 맨날 실수하고 맨날 잘못 가르치고 얼마나 답답한지 모르겠고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왜 이리 못났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도대체 에스라는 어느 정도였기에 아닥사스다 임금의 눈에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자로 보였을까? 이 구절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뜁니다. 나는 왜 저렇게 못 될까? 이것이 제 가슴에 부딪혀오는 고민입니다. 이것을 가슴에 안고 고민하며 삽니다. 오늘날 목회자가 넘쳐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목회자가 이천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들이 우리가 흔히 듣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가장 취직이 힘든 데가 목회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목회자들이 다른 건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최고의 전문가로서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한 자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하나님 앞에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가 다른 거 하는 게 아니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만은 그래도 에스라처럼 이런 소리를 들으려고 발버둥하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얼마 전에 책을 보는데 "30년 만에 세계를 재패한 자." 이런 게 나와요. 깜짝 놀랐어요. 도대체 뭘까 하고 보니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별다방 이야기더라고요. 별다방이 뭔지 아시지요? 스타벅스를 별다방이라고 하더라고요. 스타벅스가 30년 만에 세계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나는 목사 30년 했어도 별 볼 일 없는데, 30년에 세계를 재패했다. 이게 굉장하잖아요. 원래 스타벅스는 커피 전문점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시작은 커피 재료를 파는 상점으로 시작했고, 하워드 슐츠를 영입하면서 처음으로 커피 전문점을 내기 시작했고 30년 만에 세계 최고의 수익을 내는 커피 전문점이 되었어요.

그는 원래 커피에 대해서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어느 날 아침에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시켜 마시는데 얼마나 커피 맛이 좋은지 커피 한 모금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커피 한 모금에도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구나. 그렇다면 나도 내가 사는 내 고향 사람들에게 커피 한 모금의 행복함을 느끼도록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리고 돌아와서 그가 커피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수없이 연구했고 연구 중에 바로 스타벅스 재료를 파는 사람들이 연결이 된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이탈리아에서 마셨던 것 같은 행복감이 든 커피를 만든 거예요. 그 레시피를 가지고 그대로 커피 전문점을 내서 커피를 만들었어요. 커피를 만들어서 일주일이 안됐는데 줄을 쭉 서는 거예요. 그래서 2호점을 내고, 3호점을 낸 것이 이제 세계를 제패하게 된 거죠. 커피 하나도 그렇게 연구하고 준비해서 하니까 30년 만에 세계를 제패하는데 우리 목사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만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발버둥과 노력 속에 거의 에스라와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교갱협의 목사님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했는데 이것만이 아닌 또 하나 중요한 건 15절에 보면 에스라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 그 나라의 모든 장관과 모든 관리들이 모금해서 준 돈을 가져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아닥사스다 임금이 돈을 주었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18절입니다. 아닥사스다 임금이 뭐라고 말하냐면 "이 돈 줄 테니 가져가서 쓰고 돈이 남으면 네 마음대로 사용해라." 너와 네 형제들 마음대로 쓰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바벨론의 왕궁창고에는 세계에서 모아온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는 곳이었죠. 그 열쇠를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닥사스다 임금이 에스라를 보았을 때 저 놈에게 돈을 수억, 수조 원을 주어도 본인이 필요한 만큼만 쓸 사람이고, 이 돈을 주어도 공금은 공금대로 쓸 것이고 본인의 주머니를 채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 아닥사스다 임금이 열쇠를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봅니다. 억만 금을 맡겨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뜻대로 쓸 것이고 공금을 사적인 돈으로 쓰지 않을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에스라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닥사스 임금이 안 거예요. 이 사람에게 돈을 다 맡겨도 이 사람은 절대 잘못되게 돈 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러니까 왕궁의 열쇠를 준겁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돈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이렇게 평가합니다. 교회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목회를 잘하는 사람이고, 교회 돈 마음대로 쓸 수 없어서 당회 허락받고 절차 맞춰서 백 만원씩이라도 어렵게 내는 사람은 목회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이 풍토부터 바꿔야한다고 생각해요. 교회 돈은 내 개인 돈이 아닙니다. 절차 거쳐서 사용하는 게 맞습니다. 여러분, 혹시 그렇게 착각하고 있다면 그 생각부터 바꿔야합니다. 그래서 교회 돈 마음대로 쓰는 사람 목회 잘 한다고 말한다면 이건 하나님께 심판받을 일입니다. 이렇게 에스라는 돈에 대해서 아닥사스다 임금이 믿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25절에 보면 아닥사스다 임금이 에스라에게 생사여탈권을 줍니다. 왜요? 에스라에게 맡기면 학연, 지연 따라서 사람 쓸 사람이 아니고, 본인의 뜻대로 본인의 이득을 위해서 사람 쓸 사람 아니고, 언제나 공정하게 원리 원칙을 따라 말씀대로 제대로 사람 쓰고 일할 사람이라는 에스라의 인품을 알았던 거예요. 오늘 우리가 어떠한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인가? 목회자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에스라의 모습을 보면서 목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준비하고, 물질에 깨끗하고 인품을 믿을 수 있는 자. 이런 사람이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우리 교갱협 목사님들이 이런 에스라와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면 한국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닥사스다 임금에게 신뢰를 받으니 아닥사스다 임금이 돌아가는 걸 허락했어요. 그렇다면 임금에게 이렇게 인정받아서 임금에게 말을 하는 것마다 다 허락받았습니다. 임금은 에스라가 말하면 무조건 YES, 다 허락해요. 그런데 왜 에스라는 그렇게 안정되고 보장된 바벨론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을까요?

10절 때문입니다. 에스라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한평생을 연구하고 준비한 하나님의 율법. 아닥사스다 임금의 눈에 완전한 자로 보일만큼 연구하고 준비한 이 율법을 내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내 백성이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해야겠다는 꿈이 에스라에게는 있었던 겁니다. 이 꿈이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에서의 보장된 삶을 버리고 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2013년에 죽었던 넬슨 만델라는 27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었을 때 몇 나라의 정상이 왔느냐 하면 인터넷에 한참 회자되었죠. 70개 국가의 정상이 왔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의 죽음에 이렇게 많은 국가의 정상들이 올 수 있었을까요? 만델라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만델라의 꿈이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당신을 감옥에서 27년간 고생하게 만든 저 사람들을 그냥 두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만델라는 한 사람에게도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했던 사람들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꿈은 흑인과 백인이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라마를 잘 보는 편은 아닌데 사극은 열심히 봅니다. 그 중 이순신과 세종에 대한 드라마가 나오면 빼지 않고 봅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순신과 세종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 제가 '대왕 세종'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여러 번 울었어요. 이 드라마 마지막 부분에 가면 이런 장면이 나와요. 임금이 공부하고 있는데 누가 들어오니 "영실이냐?" 하고 부릅니다. 그런데 누구냐 하면 자기를 가장 반대하는 학자였어요. 그런데 쳐다보면서도 "영실이냐?" 하고 부릅니다. 세종대왕이 눈이 멀어서 앞이 안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학자가 아무 대답도 안 하고 돌아서서 나가면서 "먼 훗날 후세가 나에게 그 때 이런 가치 없는 글을 만들게 놔두었냐고 어떤 비판을 한다 할지라도 당신의 그 열정 앞에 나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세종이 눈이 멀 정도로 한글을 집중해서 만들었던 이유는 그에게는 꿈이 있었어요. 어떤 꿈이었냐 하면 많은 백성들이 국가에서 글을 붙여놓으면 그걸 못 읽어서 무슨 말인지 몰라 백성들이 날짜가 지나고 많은 고통을 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왕이 된 이후에 자신이 다스리는 이 나라 백성들 중에 글을 몰라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세종의 꿈이었습니다. 그 꿈이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꿈이 있어야 하는데 에스라는 자신이 연구한 이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기 원했습니다. 이 꿈을 이루게 되는데 그 절정은 느헤미야 말씀입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느헤미야가 모았어요. 그리고 그때 말씀을 전한 건 에스라였어요. 에스라가 나무로 만든 강단에 서서 말씀을 증거할 때에 그들이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서 모두가 통회하며 부흥회가 일어납니다. 이 백성에게 내가 이 말씀을 가르쳐서 이 백성이 이 말씀대로 살도록 해봐야겠다는 그 꿈을 가지고 있던 에스라에게 하나님께서 선한 손으로 도우셔서 수문 앞 광장에서 이 꿈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어요.

제 꿈은 내가 목회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내가 이 교회 성도가 된 것이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해주는 것입니다. 다른 꿈은 별로 없습니다. 내가 목회하는 교회 성도들이 이 교회의 성도가 된 것이 너무 좋다고 하는 그 꿈을 이루어보고 싶습니다. 그 외의 다른 꿈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아직도 멀어서 늘 고민이에요. 그래서 늘 고통이긴 해요. 그러나 그런 꿈을 저는 가지고 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 목회하는 교회 성도들 모두가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이렇게 행복해 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우리 교단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교단 소속이어서 정말 자랑스럽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는 꿈을 우리 모두 소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에스라와 같이 이런 꿈을 가지고 살 때에 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에스라와 같은 인물들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런 꿈을 이루어가는 모든 동역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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