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운하 아라뱃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한강하류 행주대교에서부터 시원스레 쭉 뻗어있는 18km를 저어 서해바다에 이르니 온통 땀범벅이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경인운하만큼 논란이 되었던 국책사업이 또 있을까. 그 역사는 무려 800년 전, 고려 고종황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1213년, 그는 운하착공을 윤허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조선 중종, 또 실패했다.

그 이후 집권자들도 예외없이 이 패를 만지작거렸다. 그때마다 감사원은 ‘운하사업경제성, 과장됐다’고 발표했고,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2004년 이 사업은 공식 중단됐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취임 이듬해인 2009년 1월, 뜬금없이 운하재추진을 발표하고선 이를 밀어붙였다. 그래서 2012년 5월, 경인아라뱃길이 공식 개통된다.

그 뱃길, 겉으로 볼 때는 풍광이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폭 80m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조성된 자전거길은 매니아들에겐 환상 그 자체다. 하지만 운하의 주목적이 무엇인가. 자전거 길이 아니다. 뱃길이다. 배가 다녀야 한다. 그런데 페달을 밟고 가고 오면서 아무리 유심히 운하를 살펴도 이용하는 배가 거의 없다. 2014년 1분기에는 단 1척의 배도 입항하지 않았다. ‘유령운하’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왜 이런 무리한 사업을 벌였을까. 태생적부터 저들 뇌리에는 ‘운하’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강부터 낙동강까지 운하를 뚫어 배를 띠우겠다는 의욕, 이게 최대선거공약이었다. 그런데 집권 후, 여의치 않자 대신 ‘경인운하’라도, ‘4대강’이라도, 하는 ‘업적이름주의’가 득보다 실로 금수강산을 흠집 내버렸다.

해방 이후 우리는 11명의 대통령(수반)을 두었다. 그중 현 대통령이 조국해방과 남북분단 70주년이란 특별한 8·15광복절의 주빈자리에 앉는다. 박근혜정부는 제6공화국이다. 여섯 정부 모두가 공통적으로 야심차게 추진해온 것, 하나있다. 그것은 ‘통일’이다. 저들은 ‘통일대통령’이라는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했다. 그런데 임기는 불과 5년, 그래서 조급했다.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됐다. 그러다보니 ‘대박’이란 말까지 나와 버렸다. 나라의 큰 어른이 ‘통일은 대박’하니 마치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면서 베를린을 향해 ‘유라시아친선특급’이 출발하고, ‘통일펀드’라는 것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핵을 손에 들고, 연평도를 향해 포문을 열고 있는 상대는 느긋하다. 우리가 쓸 패, 다 들켜버렸기 때문이다.

1921년, 역시 하나의 민족이었던 아일랜드가 남북으로 나뉘어졌다. 그때부터 국경철조망이 쳐졌고, 요인암살, 주요시설테러 등 적대관계가 계속됐다. 그러던 저들이 분단 80여년이 지난 1998년, ‘아일랜드 평화프로세스(Irish Peace Process)’ 즉, 성금요일협정(Good Friday Agreement)을 체결한다. 이 프로세스로 남북간에 신뢰가 형성되면서 평화가 정착되어 지금은 굳게 닫힌 철조망이 걷어지고 심지어 국경초소까지 사라졌다. 여기에 양측 정부수반을 대표로 하는 공동회의체를 통해 정책을 협의하며, 교류를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만일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통일을 ‘임기내’에 반드시 이루겠다는 ‘업적이름주의’에 연연치 않고 긴 호흡으로 일관성 있게 접근했더라면 분단70주년, 이 특별한 해쯤에는 저 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Peace Process)가 한반도에서도 펼쳐지고 있지 않을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총회장 임기는 불과 1년이다. 그런데 총회가 어디 간단한가. 2014년 현재, 148개 노회, 11,593개 교회, 22,216명의 목사, 21,127명의 장로, 2,857,065명의 교인들이 뿜어내는 그을음들, 장난이 아니다. 때문에 취임 전반기는 이런 사안들을 파악하는 대도 눈이 충혈될 정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5월,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열리고, ‘선거관리위원회’가 가동되기 시작한다. 본부에서는 다음 총회를 위한 준비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리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라는 신호다. 초조해진다. 이 초조함이 얼굴에 묻어날 때쯤이면 소위 ‘해법자’들이 부나방처럼 접근한다. ‘실세’란 닉네임을 가진 익숙한 얼굴들이다. 저들은 그럴듯한 책략과 감언이설로 이해득실을 토해낸다. 어느 틈엔가 시간에 쫓기는 쪽의 눈과 귀는 가려지면서 판단이 흐려지고, 초심에서 점점 멀어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롯데 신격호(94세)씨 처럼 말이다.

지난 날 납골당, 아이티, 특히 무분별한 교세확장추진 등에 대한 밑바닥정서는 어떠한가? 오늘의 총신문제 해결은 과연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공증까지 마쳤다는 ‘합의문’이 진정 제99회 총회결의정신에 부합하는가? 노회(老獪)한 정치꼼수에 ‘외양간’마저 어찌되는 것은 아닌가? 동산교회(황해노회)문제는 정당하게 다뤄지고 있는가?

1986년부터 여성 10명이 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수사관들이 ‘한건주의’ ‘소영웅주의’의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보다 냉정하고 진중하게 접근했더라면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일담이다. 그래서 경인운하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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