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20분이면 아내와 함께 서둘러 집을 나선다.

9시가 넘어서 도서관에 도착하면 자리 잡기가 어렵다. 먼저 온 노인들이 자리를 다 차지한다. 여름 들어 빛고을노인건강타운 도서관이 이렇게 인기리에 붐비는 것은 땡볕 날씨 탓이다.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에 스스로 갇혀 지낸다는 분들의 멋진 여름나기이다. 

지난 8월 10일 이후 광주 날씨가 35도 36도를 넘는 폭염이었다. 도서관은 에어컨을 틀어서 시원하게 오후 4시 반까지는 지낼 수 있으니 전에 오지 않던 많은 분들이 찾는 것이다. 1천5백 원하는 점심을 먹으면 된다.

월요일은 건강체조, 수요일은 사진, 금요일은 문학반 수업에 들어간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수영도 하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대개 도서관에서 책을 본다. 고령이신 어르신들이 책을 읽거나 필사하는 모습이 퍽 진지하다. 여자도 3분지 1은 될 것 같다. 존경스러운 어르신들이다. 점심시간 이후로 코를 고는 분도 계신다. 핸드폰이 울리면 누군가 "진동으로 하세요" 하는 꾸중도 들린다. 빈자리가 없을 때면 자리에 책 한 권만 덜렁 펴놓은 자리가 말썽이다. 그렇에 상당한 시간 비워있는 것이다. 그렇게 귀한(?) 자리를 선점해놓고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오는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은 비워주라는 요청이다. 그렇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주의하는 분위기다.

며칠 동안 혜문서관의 <한국 단편소설 베스트 37>, 타임기획의 <한국 명수필 111선>을 읽었다. 각각 786쪽, 710쪽짜리 두꺼운 책을 흥미진진하게 떼었다. 생소한 단어나 잘 표현된 문장을 필사하면서 읽느라 진도가 다소 늦었지만 '참 좋은 책이다.

단편에는 오늘의 세상을 풍자하는 것 같은 안국선 '금수禽獸회의록'을 비롯하여 김동인 '배따라기', 현진건 '운수 좋은 날', 김동인 '감자', 전영택 '화수분', 주요섭'사랑 손님과 어머니', 이효석 '메밀꽃 필 부렵', 황순원 '독 짓는 늙은이', 박경리 '불신 시대', 이범선 '오발탄', 황석영 '삼포 가는 길',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 새삼스럽거나 처음 읽는 글에서 지나간 시대를 이해하고 또 좋은 문학작품으로 감명이 깊다.

수필에는 기독교 신학적 인물로 이해해왔던 김교신의 '포플러나무 예찬'을 비롯하여 김동인 '대동강', 이광수 '우덕송牛德頌', 이상 '권태', 이양하 '무궁화', 이어령 '빵과 밥',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천경자 '길례 언니', 피천득 '수필' 현진건 '불국사 기행에서' 수필이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잘 배웠다. 글 읽는 즐거움을 아내에게 얘기하며 완독했다. 이 책들은 종종 다니는 광주고등학교 앞 헌책방에 값싸게 골라온 것들이다. 모처럼 횡재를 한 것이다. 나는 책을 가지고 가서 보지만 서가에는 남구청에서 비치한 도서도 적지않다. 노인타운에 있지만 남구청(광주광역시)에서 관리하는 '작은 도서관'은 이렇게 관리하는 모양이다.  작년 까지는 보던 책을 상당량 기증했는데 금년에는 그런 것을 받지 않는 것 같다.

아내도 집에서 가져간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12권과 최인호의 <상도商道> 5권을 다시 읽으면서도 긴장감과 재미에 빠져든단다. 금년 여름은 아내와 함께 '독서 피서'를 즐긴다. 예년에 없었던 무더위에 어쩔 수 없이 도서관에 들어앉아 특별한 '여름 나기'를 한 것이다. 필사 노트만도 여러 권이다. 목회를 하면서는 집중할 수 없었던 재미 쏠쏠한 은퇴 목사의 '행복한 독서시간' 이었다.

나의 첫 시집 <초들물>이 7월 26일에 나왔다.

출판사 직원들의 협조를 기대하며 비교적 한가한 계절을 선택한 것이다. 내가 촬영했던 사진을 곁들어 만든 시집이라서 편집에 상당한 정성이 필요했다. 7월 19일에 인쇄를 맡겼더니 7월 26일에 책을 뽑아왔다.

책을 받은 '서은문학회' 회원들과 '노인타운 문학반' 문우들의 열렬한 축하를 받았다. 5백 권을 뽑았는데 몇 권만 남기고 선물로 다 나갔다. 2016년 무더운 여름. 확실한 '독서 피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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