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은행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당신 앞으로 어떤 사람이 1,440만원을 송금했습니다. 오늘 안에 다 쓰라고 했습니다.” 영문을 몰라서 감히 쓸 수 없었다. 다음 날 또 전화가 왔다. “어제 그 돈을 안 써서 다 찾아갔습니다. 새로 1,440만원을 송금했으니 오늘 안에 쓰랍니다. 안 쓰면 역시 도로 찾아간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 써버렸다. 이런 식으로 매일 반복되었다. 쓰기는 하면서도 이러다 갑자기 끊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점점 불안해졌다.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루 24시간, 분으로 환산하면 1,440분을 날마다 주신다. 그러다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실 거다. “이제 그만! 그동안 어떻게 썼는지 보자.” 그때 우리의 표정이 어떨까?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가 ‘어느새’라고 했던가?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어느덧 한 해의 시간을 다 써버렸다. 어떻게 썼는지 따져 보면 내가 인생을 잘 살았는지 평가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한 해 한 해 쌓여가다 보면 머지않아 내 인생이 끝나게 되리라.

우리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연말이 되면 흠칫 놀라며 세월의 신속함을 느끼곤 한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성구가 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모세가 인생 말년에 올린 기도문이다.

인생의 90%가 시간관리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바로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 시간에는 영원과 순간이 있다. 이 세상만 생각하면 인간이 유한한 존재지만 내세를 생각하면 영원한 존재이다. 우리는 엄연히 순간에서 영원까지 살아갈 존재들이다.

모세는 자신의 노구를 보면서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오죽하면 “우리가 날아가나이다(We fly away)”(시90:10)라고 표현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천국을 바라보았다. 그는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이 세상만 바라보면 인간은 한없이 연약하고 유한하지만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면 위대하고 영원한 존재이다.

그렇다. 흘러가는 세월의 야속함에 쓸쓸해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세월이 흘러가도 그 순간순간을 영원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위대할 수 있다. 여기에 신앙의 중요한 가치가 있다.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길이 되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유한한 인생이 영원에 잇대어진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최선을 다한 순간은 영원한 시간으로 승화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사랑이 그 정욕도 지나가되(pass away)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lives forever).”(요일2:15~17)

우리 모두 연말의 쓸쓸함을 이기고 또 한 해를 예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어떻게 하면 순간에서 영원까지 살 것인지 묵상하며 새해를 맞이하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