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누구라도 있는 것처럼 서두른다.
예배당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과실나무가 있는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아직은 빠른 줄 알면서도 노랗게 익은 살구가 반겨줄 것 같아서다. 작년에도 동네 사람들이 주중에 다 따버려서 열매를 구경도 못하고 맛도 못 보았다. 사실은 담밖에 있는 나무라서 먼저 따먹는 사람이 임자이다. 새콤달콤한 살구 맛, 그러나 아직도 파란 풋것이다.

나 말고도 달려오는 사람이 또 있다.
아산에서 병원장으로 있으면서 주일마다 내려오는 임영국 집사이다. 얼굴을 마주친다. 그도 그럴 것이 과실나무를 심은 분이다. 신품종 나무를 사다가 심고 가꾸었다.
인사를 나누고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아직 덜 익었네요. 이게 왕 살구나무거든요. 열매가 크고 맛이 엄청 달아요. 작년에는 더 많이 열렸더니 해 걸이를 하는지 금년에는 덜 열렸네요.” 자못 기쁜 표정이다. 자랑이 이어진다. “이것은 자두인데 쪼락쪼락 많이 열렸네요. 이 무화과는 재래종이라서 맛이 엄청 달고요, 이쪽 것은 신품종이라서 열매가 큽니다. 벌써 주먹만큼이나 컷네요.” 흐뭇하고 행복한 표정이다. 열매를 바라보는 농부의 기쁨이 이런 것일까. 묘목을 심은 지 4년째란다. 높이가 담장 위로 올라갔다.

꽃을 좋아하는 임 집사님의 꽃 자랑은 이것만 아니다.
현관 화단과 식당 동산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철따라 멋진 꽃이 잇대어 피도록 직접 알뿌리나 모종을 심고 가꾼다. 매주일 예배를 마치고는 화단을 돌본다.
자기 기쁨에, 그리고 교회를 사랑해서 자원하여 자비량으로 묘목이나 모종을 사다가 심고 돌보는 것이다. 교인들은 철따라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꽃향기를 즐기고 이웃 주민들도 발걸음을 멈춘다. 꽃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며 꽃 이야기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많다.
늦가을에 심어서 겨울을 지나면 2월에 뾰족하니 올라와 작은 키로 보라색이나 노란색으로 꽃을 피워 봄소식을 전하는 사프란, 봄 향기를 짙게 풍기는 히아신스, 3월에 가냘픈 꽃대로 올라오는 수선화, 4월 초에 여러 가지 색으로 환상적으로 피는 튤립이 봄을 장식하고 노래한다.
6월에는 키가 훤칠한 백합이 고고한 자태를 자랑한다. 6월이면 한 여름 네네 예배당을 지킬 임파천스(이태리봉선화)를 심는다. 백일홍과 함께 긴 여름을 지키는 것이다.
5월에는 사무실 벽에 붙어서 하얗게 꽃이 피는 마삭줄과 붉은 인동초가 있고, 가을 향을 온 동네에 풍기는 만리향(금목서)도 20년은 넘은 것 같다.
꽃을 좋아하는 꽃미남 멋쟁이, 우리와 꽃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이고 기쁨이다. 고맙고 사랑스럽다. 나는 교회 화단을 그의 이름으로 ‘영국 꽃밭’이라 불렀다.  이런 일이 종일 많은 손님을 만나는 그에게는 기분 전환을 위한 힐링이었을 것이다.

식당 입구 백일홍 동산도 멋지다.
누군가 사정없이, 멋없이 가지를 싹둑 잘라버렸다. 잔가지가 하나도 없이 중간을 베어버린 것이다. 저렇게 하면 나무를 죽이지나 않나 싶었는데, 5월이 되니 연한 가지가 나 보란 듯 무성하게 돋아난다. “생명이 강하네요. 죽을 것 같다 생각했는데 새 가지가 나왔네요.” “그러게요. 징하게 강하네요.” 옆을 지나는 홍 장로와 나눈 이야기다. 배롱나무나 자미라고도 부르는 이 나무를 심은 지가 꽤 오래되었다.
이 나무 사연은 이렇다. 1992년, 예배당 증축할 때 식당 앞에 동산을 만들었다. 고인이 되신 박봉덕 권사님이 조경 사업하는 아들에게 부탁을 해서, 아이들 팔뚝만큼 굵은 나무들 몇 그루 심어주었다. 백일이나 붉게 피는 꽃, 세 번째 필 때쯤이면 쌀밥을 먹는다 했다. 말하자면 한 여름 내내 꽃이 빨갛게 피어있는 꽃나무이다.
언젠가 나무를 심어준 남 사장을 만났다. 그는 어머니를 뵈러 올 때면 일부러 예배당 앞으로 가면서 꽃나무와 또 함께 심었던 화초들을 둘러본다고 했다. 철쭉이나 돌 틈에 심은 할미꽃까지 정성 들여 심어준 것들이다. 고마운 분들이다.

후임 목사님(이한석)께 이런 이야기도 들려드렸다.
교인들의 수고와 정성에 잊어버리지 말고 고마워하자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교회가 오늘에 이르끼까지 많은 성도들의 지극 정성를 인정하고 칭찬하자는 생각에서이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길들이 너무 아름다운 것이다.
“나무는 심어놓으면 이렇게 잘 커서 열매를 맺지요?”
“그래요, 나무는 거짓이 없어요. 실망시키지 않지요.”
백일홍을 쳐다보며 교인들과 나눈 이야기다.
작년 여름, 캐나다에 갔을 때 둘째 딸네 집에 ‘미스 김 라일락’을 심어주었다.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그 꽃을 처음 보았다. 추운 겨울을 지나고 새움이 돋았다고 말한다. 6월이면 출퇴근길에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해 가을에는 집사님들과 함께 소록도남성교회에 과실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봄을 기다릴 희망나무로 심어드린 것이다.

꽃을 심고, 사랑을 심고.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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