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멋에 산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심층심리학이나 긍정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전통적 신앙관념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에겐 발칙(?)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이야말로 각 사람에게 각자의 멋을 부여해주셨고, 신앙 안에서 그 멋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드러내면서 자기를 자기되게 하는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있다. 매슬로우가 말한대로 자아실현의 단계에만 머문다면 제 멋에 사는 것은 인본주의적 삶에 지나지 않지만, 자아실현의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질 때, 제 멋에 사는 삶은 신본주의적 신앙의 바람직한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기의 멋을 마음껏 부릴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적극 동참해야 한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기를 자기되게 하는 삶,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불어넣어주신 멋을 맘껏 드러내며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삶,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삶을 원하시고 도우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신앙인이 이 세상에서 제 멋에 사는 것은 인생 목적의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반쪽짜리 목적에 불과하다. 세상에서 제 멋에 사는 삶은 본향을 향하는 삶으로 나타나고, 나아가 삶이라는 머언 먼 순례의 여행을 모두 끝낸 후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 이것이 제 멋에 사는 삶의 최종 목적이고 목적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20년의 세월…, 이 20년의 세월 안에 나의 결혼생활과 목회와 사회복지 사역이 접시 위의 샐러드처럼 섞여있다. 그 세월을 지내면서 해빌리지 살렘교회 울타리 안에서 혹은 울타리 밖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 혹은 몸이 아픈 사람들, 삶의 의욕이 너무 강한 사람들 혹은 너무 약한 사람들…, 배가 고픈 사람들 혹은 마음이 고픈 사람들…. 그 사람들을 만나는 와중에 노출된 나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 모습들…, 그렇게 20여년의 세월이 사는 동안 세월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 한 가정에 가족복지가 이루어질 때, 교회복지가 이루어져 행복한 교회가 되고 사회복지가 이루어져 사회가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지지자가 되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지지자가 되어 서로 당겨주고 밀어줄 때,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행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어려운 환경을 좋은 환경으로 바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엊그제 결혼 20주년 기념사진을 찾아와서 보던 중에 2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진으로 남겨진 결혼 10주년, 15주년, 20주년 사진 속에서 2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러면서 우리 네 식구의 삶은 집과 교회라는 울타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음을 알 수 있었고, 네 식구 모두 특출한 능력은 없지만 네 식구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왔었다. 그러면서 우리 나름대로의 멋을 부리며 살아왔구나, 그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이 참 감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대에 두 위기가 있다. 하나는 가정해체의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붕괴의 위기이다. 그런데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신적 기관이다. 즉, 이 두 신적 기관이 해체 혹은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에 직면한 우리에게 주어진 신적 사명은 부자가 되는 것 혹은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가정과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이 세우시고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가정과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신앙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지지자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짐을 함께 나누어질 수 있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게 가정과 교회라는 두 축을 토대로 우리가 함께 하는 걸음은 저 본향을 향한 걸음이어야 하고, 반드시 반드시 우리 가족 모두 교회 가족 모두 하나님 아버지 계시는 그 나라에 가야 하고 그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려야 한다. 지난 20년의 세월…,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때로는 이론가의 자리에서, 때로는 실천가의 자리에서, 때로는 연구자의 자리에서 내 영혼에 불을 놓는 심정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간의 세월을 무사히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었다. 정말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지난 20년의 세월은 "지금 여기"(here and now)의 현장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을 얻고자 했던 세월이었다. 그런데 이젠 어떻게 저 본향에 무사히 당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내 삶에 가장 큰 비중있는 질문이다. 어쩌면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은 자유로운 영혼인 내가 철이 좀 들어가는 사인인지도 모르겠다. 저 본향에 무사히 당도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시편 84편 5절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래, 이 세상에 쉬운 삶이 없듯이, 교회로 향하고 본향을 향하는 길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할진대, 주께서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열어주시지. 그런 우리 모두는 복 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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